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684
의정부에 플레이어들이 고립됐다.
그것도 하필이면 십이좌 두 명과 이번 재앙에서 제일 큰 공로를 세운 노은하와 그의 클랜원 한창진이.
소식을 들은 임가을은 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코쿤을 가져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사람들이 고립되어 버리다니….
이걸 어쩌면 좋은 거지?
딱딱딱 하고.
임가을은 생각에 잠긴 채로 책상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다행히 의정부에서 회수한 코쿤은 바로 가동이 가능할 정도로 멀쩡한 상태였다.
덕분에 내일 바로 코쿤을 가동해, 강북 주민들의 민심을 달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하나 의정부에서 코쿤을 가져오던 과정에서 십이좌와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노은하가 고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아니, 의정부에 고립된 사람들이 워낙에 명망 있는 플레이어들이라서 명백히 마이너스였다.
“후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임가을은 전화로 손을 뻗었다.
국가적 영웅들을 이대로 의정부에 고립시켜놓고 나 몰라라 하는 수는 없었다.
이윽고 전화가 연결됐다.
“저예요.” [─네, 선녀님.]
청량한 목소리.
십이좌 이도진이었다.
그녀가 고민 끝에 움직이기로 한 십이좌였다.
“현철이 파티가 의정부에 고립돼 있다는 소식은 들었을 거예요.”
[네…. 저도 방금 막 들었습니다. 그래도 현철이니까 괜찮겠죠.]“괜찮긴 하겠지만 코쿤이 가동되면 사람들이 코쿤을 회수한 사람들을 찾게 될 텐데…. 의정부에 고립된 처지에 놓였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죠.”
[그건 그러네요. 그럼 선녀님께서 제게 전화하신 이유는….]“네, 이도진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요.”
이도진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임가을은 본론을 꺼냈다.
“─이도진 플레이어가 신라클랜의 여섯별 몇 명과 클랜원들을 이끌고 의정부로 넘어가주세요. 단, 절대로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조용히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이도진은 군말을 표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쉽게 흥분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그는 상황에 어울리는 인재였다.
전화를 마친 그녀는 그제야 어깨를 늘어뜨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문준 할아버지를 대신할 십이좌도 도진이처럼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문준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현재 국민들 전부를 비탄에 빠지게 만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문준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렬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까지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멸망한 세상을 일으키고, 군주들을 규합하여 국가에 합류시킨 문준의 신화는 깊이 각인돼 있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가 있으니 나 보고 선녀를 하라고 했으면서…. 결국 이렇게 나보다 먼저 가네.”
치사한 할아버지.
임가을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녀는 그대로 문준을 떠올리며, 옛 추억에 빠지려고 했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임가을은 자세를 바로 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있었다.
면담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차분히 문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문이 열렸다.
임가을은 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마주하고는 피식 웃었다.
“─안녕하세요. 선녀님.”
“정하양 서브로드. 무슨 일인가요?”
“…….”
판도라클랜의 서브로드 정하양.
현재 마나관리기구 직원들에게서 라고 불리고 있는 그녀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임가을은 처음에 정하양이 면담을 신청해올 때부터 그녀가 꺼낼 말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판도라클랜이 의정부로 넘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으면 해서요.”
“허락할게요. 이도진 플레이어가 파티를 꾸릴 예정이니까 그쪽으로 합류하도록 하세요.”
☆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은하가 마을에서 머무르게 된 지 이제 사흘이 되었을 때였다.
사실 워낙에 지하에만 있다 보니 시간 감각이 애매해지고 있었다.
생체 시계로 시간을 파악하는 것도 조금씩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이러고 있다가는 시간 감각을 아예 잊어버리고 말 것 같다.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크아아아! 벌써 3일이나 흘렀어! 3일이나 싸워보지 못했다고!”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세요.”
이미 미친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그나마 강현철이 절제할 줄 알아서 아직까지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나 식량도 떨어지면서 점점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창진 형 말로는 몬스터들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데….
2, 3일은 더 있어야겠네.
한창진은 기척을 숨기는데 능했다.
그래서 은하는 마을에 머무르면서 이따금 한창진에게 지상의 상황을 정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한창진의 말로는 근처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최대 5일.
그 이상은 버티지 못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이판사판으로 강북으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은하는 때를 기다렸다.
조급함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명상을 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틈틈이 마법을 연습하고, 강현철의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검을 몇 번 섞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틈틈이─.
“─형! 의정부역에 있는 구멍에는 몬스터들이 잘 몰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세요?”
“그래? 거기 푹 파인 지대?”
“네! 거기요!”
유인후와 친분을 쌓았다.
은하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유인후가 먼저 다가온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은하는 종종 자신이 있는 곳으로 놀러오는 유인후와 말을 섞었다.
“촌장님 말씀으로는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무서운 힘을 발휘해서 몬스터들을 쫓아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몬스터들은 그 사람이 힘을 발휘했던 지대는 무서워해서 잘 가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유인후의 이야기는 나름 유익했다.
은하는 그가 전하는 정보를 토대로 의정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전 삶과 달리 의정부 마을에는 착한 아이 의식이라는 것도 없었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몬스터에게 지배를 받는 것도 모른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서영 누나가 의정부에서 벌인 일이 여기 몬스터들에게 트라우마라도 된 건가?
오늘도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의정부역에는 몬스터가 별로 없다.
은하는 그렇게 된 원인인 신서영을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에 엄폐물이랄 것도 없으니까 몬스터들이 다가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네.
괜히 거기 갔다가 다른 몬스터에게 당할 수 있는 노릇이니까.
신서영 때문만은 아니리라.
몬스터의 습성과 관련된 일이리라.
여하튼 은하는 자신을 찾아와서는 재잘재잘 떠드는 유인후에게 초콜릿을 하나 주었다.
“자, 먹어. 사실 이게 먹고 싶어서 온 거였지?”
“에이, 아닌데. 형 누나들이랑 같이 놀려고 온 거예요! 그래도 초콜릿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유인후가 초콜릿을 넙죽 받는다.
그가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배시시 웃었다.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아, 형 누나들. 여기에 계속 있기 답답하면 내일 저랑 같이 의정부역에 가볼래요?”
“의정부역에?”
“네! 거기는 몬스터들이 오지 않아 바깥바람을 쐬기 편한 장소거든요. 그래서 저도 가끔 몰래 빠져나가서 바람을 쐬고 와요.”
아무런 흑심도 없다는 듯이.
유인후가 은하에게 권유했다.
처음에는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던 은하도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지 않아도 바람을 좀 쐬고 싶었는데 잘 됐네. 몬스터들이 오지 않는 장소라니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겠어.”
“네! 아마 후회 안 하실 거예요!”
“그래, 나도 후회 안 할 것 같다.”
배실배실 그리고 헤실헤실.
두 사람은 웃으며 마주보았다.
이내 용건을 마친 유인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가볼게요! 제가 내일 데리러올 테니까 꼭 여기에서 기다려주세요! 이 시간에요!”
“그래, 알았어. 일 열심히 해.”
은하는 유인후를 떠나보냈다.
그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그제야 웃음을 거뒀다.
그러던 그때─.
“─아이들을 참 좋아하나 보네요.”
“누가요?”
“판도라 클랜로드요.” “제가요?”
“네.”
책을 읽고 있던 프리시스 메모리가 은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은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애를 그렇게 챙기는 것을 보면 아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닌가요?”
프리시스 메모리의 물음.
이내 고깔모자를 쓰지 않은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녀가 의문을 표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냐 싫어하냐 라고 묻는다면, 굳이 따지자면 저는 싫어해요.”
“왜 그렇죠?”
은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프리시스 메모리가 물었다.
이번에도 은하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도 하고, 자기 부모한테 보호받기만 하니까요. 또 불리하면 엉엉 울기나 하고.”
“…….”
“그래서 저랑 관계가 없는 아이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어요. 정말 짜증나죠.”
사흘이나 갇혀 있는 탓이리라.
그리고 또, 이전 삶에서 어찌어찌 강북을 지켜내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게 되었을 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자신은 죽도록 고생했건만, 아이들은 부모 품에 안겨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부러웠고, 야속했고, 짜증이 났었다.
그래서 은하는 아이를 싫어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은하는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은애는 내 동생이니 예외고.
어베니어는 줄리에타 누나와 브루노 아저씨의 아이라서 덜했지.
가람이도 하양이 동생이고.
지금이야 감정이 많이 덜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를 좋아할 수 없었다.
은하의 마음이었다.
그때,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프리시스 메모리가 답했다.
“─네, 맞아요. 저도 사실 아이는 싫어해요.”
“…….”
“울면 뭐든 용서받고, 해결된다고 믿으니까요.”
“…….”
“무엇보다 아이는 이기적이고요.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죠.”
생긋 웃는 프리시스 메모리.
은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언제나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리 단호하게 제 의견을 밝힐 줄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개의치 않고 질문했다.
“그런데 그러면 판도라 클랜로드는 왜 그 애한테 잘 대해주는 건가요?”
그녀의 질문을 듣고.
은하는 정신을 차렸다.
그가 입을 뗐다.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결코 아니었다.
맥락을 전혀 달리하는 대답이었다.
“─몬스터가 아예 도망치지 못하게 세계선을 분리시키는 결계 같은 걸 사용할 수 있나요? 일반적인 결계와 다른 결계를요.”
“네…? 그거라면 제 전문이죠.”
☆
시간이 흘러, 다음날.
유인후는 노은하를 만나러 갔다.
“형! 저 왔어요! 얼른 가요! 얼른!”
“알았어. 간다, 가. 좀 기다려.”
극상의 식사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가장 맛있는 걸 먹기 위해 배를 굶을 줄 알고, 인내할 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
강렬한 흥분을 느꼈던 놈은 식욕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다.
빨간 머리는 씹는 맛이 있을 테고, 노란 머리 여자는 살이 부드럽겠어.
입을 가린 녀석은 꽤나 가늘지만, 그것 또한 먹는 맛이 있겠지.
아이의 탈을 쓴 백면상.
놈은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아마 그들은 모르리라.
자신이 몬스터들을 시켜, 그들이 의정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돌아가는 날만을 기다리는 그들이 퍽이나 우스웠다.
그런 놈들이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먹힐 때 어떤 얼굴을 보여줄 것인가.
특히나─.
─이 녀석이 제일 기대되는군.
나한테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그러면 얼마나 맛있을까.
의정부역으로 향하며.
유인후는 노은하를 곁눈질했다.
자신에게 종종 초콜릿을 나눠주며 서울에 있는 남동생이 떠오른다고 말하던 남자.
우연히도 자신과 남동생의 나이가 동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백면상은 그때가 정말 기대되었다.
인간은 모든 것이 음식이다.
잡아먹는 것으로 다가 아니야.
인간을 맛있게 먹고 싶다면 그들의 감정까지도 즐길 줄 알아야지.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은 모르지만.
지능이 높고, 힘이 있는 백면상은 미식을 즐길 줄 알았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깨달으면서 보이는 강한 배신감과 충격은 꽤나 풍미가 깊은 맛을 더해주었다.
특히 자신의 정체를 깨닫기 전에 강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면, 이후 감정이 절망으로 떨어지는 낙폭 차이는 굉장히 강렬했다.
높이 나는 새가 추락하게 되면 다른 새보다 더 강한 충격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때 맛보는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왔어요. 여기에요.” “”””…….””””
“정말 몬스터가 없죠?”
그때가 정말 기대된다.
백면상은 지금 당장에라도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그러고는 그들을 허허벌판이 된, 의정부역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의정부역의 광경을 보고는 할 말을 잃은 듯싶었다.
“형, 형! 이리로 와보세요. 여기가 제일 명당이에요!”
“알았어. 너무 뛰지 마. 그러다가 다치겠다.”
직
경 300m는 되어 보이는 구덩이.
백면상은 건물 잔해가 묻혀 있는 구덩이 아래로 뛰어갔다.
주변에 몬스터는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이곳은 자신의 식탁이었으니까.
잡아먹히고 싶지 않은 이상 놈들은 구덩이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엄청 넓어 보여요.”
다른 사람들이 천천히 내려왔다.
구덩이 중심부로 내려온 백면상은 따라온 노은하에게 설명했다.
하늘이 참 예뻤다.
아, 씹어먹기 좋은 날씨다.
경치를 감상하며 인간을 먹는다.
그것은 또 얼마나 맛있겠는가.
백면상은 미식을 추구했다.
하지만 괴시니나 다른 군단장들은 자신의 미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 자리에 서게 된 순간.
백면상은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그사이 다른 사람들도 발을 들여, 저마다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노은하와는 제법 떨어져 있었다.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쳇, 어쩔 수 없지.
이 녀석은 마지막에 먹기로 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니 이놈부터 먹을 수밖에 없겠군.
아니면 이놈의 다리를 부러뜨려서 도망치지 못하게 한 뒤, 저기 있는 놈들을 하나씩 잡아먹는 거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한 명씩 먹히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자는 얼마나 깊은 감정을 풍길 것인가.
백면상은 방금 막 떠오른 생각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지막으로 남은 초콜릿이야. 너 먹어라.”
“아, 고마워요. 형.”
“너 주려고 몰래 남겨놓은 거니까 저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끔 얼른 먹어버려.”
그때 불쑥.
노은하가 초콜릿을 내밀었다.
백면상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낄낄 비웃었다.
참으로 좋은 인간이구나.
자기가 먹힐 줄도 모르고 있으면서 내게 이런 것이나 주고….
그래, 널 먹기 전에 이걸로 먼저 입가심이라도 하라는 거구나.
어리석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로다.
그래, 내 너의 어리석음에 감복해 초콜릿으로 친히 입가심을 하마.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운 이후에 맛보면 더욱 풍미를 자극하리라.
백면상은 초콜릿 포장지를 깠다.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와, 정말 맛있네요. 진짜 달다.” “그치? 여운을 즐기며 먹어. 그게 마지막이 될 테니까.”
“네, 그럴게요, 형!”
침으로 초콜릿을 녹인다.
초콜릿의 풍미를 즐긴다.
백면상은 헤실헤실 웃으며 그렇게 식욕을 돋우려 했다.
그런데─.
“─커헉…!!”
초콜릿이 녹아내리며.
혀가 녹아내렸다.
처음에는 이들을 먹을 생각이 강해 환상에 취해 있나 싶었다.
허나 정말 혀가 녹아내린 것이다.
뒤이어 백면상은 몸 안을 달구는 감각이 흥분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커헉…! 이, 이게 무슨…!”
피를 쿨럭 토해냈다.
백면상이 바닥에 엎드렸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백면상은 자신에게 초콜릿을 건넨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바일런트 베놈
거무스름한 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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