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197
“너희도 1, 2학년 성교육 시간에 배워서 알겠지만 아기가 태어나려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매 학기마다 한 번씩 이루어지는 수업이 있다.
성교육.
성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찌푸린 얼굴로 덤덤히 말하는 임도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의외로 생략된 부분이 많이 없네.
아이들이 새로이 나타난 화면을 보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볼 것은 다 보는 아이들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 민지는 조금 전에 남성의 신체를 본 후부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런 식으로 남자는 정소와 음낭, 음경이 성장하면서 음모가 자라기 시작하고….” “그리고 여자의 제2차 성징은….”
“선생님! 여자는 패스해요!”
“야! 남자들!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교실은 난리가 아니었다.
화면이 바뀌자마자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면 남자애들이 맞받아쳐가며, 여성의 신체를 보려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좀 조용히 해라. 수업 전에도 말했던 이야기지만, 그렇게 부끄러워할 게 아니야.
남자도, 여자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서로를 이해하기도 편한 법이야.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자리에 앉아.”
임도훈이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예년과 달리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반응에 지친 기색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림을 워낙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니.
더군다나 아이들이 이제는 알 것도 알게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동안 배웠던 내용은 거의 하등 쓸모가 없었던 지식이었지.
은하는 아직도 기억이 났다.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유지나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남자와 여자의 생식에 대해서 설명하던 때를.
그때 그녀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그림은 피부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은 남녀가 서로의 발로 원을 그리며 맞대던, 괴기한 그림이었다.
“세상에 그거 가지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아이가 된다는 얘기를 해도 이해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고….”
아직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
은하는 턱을 괸 채로 여성의 신체그림을 보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고 보니 1학년 때 선생님은 어디서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
문득 1학년 때 담임이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는 2학년이 되고부터 학교에서 조용히 전근을 갔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사가 다른 학교로 이동한 것을 보아하니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떠올려도 성격이 유약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 이걸 말하는 걸 깜빡했구나. 남자들, 너희 나이 때쯤 되면 성에 흥미가 생기면서 몽정을 하는 일도 있을 거고, 어쩌면 벌써 자….”
이번에 얼굴이 빨개진 아이들은 바로 남자아이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남자아이들을 쳐다보았고, 남자아이들은 그런 일은 한 적도 없다며 억울해하며 항변했다.
“설마 노은하 너도….”
“야,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그게 얼마나 무례한 생각인지 알아?”
은하가 주저하며 말하는 민지를 보고 학을 뗐다.
뒤이어 정자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정자와 난자가 어떤 식으로 만나는 것인지를 알게 된 아이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졌다.
반면에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설마 그게?”라고 중얼거리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보느라 수업은 듣지도 않았다.
“…믿기지 않아. 어떻게 그게 그게 되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그게 그게 된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어떻게 오줌을 싸는….”
“네가 보는 드라마에서 안 나와?”
“드라마에서 그게 왜 나와!”
“그럼 아이는 어떻게 생긴다고 생각했던 거야?”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어떻게?” “…지금까지 그게 제일 고민이었어. 분명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알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원래 인체는 신비로운 거야.”
은하는 충격을 받은 민지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 세상에 비현실을 현실로 구현화하는 힘, 마나.
그것을 만드는 유일한 기관이 바로 생물체의 심장이지 않은가.
생물이란 무엇이든 세상의 섭리를 개혁하는 힘을 체내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 죽은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물은 그야말로 조물주나 다름없었다.
“남자랑 여자는 다른 생물이었구나. 이제 알았어, 나는….”
가까이에서 은혁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다 은혁이 무언가를 퍼뜩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잠깐, 그럼 나도 엄마랑 아빠가 그렇고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는 거잖아. 엄마랑 아빠가….”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다시금 충격에 빠지며, 어느새 그가 중얼거렸던 이야기가 교실에 퍼졌다.
“여기에 있는 너희는 2억에서 3억 가량이나 하는 경쟁률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거야.
그러니 너희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 너희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해하고.”
본인이 말하기에도 낯부끄러운 말이었나 보다.
고개를 돌린 임도훈이 어떻게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너희에게 일어날 변화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도훈은 그 말을 끝으로 수업을 마쳤다.
☆
성교육을 받은 뒤로 아이들 사이에는 변화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서먹서먹하게 여기던 아이들이 수업을 계기로 성별이 다른 아이들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묘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성에 대한
흥미.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내면서도 서로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고 있었다.
“우와! 얘들아, 정하양이 브레지어 차고 왔어!”
그중에는 성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날도 그랬다.
장난기가 많은 아이가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하양을 유심히 쳐다보다, 새하얀 옷에 비친 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신기하게 여기던 남자아아는 흥미를 참지 못하고 스포츠 브라 끈을 잡아당겼고, 흥분한 나머지 다른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너무해.”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정하양에게 향했다.
남자아이는 다시금 보란 듯이 스포츠 브라 끈을 잡아당겼고, 팽팽하게 늘어났던 끈이 등살을 찰싹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린 하양은 새빨개진 얼굴로,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야! 이거 가지고 왜 울고 그래! 그냥 신기해서 당겨본 건데…. 내가 만진 것도 아닌데 왜 울고 그러냐고!”
정하양이 울었다.
남자아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티를 드러냈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거 성희롱인 거 몰라!?”
“왜 하양이 울리고 그래!” “저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 아니, 나는 그저…. 하양이 옷에 비치는 게 신기해서 그만…. 그리고 선생님도 그랬단 말이야! 이런 걸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고!”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하양을 다독이려 몰려온 여자아이들이 방패가 되어 앞으로 나섰다.
특히 그녀처럼 스포츠 브라를 하고 있던 여자아이들이 도끼눈을 뜬 채로 남자아이를 몰아붙였다.
“대장…, 쟤네들 진짜 무섭다.” “쟤는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려서 그런 거야. 호기심에라도 여자애들 브라 끈 잡아당기거나 하지 마.” “그걸 내가 왜 해? 저걸 보니까 하고 싶지도 않다.”
은하나 은혁을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나서는 사람도 없이, 여자아이들의 폭격을 받은 남자아이는 하양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옆 반에서 소식을 들은 연지가 계열사 아이들을 데리고 몰려올 정도였으니, 남자아이는 이 기회에 성격을 고치게 됐다.
“…그런 거 가지고 울지 마.”
“그런 거 아닌데….”
“노은하 네가 몰라서 그래. 이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데!”
“맞아, 맞아.”
그날 내내 하양은 기운이 없었다.
보다 못한 은하가 하양에게 위로하자, 민지와 서나가 핀잔을 주었다.
은혁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말과 행실을 잘못해서 황천길을 건너간 남자아이를 본 후부터.
“…엄마가 그랬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당당해지라고. 이제 나도 어른이 된 거라고.”
하양이 시무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희들끼리 말다툼을 벌이던 아이들이 기운이 없는 리본을 돌아보며 입을 다물었다.
“근데 나는 나 혼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너희랑 같이…, 어른이 되고 싶단 말이야.”
“그 마음 이해해. 나도 먼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반에서 스포츠 브라를 차고 다니는 여자아이는 아직 소수에 불과했다.
민지는 아직이었고, 여자아이들 중에서 키가 제일 큰 서나는 제일 먼저 스포츠 브라를 착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보다 덜컥 앞서나가기 시작한 성장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남들과 다르게 변화하는 신체에 적응하기 무서워서.
모르는 세상에 덜컥 홀로 떨어진 것 같아서.
그 외에도 하양이 자신의 성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은하가 모르는 이유가 잔뜩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그로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인 그로서는 친구들이 어떠한 고민을 품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말해줄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
“어른은 원래 어느 순간에 갑자기 되는 거야. 되고 싶을 때 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이왕이면 너희랑 같이 어른이 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단지 몸이 커졌다고, 어른이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노은하 너는 언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민지가 물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친구들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32년을 하고도, 13년을 살고 있는 은하로서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무척이나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나잇값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 모두 법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성인에 해당했다.
그럼에도 과연 그들을 모두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을 때. 내가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찾았을 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회귀 전에 자신은 어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아이에 불과했다.
가족을 잃고, 자신의 세상은 이제 끝났다며 비관에 빠져 있기만 했었으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을 뿌리쳤으니까.
“그리고 훌륭한 어른은…. 적어도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지키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그럼 누구나 다 훌륭한 어른이게?”
민지가 흥 소리를 내며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은하는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너희가 몰라서 그래.
책임을 진다는 게,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말이야.
아직 이 나이에는 모르는 일.
나이가 들어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알게 되리라.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친구 사이에 약속을 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일이었다.
그래도 뭐…, 적어도 너희가 그럴 일은 없겠지.
친구들의 성격이라면 잘 알고 있다.
이들이라면 필시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될 것이다.
설사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꾸짖으면 될 뿐.
크게 걱정할 필요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게 될 거야. 생존본능에 따라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이루고자 하는 바를 찾게 되는 날이.”
“”””…….””””
“그러니 몸이 커졌다고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지도 말고,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나간다고 무서워하지도 마.”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한 번 멸망한 세상이 얼마나 가차 없고, 혹독한 세상인지.
그때가 되면 아이들은 선택하게 될 것이다.
죽지 못해 살든가.
세상에 좌절하고 죽든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든가.
“─너무 걱정하지 마.”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될 테니까.
그는 두 번째 삶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 이유에는 친구들의 삶도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 친구들이 죽지 못해 살게, 세상에 좌절하고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셈이었다.
“노은하 쟤는 맨날 저 혼자 뭐 있는 척 한단 말이야.”
“대장 정말 멋지다!”
“은하 네 말, 명심할게.”
“치이, 알았어.”
아이들이 진지한 분위기를 풀었다.
은하가 앞서 걸어가자,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이제 곧 여름방학이네.”
올해도 절반쯤 접어들었다.
플레이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본 은하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이제 와서 날 죽여도…, 소용없어. 내 마법은, 내가 죽더라도 잔재할 테니까!’
‘…….’
‘이 세상을 이끌 위대한 신인류 중 하나인 나 릴리스(Lilith)가 단언하건대…! 네 년은 삼일밤낮을 격정적인 정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저잣거리 창녀와 같이 남자들에게 엉덩이를 흔들고 성욕에 허덕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꺄아아악!’
‘…닥쳐.’
─은하는 과거의 꿈을 꿨다.
구마 중 하나인 릴리스를 토벌했을 때를.
‘…으, 은하야, 가까이 오지 마!
나, 나 지금 몸이 이상하니까…, 제발 오지 마. 오지 말란…, 아니, 와줘, 어서,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제발 오지 말아…줘….’
‘…….’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때 이유정은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도리질하고 있었다.
리라이프 플레이어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