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71
군단장이 모두 토벌되었다.
비록 강북 전체를 감싸지 못했으나 종로구와 주변 일대를 감싼 코쿤은 사람들에게 군세의 침공이 끝났다는 증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
환희는 잠시였고.
사람들은 무너진 도시를 마주하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군세를 모두 물리쳤으나.
그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데.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가냐고….”
“이것들이 전부 부수고 갔구만…. 내가 이 집을 마련하느라고 얼마나 피땀을 흘려 일했는데….” “이제 뭘 먹고 살면 되는 거지….”
시설, 재산, 사람 등.
멸망이 지나간 후에 긴장이 풀린 사람들은 뒤늦게 엄습하는 상실감에 몸을 떨었다.
사람들은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거나, 반대로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실종 아동을 찾습니다.
이름: 박창식(남/8세)
신체특징 – 신장: 124cm
– 체중: 20kg
– 혈액형: O형
실종일자: 선력 15년 4월 9일
실종지역: 휘경동 66-1
중랑천 방면
실종경위: 바일런트 호퍼들에게
도망을 치던 과정에서
엇갈려버렸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을 찾아주세요.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광화문에 모였다.
도로 양 옆으로 3m가 넘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실종된 사람들을 찾으러 비석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비석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찾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을 알리고 돌아섰다.
“엄마!!”
“희진아!!”
한편에는 헤어진 사람들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선녀정부의 지침도 있기는 했지만 헤어진 사람들은 광화문을 재회의 자리로 삼았다.
아직도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들 대다수가 바쁘게 뛰어다니며 정보를 얻고, 만남을 가져야 했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계속 살려면 뭐라도 먹고 살아야지.”
“건물을 다시 올리는 것도 상당히 일이겠네요.”
“이참에 더 튼튼한 도시로 만들면 될 일이야. 플레이어들도 도와주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준다니 얼른 작업에나 착수하자.” “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일해. 울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니까.”
상실, 슬픔, 좌절, 절망.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의 슬픔을 딛고 일어섰다.
그들은 무너진 도시를 바라보면서 재기의 바람을 맞았다.
죽음 뒤에 탄생이 있듯.
파괴 뒤에 창조가 있으랴.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서진 도시를 일구기 위해 일터로 나섰다.
“거기, 자재 똑바로 들어.”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해야지.” “다들 밥 먹고 일하세요!”
강북은 재건을 맞이했다.
강남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들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신분고하를 불문하고 작업장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등하게 그들이 살아갈 도시를 재건하는데 집중했다.
☆
선녀 임가을이 정식으로 몬스터의 침공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재계그룹은 바쁘게 움직였다.
평화의 시기에 제 살을 불리면서 때로는 사람들을 착취했던 그룹들은 시중에 자금을 풀었다.
임가을이 압박을 가하기도 했지만 그룹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평화의 시기에 향락에 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아랫사람들이 용인했기 때문임을.
그리고 그들이 용인을 했던 이유는 지금 이 시기처럼 경제가 불행할 때 재계그룹이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임을.
이후 멸망을 딛고 일어난 한국에서 재계그룹은 그러한 바람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룹의 직계들은 다를지 몰라도, 그룹의 회장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파인그룹이 얼른 기지국을 복구해 통신이 원활하게 해야 할 텐데….”
선녀 임가을.
그녀는 집무실에서 각 재계그룹이 강북에 지원하는 내용을 살피고는 중얼거렸다.
갤럭시그룹과 시리우스그룹의 경우 시중에 대량의 돈을 풀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었다.
현재 두 그룹은 공장을 이용해서 건설 자재를 무수히 찍어내고 있고, 그것을 유통할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갤럭시그룹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병원을 무료로 운영하기까지 했다.
“물론 얘네도 마냥 적자를 보면서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번 기회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사의 이미지를 박아넣으려는 거겠지.”
마냥 순수한 의도는 아닐지라도.
그녀는 아무렴 어떠냐고 생각했다.
이외 영원그룹은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보험 정책에 의거하여 일정분의 보험금을 지급하였으며,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었다.
앨리스그룹은 부상자들을 위주로 무상으로 포션을 지급하고,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YH그룹과 루미너스그룹은 강북의 식량을 담당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상으로 먹도록 급식소를 운영 중이었다.
KK그룹, 동해그룹은 가장 바빴다. 인부들을 고용해 고용창출을 낳고, 건물 재건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라그룹은 재계그룹들이 강북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유통역할을 맡고 있었다.
“삼라가 제일 많은 이득을 보겠네. 유통이 깡패야, 깡패. 지금 손해를 가장 많이 보는 건 영원그룹이고.”
여하튼 재계그룹이 자진해서 나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행해주기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선녀정부는 그들을 지휘해 인력과 물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데 집중하면 될 뿐이었으니까.
물론, 재앙은 재계그룹 내에서도 찾아오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돈을 풀고 있으나, 대내적으로는 승계분쟁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한남동은 판도라클랜의 관할인데, 용산구에서 유독 한남동의 피해가 크단 말이야.
임가을은 서류를 넘겼다.
용산구 한남동, 부촌의 상징.
그곳이 거의 쫄딱 망해버렸다.
판도라클랜이 한남동을 포기하고, 그곳을 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많은 재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한강을 접하고 있어,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많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최윤한 그 사람이 죽었다라…. 그것도 몬스터에게 죽지 않고 총에 맞아 죽었다니….”
갤럭시그룹의 초대 회장 최윤한.
그가 자택 지하에서 총에 맞아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임가을은 미간을 모았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몬스터들이 쳐들어왔을 때 누군가 최윤한을 죽였다는 건데…. 우발적인 범죄라고 하기에는 꽤나 석연치가 않네. 아니면 뭐 최윤한이 몬스터는 무서우니까 죽여 달라고 부하 직원에게 부탁이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그렇게 죽은 것도 이해가 가기는 한데….”
부검 결과.
최윤한은 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저항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윤한이 부하 직원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 청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데…. 만약 노인네가 치매가 걸린 게 아니라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사람이 아냐.”
누가 최윤한을 죽인 것인가.
안타깝게도 방공호에 기절해 있던 부하 직원들은 당시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가 네가 쏴죽였냐면서 드잡이질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최윤한의 죽음은 방아쇠가 됐다.
“갤럭시그룹에 이렇게 큰 잡음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최윤한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갤럭시그룹의 사람들에게 최윤한은 신화나 다름없었다.
그의 존재가 갤럭시그룹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게 되며, 겉으로는 우애가 깊어 보이던 형제들이 이제 대놓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갤럭시 자동차와 디바이스의 싸움이라….”
현재 갤럭시그룹의 회장은 최태봉.
갤럭시 자동차를 이끄는 주인이자 그의 동생인 최대봉이 현재 독립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된 데에는 사실은 몇 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최태봉 이 아저씨 아들 최정훈이 제 여동생을 죽이고 자숙의 기간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된 싸움인데…. 이게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
그가 자숙의 기간을 가지고 굳건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그동안 최윤한-최태봉-최정훈으로 이어지던 라인에 잡음이 생겼다.
최태봉의 형제들을 시작으로 하여 갤럭시그룹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라인을 바꾸거나, 자신이 직접 라인을 만들게 됐다.
“어디까지나 시간 문제였어. 만약 최정훈 이 애가 자숙을 그만두고서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면, 이자들의 꿈은 거기에서 끝났을 테겠지.”
갤럭시그룹 내에서 새로운 부류의 파벌이 몇 개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윤한-최태봉-최정훈의 라인은 워낙 강력했다.
더군다나 최윤한은 자신이 인정한 최태봉의 라인을 강력히 밀고 있어 직계들은 크게 행동하지 못했다.
결국 최정훈이 근신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 그들은 배신자라는 낙오를 받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언제가 됐든 간에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해야 했다.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때가 바로 지금으로 당겨지게 된 것이다.
“뭐,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야. 갤럭시그룹과 별개로 자동차 쪽에서 막대한 지원금을 준다고 하니 나는 적당히 눈을 감고 있어줘야겠지.”
이야기로 돌아와, 최윤한이 죽었다.
갤럭시그룹의 굳건한 신화가 죽고, 최윤한에게 거역하지 못했던 이들이 기회를 틈타 봉기하고 있다.
최정훈은 여전히 근신 중이었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현 회장 최태봉과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었다.
최태봉이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 아마 그룹은 쪼개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임가을은 자신이 예상했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갤럭시그룹이 디바이스 부문하고 자동차 부문으로 쪼개지게 됐구나. 결국 최태봉 이 아저씨가 최소한의 피해를 보는 걸로 합의했네.”
갤럭시그룹이 분할하게 됐다.
만약 갤럭시 자동차 부문을 이끄는 사람들이 갤럭시그룹 전체를 가질 꿍꿍이였다면.
승리는 최태봉에게 기울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욕심을 버리면서, 하나로 통일된 갤럭시그룹이 아닌 갤럭시그룹의 일부만 얻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들 입장에서는 꽤나 큰 소득이기는 했다.
“다음 달에 우주그룹으로 출범하니 어여삐 봐달라라….”
임가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되었다.
갤럭시그룹과 우주그룹의 지분은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면서 앞으로 두 그룹이 합쳐질 일은 없으리라.
“그러면 이제 재계 1위의 그룹은 시리우스그룹이 되는 건가…. 아마 시리우스에서 우주그룹을 부추겨서 이런 상황이 되게 만들었겠지. 누구 솜씨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하네.”
나중에 정보를 통해 전해듣기로는.
갤럭시 자동차 직계와 교분이 있는 한서연의 수완이라고 한다.
임가을은 불과 24살이라는 나이에 거대 그룹을 이간질해서 쪼개버린 한서연의 실력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는 한편으로─.
“─앞으로 주의해야 하는 그룹은 시리우스그룹이 되겠네.”
임가을의 판단은 냉철했다.
언제나 1등은 경계해야 했다.
시리우스그룹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나─.
“─여기가 판도라클랜을 후원하는 그룹이니까…. 언제가 될지 몰라도 일단 눈은 감아줘야겠네.”
노은하에게 은혜를 입은 임가을은 섣불리 시리우스그룹을 견제할 수가 없었다.
다만 주의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갤럭시그룹의 직계 최정훈이 오랜 자숙을 깨고 경영에 복귀할 거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
군단장들이 모두 토벌되고서도.
은하와 판도라 클랜원들은 제대로 쉬지도 않고 일해야 했다.
군세를 모두 토벌하기는 했더라도 군세가 지나간 영향으로 일대에서 편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외 피해 복구현장을 방문해서는 용산구와 중구를 어떻게 재건할지 회의하기도 해야 했다.
[…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힘써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녀 임가을이 공식적으로 군세의 침공이 끝났다고 공표했다.
그제야 은하는 휴일을 얻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졸립다…. 졸려 죽겠어….”
“삐삐….”
사당역의 판도라 클랜회관.
오랜만에 클랜회관을 찾은 은하는 자신의 집무실에 마련된 침대에서 벌렁 드러누웠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은아를 비롯하여 가족들에게 잔뜩 혼이 나야 했다.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차례 예경에게 당한 그를 모질게 혼내는 내용이 다수였다.
…유정이가 울었을 때는 당황했지.
이유정이 자신을 오랜만에 만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은하는 가족들에게 혼났을 때보다 어쩌지 못해했다.
혼이 날 것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설마 걱정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은하가 그녀를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여주자 그녀가 진정했다.
이외에도─.
“─오자마자 바로 잠을 자니? 좀 씻기라도 하지.”
“누나가 하루 만에 지역구 두 개를 돌아다녀봐. 그런 소리가 나올 것 같아?”
“그래, 편히 자렴.”
한서현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은하는 자신이 온 것을 확인하고 집무실로 들어온 한서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은하의 옆에 털썩 앉고서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봐.” “…뭐, 뭐가?”
그때 불쑥 묻는 한서현.
이번이 여섯 번째였다.
은하는 뜨끔했다.
은하가 군세의 침공이 있은 후에 가장 상대하기가 곤란했던 사람이 바로 한서현이었다.
“우리가 5월에 결혼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 “…….”
은하는 눈을 피했다.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누나가 처음에 결혼하자고 했을 때 신이 나서 5월에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말릴 수가 있었겠어.
노은하의 본심.
하지만 은하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한서현은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히도 나랑 결혼하기 싫었나 보구나.”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면 우리 계약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거나.” “…….”
“푹 쉬어. 그만 일어나볼게.”
요즘 들어 틈만 나면.
한서현은 은하를 찾아와서는 자못 서운한 티를 내고는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은하는 자리를 떠나려는 한서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가 그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쓰러졌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볍게 생각한 적은 없어.” “…….”
“결혼식이 미뤄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결혼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말하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해.”
눈을 깜빡거리는 한서현.
은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윽고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약속, 꼭 지켜.”
“꼭 지킬게. 그러니 가끔 찾아와서 나한테 뭐라 하지 말아주라.”
“은하야.” “응? 왜?”
“클랜원이나 클랜을 찾는 사람들이 징징거리며 나한테 찾아오면, 그럼 행정관이 징징거리고 싶을 때에는 누구한테 찾아가야 되겠니?”
“…클랜로드?”
“그러니까 포기해.”
“누나, 5월에 그렇게 하고 싶었어? 난 누나가 그런 로망이 있는 줄….”
“누나라고 부르지 말랬지.”
“나보다 2살이 많으면 누나지 뭘.” “결혼하고도 그렇게 부를 거니?”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숙제야. 잘 생각해봐.”
“숙제는 무슨. 그럼 누나는 나한테 뭐라고 부를지 생각해봤어?”
“그때 너 하는 거 봐서.”
한서현이 키득 웃는다.
그녀가 은하에게 길게 입맞춤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지금까지 수고했어. 불은 내가 꺼줄 테니까 오늘은 그만 푹 쉬어.” “누나도 피곤할 텐데 그냥 옆에서 한숨 자고 가지? 침대도 큰데.” “날 네 침대에 자빠뜨릴 생각이면 다음부터는 씻고 나서 말해줄래?”
“뭐래.”
“암튼 잘 자. 나는 더 일봐야 해.” “수고해.” “너도.”
한서현이 불을 끈다.
그녀가 문을 나서고.
은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오랜만에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다.
☆
그런데 이번 침공에 대해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과연 이번 침공은 우연인 것인가.
선녀 임가을은 생각했다.
모라율이 코쿤을 점검했을 때에는 코쿤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했어.
정밀점검을 하지 않으면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했지만, 갑작스레 코쿤이 기능을 정지할 만한 오류가 의 점검으로 발견되지 않은 걸까?
그녀는 두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하나, 가 거짓말을 해, 코쿤에 생긴 문제를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것.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수 없지만,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모라율이 과연 그랬을까….”
그렇게 떠오르는 의문은 모라율이 그로 인하여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잠시간의 태만?
하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될 거란 사실을 모르는 가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았으리라.
답지 않다.
따라서 임가을은 두 번째 가설에 더 힘을 주었다.
─우연이 아니라고 가정할 경우, 누군가 일부러 코쿤을 부쉈다라….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으나.
그녀는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꺼림칙한 구석이 워낙에 많았다.
코쿤이 부서지자마자 군단장들이 군세를 이끌고 강북을 침공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절묘했다.
나아가 마치 자신을 서울에서부터 멀리 떼어내기 위해서 순회 일정이 그 시기에 맞춰진 것도 이상했고.
순회의 첫 번째 목적지가 하필이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광주란 것이 기묘했다.
더불어 해당 시기에 딜러 부문의 십이좌들이 서울에 있지 않고 하필 지방으로 출장을 보내지게 된 것이 너무나 작위적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 정황은 너무 의심스럽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증명할 만한 게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설을 부정하는 확실한 단서가 존재했다.
하나─.
─코쿤을 부순 다음에 몬스터들이 곧장 군세를 모아 침공하게 하려면 코쿤을 부수는 요인과 몬스터들이 침공하는 요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가 필요해.
인간과 몬스터는 공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코쿤이 부서져버린 일과 몬스터들이 강북을 침공하는 재앙을 ‘인위적’이라고 말하기 애매했다.
인간과 몬스터가 공존할 수 있다는 상황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또 하나─.
─코쿤을 지키는 사람들의 말로는 코쿤이 갑자기 부서졌다고 했어.
코쿤이 설치된 종묘 정전.
임가을은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의 감시카메라 영상을 확인했다.
그때 그녀는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영상이 한 치도 조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코쿤은 갑자기 기능을 정지했다.
코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임가을의 가설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단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해, 너무 이상해.
임가을은 말이 되지 않는 망상을 체념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림칙한 것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치다.
무엇보다도─.
─은하는 알고 있었던 건지 몰라. 무언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대뜸 코쿤을 점검하자는 말을 꺼낸 노은하가 잊히지 않았다.
그녀의 감이 말하건대, 노은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노은하를 추궁하여 누가 이 일을 벌인 것인지 물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그리 쉽게 돌아갈 리 없었다.
만약 은하가 알고 있었다면, 굳이 코쿤을 점검하자는 말할 필요 없이 범인들을 지목했겠지.
은하도 몰랐던 거야.
결국 임가을이 성립될 수가 없는 가설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순전히 노은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래를 보는 건지도 모르지….”
이내 그녀가 읊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억측이 지나쳤다.
그럼에도 임가을은 불현듯 떠오른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좋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윽고 그녀는 화제를 전환했다.
이왕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겸, 더욱 상상을 부풀리기로 했다.
이번 사건이 정말 우연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면─.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군지 생각해보는 거야.
필시 그자가 범인이리라.
혹은 관계자라거나.
임가을은 머리를 굴렸다.
“…너무 많아.”
곧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너무 많았다.
위기는 기회였다.
당장 우주그룹의 회장만 하더라도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않았던가.
많은 영웅들이 탄생하지 않았던가.
많은 그룹들이 선의로 부를 공급해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지 않던가.
이런 가정은 무의미해.
생각해도 끝이 없어.
임가을은 생각을 포기했다.
대신 다른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이번 일이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나와 십이좌의 일정을 간섭할 만큼 고위급 관료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거야.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배신자의 존재.
몇 년 전에 영원 신약의 사태로 의심이 가는 인원들을 싹 쳐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아무래도 정부 내에 자신이 모르는 배신자가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그렇게 싹 다 쳐냈는데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변질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쥐새끼는 찾아도 끝이 없다.
임가을은 자조하듯 웃었다.
그러고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번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내부의 배신자일 수도 있어.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적의 규모는 얼마나 하는가.
알 수 없다.
그것이 공포를 만들고.
임가을은 공포를 마주하며 최악의 가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익을 얻을 배신자.
그자는─.
─백서진 할아버지.
백서진.
이번에 문준을 대신하여, 십이좌 필두이자 마나관리기구에서 장관을 역임하게 될 플레이어.
“말도 안 돼….”
임가을은 부정했다.
부정해야만 했다.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부정하지 않으면─.
─내가 의지할 사람이 사라져.
이제 아무도 없게 된다.
그녀를 선녀로서 추대한 사람들이 모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애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백서진이 왜 이런 일을 벌인다는 말인가.
백서진만은 절대, 배신했을 리가 없었다.
그랬으면 백서진 할아버지가 진즉 내가 선녀가 되는 것을 말렸겠지.
오히려 나를 선녀로 만들기 위해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야.
백서진이 아니다.
하지만 임가을이 모르는 누군가가 암약 속에 있는 것은 맞으리라.
하나일 수 있고, 다수일 수 있다.
“…….”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은 참담하기만 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심이 가는 인물들을 쳐내야 해.
이번에 관료들이 꽤 죽어나갔으니 이참에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실행해 정부를 갈아엎는 거야.
그 수밖에 없어.
적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
쳐내도, 쳐내도 적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임가을은 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선력 15년
한국마나관리기구 인사 발령
한국마나관리기구는 아래와 같이 관리국, 통제국, 정보국, 특무국, 파견국, 사무국, 감시국의 인사이동을 발령한다.
시행일시는 선력 15년 5월 1일을 기점으로 한다.
선력 15년 4월 28일
한국마나관리기구 선녀 임가을
선력 15년
─ 감시국 ─
이름
이동
백서진
감시국장 →
한국마나관리기구 장관
선우화령
경기지부장 →
감시국장
도채연
특무국 방위처
장 →
감시관
안진호
감시국 미시과장 →
감시국 미시처장
우일신
감시국 거시계장 →
감시국 미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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