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어느새 트랙3이 끝나고 트랙4가 돌아가고 있는 오르골을 멈췄다.
나는 시약병의 마개를 조심히 닫으며 말했다.
“이걸로 계약 성립. 눈물을 얼마나 뽑을지는 나중에 상호 합의하에 결정하도록 하자고.”
나는 막내 인어를 바닷물에 풀어주고서 모든 인어들에게 말했다.
“이제 크라켄을 잡으러 갈까 해. 녀석이 있는 쪽으로 안내해 주겠어?”
열두 인어들이 곤돌라를 밀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청새치 못지않은 빠르기였다.
어느덧 차가운 안개가 걷히고, 배는 다시 비 내리는 밤바다로 나왔다.
“이제 우리한테 맡기고 너희는 멀리 물러나. 전투해야 하니까.”
인어들이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막내 인어는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 그녀는 얼굴을 반쯤 물 속에 박고 부글거리다가 한마디 했다.
“그래, 고마워. 얼른 언니들 따라가.”
수줍게 사라지는 마지막 인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테실리드와 애쉬의 귀에 걸렸던 보호의 가호를 풀어주었다.
애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른히 웃으며 말했다.
“흐음, 누님이 왜 이 던전을 숨기고 싶어 하시나 했더니, 인어 때문이었군요?”
“그래, 살인멸구 당하기 싫으면 어디 가서 떠벌릴 생각은 하지 마.”
“안심하세요. 저 비밀 잘 지킵니다. 그보다 인어들하고 이야기는 잘 되셨나 봅니다?”
“응. 보스를 처리해 주고 인어의 눈물을 받기로 합의했어.”
“그럼 이제 보스 공략을 해야 할 텐데, 저는 뭘 할까요? 다시 낚시하면 됩니까?”
“의욕적으로 굴지 마. 공략해도 네 몫은 없어.”
“기대도 안 했습니다. 애초에 용병이니까요.”
주제를 잘 아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월급은 시세보다 높게 쳐주기로 방금 결정했다.
“아무튼 다시 낚시하면 돼요?”
“아니, 우린 할 필요 없어. 이제 한 사람만 하면 되거든.”
말을 마친 나는 테실리드를 돌아보았다.
회귀자답게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테실리드는 필요한 작업에 알아서 척척 착수 중이었다.
그는 아까 잡은 거대 청새치에 상처를 냈다. 피 냄새로 보스를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낚싯줄은 이걸로 써.”
“고급 장비로군.”
테실리드가 정령왕의 하프 현으로 낚싯줄을 갈아 끼우는 동안, 나는 인벤토리에서 병을 하나 꺼내 청새치의 입안에 부었다.
암록색 액체가 청새치의 뱃속으로 콸콸콸 들어갔다.
애쉬가 관심을 보였다.
“맹독 같네요?”
“역시 업계 종사자다운 눈썰미네.”
시련의 탑에서 오래전에 독마룡을 잡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테실리드가 낚싯줄이 된 정령왕의 하프 현 끝에 청새치를 꽁꽁 감아서 매달았다.
이제 이 거대한 미끼를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야 했다.
“봉돌로 쓸 만한 게 필요한데…….”
길지 않은 고민 끝에 테실리드는 답을 찾아냈다.
성검 리브라를 소환해서 청새치와 같이 매단 것이다.
풍덩! 스르르륵…….
그가 정령왕의 하프 현을 통해 성검에 오러를 주입하자, 청새치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애쉬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우와, 형님. 성검을 그런 용도로 쓰시다니요. 배덕감 안 드십니까?”
“안 듭니다.”
테실리드는 낚시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정령왕의 하프 현이 전달해 주는 감각을 손끝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신경을 쏟았다.
테실리드가 보스를 낚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나와 애쉬는 간식을 먹으며 선상 피크닉을 즐겼다.
“이 다쿠아즈 맛있네요.”
“많이 먹어. 충분히 있어.”
“형님도 드셔보세요.”
“저는 손이 바빠서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먹여 드리겠습니다. 아, 해보세요, 형님.”
“사양…….”
“누님, 안 드신대요. 그거 저 주세요.”
“네 손으로 먹어.”
“넵, 누님.”
테실리드한테 먹여주려던 다쿠아즈는 내 입으로 들어갔다.
“…….”
“테리, 왜?”
“……아니야.”
아니긴.
다시 다쿠아즈를 내밀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잘만 받아먹었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흐뭇해합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저런 건 비안카와도 지겹도록 했다며 우쭐합니다.]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때였다.
파르르르…….
청새치 미끼와 이어진 하프 현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놈인가?”
테실리드가 눈매를 가늘게 하고는 낚싯줄을 감기 시작했다. 미끼를 천천히 위로 끌어 올려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출렁출렁.
나름 잠잠하던 바다가 심상찮게 요동쳤다.
“애쉬, 배 꽉 잡아.”
명령하고 나도 한 손으로 곤돌라의 난간을, 다른 한 손으로는 테실리드의 상완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이익!
바닷물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인어들이 배를 포위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빠른 물살이었다.[ 경고. 격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합니다.]평온하던 바다 한복판에 심연의 입구 같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타고 있는 곤돌라는 미친 듯이 소용돌이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았다.
없던 뱃멀미도 날 것 같은 상황.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온다.”
푸콰아아악!
곳곳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춤을 추듯 꿈틀거리는 그것들은 여덟 개의 문어 다리였다.
다리들은 모두 아름드리나무 못지않은 두께와 길이를 자랑했다.
표면을 덮은 빨판도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통만큼이나 컸다.
그것이 제각기 조였다 풀리며 움찔거리는 광경은 혐오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네, 네. 아그네스.
낚싯줄을 감던 테실리드의 손이 턱 하고 멈췄다.
“곤돌라 바로 아래에서 미끼를 삼켰어.”
“좋아. 안팎으로 공격하자. 테리 넌 오러랑 신성력으로 내장 뒤틀어. 난 밖에서 정신 못 차리게 할게.”
“누님, 저는요?”
“응원해.”
환경상 근딜러는 실직할 수밖에 없다.
나는 곤돌라 위에서 균형을 잡고 일어났다. 경건한 음성으로 신의 철퇴를 소환할 준비를 했다.
“성력 강화. 표적 각인. 심판 예고. 절대 집행.”
보조 계열 스킬을 쌓으며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에 이변이 생겼다.
두꺼운 먹구름이 마치 똬리를 트는 뱀처럼 느릿하게 원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직! 파지직!
눈이 시리도록 파란 스파크가 명멸했다.
이윽고 하늘에 완성된 것은 다섯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전격의 회오리였다.
마침 구름은 전하를 듬뿍 머금고서 분노를 켜켜이 쌓아두고 있던 상태.
그것이 신성한 낙뢰의 위력을 배가시킨다.
“신벌!”
웅대한 전격의 뱀이 여덟 꼬리를 꿈틀거린 순간이었다.
콰지지지지지직!
하늘에서 강력한 뇌전이 쏟아졌다.
회오리의 회전 궤도를 따라 전격이 끊이지 않고 휘몰아친다.
그것은 더 이상 단발적인 낙뢰라고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전격의 토네이도.
수면 위로 높게 솟구쳐 오른 문어의 다리들이 지져졌다.
강화된 신벌의 파괴력을 모조리 흡수하게 된 보스가 몸부림쳤다.
그에 따라 소용돌이가 아닌 다른 이유로 바다가 들썩였다.
우리는 배를 꽉 잡고 버텼다.
그때였다.
“누님, 물이……!”
바다의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바닷물이 빠져서? 그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더 큰 원인은 따로 있다.
“헉!”
애쉬가 숨을 집어삼켰다.
곤돌라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미끄러져 내렸다. 가까스로 바다 위에 안착한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쏴아아아아!
폭포수처럼 바닷물을 쏟아내며 거대한 존재가 융기했다.
오징어, 낙지, 문어를 섞어놓은 듯한 거대한 수중 생물이 여덟 개의 붉은 눈을 번뜩이며 우리를 내려다 보았다.[ 던전의 주인, 마계 서열 610위 ‘하수구를 막은 크라켄’이 등장했습니다.]그랬다. 우리가 놀이기구처럼 타고 내려온 짜릿한 미끄럼틀.
그것은 바로 크라켄의 매끄러운 대가리와 몸뚱이였다.
“헉, 헉……. 무서웠어요. 누님.”
“엄살은.”
그때 크라켄이 우리가 타고 있는 곤돌라로 촉수 다리를 매섭게 뻗어왔다.
배를 휘감아 부수든 바닷물에 수장시키든 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서걱!
내 사복검과 애쉬의 단검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졸지에 다리 하나를 잃은 크라켄이 분노에 차서는 입을 쩍 벌리고 포효했다.
쿠오오오오-!
“으으, 엄청 징그럽게 생겼네요.”
동감이다.
크라켄의 구강은 혀가 없는 대신, 내벽 전체가 이빨인지 돌기인지 모를 것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에에엑-!
그런 입안에서 암록색 체액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슬슬 마룡의 독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어 다리들이 아까보다 맥아리 없이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좀 더 몰아붙이면 되겠군.”
테실리드가 낚싯대를 옆으로 떨구었다.
그의 왼손에는 낚싯줄로 쓰고 있던 정령왕의 하프 현이 단단히 감겨 있었다.
크라켄이 청새치 미끼를 맛있게 먹어준 덕분에, 와이어의 끝은 내장까지 닿아 있을 터였다.
테실리드가 공격을 감행했다.
“푸른 성화.”
화르르륵!
테실리드의 손에 발화된 불꽃이 정령왕의 하프 현을 도화선 삼아 빠르게 이동했다.
그것은 크라켄의 입을 통해 위장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쿠, 쿠오오오-!
자고로 수중 생물은 열에 취약한 법.
주교급 신성력을 쏟아부어 만든 성화가 배 속에서 터지자 크라켄이 괴로워하며 발광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