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맛있겠다
김태진이 당황한 순간, 대인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타닷!
대인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샬리트를 휘둘렀다. 김태진 입장에서는 갑자기 빛이 번쩍이는 것처럼 보였다.
촤아아악!
김태진을 둘러싼 어둠이 갈라지고, 드러난 공간 사이로 경악한 얼굴의 김태진이 보였다.
대인은 그곳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순간 김태진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동했다. 검은 빈 허공을 찔렀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듯, 김태진은 뺨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대인을 노려봤다.
“너···!”
그러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김태진은,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실력을 감추고 있었군.”
대인으로선 썩 마음에 드는 반응은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어둠을 마구 뿌리며 덤벼드는 쪽이 더 편한데.
그러나 김태진은 오히려 경계심을 높이며 어둠을 자기 주변에 끌어 모았다. 그만큼 대인을 위험한 상대로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대인은 건들거리며 이죽거렸다.
“방금 전에는 자신만만하게 죽이겠다더니, 왜 갑자기 겁먹은 고슴도치가 됐을까?”
대인은 검을 어깨에 걸치고, 삐딱하게 김태진을 바라봤다. 손가락을 까딱해 김태진을 도발했다.
“나한테 이길 자신이 없나 봐?”
으드득.
한 번도 그런 모욕을 당해본 적이 없는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 눈은 차가웠다.
“걱정 마라. 확실하게 죽여줄 테니.”
그리고 반격이 시작됐다. 김태진의 몸에서 풀려나온 어둠이 수십 자루의 창으로 변해 날아왔다.
대인은 어둠의 창을 피하고 쳐내며 김태진에게 접근했다. 그는 더 이상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
휘이익!
파천신보가 극성으로 펼쳐졌고, 왼손의 시계는 이미 변신준비를 마쳤다.
드르륵-! 철컥!
충전이 완료된 핸드캐논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어둠이 흩어지고, 그 자리에 검광이 번득였다.
그러나 김태진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어둠을 풀어내 허공에 방패를 만들고, 채찍을 만들어 직접 휘둘렀다.
펑! 퍼버버벙!
방패가 핸드캐논의 광선을 막아내고, 채찍이 뱀처럼 몸을 흔들며 대인의 어깨를 노렸다.
휘리릭!
대인은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하는 동시에, 손을 뻗어 채찍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채찍을 확 잡아 당겼다.
“헉!”
갑자기 잡아당겨진 김태진은 깜짝 놀라며 채찍을 놓았다.
그러나 대인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묵빛 검날 위로 시퍼런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김태진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맺혔다.
‘함정이군.’
그걸 깨달은 순간 대인은 이형환위를 펼쳐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무리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거의 동시에 김태진의 몸에서 어둠이 폭발했다.
-퍼어어엉!
잠시 후, 폭발했던 어둠은 다시 한 곳으로 스스슷-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평소의 깔끔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산발한 모습의 김태진이 서 있었다.
김태진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눈치가 제법이군.”
“내가 좀.”
대인은 검을 겨누며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김태진
최강의 다섯 초인 중 한명이자,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길드 ‘블랙하운드’의 대표.
한때는 존경하기도 했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가공할 전투력. 게다가 축복 받은 개성인 의 주인.
김태진이 전설을 써내려갈 때마다, 블랙하운드에 소속된 길드원으로써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물론 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블랙하운드에 있었던 3년 동안 골병들고, 개처럼 부려 먹히고 재계약 제안도 못 받고 나왔을 땐 진짜 다 죽이고 싶었다.
물론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 후로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그렇게 십 몇 년을 버텼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대인은 피식 웃으며 김태진을 바라봤다.
“옛날엔 겁나 대단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좆도 아니네.”
동생의 아내와 뒹굴다 발각된 추잡한 스캔들, 경쟁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던 추악한 모습.
그 모든 것을 아는 대인에게 김태진은 벌레만도 못한, 그래서 상대하기조차 싫었던 인간에 불과했다.
“또! 또 그따위 눈으로 날 쳐다보는구나!”
도끼눈을 뜬 김태진의 몸에서 막대한 어둠이 터져 나왔다.
푸화아아악!
어둠이 파도처럼 밀려 와 대인을 후려쳤다. 대인은 검을 휘둘러 파도를 베고, 몰려오는 어둠도 차근차근 상대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김태진은 당황했다.
‘어떻게 내 수법을 다 아는 거지?’
마치 자신과 수백 번은 싸워본 상대인 것 같았다. 왼쪽을 노리면 왼쪽을 미리 막고, 오른쪽을 노리면 오른쪽에 검이 가 있었다.
페이크는 통하지도 않았고, 어떤 공격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막혔다.
‘이런 미친···!’
누가 보면 합이 척척 맞는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자신은 임대인과 싸우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상처가 늘어나는 건 김태진이었다.
촤아악!
또 다시 어둠이 갈라지고 임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대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김태진은 분노와 함께 공포를 느꼈다. 그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감히이이-!”
푸화아아아악!
어둠이 거대하게 몸을 일으켜 대인을 덮쳤다.
빈틈이 보였지만, 대인은 그걸 파고드는 대신 을 사용해 잠시 몸을 숨겼다.
스르륵.
이걸로 김태진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겠지만 잠깐의 혼란은 줄 수 있었다.
“숨는다고 못 찾을 것 같나!”
흥분한 김태진이 사방으로 어둠을 뿌렸다.
아주 약간의 흐트러짐. 그거면 충분했다.
대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검을 휘둘렀다.
대인은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펼치지는 못했지만, 파천신검 1초식 천마참이 약식으로 펼쳐졌다.
-푸화아아악!
빛이 어둠을 지워버리며 그 자리를 채웠다.
김태진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팔 하나가 빛의 경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끄아아악!”
오른팔이 사라진 김태진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남은 어둠을 모두 끌어 모아 대인을 공격했다.
어둠은 여전히 막강했지만, 엄청난 고통과 충격에 빠진 주인은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다!”
김태진은 이제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내가 너 따위한테···. 나는 최강의 초인인데···!”
“최강?”
대인은 김태진에게 걸어가며 코웃음을 쳤다. 김태진은 뒷걸음질을 쳤다.
“최강의 개성을 가진 거겠지.”
은 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개성이었다.
퍼스트 게이트가 열리던 날, 김태진은 운 좋게 그 능력을 얻었고 대한민국 최강의 초인 중 한명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김태진은 스스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백창수나 민태웅보다 훨씬 좋은 개성을 가졌고, 김수호의 도 보다는 한 두 단계 급이 떨어졌다.
그나마 비슷한 수준은 빙하 한지예 정도.
하지만 훗날 그들에 대한 평가는 개성의 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김태진. 넌 나보다도 재능이 없어.”
“그게 무슨 헛소리냐!”
“그렇다고 죽어라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두 사람의 싸움을 보고, 그들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인은 알고 있었다.
김태진이 개성을 사용하는 능력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훗날 김태진과 같은 능력을 가진 외국의 어느 초인은, 세계 최강을 다툴 정도로 강해진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겨우 한국에서도 최고가 못됐으면 병신이지. 안 그래?”
한국 최강의 초인은 백창수였다.
회귀하기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백창수였다.
대인은 오늘 김태진과 싸우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넌 백창수보다 훨씬 약해. 비슷한 수준일 줄 알고 긴장했는데 말이야.”
“그딴 헛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줄 줄 알았나!”
김태진은 뒷걸음질 치는 척하며 끌어 모았던 어둠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땅속으로 끌어 모은 어둠이 용암처럼 위로 치솟으며 폭발했다.
-퍼어엉! 퍼엉! 퍼버버벙!
김태진이 마지막까지 감추고 있던 비장의 한수였다.
홀로 강력한 몬스터와 싸울 때 외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한 수.
설마 땅속에서 어둠이 폭발하리라고는 예상 못한 상대는, 그 순간 벌집으로 변한다.
훗날 백창수나 민태웅을 제거할 때 쓰려고 아껴둔 필살기였다.
‘설마 임대인한테 쓸 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임대인이 죽으면 다시 아무도 모르는 기술이 된다.’
김태진은 자신 있었다. 이 공격으로 임대인이 죽거나, 최소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을 거라고.
···그래야 하는데.
“아, 이거?”
어째서 임대인의 목소리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단 말인가.
푸욱-!
검 끝이 김태진의 가슴을 삐죽이 뚫고 나왔다.
쿨럭. 김태진은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해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대인을 올려봤다.
“어, 떻게···?”
대인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엔 그걸 쓸 줄 알았지. 10년 뒤에 꼬맹이한테도 쓴 거니까. 다섯 초인들과 불의 마녀의 싸움. 그 영상은 초인이라면 다들 수백 번은 돌려봤을 걸?”
특히 난 당신이 싸우는 모습은 누구보다 유심히 봤지.
“무, 무슨 소리를···.”
다 죽어가는 마당에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도 있었지만, 대인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그때의 결과만큼은 알려주기로 했다.
대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그때도 안 통했어. 비장의 기술은 개뿔.”
“크아악!”
대인은 악에 받쳐 자신을 노려보는 김태진의 목을 날려버렸다.
뎅겅.
목이 잘려나간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한국을 호령했던 한 초인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숲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스스스슷.
동시에 주인을 잃은 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인은 그것을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쩝. 이 좋은 개성을···.”
그때였다. 대인은 자신의 몸에서 뭔가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꾸물꾸물.
오른손 손등 위로, 대인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정령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이아 대륙, 대마법사 드레이츠의 지하실에서 얻은 정령이었다.
평소에는 따로 불러내거나 하지 않으면 조용히 잠들어 있던 녀석이 웬일인지 깨어난 것이다.
나중에 더 성장시킬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당장은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맛있겠다.]대인의 머릿속에 그런 의미가 전달됐다. 주위를 둘러본 정령이 갑자기 입을 벌렸다.
슈우우우웁!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던 어둠이 모여들었다. 마치 초강력 진공청소기처럼, 정령은 숲에 흩어진 어둠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우물우물.
꺼억-!
그런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검은색으로 변한 정령은 대인을 바라봤다. 녀석의 몸이 점점 회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다시 투명해졌다.
[졸리다.]그리고는 다시 손등 안으로 스르륵 스며드는 것이 아닌가.
대인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무슨···.”
그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든 대인은 손등을 뒤집어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스스스슷.
그의 의지에 따라 어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양이었지만, 분명 김태진이 사용하던 능력이었다.
“하, 하하. 하아?”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정령이 어둠을 먹고, 그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돌아가면 드레이츠가 남긴 책을 찾아봐야겠네.’
대인은 일단 이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언론에서 김태진 실종사건에 대해 잠잠해질 때까지는 말이다.
대인이 신기한 표정으로 손바닥 위의 어둠을 솜사탕처럼 뭉치고 있을 때,
릴리가 대인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대인은 어둠을 없애고 돌아섰다. 릴리는 여전히 두 팔을 귀 옆에 바짝 붙이고 손을 들고 있었다.
릴리가 대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잘못 했어요···.”
잘못한걸 알긴 아는 모양이었다. 안하던 존댓말까지 하는걸 보면.
“그리구, 팔 아파요···.”
대인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더 들고 있어.”
“···언제까지?”
대인은 릴리의 손목에 다시 를 채워주며 말했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날아서 가도 돼?”
“아니. 걸어서 갈 거야.”
“진짜로 잘못 했어요···.”
잠시 후, 전투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대인은 릴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황색 노을.
노을에 비친 릴리의 머리카락은 조금 더 풍부한 색을 머금고 반짝였다.
알 속에서 고개를 내민 말랑이가 노을을 향해 포효했다.
캬아아!
그리고 릴리는 뭔가를 각오한 얼굴로 대인을 돌아봤다.
“아저씨. 나 고백할 게 있어···.”
“뭔데?”
“나 있잖아. 감옥에 갈지도 몰라···.”
이어진 릴리의 고해성사에, 대인은 “푸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길었던 가출 소동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