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초신성(3)
“···다니엘, 그 자식은?”
지상에 착륙한 페일 라이더.
현우를 보자마자 네크로맨서가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녀석의 안부였다.
“도망갔어.”
“하···.”
고개를 저어 보이자.
네크로맨서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우는 그녀의 반응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아쉬워할 거였으면, 위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도와주기라도 하지 그랬냐.”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될 거라는 사실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어깨를 으쓱하는 네크로맨서.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니엘 블랙과의 싸움에 네크로맨서나 다른 두 사람이 끼어들었다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구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낼름.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뭐, 설마 도발이라도 하는 건가. 현우의 눈썹이 일순 찡그려지자. 네크로맨서는 괜히 입을 오물거리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무튼, 이쪽의 볼일은 끝났다. 여기 ‘밤의 악마’도 어떻게든 처리된 셈이고. 저기 차원 쐐기는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끼기기긱─
쇳덩어리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솟아있던 차원 쐐기의 사슬의 중간 부근이 끊어졌다.
그리고···.
곧, 지면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차원 쐐기의 사슬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이야기를 꺼내는 타이밍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깔끔하네.”
“···.”
‘밤의 악마’의 코어가 부서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니엘 블랙의 분신을 처리했기 때문일까.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걸로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된 셈이었다.
“음, 그래서···.”
네크로맨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주현우의 심기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고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현우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걸 전부 설명하긴 귀찮았다. 그리고 네크로맨서에게 설명해야 하는 의무 또한 없었다.
“네가 추측한 대로지.”
“정말 다니엘 블랙, 그 녀석이 미래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거라는 소리네. 그리고 잠룡, 네가···.”
그녀가 눈동자를 굴렸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자신의 추측을 확신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죽인 거야?”
누구를, 이라는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현우는 작게 혀를 차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네크로맨서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상대한 건, 녀석의 본체가 아니었어. 그 비겁한 새끼가 죽고 싶지는 않았던 건지. 자기 분신을 대신 놓고 튀었더라.”
생각해보면 농락당한 것과 같다.
애초에 처음부터 녀석은, 현우와 생사결을 펼칠 리스크 따위를 감수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게 분신이었다니···.”
꿀꺽, 네크로맨서는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그녀가 목격한 녀석의 힘은, 본체가 아니라 분신이 보여준 것에 불과하단 소리나 다름없었다.
‘분신조차 그 정도라고?’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주현우와 다니엘 블랙, 새로운 육신을 손에 넣음으로서. 그녀 또한 어느 정도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착각에 불과했다.
이 따위 ‘흉내’로는 절대 미치지 못한다.
그녀가 사전에 목표했던 완벽한 육체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주현우와 다니엘 블랙, 두 사람의 격은 넘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여간 괴물 같은 놈이네.”
네크로맨서는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현우를 지나쳐 다니엘 블랙과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잠깐.”
현우가 네크로맨서를 불러 세웠다.
그녀와는 이 자리에서 끝내야할 이야기가 있었다. 애초에 현우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그녀와 나눈 거래 때문이었으니.
“네크로맨서, 네가 원하던 것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밤의 악마’의 코어는 다니엘 블랙, 그 녀석이 파괴했다.”
“유쾌한 소식은 아니네.”
네크로맨서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녀의 목적, 그리고 현우와 나눈 거래는 어디까지나 외신의 편린을 확보하고 넘겨받는 것이었다.
“거래는 파토인가.”
“아니, 됐어.”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저었다.
본래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으나. 그보다 훨씬 좋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히죽, 현우를 향해 웃었다.
“아쉽게도 ‘밤의 악마’의 코어를 손에 넣는 데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내 제안을 따라 여기까지 와준 거잖아. 결과야 어찌 되었든 약속은 지킬 거야.”
“협박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군.”
“···잠깐,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이번 거래 조건에 문제가 생긴 것이 내 탓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냥 아쉬워하며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니까.”
현우의 말은 타당했다.
애초에 다니엘 블랙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네크로맨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결국 따지고 보면, 이번 거래가 틀어진 것은 누구의 탓이라고 콕 짚어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뭐, 좋아.”
그리고 어차피.
네크로맨서는 이번 거래를 무효로 돌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사실, 거래 조건 자체도 문제가 없기는 해. 거래 조건은 잠룡, 네가 나를 도와주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스위스 베른의 격리된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그 육체를 완성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그렇기는 한데···.”
네크로맨서가 현우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되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쉬워진 셈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거든.”
그녀의 시선은···.
다니엘 블랙의 분신이 남기고 사라진, 검은 사슬 파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로마노프 본가 저택.
스위스 베른으로 출발하기 전, 하루 휴식을 위해 돌아온 그곳엔. 이미 가주인 소피아와 장로들이 먼저 나와 현우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현우님!”
저택 앞마당에 페일 라이더가 착륙함과 동시에,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던 소피아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오늘 들어 두 번째 듣는 물음.
이들 역시도 차원 쐐기가 박살나는 것을 보았을 테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궁금한 것이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으리라.
현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현우는 두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다니엘 블랙과의 일전 때문에, 체력과 심력 양쪽 모두의 소모가 크기도 했고. 당장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체력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툭, 하고 네크로맨서를 쳤고.
다행히 그녀는 현우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듣는 모습을 보였다.
“아, 그게···.”
결국, 설명은 현우 대신 네크로맨서가 하게 되었다. 그녀는 별로 내키지는 않는 표정을 했으나. 나름 성실하게 차원 쐐기 부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설명했다.
물론, 미래의 다니엘 블랙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면 알아듣기 힘들 것이 분명하므로. 대충 어물쩍 넘어가긴 했지만, 로마노프 가문에게 있어선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과연.”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본래 해야 할 일을 해야죠.”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만 쉬고, 바로 스위스로 떠날 겁니다. 아직 도시 전체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 로마노프 가문에 남은 헌터들로 충분히 통제할 수는 있을 테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까지는 안 했지만···.
아무튼 나머지 수습은 알아서 하겠지.
너무 냉정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현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보시비르스크의 안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은 그들의 도시.
그렇다면, 적어도 남은 일은 그들이 직접 하는 것이 맞다.
“음, 아무리 로마노프의 기세가 영락했다 한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지금, 도시를 수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오.”
로마노프 가문의 태상호법, 드미트리 로마노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턱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이로써 천무그룹에게 또 한 번 커다란 은혜를 입었군. 로마노프는 반드시 이 빚을 기억하고 갚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무얼,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해야 하는 것은 우리 쪽이오. 나 드미트리, 가문의 태상호법으로서 천무그룹의 잠룡께 당장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때가 온다면.
이들에게 지운 빚을 받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그 때가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의 로마노프가 현우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거라곤, 하룻밤의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 정도뿐일 테니까.
“하루만 더 신세지도록 하겠습니다.”
“음, 며칠이라도 상관없소이다. 지금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극진히 대접할 테니. 부담일랑 가지지 말고 편히 쉬다 가시오.”
아마 이들로서는 현우가 가능한 이곳에 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랄 것이다. 차원 쐐기야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또 어떤 이변이 추가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마음은 감사한데. 하루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머물 생각은 없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미 미래에서 다니엘 블랙이 찾아온 이상, 지금 이 세계에는 녀석이 둘이나 있는 셈이다.
하나만 있어도 골치 아픈 놈이, 이젠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현우에겐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이었다.
‘네크로맨서, 녀석이 준비를 끝마치는 대로 스위스로 떠난다.’
그리고 그 전에···.
이곳에서 미리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한 가지 있었다.
***
그날 밤.
현우는 로마노프 가문에서 내어준 별채의 발코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위에 불빛 하나 없는 숲속의 저택이기 때문일까. 차원 쐐기가 사라져 본래대로 돌아온 하늘엔 이루 세지 못할 밝은 별들이 그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우의 눈에는 별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엘 블랙.
자신이 패배한 미래에서 찾아온 빌어먹을 녀석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이상하게 자신을 회유하려 드는 쪽을 선택했다.
놈이 제정신이라면···.
그런 현실성 없는 가능성을 선택하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
하나는 녀석이 현우를 농락하기 위해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제안을 던졌을 거라는 추측.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미래에서 현우가 아자토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해 과거로 넘어온 이후.
생각이 바뀔만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던가.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 녀석···.’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건, 현우가 알지 못하는 외신에 대한 새로운 정보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당장 녀석의 의도가 뭔지 알아낼 방도는 없다.
결국, 당장은 녀석이 원하는 대로.
그리고 외신, 아자토스가 원하는 대로 이쪽 세계의 다니엘 블랙을 토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할 수밖에 없으리라.
똑똑─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은 익숙한 기척이었고, 애당초 예정된 방문이었기에 굳이 경계는 하지 않았다.
현우가 문을 열자.
그곳엔 어느새 가벼운 일상복 차림이 된 류한나와 아그네스, 두 사람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일단 들어와서 앉으시죠.”
방금 사이좋게 대욕장을 이용한 건지. 두 사람의 피부가 살짝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대화가 길어질 지도 모르니. 우선은 차부터 내리겠습니다. 제가 교황청을 떠날 때 아주 좋은 찻잎을 몇 가지 가져왔습니다.”
아그네스가 아공간 포켓에서 다기와 찻잎을 꺼냈다. 곧, 그녀가 능숙한 솜씨로 차를 내렸고. 셋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차의 향기를 음미했다.
“제가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덤덤한 목소리로 류한나가 말했다.
그녀의 울적한 눈빛이 현우를 향했다.
이미 그녀는 오늘 경험한 일을 통해.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대략적이나마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성녀님께서도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
“우리 두 사람의 실력으로는 도련님의 보조는커녕, 짐이 되지 않는 것도 어려울 거라는 사실. 오늘 일을 통해 충분히 깨닫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그네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뭐라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뻐끔 거렸지만. 이내 꺼낼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푸욱 숙여버렸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한나의 말은 서늘할 정도로 냉정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냉정함을 통해 판단해야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용사와 성녀, 한물 지나간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이들은 함께 난관에 부딪히고 극복하여 세상을 구원하지 않던가.
주현우는 용사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옆에 서서 함께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은커녕.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용사님께선···.”
아그네스가 현우를 바라봤다.
잠시 입을 다문 그녀의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분명, 고집스러운 기색도 있었지만. 자신의 무력함을 짙게 통감하는 절망감 또한 훤히 드러나 보였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역시, 홀로 가실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현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사람을 자리에 불러냈을 때부터. 현우는 이 사안에 대한 결정을 확고하게 끝낸 뒤였다.
“스위스 베른, 그곳에는 저 혼자 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