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초신성(2)
“하하, 미친···.”
노보시비르스크 상공.
페일 라이더의 갑판 위에서 입을 다물고 지상을 내려 보던 네크로맨서는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저 순백의 불꽃.
그건 분명 잠룡, 주현우의 것이다.
그리고 저 검은 사슬은···.
그녀가 알기로 저것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다니엘 블랙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다. 하지만, 그녀가 파악한 바로는 다니엘 블랙은 현재 스위스 베른에서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
그가 스위스 베른에 도착한 이후. 그 녀석이 격리한 차원에 구멍을 뚫고 진입했단 사실까지 알고 있으니.
‘만약 저게 진짜 다니엘 블랙이라면, 지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리는 언데드는 지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머릿수가 확연히 줄어 있긴 했으나. 스위스 베른의 격리된 차원을 감시할 눈 정도는 되어준다.
잠복하고 있는 언데드의 시야를 직접 공유하여. 실시간으로 그곳의 상황을 볼 수 있는 그녀의 판단이 틀릴 턱이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때,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천무그룹 유럽지부에서 만났던 미래의 나처럼. 저 다니엘 블랙도 미래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걸지도 몰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 씹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완벽에 가까운 육체에 그런 버릇이 있을 리는 없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무심코 그런 행동이 나와 버린 것이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류한나가 물었다.
이건, 네크로맨서 본인에게도 예상외의 상황이었으므로. 그녀는 던져진 질문에 대해 바로 이렇다 할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빨리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곧이어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또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어떤 대답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녀는 저 아래의 전장으로 직접 몸을 던질 생각까지도 있는 눈치였다.
“···다니엘 블랙.”
조용한 중얼거림.
그러나 분명히 들린 이름에 두 사람의 눈썹이 움찔 흔들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 녀석의 이름이 이곳에서 나올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테니.
“그렇다면, 저 아래에서 도련님은 그 다니엘 블랙과 싸우고 있는 겁니까. 아니, 그 이전에 녀석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나도 확실하게는 알 수 없어.”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거짓 하나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진실이었다.
“다만···.”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지금 상황에 ‘어떻게’라는 질문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지금 중요한 건. 자 아래에 있는 다니엘 블랙이라는 녀석이. 우리가··· 아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극악무도한 녀석일게 확실하다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그네스가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 아래에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다니엘 블랙이 아닐 거라고. 물론, 직접 얼굴을 보진 못했으니.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어.”
“···.”
이해하지 못한 기색.
그러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그네스는 입을 다물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이는 사슬과 간헐적으로 터지는 순백의 불꽃이 보였다. 굳게 다물어진 그녀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류한나 또한, 그녀처럼 잠시 지상을 노려보다 네크로맨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천히 열린 그녀의 입에서 꾹 눌러 담고 있었던 것 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저희가 도울 방법은 없습니까.”
“음···.”
네크로맨서는 제 턱을 매만졌다.
당장 도울 수 있는 방법.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 종류뿐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
“···예?”
“그게 싫다면 더 좋은 방법으로는, 아예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후퇴하는 방법이 있겠지.”
그 외엔 시도해볼 가치도 없다.
네크로맨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장난하는 겁니까···!”
아그네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웃음기나 장난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너희가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야. 나조차도 엄두가 안 나는 수준이라고. 애초에 너희는 저 사이에서 짐짝이 될 게 분명한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돕겠다고 나대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였으나.
아그네스는 제대로 된 반박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 본인이 느끼기에도 저 싸움은 끼어들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법이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포격을 사용한다면···.”
“의미 없을 거야.”
류한나의 제안.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재고해볼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고작 세계급 유물인 페일 라이더의 포격은, 이미 탈각하여 초월의 단계로 접어든 다니엘 블랙에겐 무의미하다.
“가만히 있거나 후퇴하는 것이 싫다면, 그쪽의 성녀님이 믿는 신에게 기도라도 올리는 편이 좋을 거야. 혹시 모르잖아. 어쩌면 신께서 빛으로 보우하사. 절박한 이들에게 힘을 내려주실지 말이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에게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조롱도 아니었으니.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지상의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지상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저 권능,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어.’
그야말로 신의 영역.
아무리 상대가 주현우라고 해도. 이건, 승산을 그리 높게 점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계산은 주현우의 패배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게 흘러가는 모양이니. 여차하면 나라도 여기서 몸을 빼야겠는데.’
그렇게···.
약삭빠른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 그녀의 기감에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느껴졌다.
“···아!”
아그네스의 탄성.
그녀의 눈은 정확히 지상에 짙게 깔린 어둠의 한 가운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어둠의 가운데에서 자그마한 빛의 점이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 아니, 빛의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순식간에 밝은 빛의 구체로 변화했다.
“저건···.”
네크로맨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순히 기감을 통해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두 눈으로도 직접 그 찬란한 광체를 목도할 수 있었다.
‘압도적이야.’
그녀는 입을 반쯤 벌렸다.
탈각과 초월, 주현우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도 그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녀와 주현우는 탈각 과정에 있어 근본적이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네크로맨서, 그녀의 탈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극의에 이른 흑마법, 그리고 바벨에서 주현우와 거래를 통해 얻어낸 아수라의 시체를 소채로 사용해 만든 완벽에 가까운 언데드의 육신.
그러나 이건···.
결국, 그녀의 기준에서 ‘완벽에 가까운’ 육신일 뿐이다. 다시 말해 ‘최선’의 결과일 수 있으나. 절대 ‘최고’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
“하, 하하···!”
복잡한 웃음이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찬란한 별.
격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빛이 짙게 깔린 어둠을 몰아내며 폭발했다. 지상에서 꽤 떨어진 이곳까지 휘광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뭘까 이건.
네크로맨서는 눈을 감지도 않고 그 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손은 어느새 심장 부근을 짚고 있었다.
뛰지 않을 터인 언데드의 심장이.
지금은 놀라움과 기대감 등으로 뛰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착각일 뿐이겠지만.
지금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만큼은 매우 선명했다.
주현우의 권능.
그리고 저 ‘완벽한’ 육신.
‘가능만 하다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어.’
경외심, 신기함 그리고 약간의 질투와 새롭게 싹튼 소유욕까지.
꿀꺽─
그 막대한 힘의 폭발을 바라보며. 그녀는 여러 감정이 섞인 오묘한 기분으로 침을 삼켰다.
***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다.
자신의 주먹 앞에서 폭발하는 신화의 섬광을 보며. 현우는 짧은 순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파앗!
소리가 사라진다.
이윽고 광체는 뻗어나가는 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불살라 지워버렸다. 눈앞을 뒤덮고 있던 사슬과, 그 사슬로부터 비롯된 먹물 같은 어둠까지도.
전부 빛이 집어삼켜버렸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지나갔다.
쿵쿵, 거칠게 울리던 심장의 고동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맥동하기 시작했고. 광체가 잦아들며 어둠이 걷힌 자리에 본래 주위의 풍경이 돌아온 것이 보였다.
“···후.”
이긴 걸까.
녀석이 움직이는 기척은 달리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현우는 가만히 그 자리에 멈춰서 전방을 응시했다.
녀석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도망쳤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방심이라는 것을, 현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면서도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니엘 블랙.
만에 하나라도 녀석은 이 정도로 쉽게 당해줄 위인이 아니다.
만약 이게 녀석에게 진짜 위기라고 해도. 이 순간에도 아마 바퀴벌레처럼 생존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을 테니까.
곧, 염두에 두던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
현우는 재빨리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발을 딛고 있던 자리에서 굵은 사슬 수 십 개가 튀어나왔다. 만약,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면 반응이 약간 늦어졌을 기습이었다.
튀어나온 사슬 너머로 다니엘 블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하.”
현우의 입에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예상하던 광경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반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라고 해야 할지.
모호한 상황이었다.
“죽는 줄 알았다네.”
가볍게 말하는 다니엘 블랙.
그러나 그의 신체는 보이는 것만 해도.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진 상태였다. 누가 봐도 즉사에 가까운 상처였으나. 그의 표정과 태도는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진심으로 상대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 그랬었지.”
“그런데 그 꼴은 뭐냐.”
녀석의 신체 절단면 사이로 보이는 것은, 인간이라면 응당 있어야할 피와 살점이 아니라 끊어진 사슬 뭉치뿐이었다.
그건, 결국 이곳에 있는 다니엘 블랙이 본체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현우의 눈썹이 약간 일그러졌다.
“이게 나의 본체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진심으로 상대하겠다는 말도. 역시 거짓말은 절대 아니었고 말이야.”
궤변이다.
현우는 불쾌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애초부터 꽁무니를 뺄 생각이었군.”
“하하,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생사결을 벌여야할 장소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고 말일세.”
“비겁한 새끼.”
“하하, 자넨 아직 모르겠으나. 그게 우리의 운명일세. 그건 어떤 변수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 지점이지.”
짧은 웃음.
그러나 다니엘 블랙의 눈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주현우를 상대로 부릴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통렬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알게 뭐야.”
현우는 탁, 바닥에 침을 뱉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 따위. 그에게 있어선 아주 조그마한 의미도 없다. 오히려 칭찬 보다는 비명이나 목숨 구걸이 나오는 편이 듣기 좋으리라.
“더 해볼 생각인가?”
“마무리는 지어야지.”
“음, 자네답군.”
짧은 문답.
직후 현우는 몸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 녀석을 향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이번엔 피하려 드는 기색 따윈 없었다.
촤라락!
쏟아지는 검은 사슬과 그것이 닿는 곳마다 퍼지는 어둠을 정면에서 돌파한다. 사슬의 강도도 처음만 못한 수준이다.
이건, 결국 녀석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현우는 달려든 기세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틈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신을 휘감은 신화의 불꽃이 쇄도하는 사슬을 걷어냈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어둠을 몰아냈다.
녀석의 방어를 비집고 들어가 연다.
어느새 현우는 다니엘 블랙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앞으로 한 발.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그 종단점에서 현우의 주먹이 가볍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주먹에 앞서 나아간 마나가 극열을 내뿜으며 순백으로 타올랐다.
“···!”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현우의 주먹이 적중했고.
타오르던 신화는 순식간에 다니엘 블랙을 삼키며 부풀어 올랐다. 이윽고 번쩍, 안면을 따갑게 만들 정도의 광체가 폭발했다.
“···당했군.”
불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권능이 무너진다. 남은 몸을 이루고 있던 사슬들이 차츰 풀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금방 녹아내린 어둠이 되어 지면 아래로 물처럼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이 분신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다니엘 블랙은 고개를 들어 현우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주 멋진 일격이었네.”
“개같은 새끼.”
진심이 담긴 욕설.
그러나 아주 허탈하지만은 않았다.
설령 일부에 불과하다고 해도.
녀석의 힘과 전투 방식, 현우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진 점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다음 기회가 온다면···.
“다음엔 진짜로 죽인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확실하게 대비하고. 녀석을 완벽하게 압살할 기반을 만들 정보가 무더기로 손 안에 들어온 셈이었으니.
“흐흐, 기대하고 있겠네.”
“그냥 기대만 하지는 말고, 목이나 깨끗이 닦고 기다려라. 미리 유서라도 써놓으면 더 좋겠고.”
무너져 내리는 육신을 향해.
현우는 가볍게 중지를 들어 보였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일그러진 미소를 마지막으로.
녀석이 그 자리에 남긴 것은 현우가 파괴한 일부 사슬의 파편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