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이대로는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죽겠네.”
나는 세르펜스를 꺼내 들었다. 오러를 실은 검신이 가볍게 호선의 궤적을 그렸다.
스윽.
어미 늑대는 저항하지 않았다.
곧 거체가 옆으로 넘어가며 땅이 울렸다. 나는 뒤돌아서서 세르펜스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누님?”
“새끼들을 지키려고 파수꾼의 역할을 거부한 것 같아.”
타락한 숲의 정령은 아낙시아의 노예가 되면서 침입자는 무조건 공격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하필 갓 태어난 새끼들이 있던 참이었고, 젖먹이 새끼들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싸울 재간은 없었다.
토벌대를 공격하면 새끼들이 죽임을 당할 것은 명백한 상황.
그래서 어미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토벌대를 그냥 보내주는 것을 선택했으리라.
“그 대가로 심장이 죄여드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되는 걸 알면서도.”
“그런데 토벌대 측에서 약속을 어기고 이런 짓을 했다는 거군요.”
“그래, 애쉬.”
“역시 인간이란. 이렇게 혐오스러우니까 제 밥줄이 안 끊기는 거라니까요.”
헤스티오가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말했다.
“모리피스란 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아니야.”
“뭐?”
내 반박에 헤스티오를 비롯한 일행들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죽은 어미 늑대와 새끼 늑대들을 신성력으로 화장해 주며 말했다.
“내 말은, 이건 모리피스의 손속이 아니라는 뜻이야. 키메라 연구가는 귀여운 것은 죽이지 않거든.”
모리피스는 나름 신념이 있고 취향이 확고한 미치광이였다.
그리고 이런 잔혹한 짓을 독단적으로 벌일 만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나는 유일하게 생존한 새끼 늑대가 눈을 뜨는 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건 오델리트 공녀의 짓일 거야.”✠“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는 게냐, 조카 잉손녀(仍孫女)야.”
“지체하여 송구합니다, 큰 곤조부(昆祖父)님.”
던전 시간으로 약 한 시간 전. 던전의 세 번째 지역인 가시덤불 숲에서는 마르셀리온 공작가의 8대 조상과 그 후손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후방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서 잠시 살피고 왔습니다. 큰 곤조부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니니 염려치 마십시오.”
한쪽은 검은 제복을 입은 금발 포니테일의 미인.
바로 제1마도군의 지휘관이었다가 얼마 전 제7마도군의 부지휘관으로 좌천된 오델리트 공녀였다.
전위 병력이 몰살당하는 실책을 저지르고도 부지휘관 자리나마 보존하는 데서 가문의 위세를 알 만했다.
게다가 오델리트 본인은 별다른 자숙이나 반성의 태도 없이 목에 힘을 주고 있다는 데서 그녀의 인성도 알 수 있었다.
도리어 오델리트는 강직(降職)이 스스로 결정한 일인 양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다.
그간 줄곧 미뤄뒀던 마법사의 탑 졸업 연구를 하기 위해 일부러 한직을 자처했다는 논리였다.
“물론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단다. 혐오스러운 인간들의 일 따윈 내 알 바가 아니니 알아서 하려무나.”
또 한쪽은 늙은 말투와 ‘큰 곤조부’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게도 탱탱한 외모를 자랑하는 미청년이었다.
그는 특이한 하늘색의 긴 머리칼과 은색 눈동자를 가졌으며, 몸 이곳저곳에 작은 짐승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귀여운 뱁새가 머리 위에서 종종거리고, 아기 다람쥐가 좌우 어깨를 오가며, 아기 고양이가 팔 안에 안겨서 잠들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옅은 색소, 평온한 분위기, 그리고 작은 동물들.
이런 조합 탓에 청년은 일견 무해하고 선한 동물 애호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그는 인간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강자이자 미치광이 마법사로 일컬어지는 키메라 연구가, 모리피스 마르셀리온이었다.
모리피스가 잠든 아기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온유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아까 지나온 길에 본 새끼 늑대들 참 귀엽지 않았느냐?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 형태의 키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연구 재료로 쓰실 생각입니까? 지금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올까요?”
오델리트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모리피스에게 되물었다.
방금 그녀가 후방에서 처리한 일이, 새끼 늑대들을 모두 도륙하여 어미 늑대의 목줄이 닿지 않는 곳에 널어두는 것이었음에도.
“그럴까…….”
곤란하게도 조상님께서 긍정의 기색을 비쳤을 때였다.
다행히 모리피스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 고양이가 오델리트를 도왔다.
고양이가 대화를 알아들은 듯 퍼뜩 고개 들더니 눈을 떴다.
순간 귀여운 아기고양이의 눈이 뱀처럼 변하고 귀여운 입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캬아아악!
사실 모리피스의 몸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짐승들은 귀여운 외견 속에 괴수의 본 형체를 숨기고 있는 키메라들이었다.
“이런, 우리 카탈리나. 질투하는 게야?”
“그런 모양입니다.”
“아쉽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알겠습니다, 큰 곤조부님.”
그렇게 오델리트가 뒤에서 임의로 벌인 살생은 묻혔다.
그때 짧은 적금발을 가진 노련한 인상의 여인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왕국군 총지휘관, 로미나 레칸드로 후작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오델리트는 위압감을 느끼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모리피스 대마법사님.”
“예, 레칸드로 후작.”
8써클 대마법사와 오러 마스터가 마주한 상황.
전의라고는 전혀 없는 분위기이건만 왠지 모를 긴장감이 주변 일대를 잠식했다.
레칸드로 후작이 모리피스에게 말했다.
“교국을 방해하는 일은 끝나셨습니까? 이제 다시 출발해도 될는지요?”
무뚝뚝한 음성과 표정이었으나, 눈빛에는 치졸함을 힐난하는 기색이 있었다.
이를 읽어낸 모리피스가 뱁새를 검지 끝에 옮겨 앉히며 눈매를 휘어 웃었다.
“섭섭하외다, 레칸드로 후작. 우리가 항상 그런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거늘.”
“그럼 아닙니까?”
“이번에는 아니외다. 그렇지 않으냐, 조카 잉손녀야?”
“예, 큰 곤조부님.”
오델리트는 다시금 낯빛 변화 없이 대답했다.
모리피스는 제 조카 잉손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인지, 이런 소리까지 덧붙였다.
“보시게나. 우리 가문의 대를 걸고 맹세하외다.”
이에 시종일관 뻔뻔하던 오델리트가 흠칫했다.
여느 웃어른이 그러하듯 모리피스는 후손을 보는 데에 진심이었다.
이미 조카 잉손주까지 봐놓고도 운손주까지 보기를 고대하는, 양심 없는 조상이었던 것이다.
한편 레칸드로 후작은 속으로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이번만 안 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결국 그녀는 참았던 질타를 내뱉고 말았다.
“좀 작작하실 수 없습니까?”
“응?”
“뒤처진 우군을 돕진 못할망정 장애물을 더 심어두다니요. 최근 두 나라 사이에 마혈석 분쟁이 심각하다곤 하나, 이런 식으로 앙갚음을 꼭 해야 합니까?”
“마혈석? 그런 분쟁이 있었소이까?”
“…….”
그제야 레칸드로 후작은 자신이 모리피스를 너무 과대평가했음을 깨달았다.
마탑에 처박혀 생체 실험만 하는 이 미치광이 마법사는 지독한 인간 혐오증이며 인간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사이 모리피스는 오델리트에게 마혈석 분쟁과 관련된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아, 그랬느냐? 버스트 던전 보스를 해치운 자리에 마혈석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 애매한 국경인 게야?”
“예, 큰 곤조부님. 해당 지역에서는 현재까지 밤낮으로 우리 마도국과 교국의 병력이 대치 중입니다. 언제 무력 분쟁이 촉발되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허허, 지리멸렬한 상황이구나. 그런 것이라면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는데 말이다.”
“예?”
국제 정세는커녕 세상 물정도 모를 것 같은 모리피스의 입에서 해결책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오델리트뿐만 아니라 레칸드로 후작마저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물론 미치광이 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상적일 리는 없었다.
“성녀를 납치해서 협박하면 되잖느냐.”
“…….”
“교단은 성녀라면 끔뻑 죽는단다. 200년 전에도 쏠쏠한 재미를 본 방법이라 효과는 확실하지. 그때도 성녀 루크레치아를 안 돌려보내 줬더니 교국 녀석들이 어찌나 울며불며 난리를 피우던지.”
“성녀의 유수 사건 말씀이시군요.”
“아아, 요즘은 그렇게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양이구나. 그때는 그냥 성녀 감금 사건이라고 불렀는데. 그거 아느냐? 나는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단다. 그 시절에도 나는 살아 있었거든. 아주 귀여운 네 살 꼬마 아이였지.”
“아, 네.”
“그러고 보니 이번 던전에도 성녀가 온다 하지 않았느냐? 어떡할까? 납치해 갈까?”
결국 미친 소리를 듣다 못한 레칸드로 후작이 나섰다.
“모리피스 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허허, 레칸드로 후작께서는 성녀 납치 같은 중대한 사안을 농으로 하시오? 큰일 날 분이시외다.”
“…….”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레칸드로 후작을 내버려 두고, 모리피스가 오델리트에게 말했다.
“나는 협조해 줄 용의가 있단다, 조카 잉손녀야.”
“큰 곤조부님께서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보이시다니 의외로군요.”
“정치? 아니지. 인간들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니란다.”
“그럼 어째서입니까?”
모리피스가 해맑게 웃었다.
“난 인간은 관심 없지만 성녀 정도 되면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한단다. 너도 마법사이니 알겠지?”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