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
악녀는 자존심이 강하다
내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된다. 온갖 검술을 수련하기도 하고, 체력을 기르기도 한다. 무척 힘든 대련도 여기에 포함된다.
운동으로 몸이 풀린다면, 그다음은 마법이다. 일상에서 도움이 되는 마법부터 치유 마법, 그리고 전투 마법까지 익힌다.
아무리 높은 신분의 공작가 아들로 빙의했다지만, 무력 자체는 언젠가 꼭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공부이다. 이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여러 지식을 공부한다.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다만, 이 독서에는 다소 독특한 것도 있었다. 바로 <고귀한 귀족 영애를 다루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약혼자이자 악녀, 샤엘 아즈벨을 위해서 사고 읽었던 책이다. 습관처럼 책을 펴본다.
ㅡ귀족 영애를 다루기 위해선, 끝없는 헌신을 바쳐라. 그렇다면 그녀는 마음을 열 것이다.
⋯이게 샤엘한테 소용이 있었나?
전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것부터가 실수였다. 그녀는 고귀한 귀족이 아니라, 악독한 악녀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내게 보인 것은 또다른 책이었다.
<악녀를 괴롭히는 999가지 방법>
도대체 왜 있는 책인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이런 책을 내도 되는 건가?
그래도 대충 읽어보니 괜찮은 책이었다.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 역시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써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문구다.
악녀가 곤란한 짓을 할 때에는, 자존심을 건드려라.
이 말을 곱씹으며 악녀에게 향했다.
* * *
독서를 끝낸 다음은 악녀와의 만남이다.
내 맞은편에는 샤엘이 앉아 있다. 두 눈을 새침하게 뜬 채로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그다음은 무엇이더라.
바로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 이것 역시 내 하루 일과들 중 하나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타악ㅡ!
그녀가 마시던 찻잔을 강하게 내려 놓았다. 내가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나를 노려보기도 했으니까.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다. 물론, 이제는 나도 질 수 없다.
타아악ㅡ!
더 큰 소리.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강한 소리였다. 조금 전의 소리가 그녀의 찻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번에는 내 찻잔이었다.
“제가 이겼군요.”
“⋯.”
악녀는 자존심이 강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고 있는 상황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이상한 대결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악녀는 다시금 찻잔을 들어 올렸다. 마시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다음은 내려쳐지는 찻잔이 보인다.
타아아악ㅡ!
타아아아악ㅡ!!
그런 그녀의 찻잔 소리를 곧바로 따르는 것은 내 찻잔이 내는 소리였다. 그녀의 찻잔 소리는 내 찻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으흐⋯!”
악녀의 소리 역시 이를 뒤따랐다.
그녀의 침음이 나를 향한 얄미움에서 비롯됐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녀의 찻잔에 있던 뜨거운 찻물이 그녀의 손에 흩뿌려졌기 때문이었다.
“으으⋯.”
아, 이번의 침음이 나에 대한 얄미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야 그렇다. 이번에도 내가 악녀를 이겼으니까.
“⋯괜찮습니까?”
악녀가 곧바로 제 손을 가리며 말했다.
“안 괜찮거든요⋯!”
어쩌면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들리는 것은 또 다른 소리였다.
타아아아아악ㅡ!!
이번에도 그녀의 찻잔이 낸 소리였다. 화상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안 괜찮은 거였을까.
그녀의 비통함이 웃음으로 바뀌기도 전에, 찻잔이 다시금 내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ㅡ!
그녀가 내려친 찻잔이 깨지는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그 정도의 충격은 찻잔이 견디지 못하니까.
“⋯.”
“⋯.”
그리고 잠시 흐르는 침묵.
그녀의 침묵은 이겨도 진 것 같은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내 침묵은 이런 어이없는 상황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드르르르륵ㅡ!!
다만 이 침묵은 곧바로 깨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시녀들이 방으로 들어왔으니까.
“아,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곧바로 샤엘의 안위를 물어보던 시녀들은 멈추었다. 샤엘의 앞에 깨진 찻잔을 보고는 상황 파악을 마쳤기 때문이다.
시녀들은 깨진 찻잔을 치우며 말했다.
“어서 의사를 부르세요!”
역시 공작가의 금지옥엽이다. 그녀가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도, 시녀들은 치유사를 부른다.
“아니, 안 다쳤으니까 치유사들은 괜찮아. 이만 물러가.”
그런 시녀들을 만류하는 것은 샤엘이었다. 예전의 나를 볼 때처럼, 무척이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런데 샤엘은 갑작스레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다. 물러가지 말고 여기에서 계속 대기해.”
도무지 알 수 없는 명령에, 시녀들은 그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차가운 표정도, 억울한 표정도, 심지어는 분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는 것이 평소와는 달랐다.
다만 그녀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그녀가 나를 이겼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흥. 이제는 벙어리가 되어야겠네요, 에란.”
아하, 그녀는 내가 시녀들의 앞에서는 말대꾸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조금 위기다. 시녀들이 앞에 있다. 시녀들의 앞에서 악녀를 괴롭히는, 그런 경거망동한 행동을 했다가는 피를 볼 것이다.
그럼에도 내 얼굴은 미소를 지었다.
그야, 괴롭히는 것만 불가능하다.
애정 표현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약혼자이기도 하니까.
“샤엘, 오늘도 아름답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그녀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있는 시녀들의 분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시녀들의 공통 관심사는 바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시녀들이 사랑을 꿈 꿀 나이를 지녔으니까.
시녀들이 얼굴을 붉힌 채로 나와 샤엘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마치, 영화라도 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
악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수치심보다, 나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나는 생각했다.
수치심보다, 나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면⋯⋯.
수치심을 더 크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탁자에 놓인 케이크를 떠서 그녀의 입으로 가져간다.
물론, 이걸 그 자존심 높은 악녀가 얌전히 받아먹을 리는 없다.
“이런, 시녀들의 앞이라 먹기 부끄러우신 겁니까?”
느끼한 내 말을 받아치는 것은 샤엘이 아니었다. 바로 시녀들이었다.
꺄아아악ㅡ!
시녀들이 악녀 샤엘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녀들이 이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 앞의 두 사람이 너무나도 소설 속의 두 주인공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샤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층 더 붉어진 얼굴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어라, 이래도 시녀들을 안 나가게 해?’
이번에는 강도를 높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엘에게 다가갔다.
아, 이번에는 수치심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건드릴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 닿을락 말락하는 거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시녀들의 도움 없이는 저를 이길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
“역시 겁쟁이시군요. 아, 이해는 합니다. 어릴 적부터 시녀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셨으니, 원⋯⋯.”
“⋯.”
내가 샤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시녀들에게 말했다.
“⋯너네는 나가.”
이번에도 내 승리였다.
그 책대로다. 읽었던 그 내용을 곱씹었다. 악녀가 곤란한 짓을 한다면, 자존심을 건드리라는 그 내용.
악녀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
샤엘은 너무나도 분했다. 진 것도 억울한데 그녀의 손에는 찻잔으로 인한 화상과 생채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공작가의 금지옥엽인 그녀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중대사였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껏 몸에 상처가 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설령 그것이 티도 안 날 생채기라도 해도 말이다.
물론, 그것이 샤엘이 상처가 생겨서 억울한 이유는 아니었다.
상처가 생기면 약간의 물약을 바르면 된다. 그 정도로 약은 발달해 있다. 애초에 공작가에는 뛰어난 의사들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녀의 티도 안 날 생채기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다르게 보인다.
그녀의 작은 상처가 그들에게는 마치 큰 흉터라도 된다는 듯이 다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찻잔이 깨진 것을 본 시녀들조차 치유사를 불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상처가 생기면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감춘다. 그러고는 스스로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그렇다. 빌어먹을 약혼자에게 상처가 절대로 보이도 않도록 가렸으니까.
조금 전 다친 상처를 한 번 쓰다듬어 본다. 그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으니까. 자연적으로 나았을 리가 없는 짧은 시간이었다.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약혼자가 자신에게 귓속말을 할 때, 손에 따뜻한 느낌이 느껴졌던 것 같다.
“⋯.”
악녀 샤엘은 분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악녀는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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