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127
상남자 127화
자꾸 신경 쓰였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거 말고 남 차장님이 자른 거 또 있어?”
“아뇨.없어요.”
‘없다고?’
김성득 과장의 뇌리에 몇몇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정은희 대리에게 말했다.
“그럼 이거도 올려.남 차장님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네.올리는 거야 뭐 어렵지 않죠.”
“그래.고마워.”
지이잉.
유현의 휴대폰이 울었다.
-감사하긴.공모전 내부 점수는 괜찮았으니 심사 결과를 기대해 봐도 될 듯.^^
이 아저씨가 이제 이모티콘도 찍어 보낸다.
유현은 김성득 과장의 메시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유현이 겪어 본 김성득 과장이란 존재란 괜찮은 사람 축에 속했다.
속물도 아니고 능력도 있다.
무엇보다 말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심사까지 언급했단 건, 이미 확인까지 했단 의미다.
‘이경훈 부장이 장난을 치진 않았단 건가?’
유현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자체적으로 하는 내부 평가였다.
그때 외부의 손길이 닿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만약 유현이 이경훈 부장이라면 인맥을 활용하여 이 부분에서 잘리게 했을 터였다.
김성득 과장을 만나서 공모전 이야기를 의식하게 한 것도 그 이유였다.
‘아니면, 김성득 과장이 미리 손을 쓰고 아닌 척하는 걸까?’
어쨌든 중요한 건 심사에 들어갔단 사실이다.
유현 입장에서는 이제부터 2차 평가를 준비해야 했다.
만약 1차에서 통과한다면, 그때부터 이경훈 부장의 본격적인 방해가 시작될 테니 말이다.
그땐 지금처럼 방심하길 기대할 순 없다.
유현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박승우 대리가 지나가는 김현민 차장을 잡고 또 연습을 들먹였다.
“아니, 차장님.제 발표 한번 들어 보라니까요.”
“야, 야, 됐어.발표는 무슨 얼어 죽을.일단 1차 통과하고 해.”
“그러면 늦죠.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 법 아닙니까.”
그 모습에 유현은 피식 웃었다.
열정을 쏟아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뒤에서 남몰래 하고 있는 노력이 헛되진 않을 것 같아서다.
“넌 새가 아니라 돼지야.”
“차장님! 방금 그건 윤리위원회에 신고당할 말이었어요.부하직원에게 모욕감을 줬습니다.”
“지랄하네.신고해, 인마.”
“에이, 차장님.가지 마시고 들어 보라니까요.”
“싫어.귀찮아.”
뭐, 조금 오버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보다 너무 들뜨는 습관은 발표할 때도 좋지 않다.
다시 한번 바로잡아 줘야 하나?
투덕대고 있는 박승우 대리를 보고 있자니 자꾸 손봐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꼭 물가에 내놓은 아들을 보는 느낌이다.
그때 최민희 과장이 옆에 다가와 물었다.
“저 두 사람 꼭 애들 같지?”
“그러게요.”
“뭐, 유치하긴 하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지긴 했어.”
“맞아요.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래?”
최민희 과장이 또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유현을 쳐다봤다.
현일자동차 건 이후로 계속 이런 식이었다.
유현이 말을 돌렸다.
“요즘은 하시는 일 괜찮으세요?”
“중간 정리도 잘됐고, 패널도 잘 개발되고 있어.내비타임이 워낙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지.아니, 유현 씨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또 칭찬이다.
한두 번 들으면 좋지만, 자꾸 그러니 부담스럽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뭘 하긴.엊그제도 내비타임 사장님이 유현 씨 다시 한번 보고 싶다던데?”
“그래요?”
유현이 담담하게 반문했으나 최민희 과장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시간 좀 내 달라고 하더라고.참 대단해.로라파커를 만나는 것도 그렇고, 내비타임 사장을 구워삶는 것도 그렇고.”
“순전히 운이죠.”
“뭐, 유현 씨가 그렇다니까 별말 안 하겠는데.나도 좀 눈치가 있다고.”
최민희 과장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저 사람, 정말 예전에 그렇게 차갑던 최민희 과장이 맞나?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너무 오버스러울 정도로 표현력이 풍부해졌다.
박승우 대리보다 더할 정도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신기해.유현 씨가 오면서 다 바뀐 것 같거든.김 대리가 요새 부쩍 자신감을 가진 것도 그렇고.”
“아…….”
“찬호 씨가 일에 집중하는 걸 봐도 그렇고.뭐, 박승우 대리가 확 바뀐 건 두말할 것도 없고.”
“…….”
이쯤에서 그만했으면 싶었다.
“다 유현 씨 덕분이지.”
“……감사합니다.”
유현은 결국 고개를 숙이며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다시 회사 생활을 하며 꼭 얻고 싶었던 게 동료들의 인망이었다.
“아마 다들 알고 있을걸? 말을 잘 안 해서 그렇지.”
“하하…….”
유현은 그저 웃고 말았다.
말 안 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물론 투자 조언 때문이긴 했지만, 김현민 차장과 박승우 대리는 민망할 정도로 살갑게 대했다.
김영길 대리는 괜찮다고 해도 굳이 계속 밥을 사려고 했다.
이찬호도 오며가며 챙겨 줬다.
이미 과하게 사랑받고 있었다.
그런 유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민희 과장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마워.”
“…….”
하지 말라고.진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더 표현할 것만 같아서였다.
그때 유현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이, 최 과장 눈 좀 게슴츠레하게 뜨지 마.유현이가 겁먹잖아.”
“차장님!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세요.”
“남편도 있는 사람이 말이야.”
“아, 진짜.이리 와 보세요.”
“안 갈래.”
김현민 차장이 올 리가 없었다.
그는 바짝 독이 오른 최민희 과장을 무시하며 옆으로 지나쳤다.
“거기 서요.”
“싫어.”
설 리 없는 김현민 차장이 경보를 하듯 빠르게 걸어갔다.
최민희 과장이 느닷없이 뛰기 시작했다.
사무실 복도에서 펼쳐진 갑작스러운 추격전이었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유현은 픽 하고 실소를 뱉었다.
최민희 과장은 박승우 대리와 김현민 차장 두 사람 때문에 요새 파트 분위기가 산다고 했다.
하지만 유현이 생각하기엔 최민희 과장 본인의 변화가 분위기를 띄우는 데 더 큰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차갑고 냉소적이던 그녀가 이렇게 표현 잘하는 왈가닥이 될지 누가 알았겠나.
그때 박승우 대리가 다가와 물었다.
“참 철없어 보인다.그치?”
“…….”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박승우 대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유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이이잉.
그때 유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유현의 어머니 김연희는 버스 앞에 있었다.
주변엔 또래의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김연희가 물었다.
“괜찮으려나?”
“잘난 아들이 오란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야.”
그녀는 정말 고민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낯간지럽기만 했다.
“어이구, 연희 씨는 그런 게 고민이라서 좋겠다.나는 취업 못 하고 빌빌거리는 아들 걱정해야 하는데.”
“진짜 부럽다.나도 아들이 그런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직접 봤는데 인물 엄청 좋아.성격도 너무 좋고.부럽다, 연희 씨.”
“이 등산복도 아들이 사 준 거라면서요? 우리 아들 녀석은 언제 그렇게 되려나.”
괜한 말을 꺼낸 것일까?
유현이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늘 부러움을 받았다.
김연희는 최대한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그럼 나 먼저 가 볼게.조심히 내려가고.”
“즐거운 시간 보내요.”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온 등산 모임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김연희는 한성타워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성타워.
높다란 건물 아래, 정장을 입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 아들 같아서 눈길이 갔다.
휴대폰을 들고 연락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빨리 오셨네요.”
“연락하면 나오라니까.언제부터 기다렸어?”
“저도 이제 막 나왔어요.”
“아직 퇴근 시간 안 됐지? 엄마는 여기 앞에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에이, 괜찮아요.허락받았어요.”
허락을 받았다고?
그게 말처럼 쉽나.
김연희가 괜히 부담을 느끼던 찰나, 유현의 등 뒤에서 나타난 덩치 큰 남자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유현이 멘토 박승우 대리입니다.”
“어? 대리님.”
놀란 유현의 옆으로 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전 유현이 파트리더 김현민 차장입니다.”
“차장님은 또 왜…….”
“왜는 무슨.파트원 어머니가 오셨다는데 챙기는 게 당연하지.”
김연희는 놀란 표정을 감추고 재빨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말씀 많이 들었어요.”
“어떤 말을 하던가요?”
김현민 차장이란 사람은 아주 위트 있는 사람인가 보다.
웃는 얼굴로 이런 걸 묻는다.
“차장님, 좀!”
민망한 듯 얼굴이 발개진 아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회사에서는 이런 모습인 걸까?
김연희는 기분 좋게 답했다.
“정말 좋은 선배들을 만나서 너무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허허허, 역시.맞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쿵짝이 맞는 듯 같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고맙죠.유현이 녀석 덕분에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정말 좋은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김연희는 두 사람이 그저 아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주식 투자로 큰돈을 날릴 뻔한 걸 유현이 막아 줬다거나, 파트 일에 유현이 큰 도움을 줬다거나 등의 이유를 절대 알 리 없었다.
아들이 회사에서 무척 사랑받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님.유현 씨 회사 동료 이애린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 옆으로 예쁘장한 여직원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환한 미소가 꽃처럼 예뻤다.
그 뒤로 여직원들이 더 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다들 이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서로 어깨를 툭툭 밀치는 걸 보니 사이도 무척 좋아 보인다.
김연희가 일일이 인사하고 있을 때, 유현이 그녀의 팔을 끌었다.
“어머니, 이제 가요.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난 괜찮은데…….”
“아닙니다.이분들도 일해야죠.”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김연희는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와서 챙겨 주니 말이다.
“에휴…….”
한숨 쉬던 유현에게 김연희가 짓궂게 물었다.
“유현아, 그때 말했던 좋아한단 사람이 저 중에 있는 거야?”
“아뇨.없어요.”
“다 너무 예쁘던걸? 나는 저분들도 마음에 드는데…….”
“어머니, 나중에 꼭 따로 보여 드릴게요.식사 안 하셨죠?”
유현이 말을 돌렸지만, 김연희는 자꾸 고개를 돌려 회사를 봤다.
김연희는 아들의 회사 생활이 더 궁금했다.
어떤 밥을 먹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응.여기서 먹고 갈까?”
“여기서요? 집 근처에서 드셔도 되는데요.”
“아냐.궁금해서 그래.여기 국밥집이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니의 질문에 유현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진짜.좋다.여기.호호호.”
유현은 걸어가며 콧노래를 부르는 어머니를 힐끗 봤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과거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와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
회사 앞에서 만나기는커녕 집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아, 재희가 요새 엄청 바쁜 거 같던데?”
“걔는 좀 바빠야 해요.”
“호호, 그렇긴 하지.”
이렇게 여동생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아버지는 술 좀 줄이셨어요?”
“말도 마.내가 속이 터져서, 진짜…….”
“스트레스 받으시겠죠.”
“아들이 속을 썩여? 아님 딸이 돈을 달라고 해? 요새처럼 편한 날이 어딨다고, 정말.”
아버지 이야기를 살갑게 나눈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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