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75)
75_새로운 태양의 시대(2)
“결국 중요한 건 신대륙이다.”
여왕의 말에 호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파냐에 들어가는 신대륙의 금화를 끊어버리면, 베네치아가 동요하겠죠.”
“아니, 자네는 잘 모르고 있어. 그 정도가 아니야.”
여왕이 목소리를 다듬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스파냐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시점엔 펠리페 2세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에스파냐의 경제 구조는 지나치게 기형적이다.”
에스파냐는 분명한 강대국이었다.
방대한 영토와 무시 못 할 군사력을 가진 강국.
게다가 신대륙에선 끊임없이 황금이 쏟아져나온다.
그러나 그 단단해 보이는 겉가죽과 달리, 내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에스파냐는 이슬람 기술자를 전부 내쫓았었지.”
이 일로 에스파냐란 국가의 허리는 한 번 끊어졌다.
물론 그뿐이라면 시일이 흐르며 회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스파냐는 정책적으로 기술자를 천시하지. 덕분에 자국 기술자는 무척이나 드물어.”
에스파냐의 특유의 귀족주의 문화가 빚은 현상이었다.
기술자들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고, 박봉에 시달렸다.
혹 기술자가 필요하다면 자국 기술자가 아니라, 네덜란드 등의 외국에서 비싼 돈을 들여 의뢰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에스파냐는 식민제국인데도 식민지와 같이 기형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돈은 많지만, 기술력은 없어 모든 걸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
하다못해 함선 하나를 만들어도, 오스만보다 몇 배의 돈이 드는 것이 바로 에스파냐의 현주소였다.
“에스파냐엔 수많은 금이 흘러들어오지만, 그 금은 그대로 타국에 흘러나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 그저 통로일 뿐이지. 겉보기와 달리, 에스파냐는 파산 직전이야.”
신대륙에서 나오는 엄청난 재화가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불안정한 국가라는 말이다.
“그런데 알고 있나, 호킨스? 최근 에스파냐는 막대한 돈을 썼다네. 합스부르크와 혼인 동맹을 진행하고, 베네치아를 제 편으로 끌어들였으니까.”
호킨스가 씨익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일으킬 파급력을요.”
가뜩이나 불안정한 에스파냐의 자금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선 그가 하기에 따라서 일시적으로나마 에스파냐의 팔을 꺾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보다 대단한 일이 또 있을까.
호킨스가 이를 드러내 보이고 웃자,
여왕의 심기기 불편해졌다.
‘조금 더 신중하게 임하라고 해준 말이었는데···.’
호킨스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들뜬 기색이었다.
그걸 보니, 여왕은 새삼스레 와이어트가 보고 싶었다.
‘휴우, 그라면 좀 믿음직했을 텐데. 와이어트는 지금 잘하고 있으려나?’
망원경의 시험 겸 무역을 위해 보낸 와이어트.
이번 일의 무게를 생각하면, 역시 그가 필요했다.
‘그가 지금 신대륙에서 원주민들과 친분을 조금 쌓고 있다면 좋겠군. 이번 일에 무척 도움이 될 테니.’
웨스트민스터 궁에서 여왕이 생각에 잠긴 그 시점.
신대륙의 한 정글, 그곳에서 와이어트는···.
“연기 나는 거울의 신이시여!”
마야의 주술사 할멈에게 경배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 주술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와아아아아! 테스카틀리포카의 화신이시여!”
할멈의 뒤에는 수많은 마야 부족민들이 함께였다.
저마다 각기 다른 부족의 문양을 칠한 이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환호성을 보냈다.
와이어트는 현기증이 나는지 작게 몸을 휘청였다.
“이게 다 자네 때문 아닌가!”
그가 옆에 서있는 챈슬러를 노려보며 속삭였다.
“아니, 왜 저를 탓하십니까? 대포를 쏘라고 하신 것은 경이었잖습니까!”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이 모든 일은 몇 주 전.
와이어트 일행이 신대륙에 도착하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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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의 효과가 대단하군요!”
챈슬러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제 막 신대륙 해안에 도달한 상태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에스파냐 함선을 여럿 보았건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전부 망원경을 보고 진작에 회피할 수 있었다.
“폐하께선 어찌 이리 대단한 걸 만드셨는지.”
와이어트 역시 망원경의 성능에 적잖이 놀랐다.
전투에 익숙한 그는 한눈에 그 유용성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 배에 탄 것이 챈슬러, 그대가 아니라 호킨스였다면 중간에 에스파냐의 함선을 습격했을지도 몰라.”
망원경으로 적의 전력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다.
엄중한 경비가 붙은 금 수송선은 피하고, 만만해 보이는 배들만 습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폐하께 명령받진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래, 그렇지.”
와이어트는 다시 한번 그가 받은 명을 상기했다.
“명령에 따라 망원경의 시험과 무역을 우선시하도록 하자고.”
배는 미끄러지듯 신대륙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함선, 여왕의 망치 호가 향하는 곳은 강이었다.
바다와 이어지는 작은 강.
이곳이 디에고의 부족이 마련해준 은밀한 부두였다.
챈슬러가 배를 조종하며 새삼스럽게 말했다.
“확실히 외지인은 접근하기 힘든 강이군요.”
강은 늪지와 연결되어 잘못하면 배가 갇힐 수 있었다.
길을 잘 모르는 이들은 섣불리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러면 배를 안전한 곳에 정박하고···, 음?”
문득 와이어트가 말을 멈추고 망원경을 들었다.
강의 안쪽, 저편에서 무언가 거뭇한 것이 보였다.
“저건, 배 아닌가?”
“배라고요!”
챈슬러가 대경해서 외쳤다.
설마 에스파냐 함선이 이곳까지 왔다고?
이 위험한 강에 그들이 대체 무슨 일로 왔단 말인가!
“아니, 진정하게. 에스파냐가 아니야,”
와이어트가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가 본 것은, 작은 카누들의 무리였다.
“아무래도 이곳 원주민들인가 보군.”
“이상하군요, 이곳엔 원주민도 잘 오지 않는다 들었는데.”
“글쎄, 이유를 알 것도 같은데.”
수많은 사람이 배에 타고 있었다.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까지 열심히 노를 저어 강의 반대편을 향했다.
와이어트의 눈에, 그들을 향해서 창을 날려대는 남자들이 보였다.
공격자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 중인 모양이야. 아니, 전쟁이 아니라 사냥인가?”
와이어트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일방적으로 도망가며 학살당하는 이들.
아무리 이교도 원주민들이라고 하나,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설마 나설 생각은 아니시지요? 곤란합니다.”
반면, 상황을 전해 들은 챈슬러는 냉정했다.
챈슬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원이 그랬다.
그들에게 이교도인의 목숨은 같은 목숨이 아니었으니까.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에스파냐에 들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니, 우선은 뒤로 돌아가죠.”
와이어트가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던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소년 돈 디에고가 나섰다.
“잠깐만요, 저도 좀 보여주세요.”
망원경을 빼앗아 든 디에고가 이내 소리쳤다.
“앗, 저쪽! 당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 이웃 부족이에요! 구해야 해요!”
챈슬러가 소년을 달래듯 말했다.
“그런 이유로 전쟁에 나설 수는-.”
“잉글랜드에 보내는 옥수수와 초콜릿은 저 부족에서 키우는 건데요?”
그 말에 와이어트가 들으라는 듯 외쳤다.
“그건 큰일이군! 에스파냐와 들키지 않게 무역하려면 저런 부족들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나!”
미스키토 부족 혼자만으론 교역량을 채우지 못한다.
저런 이웃 부족들과 물물교환으로 잉글랜드에 필요한 양을 맞춰주는 것이다.
그러니 저 부족이 몰살당하게 두는 건 곤란했다.
“좋아, 저들을 포격한다!”
잉글랜드의 전함이 전투에 난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
-퍼엉!
대포가 발사되었다.
와이어트가 망원경을 본 뒤, 명령했다.
“우측으로 5도 회전.”
“우측으로 5도!”
다시 대포가 발사되었다.
이번엔 한결 정확한 각도였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다시 발사!”
대포가 여러 번 발사되었다.
이상한 것은, 머리에 깃털 꽂은 이들이 곧장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함선을 향해 무어라 소리를 쳐댔다.
거리도 멀어 잘 드리지도 않는 말이었다.
다시 한번 대포가 발사되었다.
그들은 그제야 도망가기 시작했지만, 때는 늦었다.
도망가던 부족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몇 시간이 지나자, 해안에는 도망가던 부족과 잉글랜드 함선. 단 두 세력만이 남게 되었다.
쫓기던 이들 중 대표자가 넙죽 엎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다고, 혹시 신의 대리자는 아니냐고 물어봐달래요.”
돈 디에고가 통역을 맡았다.
대표자가 또 뭐라고 말하자, 디에고가 씩 웃었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저 사람들이 연기 나는 거울의 신으로 오해할 거라고 했잖아요.”
쫓기던 부족은 연기가 나는 것을 보았다.
그 연기와 함께 그들을 추격하던 이들이 날아가는 것도.
그리고 배 위에서 반짝이는 길고 검은 거울도, 전부.
“흰 사람들에 대해선 들어봤지만, 그들이 그리 먼 거리를 쏘아 맞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정말 신의 화신이 아니냐는데요.”
와이어트는 당황했다.
“아니, 우리는···.”
그때, 챈슬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선 그냥 맞다고 하는 게 낫겠습니다.”
“뭐? 어째서인가?”
“저들이 흰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에스파냐와 만났을 때 뭐라고 하길 원하십니까?”
와이어트는 잠깐 생각을 해봤다.
만약 저들이 말하길, ‘얼굴 흰 사람들이 연기 나는 커다란 총을 쏘아 우리를 구해줬다.’라고 한다면?
에스파냐는 미지의 세력을 의심하고 경계하겠지.
하지만, ‘연기 나는 거울의 신이 우리를 구했다.’라면?
이교도들이 잡신에 홀려 헛소릴 한다고 생각하리라.
“···그래, 우리는 신의 화신이 맞다.”
디에고는 잠깐 질린 눈으로 와이어트를 바라보았으나, 순순히 사기극에 동참했다.
습격당한 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그건 그렇고, 자네들은 대체 왜 습격당하고 있던 것인가? 저들은 또 누구고?”
디에고는 대화를 주고받더니,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습격자들은 본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부족인데 왜 여기까지 들어와 그들을 습격했는지 잘 모르겠다는데요. 하지만 얼마 전부터 저들이 다른 부족을 습격 중이래요. 이상한 창을 들고요.”
“이상한 창?”
곧 습격자들이 들고 있던 창이 그의 앞에 배달되었다.
“이건···.”
와이어트가 이채를 띄고 바라보았다.
그건 본래 창이 아니라 검이었던 물건이었다.
강철 검에 장대를 연결하고 밧줄로 묶은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에스파냐에서 쓰는 강철 검이다.’
이곳엔 본래 철이 없었다. 검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러니 저들도 검을 장대에 묶어 창으로 썼겠지.
‘한두 개라면 용병들에게 탈취했다 여기겠지만···.’
하지만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저 요상한 창을 들고 있었다.
개중에 한둘은 구식 화승총까지 가지고 있었다.
틀림없이 에스파냐의 누군가가 저들에게 쥐여준 무기였다.
‘알아볼 것이 생겼군.’
와이어트의 의문은 그날 저녁으로 풀릴 수 있었다.
이번에 습격당한 숲속 부족과는 달리, 디에고의 소속인 미스키토 부족은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용병들이 인디오 부족을 용병으로 부린다고요?”
“그렇다네.”
미스키토 부족의 촌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의 일로 이 숲을 들쑤시는 놈들은 사라졌어. 하지만 탐욕스러운 놈들은 다른 수를 생각해냈다네.”
일전, 와이어트는 용병과 관리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덕분에 규제가 강화되어, 용병들이 경계선을 넘어 인디오 부족을 약탈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식민지까지 온 이들이 그런 규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
용병들은 곧 다른 수단을 생각해낸 것이다.
“호전적인 부족에 귀한 무기들을 빌려주는 대신, 노예와 각종 재보를 약탈해 그들 용병과 나누는 거래를 체결한 것이지.”
“아니, 에스파냐 관리들은 그걸 그냥 두고 봤답니까?”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바쁜 것 같더군.”
에스파냐엔 더 많은 금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관리들은 금광이 위치한 지역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인근 원주민 부족에 대한 선교에도 더 신경을 썼다.
“다행히 우린 별 탈이 없었어. 해안 인근에서 금광을 찾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다른 부족은 고생하는 모양이야.”
관리들은 용병들처럼 험하진 않았다.
인디오 부족을 노예로 부리지 않고, 신민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 아니겠는가.
“관리들은 그들의 신을 강요하고, 믿지 않는다고 저항하면 사람을 불에 태워 버리지. 그건 아주 끔찍한 일이야!”
서양에선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이곳 사람들에게 화형은 식인보다도 끔찍한 행위였다.
사람의 영혼을 말소시키는 두려운 일인 것이다.
“용병이나, 관리나, 우리에겐 똑같이 더러운 흰 사람들일 뿐이네. 그나마 다른 것은 자네들뿐이지.”
촌장이 한숨 쉬듯 말하곤, 이리 덧붙였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부족과의 거래가 힘들어졌어. 덕분에 그대들이 필요한 물건을 모으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 같군.”
영국은 매번 엄청난 양의 작물을 수입해갔다.
조그마한 미스키토 부족에겐 부담되는 양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게. 2주 안엔 다 모을 수 있을 테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기다리지요.”
와이어트는 그리 대답했다.
발이 묶인 게 아쉽긴 했지만, 2주면 길지도 않았다.
충분히 기다릴만한 시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대장님!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박해둔 배를 지키던 이들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뭐? 설마 배에 문제라도 생겼나?”
와이어트는 서둘러 정박한 배가 있는 정글로 향했다.
배 앞에 다가가니, 당황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연기 나는 거울의 신이 내린 화신이 있다고 들었소.”
“신의 화신이여, 우리를 이끌어 주세요!”
일단의 원주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원주민 부족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개 중 일부는 그를 보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이제 보니까 얼굴 흰 사람이잖아?”
“그러게, 그 나쁜 놈들이랑 같은 족속 아니야.”
“아니야, 저들이 미케 부족을 쏴 죽였대! 흰 사람들의 하수인 노릇 하던 이들을 말이야!”
“아, 그래?”
“그래, 그렇게 그들에게 쫓기던 부족을 구해줬다고 하더군!”
와이어트 일행이 구원한 부족은 상당한 수다쟁이였다.
어어 하는 사이, 소문을 듣고 점점 더 많은 원주민이 모여들었다.
이름 높은 주술사까지 몰려오는 일행에 합류해버렸다.
그리하여, 사태는 지금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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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카틀리포카의 화신이여! 그대를 내쫓고 물에 처박은 케찰코아틀에게 피의 복수를 하소서!”
주술사 할멈이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그리하여, 새로운 태양의 시대를 열어주소서!”
모여있는 원주민들이 그에 맞춰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와이어트가 챈슬러에게 속삭였다.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괜히 신의 대리인을 자처했다가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물론, 챈슬러라고 별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저들을 잘 설득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신이 아니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일행에겐 이만한 대중 앞에서 그런 선언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 그래. 일단 저 목소리 큰 노파부터 설득해보자.”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와이어트는 주술사 할멈을 배 위로 불러들였다.
그 후, 할멈을 달래려고 애쓰며 이리 말을 꺼냈다.
“제발 진정하게. 나는 신 같은 것이 아니라, 신의 종일 뿐이네.”
“알고 있습니다.”
“연기 나는 거울의 신이니 뭐니 하는 요상한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믿는 건, 오직 하나뿐인 유일신이네.”
와이어트는 이 대목에서 노파가 발작하리라 생각했다.
저 원주민들을 이끄는 주술사가 아닌가.
하지만 노파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 말했다.
“그럴 거로 생각했습니다. 얼굴 하얀 이들은 흔히 그런 신을 믿으니까요.”
“···내가 신의 대리자가 아님을 믿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러는 건가?”
“그야 간단하지 않습니까.”
노파가 고개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어차피 우리가 몰아내려는 케찰코아틀 또한, 진짜 신이 아니니 말입니다.”
노파가 귀기 어린 눈으로 와이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신의 화신이시여. 태양을 가린 저 오만한 뱀을 쏘아 떨어뜨리고, 새로운 태양의 시대를 열어주소서!”
노파가 와이어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대가 말하는 뱀은, 케찰코아틀은 대체 무엇인가?”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에스파냐.
그 외의 답은 없었다.
와이어트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대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군.”
그 대답에, 노파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