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
악녀는 소문이 싫다
악녀 샤엘은 잠에서 깨어났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수면 시간인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빌어먹을 약혼자가 꿈에서 나왔으니까. 그 빌어먹을 약혼자는 꿈에서조차 자신을 괴롭혔다.
그리고 더 분한 것은, 자신은 꿈에서조차 그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 너무나도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하.”
문제는 꿈이 아니다. 약혼자에 대한 생각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곧잘 떠오르고는 했다.
심지어는 밥을 먹다가도 생각나기도 했으니까.
그가 좋아서는 결코 아니었다. 되려, 그가 너무나도 싫은 것이 그 이유였다. 원래는 화풀이 겸으로 대화하는 사람이었는데⋯⋯.
이틀 전부터 무언가 이상해졌다. 그래, 그때부터다. 약혼자가 자신에게 개 같은 년, 이라고 한 뒤부터.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실수로 말이 엇나온 것이구나, 생각이 들어 다시금 그에게 의문을 표하기도 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뭐.., 뭐?’
-‘개 같은 년, 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그새 귀가 막혀버린 것입니까? 제 능숙한 검술로 능히 파내드려야겠군요.’
그때 그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 그녀는 곧장 그가 용서를 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녀는 용서를 받아주고 이를 이용해서 더욱 그를 괴롭힐 생각이었다. 이 사람만큼 성능 좋은 화풀이 대상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괴롭힐 때의 반응부터가 남달랐다.
그런데⋯. 그가 용서를 비는 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당당하게 자신과 맞섰다.
능숙한 검술로 능히 파내드린다니? 그게 무슨 추언인가.
그 뒤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쩌면 에란이 자신을 갖고 노는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 생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어제의 일이다. 말대꾸도 아니고, 찻잔으로 자신에게 대꾸하던 에란을 생각해 본다.
도대체 왜 몸소 나서서 치유 마법을 몰래 걸어주었을까.
애당초 치유 마법을 써준 것부터 이해가 되질 않지만, 치유 마법을 써주었다고는 해도 이를 통해 자신을 놀리면서 괴롭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시 약혼자를 만나면 그 이유를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괴롭힐 것이다.
이번에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다짐을 하며, 제 약혼자에 대한 생각을 지워냈다. 계속 약혼자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에란에게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에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며 애썼다.
그런 그녀의 다짐을 방해한 것은 시녀들의 소문이었다.
*
“뭐, 도련님이 드디어 아가씨를 꼬셔냈다고!?”
복도의 사각지대에서, 샤엘은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대낮에 시녀들이 겁도 없이 저택에서 이런 소문을 주고받는 것은⋯, 원래라면 샤엘이 방에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어이없는 것은 이에 이어지는 말이었다.
“그래, 에란 도련님께서 케이크를 떠먹여주시더라!”
맹세코, 받아먹은 적 없다. 샤엘은 억울했다.
“에란 도련님께서 귀에 키스도 하시고⋯!”
귀에 키스를 받은 적도 없다. 귓속말을 받긴 했다.
샤엘이 모습을 드러내 이상한 추문을 내는 시녀들을 혼내려 할 때. 반대편의 사각지대에서 나온 샤엘의 아버지이자, 공작인 제스펜 아즈벨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했다. 시녀들의 소문이 제스펜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뭐, 그 말이 정말 사실이더냐?”
망했구나, 라고 샤엘은 생각했다. 시녀들은 과장되고 과장된 소문을 더욱 과장하고 과장해서 제스펜에게 알려 버렸다.
“드디어 나도, 손주를 보는 것이냐⋯⋯.”
제스펜은 감탄했다. 솔직히 샤엘의 성격이 좋지도 않고⋯, 에란에게 심술을 부린 적도 엄청 많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다. 소문이 사실일 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 소문은 절대로 사실이 아니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샤엘이 부정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
그때 하필 복도의 반대편에서 나온 것은 에란 바슬렛이었다.
그렇다면 제스펜이 에란에게 말할 것은 뻔했다. 제 딸과의 연애가 잘되가고 있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샤엘은 에란이 이를 부정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그녀의 원수, 에란 바슬렛은 이상한 대답을 했다.
“아, 맞습니다.”
샤엘은 기절할 뻔했다. 빌어먹을 약혼자가 거짓을 뱉어냈으니까.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그들에게 향했다.
자신을 향해 피씩, 조소를 날리는 에란이 보인다. 그다음은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제스펜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시녀들이다.
샤엘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그 오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샤엘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해를 벗어날 수 있긴 할까?
곰곰이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그녀가 부정한다면, 부끄러워서 에란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 하는 것이라며 더욱 과장된 소문이 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침묵을 택했다. 그 이유에는 에란이 자신을 보며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한몫했다.
자신의 불행이, 에란의 행복보다 낫다.
무엇보다, 만약에라도 그런 소문이 돈다면⋯⋯? 자신도 싫겠지만, 에란도 싫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잠깐의 고통을 참고 소문에 대해 긍정을 한 것이니까.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구나, 라고 샤엘은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진짜로 그 소문이 사실처럼 퍼져나갔다는 것이었다.
* * *
나는 샤엘을 쳐다보았다. 그런 소문에, 그저 가만히 있는다니.
마치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로 상황은 전개됐다.
설마, 거기에서 침묵으로 답할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면 제스펜 공작이 이 소문을 사실로 확정 짓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시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소문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갈 것이다.
제스펜 공작은 나와 샤엘을 당장 샤엘의 방에 두고는 나가버렸다. 마치 자리를 비워주는 것 같았다.
드르르르륵ㅡ!!
이제는 익숙한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강도다. 그녀는 역대 최고로 당황한 것이다.
“⋯도대체, 거기서 왜 침묵으로 답하신 겁니까?”
“⋯.”
이번에도 침묵으로 답하는 샤엘.
“혹시 제가 진짜로 좋아지시기라도 하신 겁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
원래는 그녀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었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내가 그녀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저도 후회되고, 짜증나는 실수였으니까, 앞으로 그 일은 언급하지 마세요.”
“⋯그러죠, 뭐.”
물론, 언급할 거다. 내일도, 한 달 뒤에도. 그리고 다음 해에도. 괴롭히기 딱 좋은 소재를 얻었다.
“⋯그래서, 어제의 일은 도대체 왜 그러신 건데요?”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 손이요.”
아, 손에 치유 마법을 써준 걸 말한 것 같다.
“제가 써준 게 아닙니다.”
물론 내가 써준 게 맞다.
“거짓말 마세요. 마법 명가인 아즈벨 가문의 저인데⋯.”
“제가 아닌 걸 뭐 어떻게 증명해야 합니까?”
“⋯.”
여기까지 부정하니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는 악녀였다. 혹시 내 착각이었나?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아무리 아즈벨 가문이라고는 해도, 마법을 잘 쓰지도 못한다.
악녀는 게으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놀릴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요, 제가 한 게 맞습니다.”
“하, 맞잖아요. 이럴 줄 알았어요.”
“사실 아닌데요.”
“⋯.”
나를 노려보는 샤엘. 악녀가 제대로 화나기 전에 다시 인정했다.
“그래요, 제가 한 거 맞습니다.”
샤엘은 말장난하는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서, 도대체 왜 치료해준 건데요.”
“약혼자한테 상처가 난 걸 어떻게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약혼자한테 개 같은 년, 이라고 욕을 하나요?”
물론 그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악녀는 자신이 했던 짓들은 생각 못 하는 걸까⋯⋯.
하여간 악녀는 이기적이다.
“사실을 말하는 것은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 그녀가 진짜로 개 같은 년, 이라서 욕해도 괜찮다는 뜻이 된다.
“저는 당신이⋯ 진짜 싫어요.”
“그렇습니까?”
나를 노려보는 샤엘. 내일 꺼내려 했던 무기인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뭐⋯, 저희 둘이 드디어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에 부정하시지 않을 것을 보면 진짜로 싫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
“참고로, 이제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은 공작가에 없습니다.”
이제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샤엘이었다. 그녀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하, 그런 소문을 먼저 긍정하신 당신은, 제가 싫지만은 않았나 보네요?”
역공을 취해오는 악녀. 얼마만의 공격인지 모르겠다. 꽤 훌륭한 공격이었다.
다만, 상대가 나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수천의 공격을 받아온 나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는 아직 약혼 관계에 있지만⋯⋯.”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그러니까, 내 마음도 그녀와 똑같다는 소리였다.
“다시 말해, 저도 당신이 싫다는 뜻이었습니다.”
역공에 이은 역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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