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마지막 퍼즐의 행방(4)
연합군의 척후 부대가 카이로에 도착했을 땐, 도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해버린 이후였다.
“이게 무슨···.”
“도대체 게이트에서 뭐가 나왔기에 도시가 이런 꼴이···.”
도시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반쯤 녹아내려서 굳은 모습.
유황과 불덩어리들이 쏟아져 멸망했다는 성경 속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연합군 척후 부대는 자신들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시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척후 부대는 조심스럽게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괴물들은 다 어디 있지?”
“설마 벌써 다른 도시로 퍼져나간 건···.”
“폭발하거나 불에 탄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다수 보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과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질 때였다.
“저, 저기에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망원경을 들고 있던 병사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내 모두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쯤 무너진 건물 안쪽에 모여서 웅크리고 있었다.
“으으···.”
“누가 제발 좀 도와주세요···.”
그 숫자는 수십 명.
다가오는 군인들을 발견한 생존자들은 흠칫 놀라서 몸을 더 움츠렸다.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척후 부대는 천천히 그들에게 접근하면서 해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생존자 그룹을 발견했다. 즉시 구조 작업을 시작하겠다.”
긴급 편성된 척후 부대의 팀장, 왕구호는 이어마이크에 대고 본부에 보고했다.
잠시 후 척후 부대는 생존자들을 구조했고, 병력을 일부 나눠 그들을 즉시 후방으로 이송시켰다.
“···좀 더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생존자의 전부가 아니었다.
척후 부대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서 수십 개의 생존자 그룹을 더 발견했다.
“도와주세요!”
“여기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오, 알라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멸망한 도시 안에 살아남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쏟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왕구호가 생존자들에게 물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죠? 괴물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점점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며 천 명이 넘는 생존자들을 발견하는 동안에, 살아있는 마수나 악마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방에 폭발한 흔적과 불에 탄 시체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상하네요. 불에 타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가 최소한, 몇만은 넘어 보이는데···. 그런데 왜···.”
‘적은 전부 죽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살아남아 있는 거지?’
당연하게 드는 의문이었지만, 왕구호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도시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생존자들의 증언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괴, 괴물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이상한 벽 같은 게 막았습니다.”
“회색 후드를 쓴 놈들! 등에 이상한 표식이 있는 놈들! 그것들이 악마들을 소환한 범인이야!”
“갑자기 괴물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어요. 세상을 다 불태우는 지옥불처럼···.”
“분명 여자였어요.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니, 여신이 분명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거기엔 악마가 있으니까···.”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봐도 상황은 쉽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다들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제대로 본 것이 많지 않았고, 갑자기 괴물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게이트에서 쏟아진 이 많은 악마들을 처리한 건 누구지?’
마왕성에서 관측하기로, 카이로에서 생성된 게이트는 약 1,200개.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에서 발생한 숫자에 비교하면 절반 이하였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숫자는 결코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충돌의 흔적은 거의 없었어. 다 일방적으로 폭발하고 불에 탄 흔적뿐이야.’
까맣게 타거나 폭발한 시체들에게서는, 저항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즉, 일방적인 싸움이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전부 똑같은 사인이라는 건, 이 많은 괴물을 단 한 명이···.’
“에이. 말도 안 돼.”
왕구호는 스스로의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혹시 릴리라면 가능할까?’
그가 아는 가장 강력한 화염계 능력자는 릴리였다.
그러나 릴리가 이 정도의 파괴를 할 수 있느냐는 둘째 치고, 릴리는 지금 대인과 함께 다른 차원에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잠시 후, 왕구호는 그녀가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왕구호는 직경 수백 미터가 넘는 크레이터의 끝자락에 서서, 수십 미터 아래에 처박혀 있는 거대한 악마를 바라보았다.
[크어어어억···!]악마는 죽지 않고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온몸에는 검상으로 보이는 상처가 즐비했다. 가슴에는 거인의 주먹에 뚫린 듯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사지와 날개는 맹수에게 물어뜯긴 듯한 모습이었다.
화르르륵···!
그것도 모자라, 악마는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다.
[제발, 날 죽여, 다오···!]악마는 왕구호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 순간, 왕구호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꿀꺽.
‘엄청나게 강한 악마야.’
이제는 세계 10대 초인이라 불릴 정도로, 왕구호는 온갖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은 초인이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만약 저 악마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자신조차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혹시···. 마왕인가?”
악마의 정체는 바알 휘하의 군단장이자 악마백작이었지만, 왕구호는 평생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제, 발···.]몇 번 더 애원하던 악마는, 연합군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완전히 소멸했다.
털썩.
스르르륵···.
악마의 고개가 꺾이고, 그 생명력을 갉아먹던 불꽃까지 사그라진 것을 확인한 왕구호는 크레이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여러분은 내려오지 마세요. 저 혼자 확인하고 올게요.”
잠시 후, 악마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왕구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지고 온 통신기를 들어 본부에 보고했다.
“상황은 이미 종료됐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생존자를 더 수색하겠··· 아, 잠깐만!”
악마의 뒤쪽, 기둥에 묶여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
연합군 본대는 현장에 도착한 즉시 생존자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카이로의 인구 70% 이상이 사망했다.
멸망한 도시에서는 생존자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체의 숫자는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도시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복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부서졌다.
연합군 사령부는 그 참상을 직접 보며 침음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헬게이트를 막지 못하면, 이런 재앙이 몇 번이고 반복될지 모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고작 한 번의 승리로 자신만만했던 인류 연합군은, 머지않아 자신들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그런데 그··· 분은 언제쯤 오십니까?”
대인이 도시에 도착한 것은, 연합군 본대가 한창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도시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대인과 릴리가 걸어 나왔다.
“···왔느냐.”
천무극이 굳은 표정으로 제자를 맞이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오랜만에 만난 제자를 반갑게 맞아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인. 오랜만일세.”
“오랜만이오.”
“자네는 여전하군.”
“오라버니···.”
많은 사람들이 대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지만, 다들 도시의 참상을 목격한 터라 반가움을 억누르고 간단한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그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대인은, 도시를 크게 둘러봤다.
‘그래. 저 친구가 가장 충격이 크겠지···.’
‘이 일을 막으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인 사람인데.’
사람들은 대인이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대인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물론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침착해 보였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적은 것 같네요.”
전생에서 이미 헬게이트를 한번 겪어 본 대인이었다.
파괴된 도시와 시체들, 절망을 마주한 경험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풍부했다.
그리고 대처하는 방법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오기 전에 구호한테 보고는 대충 받았어요.”
의기소침해져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또 언제 어디서, 헬게이트가 열릴지 모른다.
지금은 서둘러 상처를 봉합하고, 그다음 대책을 세워야 할 때였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을 좀 데려왔는데요.”
저벅저벅.
대인의 뒤쪽으로 열려 있는 게이트에서, 신성 아르테리아 왕국의 성녀와 사제들, 신성 기사단이 걸어 나왔다.
“아···.”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주변으로 청량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은발의 눈먼 성녀가 앞으로 나서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르만의 미천한 종이 인사드립니다.”
아르테리아 왕국에서도 믿음이 강하고 신성력이 강한 순으로 골라서 뽑아온 정예들.
앞으로 연합군의 강력한 우군이 되어줄 이들이었다.
“다친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저희 사제들이 돌보게 해주십시오.”
아르테리아 왕국의 사제들이 흩어져 부상자들에게 다가갔다.
파아앗···!
그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이 다친 사람들의 육체를 치료하고 마음까지 안정시켜 주었다.
“상처가···.”
“더, 더 이상 안 아파요.”
“엄마! 이제 괜찮은 거야?”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포션은커녕 일반 의약품조차 모자라던 상황이었다.
대인이 데려온 수백 명의 고위 사제가 그 공백을 완전히 메웠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연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눈먼 성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네? 그럼···.”
“저기 계신 아르만의 아들께서 저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성녀의 손가락은 정확히 대인을 가리켰다.
대인의 몸에서는 은은한 후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신의 보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놀라운 신비이자 기적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자시여···.”
“손 한 번만···.”
갑자기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대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아니 왜 나한테 이래?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나 본인은 아무리 부정을 해도, 직접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휴. 진짜···.”
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 쉬는 모습을, 그를 아는 사람들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역시.”
“오자마자 이곳 분위기를 바꿔놓네요.”
대인은 이제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