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도둑 잡기 (2)
마핵을 구입하겠다고 나선 자들은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만주에서 이 정도 거액을 지불할 수 있는 조직은 딱 하나뿐이었다.
파천궁의 창의단.
어째서 창의단이 은밀하게 마핵을 구하는지는 방문식이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일생 동안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얻어 지긋지긋한 괴물과의 전투에서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그 역시 어둠의 거래가 그리 쉽게 풀리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상대방을 영원히 잠재우는 것.
‘내래 대비를 해 뒀디!’
방문식이 금화를 향해 팔을 뻗는 짧은 순간.
여자와 젊은이가 그의 앞으로 나섰다. 빙벽과 강철벽이 방문식과 흉터의 사이를 겹겹으로 가로막았다.
창의단에서 고수를 파견했을지는 모르나, 어지간한 수준이라면 몸을 빼는 것은 가능할 터.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빙벽이 박살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강철벽 역시 고요했다.
‘왜 공격을 안 허디?’
금화를 품에 안고 물러서며 방문식이 재빨리 정면을 확인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 창의단의 밀수업자는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방문식은 의문을 안고 흉터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 모두의 시선의 끝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흉터, 윤시담이 남자를 향해 재빨리 탐색술을 펼쳤다.
어둠에 가려 그의 얼굴과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다는 것. 몸이 가늘고 작다는 것. 그리고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일반인? 일반인이 왜 이 밤중에 여기에?’
윤시담의 머릿속이 팽팽 돌고 있는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 한국어 못 알아듣나?”
그 목소리에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웃음기가 묻은 태연한 목소리.
남자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중국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 이건 알아듣겠지?”
딱 짚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묘한 느낌이 드는 발음이었다. 하지만 윤시담은 발음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저 미친놈은 뭐야? 니들 꼬리 달고 왔어?!”
“아니야! 니들이 달고 온 새끼……!”
콰직!
방문식이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다리 사이, 시멘트 바닥이 움푹 패여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검으로 잘라낸 듯한 흔적.
‘뭐디? 뭐가 지나갔나?’
방문식의 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남자로부터 무엇인가가 반짝 빛나더니 바닥이 박살났다.
아무튼 하나는 확실했다. 저 남자가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수라는 것.
‘절대 상대하면 안 돼. 당장 들고튄다!’
순식간에 상황 판단을 마친 방문식이 재빨리 뒷걸음질쳤다.
윤시담이 외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방문식의 예상과 달리, 남자는 윤시담의 편은 아닌 듯했다.
“고수다! 모두 한꺼번에 응전하라!”
그렇다면 행운이다.
저들이 서로 치고받는 동안 얼른 돈만 챙겨서 튀면…….
“어디가? 내 볼일이 안 끝났는데.”
“크…!”
하지만 방문식은 채 두 걸음을 떼지 못했다. 등줄기를 무엇인가가 훑고 지나가는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방문식은 뒤통수를 후려 맞은 개구리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의 일행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방문식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로 희망을 잃지 않은 채 눈알을 굴리며 주변의 상황을 확인했다.
“뭐 하는 새끼냐!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내가 뭐 하는 분이신지는 지금부터 알게 될 거고, 네놈이 누군지는 내가 졸라리 궁금하거든?”
윤시담의 외침에 남자가 빙글빙글 웃으며 대꾸했다.
기세등등한 외침과 달리 그들은 남자와 거리를 둔 채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빈틈이 안 보여!’
윤시담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른 건 몰라도 고수를 알아보는 눈은 가지고 있다 자부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 살아남으려면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눈으로 보았을 때 눈앞의 남자는 실력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고수였다.
짝다리를 짚고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서 있는데 재앙의 앞에 서 있는 듯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니야. 착각일지도 몰라.’
윤시담은 희망을 붙들며 검을 움켜쥐었다. 오늘 이곳의 거래는 절대로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이다.
마핵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파천궁에 알려지는 날에는 자신도, 자신의 주군도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터.
윤시담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남자의 정수리 위의 수증기가 순식간에 모여들었다.곧 그것은 날카로운 빙창의 형태로 바뀌었다.
빙창을 내리꽂으며, 윤시담이 외쳤다.
“이 새끼, 죽……!”
“이지는 않을게.”
퍼버버버벅벅버벅벅!
별이 보였다. 아주 많이 보였다.
윤시담은 자신이 바닥에 등을 대고 하늘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데려온 열 몇 명의 부하들이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 사이로 얼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별보다 더 빛나는 듯한 얼굴이었다. 신이 특별히 정성 들여 조각한 듯한 코와 턱과 입술-.
윤시담은 자신이 남자에게 얻어맞아 바닥에 큰대자로 널브러져 있다는 현실을 잠깐 잊었다.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남자가 물었다.
“이제 말 할 생각이 드냐? 너 어디서 온 누구야?”
“……대답할 수 없다! 죽어도 내 입을 열지…, 아윽악악꺅윽윽꺅! 말할게, 말할게요, 제발, 악윽악꺅!”
“뭐가 이리 빨라?”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윤시담은 이제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조선국을 패망시킨 전각련의 대표. 본인은 각성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 능력은 미상-.
“천룡검신! 여기는 어떻게… 악!”
“질문은 내가 하고, 너는 대답만 한다. 알았나?”
“옙! 알겠습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추상적인 질문에 머뭇거린 순간 다시 격통이 몰아쳤다.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은 시작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탁시! 탁시께서 내리신 지시대로, 끄아악!”
“탁시? 그게 누군데? 김강산, 너는 아냐?”
컨테이너 사이에서 김강산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형이 모르는 걸 내가 알겠어?”
“에이. 지수 형 데려올 걸.”
윤시담은 그들이 나누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하얼빈 성주님… 아시지요? 그분이 탁시입니다.”
“하얼빈 성주? 그 양반 이름 사마량 아니야? 파천궁 창의단주잖아.”
“그렇죠…….”
창의단주의 본래 이름은 탁시였다. 그것은 그의 민족인 여진족의 이름이었다.
파천궁에 들어가려면 중국식 이름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사마량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창의단주는 스스로를 사마량보다 탁시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언제까지 중국의 변방으로 남아 있을 겁니까? 탁시! 거병합시다! 저 빌어먹을 한족의 지배에서 벗어나자고요!
-그래! 모든 여진이여! 들고 일어나라!
-어휴, 헛소리 마세요. 파천궁 지원 없이 겨울 버틸 수나 있어요?
-우리가 독립하면 파천궁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당장 토벌하러 달려올 겁니다.
-그러지 말고 조금씩 자치권을 얻는 건 어떻습니까? 예전 우리 조상님들도 중국의 자치구로…….
-그것은 우리 여진의 피를 더럽히는 행위다! 여진은 누구의 아래에도 복속되지 않는다!
-탁시, 누르하치 위인전 그만 읽으라니까요? 지금 그런 시대 아닙니다.
-누르하치의 피를 이어받은 나! 저 중원 대륙을 발아래 복속하고야 말리라!
-어휴. 성주님 또 뽕 찼네.
사마량과 마찬가지로 여진족이었으나, 이미 파천궁의 창의단이 하얼빈을 장악한 뒤 태어난 윤시담은 그의 성주나 그의 아버지 대의 어른들이 뜬구름 잡는 헛소리를 한다 여겼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천룡검신이 아주 불길한 웃음을 지었기 때문.
“이 새끼 봐라? 그냥 넘어가려고 했더니.”
마지막 문장은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였다. 하지만 그 의미는 확실히 알았다.
‘이거 잘못 걸렸는데?’
그의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윤시담은 아직도 연락 없냐?”
“그렇습니다.”
“끄응…….”
사마량이 이마를 짚었다.
퉁화에서 하얼빈까지의 거리는 500킬로 남짓. 각성자의 걸음으로는 열흘이면 충분했다. 중간에 괴물의 서식지를 피해 돌아온다 해도 하루 이틀.
하지만 마핵을 거래하러 간 윤시담은 보름째 감감 무소식이었다.
“설마 시담이가 돈을 가지고 홀랑 튄 건 아니겠죠?”
“시담이가 그럴 아는 아니야.”
“근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을까요? 혹시…….”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평소의 성정대로 사마량이 참모를 재촉했다. 찡그린 이마를 긁으며 참모가 말했다.
“궁에서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요?”
“크음…….”
사냥 중에 획득한 마핵은 파천궁에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파천궁은 그 마핵으로 중앙군을 성장시키고 각종 약물을 만들었다.
파천궁의 지방 영주로 평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다. 하지만 사마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용의 꼬리로 살 수는 없다.’
남은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파천궁에서 떨어져 나와 이 만주에 나라를 세우는 것. 더불어 만주 아래의 작은 반도까지 차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마핵을 모은 것은 혹시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쟁 준비의 일환이었다.
“궁주가 알아차렸으면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을 텐데……?”
“워낙 속 깊으신 양반이니 어찌 알겠습니까? 겉과 속이 일치하는 성주님과는 다르죠.”
“내가 사람이 깨끗하기는 하지.”
“……욕입니다. 성주님.”
“왜 그게 욕이야?”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쯤이었다.
타닥거리며 계단을 달려온 보초가 벌컥 문을 열었다.
“성주님! 침입자입니다!”
“침입자? 근데 니들이 막아야지 그걸 왜 여기 와서 말해?”
“엄청 강합니다! 저희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 방위단원들 절반 이상이 당했습니다! 성주님께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궁에서 사람을 보냈구나!”
사마량이 벌떡 일어났다.
하얼빈 방위단은 다른 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주의 최상단의 성. 가장 앞서서 괴물의 공격을 막는 최초의 방패.
그 방위단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고?
파천궁의 한가락 하는 이들이 사마량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지? 부용낭랑(芙蓉娘娘)? 철봉황(鐵鳳凰)? 화룡쾌검(火龍快劍)?”
“성주님. 진정하세요. 운남에서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궁주가 직접 1군을 이끌고 정벌을 떠났잖아요. 다들 운남에 가 있을 텐데 여기까지 어떻게 와요?”
“그러면 대체 누구냐고!”
“그건 지금 성주님이 가보면 알겠죠. 무기나 챙기세요.”
***
“여기가 하얼빈 성?”
“지도로 보면 그러네.”
“시작할까, 형?”
“그래, 시작하자고.”
나와 김강산은 나란히 하얼빈성을 향해 보무당당하게 걸었다. 그리고 성문을 지키는 보초에게 가로막혔다.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고 손을 내밀었다.
“통행증.”
“없는데?”
“통행증이 없으면 입성이 불가하다. 돌아가라.”
“싫은데?”
녀석의 관자놀이에 불쑥 힘줄이 돋았다. 아직까지 욕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니 인내심이 있는 놈이다.
챙!
인내심 있는 놈이 성문 보초의 역할에 충실하게 검을 뽑았다.
“돌아가지 않으면 베겠다.”
“그것도 싫은데?”
“다치지 말…, 어으엌!!”
대가리를 후려 맞은 놈이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마혈을 짚어 녀석을 저어기 구석으로 던져 놓는 사이,
“침입자다!!!!”
“어디서 온 새끼냐!!!!”
방위단원들이 순식간에 나를 포위했다.
동작이 신속하고 대형이 정확하다. 계룡문 급으로 훈련이 잘되어 있는 녀석들이다.
뭐, 그래봐야…….
“으어엌!!”
“이게 뭐… 크악!!”
“꺄윽윽!!!”
모두 마혈을 짚여 저어기 구석으로 던져진 신세가 되었다.
‘도둑놈이 여기 있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