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칼을 들이댔으면 죽어야지.
나는 밥 냄새를 맡고 눈을 떴다.
독 냄새를 맡지 않은 것이 표국 놈들에게 다행이라는 생각하면서 눈곱을 제거했다.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밥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향했다.
대청에 도착해보니 어제 봤던 총표두를 비롯한 표두들만 둘러앉아서 밥을 먹다가 일제히 젓가락질을 멈춘 채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빈자리에 털썩 앉은 다음에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밥 줘.”
“…….”
옆에 있는 표두에게 젓가락을 건네 받아서 반찬을 먹기 시작하자, 식사가 다시 조용히 이어졌다. 밥을 먹는 와중에 총표두가 내게 말했다.
“표물은 어젯밤에 바로 출발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맛없는 나물을 뒤적거리다가 이름 모를 튀김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말없이 밥만 먹자, 총표두가 물었다.
“곧 패검회와 남천련이 붙겠지요?”
“그렇겠지.”
“저희는 남천련이 이겨도 걱정입니다.”
“왜?”
“사도행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상납금을 올리라고 하면 저희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 말을 어기겠습니까. 마음에 안 드는 자는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봐, 총표두.”
“예.”
“패검회주는 달랐나? 똑같은 놈이었지. 그리고 밥 처먹는데 아침부터 돈 이야기를 그렇게 해야겠어? 밥도 맛있고 반찬도 좋은 게 뻔히 보이는데, 여기저기서 상납금 처받아서 세력이 커진 패검회랑 벽안표국이 그렇게 가난하게 지냈나? 어디서 엄살이야.”
표두들이 눈치를 보고, 총표두 공두찬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흑도에 달라붙어서 그동안에 잘 먹고 잘 지냈으면 입 닥쳐라. 손해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군. 내 수하들이 앞으로 패검회에 달라붙어 있었던 곳을 찾아낼 거다. 사업한답시고 횡포를 부렸거나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린 정황이 내게 보고되면 오늘처럼 얼굴 맞대고 밥 먹는 거로 끝나진 않을 거야. 너희는 사도행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가 다시 찾아올 것을 걱정해야지.”
“…….”
“패검회가 이기면 내가 잔당을 처리할 거고. 남천련이 이기면 내가 사도행을 죽이든지 패든지 할 테니까. 상납할 일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나는 사도행이나 패검회주와는 달라. 돈은 필요 없어. 하지만 선을 넘으면 너희도 저세상에 가서 패검회주에게 다시 상납을 바쳐야 할 거야.”
나는 잠이 확 달아난 표정으로 뒤바뀐 표국 사람들을 노려봤다.
“너희는 표국 일이나 똑바로 해. 내 수하들한테 이상한 거 걸리지 말고.”
나는 아침부터 벽안표국 사람들을 갈구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숙수가 누구야? 음식 솜씨가 아주 훌륭하네.”
“…….”
대화의 흐름이 이상해지자,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이름 모를 삼십 대의 표두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무림맹은 아니신 거 같은데.”
“왜 무림맹은 아니야? 내가 격이 떨어져 보여?”
“아, 무림맹에서 나오셨습니까.”
“아니. 그런 재수 없는 곳에서 나오진 않았다.”
“…….”
“나는 저기 남화 근처에서 왔다.”
“아, 그러시군요. 남화라면 대나찰이라는 고수가 유명하죠.”
나는 국물을 떠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하지. 제자들인 십이신장도 유명하고.”
한 표두가 제멋대로 생각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쪽이시구나.”
“그쪽이시구나……가 아니라 대나찰은 나한테 죽었다. 십이신장도 절반은 죽였고. 밥 먹는데 이야기 주제가 아주 맛깔나군. 어떻게 죽였는지도 궁금하지?”
“안 궁금합니다.”
“아쉽군.”
나는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다음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 표행 비용은 얼마야?”
내가 품에서 전낭을 꺼내자, 총표두가 말했다.
“비용을 어찌 받겠습니까. 먼저 오셔서 사정을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목숨은 목숨이고. 표행을 맡겼으면 돈을 내야지. 얼마야.”
총표두가 말했다.
“그럼 통용 은자 두 개만 받겠습니다.”
나는 총표두를 노려보면서 정색했다.
“왜 그렇게 비싸. 내가 촌놈으로 보여?”
“그럼 한 개만 받겠습니다.”
나는 전낭에서 통용 은자 두 개를 꺼내서 밥그릇 옆에 내려놓았다.
“객방 사용한 것과 독이 없는 밥값까지. 넉넉하게 넣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난 다음에 총표두를 바라봤다.
“총표두.”
“예.”
“패검회에 달라붙어 있는 상인들에게 전부 전해. 패검회는 곧 없어질 테니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상납금도 없어질 테니까 상인답게 일하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물건 가지고 매점매석(買占賣惜) 같은 방식으로 장난치면 내가 죽이러 간다고 좀 전해주고.”
“예.”
“남의 밥줄 끊으면서까지 이상하게 장사하면 수하들 보내면서 암살할 거라고 전해.”
“예,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말이라고 전해야 할까요.”
“패검회주 죽인 사람, 하룻밤 머물고 아침 먹고 떠난 고수. 흑의인.”
“알겠습니다.”
“그리고 총 표두, 잘 들어.”
“예.”
“일위도강이랑 연락하던 놈들은 색출해서 전부 잡아 죽일 것이라고 전해. 그전에 내 수하들에게 순순히 일위도강에 대한 정보를 불면 용서해주겠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그 말씀도 명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그 전에 너희가 한 곳만 선택해라. 일위도강이랑 연락하는 놈들…….”
“실은 저희가 그것까진…….”
“아니, 그냥 감으로 찍으라고. 어디야. 말 안 하면, 할 때까지 여기에 눌러앉으마. 나도 이참에 표사 일이 배워둬야지.”
“…….”
나는 대청 입구에서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화창한 날이어서 내가 입고 있는 시커먼 옷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총 표두에게 말했다.
“일단 표사들이 입는 옷 좀 하나 내줘. 옷이 너무 새카맣다.”
“예.”
“내 체형에 딱 들어맞는 옷으로 준비하도록.”
나는 잠시 통용 은자 두 개와 밥값, 방값, 의복값을 대충 비교해봤다. 그래도 은자의 가치가 높은 거 같아서 흑묘아를 귀중한 표물처럼 감쌀 수 있는 가죽 띠를 빼앗은 다음에 다시 물었다.
“생각나는 게 없나 보지?”
총표두가 고민 끝에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상인은 아니고. 제가 들은 소문에 운월형제라는 흑도가 살수를 고용해서 경쟁하던 일파를 전부 죽였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표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어서…….”
“어디 있어.”
“정평호수의 상권을 모두 장악한 자들입니다.”
“알았다.”
나는 표사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벽안표국에서 빠져나왔다.
* * *
남가락은 수하들과 함께 남천련의 이동이나 패검회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로 했다.
판을 깔아줬으니 일단 패검회와 남천련의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
나는 패검회로 쳐들어가는 남천력의 병력을 발견하면 슬쩍 합류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복귀하는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흑의인에서 젊은 표사로 갑작스럽게 전직했다.
어깨에는 가죽 띠로 감싸고 있는 흑묘아를 둘러맨 데다가 복장까지 완벽했으니 누가 봐도 잘생긴 표사일 것이다.
아님 말고.
어쨌든 간에 어제는 흑의인, 오늘은 젊은 표사.
전생에는 도객(刀客), 현생에는 검객(劍客) 지망생이 된 나는 날씨가 좋아서 굳이 경공을 펼치지 않았다.
농땡이를 치는 젊은 표사처럼 느릿한 걸음으로 나만 알고 있는 단독 표행을 떠났다.
의뢰인은 하오문주, 수행인은 이자하 표사.
표물은 어깨에 메고 있는 흑묘아, 목적지는 운월형제들이 있는 정평호수다.
나는 복귀하기 싫은 표사처럼 남하하다가 정평 호숫가에서 낮잠도 자고, 호수의 수면에 납작한 돌을 튕기면서 잠시 놀았다.
정평 호수를 따라서 남동쪽으로 내려가자, 노점상과 가게가 점점 늘어났다.
처음 보는 이름의 가게 많았다.
그중에는 표사 식당이라는 특이한 가게도 있었다. 동료 표사들이 밥을 먹고 있을 것만 같아서 궁금했으나 굳이 들어가진 않았다.
되도록 사람이 없는 조용한 식당을 찾는 와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뒤에서 어깨에 걸친 흑묘아의 가죽 띠에 손을 댔다.
“…….”
나는 가죽 띠를 붙잡고 있는 놈을 거칠게 당겨서 다짜고짜 뺨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좀도둑이 나를 노려봤다.
노려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뺨을 한 대 더 후려쳤다.
이놈이 벽안표국의 표사를 우습게 본 모양이다.
뺨을 세 대, 네 대, 다섯 대를 연속으로 후려치자, 그제야 시선을 피했다. 죄송하다거나 봐달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여섯 번째 따귀를 후려치자 이빨 서너 개가 튀어나왔다.
이러다가 내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눈매가 여전히 사나웠다.
나는 놈과 말없이 눈싸움을 벌이다가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따 또 보자고.’
나는 잠시 신경을 끊은 채로 반점으로 들어가서 입구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은 다음에 음식을 주문했다.
처맞은 놈의 눈빛이 사나웠으니 동료를 줄줄 달고 나타날 것이다. 평범하고 맛없는 국수로 배를 채운 다음에 떫은맛이 나는 차를 마시면서 입구를 바라보다가 점소이에게 물었다.
“여기 흑도가 있다며?”
“예.”
“뭐 하는 놈들인데.”
“정평호수 근처에 있는 모든 가게로부터 상납을 받는 운월형제회(雲月兄弟會)라는 방회가 있습니다.”
“방회 이름이 운월형제회였어?”
“예.”
“과일가게 이름 같군.”
문득 대화를 나누던 점소이가 입을 다물더니 급히 주방으로 사라졌다.
따귀 맞은 놈의 동료들이 입구 앞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내 한 놈이 대표로 들어오더니 내게 말했다.
“소형제, 다 먹었으면 바깥으로 나와라.”
나는 놈을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손짓으로 가까이 부른 다음에 따귀를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자신의 뺨을 붙잡은 놈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반말하지 마라.”
이곳의 위치가 패검회와 남명회의 중간쯤인 데다가 호수의 상권은 대부분 지역 흑도가 차지하고 있어서 바깥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패검회의 제안을 받아서 이들도 이번 흑도 싸움에 칼받이로 참전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복귀하는 여정이긴 했으나 나도 어차피 남천련의 진격을 기다리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했다.
더군다나 살수를 고용하고 상납금을 받는 흑도라면 일단 만나보는 것이 협객의 도리이자 강호의 도리다.
점소이에게 밥값을 건네자, 점소이가 침을 한 번 삼킨 다음에 나를 걱정했다.
“표사님, 조심하세요.”
“조심해야지.”
바깥으로 나가자 뺨을 맞은 두 놈이 보이고, 복장을 갖춰 입은 놈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좀도둑 일당치고는 너무 많았다.
흑도에도 좀도둑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른다. 나쁜 짓은 골고루 하는 놈들이니 좀도둑이 있을 수도 있고 무덤 도둑이 있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나를 둘러싼 놈들이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소형제, 번거롭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이동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소형제.”
이곳은 형제라는 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나는 놈들과 뒤섞여서 길거리를 걷다가 말했다.
“너희 혹시 운월형제회에서 나온 거면 회주에게 바로 안내해라.”
“지랄하고 있네.”
옆에 있는 놈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쳐다보기에 바로 따귀를 후려쳤다.
“안내하라고 개새끼들아. 그만 좀 노려보고.”
순간 왼쪽 옆구리로 칼이 불쑥 들어와서 맨손으로 붙잡은 다음에 목계지법으로 칼날을 부러뜨렸다. 뚝― 소리와 함께 칼이 두 동강이 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 놈이 손을 뻗으면서 외쳤다.
“안 돼!”
나는 부러진 칼날을 목계탄지공으로 튕겨서 다짜고짜 기습한 놈의 목젖에 박아 넣었다.
푹!
비명도 못 지른 채로 목을 뚫린 놈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나는 옆으로 슬쩍 피했다.
쿵……!
한 놈이 급히 내게 말했다.
“저희는 운월형제회가 아닙니다.”
“그럼?”
“저희도 상납을 바치는 하부 조직입니다.”
“아, 그래? 그게 뭐가 달라. 안내해.”
굳이 따지자면 이놈들은 운월형제회에 들어가고 싶은 지망생들이었다.
상납을 대체 얼마나 바쳐야 하기에 대낮 길거리에서 날치기를 하고, 따귀 몇 대 맞았다고 동료들이 전부 칼을 들고 등장한 것일까. 두세 명이 넋이 나간 채로 시체를 바라봤다.
“소형제들, 표사에게 칼을 들이댔으면 죽어야지. 살려줄 줄 알았나?”
나를 둘러싼 놈들을 한차례 확인한 다음에 말을 이어나갔다.
“도망치는 놈부터 죽여주마. 전부 이대로 나를 운월형제회로 안내해라. 가자.”
나는 가죽 띠에서 흑묘아를 꺼낸 다음에 허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