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막말도 전략적인 사내.
나는 널브러진 채로 있는 패검회 간부들을 바라봤다.
“일어나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들 살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엄살떨지 말고.”
사실은 사도행이 내렸어야 하는 명령이다. 간부들은 그제야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사도행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사도행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싸우려고 해도 내가 더 강하고, 사과하자니 자존심이 용납을 못 하겠고, 말다툼하는 것도 나한테 도움을 받은 게 있어서 어려울 테니까.
오늘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남천련은 더욱 비참하게 당했을 것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남천련은 사도행이 수습하겠지만 패검회의 재산, 잔당 등을 수습해서 흡수하는 것은 내 몫이다.
이 멍청한 놈은 세력이 커질 자격이 없다.
그러니 사도행과 나는 확실하게 위아래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위아래를 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갈구거나, 죽이거나, 줘패는 수밖에…….
나는 지쳐서 기절할 것 같은 사도행에게 말했다.
“사도행, 죽이진 않으마. 그러나 위아래는 확실하게 정하고 헤어지자고.”
사도행이 당황스러워했으나 내 알 바 아니다.
사도행이 말했다.
“내 실력이 부족한데 덤벼서 뭘 하겠나.”
“네 실력이 부족하면 끝이냐? 네가 그동안에 약자들에게 어떻게 했지? 내가 듣기론 허접한 방파 놈들은 네 앞에서 무조건 무릎을 꿇었다던데 사실이냐?”
“그런 적은 없다. 와전된 이야기야. 하지만 확실히 내가 나보다 약한 흑도에게 예의를 갖춘 적은 없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었고.”
“련주, 내가 누굴까.”
“모르겠다.”
“너의 수하들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세력에게 참전 요구를 했을 때 나한테도 찾아왔었다. 아주 시건방지게 찾아왔더군. 그리고 오늘 결과를 봐라. 아까 네가 돌진할 때 협곡으로 들어온 세력이 아예 없다. 전부 줄행랑을 쳤지. 뭐 나는 이해해. 어떤 병신이 이런 협곡에 들어와서 죽고 싶을까.”
“…….”
“심지어 돌아가자는 내 말도 무시하고 말이야. 너 때문에 죽은 수하들의 시체가 협곡에 널렸어.”
사도행이 고개를 움직이지 않아서, 나는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다. 사도행의 머리를 후려치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주변을 살피라고 병신 놈아. 너 때문에 죽은 수하들……. 쳐다보고 명복을 빌어 이 새끼야. 미안하다고 해.”
내가 사도행의 머리를 연신 후려치자, 간부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나를 바라봤다.
사도행은 연신 내게 머리를 처맞으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내 탓이다. 못 보겠으니 나를 내버려 둬.”
순간, 나도 화를 눌렀다.
사도행을 죽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간부들이 달려와서 나를 포위했다.
내가 슬쩍 쳐다보자, 간부 한 명이 내 예상과는 다른 말을 꺼냈다.
“문주님, 저희가 련주님을 뜯어말렸어야 했습니다. 저희부터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사도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간부에게 물었다.
“장 조장, 문주라니?”
장 조장이라 불린 사내가 설명했다.
“제 밑에 있는 전령이 여기 계신 하오문주를 알아보고 제게 보고했었습니다. 아군으로 참전하신 거고, 성격이 과격한 분이시니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이것을 차마 련주님에겐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사도행의 실책이다.
수하들이 평소에도 사도행에게 직언하지 못하는 분위기여서, 마땅히 보고해야 할 일도 이렇게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사도행이 한숨과 함께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하오문주, 이 사도행이 사과드리겠소. 오늘 문주가 도와준 덕분에 내 목숨을 구하고 수하들도 전멸을 당하지 않은 것임을 잘 알고 있소. 오늘 이후로 사도행과 남천련은 하오문주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오늘의 은혜를 갚아나가리다. 나는 못난 놈이지만 내뱉은 말을 지키고 살았소.”
머리를 처맞은 사도행이 놀랍게도 정중하게 사과하자, 간부들도 내게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겠습니다.”
나는 닭살이 돋아서 팔뚝을 비볐다.
‘아, 염병할 새끼들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정중하게 사과하는 놈의 머리통을 또다시 후려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나는 한숨이 나왔다.
“…….”
나는 이 병신들과 오글거리는 백도식(白道式) 포권 놀이가 하기 싫어서 장 조장에게 말했다.
“전령은 살아있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허벅지를 지혈하고 있었던 전령이 손을 번쩍 들었다.
“문주님, 저 살아있습니다.”
나는 전령의 얼굴이 기억났다.
“아, 너구나.”
흑묘방에서 헤어질 때 내 말을 잘 들었다면서 포권을 취하던 놈이었다. 나는 전령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으면 됐다.”
“예.”
문득 살아있으면 됐다는 말에 남천련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사도행이 내게 말했다.
“문주, 정리하고 나서 내가 하오문으로 방문해도 되겠소?”
나는 사도행과 눈을 마주쳤다가 대꾸했다.
“오지 마. 재수 없으니까. 너는 남천련이나 잘 수습해. 나는 내 수하들 시켜서 패검회를 수습할 테니까.”
나는 남천련 전체에 고했다.
“본래 내 성질대로라면 사도행도…… 말을 말자. 내가 참는 이유는 그래도 남천의 무인들이 한결같이 용맹했기 때문임을 알아라.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사도행을 끝까지 갈궜다.
“너는 가장 먼저 협곡으로 돌진한 간부,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사지에 뛰어든 네 수하들 때문에 그 병신 같은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사도행, 알았어?”
사도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
문득 나는 천 당주가 등장했었던 협곡의 입구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
남천련의 시선도 나를 따라서 일제히 움직였다.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졌다.
협곡 입구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완전 어처구니없는 조합이었다.
좌측의 사내는 학사 차림을 하고 손에는 쥘부채를 쥐고 있었고.
우측의 사내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멀리서 봐도, 거듭 봐도 거지였다.
속으로 놀라는 와중에도 반갑긴 했다.
협곡에 놀러 온 쾌당의 고수들이었다.
문제는 쾌당의 고수들이 좋아하는 장소에 시체가 널려 있어서 불쾌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도행에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너희는 최대한 빨리 수습해서 사라져라. 조용히, 신속하게, 질서 있게. 저 사람들 쳐다보지 말고.”
유념하라는 눈빛을 사도행에게 보냈다. 사도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현장을 수습했다.
사도행도 고수를 알아보는 눈치는 있어서 내 말뜻을 이해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입구를 바라보자 쾌당의 고수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제멋대로 사는 인간들이어서 이들의 행동은 나도 예상하기 힘들다. 일단 시체가 너무 많아서 다른 곳으로 놀러 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아니면 그냥 숨어 있는 것이거나…….
* * *
남천련이 수습하는 동안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상념에 잠겼다.
내가 생각하는 광기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쾌당의 고수들이 가진 광기는 순수한 면이 있다. 쾌(快)라는 영역에 집중하고 더 빨라지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달리기만 잘하는 병신들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빠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든 간에 강하다는 뜻.
다만 학사와 거지 조합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저 둘이 친했나?’
거지는 노신(駑身)이라 불리는 개방의 고수다.
노신은 ‘둔한 몸’이라는 뜻인데 이를 별호로 삼은 이유는 자신보다 빠른 자들이 있어서다. 실제로는 쾌당에 속한 고수인 데다가 개방에서도 가장 빠르다.
개방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천하에서 가장 빠른 거지라는 뜻이다.
그리고 저 학사 놈은 문제의 인물이다.
마도(魔道) 세력의 사서관(司書官)이기 때문이다. 사서관은 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권력자의 자리는 아니지만, 어쩌면 웬만한 권력자보다 더 중요한 업무를 맡는 직책이다.
무공 서적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미움을 받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몸담고 있었던 세력을 탈주해서 무림맹에 투신하는 사내다. 그러니까 딱 광명좌사와 반대되는 인물인 셈이랄까.
백응지의 좌사가 마교에 투신하고.
마도의 사서관은 무림맹으로 적을 옮긴다.
강호의 인물이 반대 진영으로 이동한 것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사내다. 나는 저 사내를 쾌당에서 알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마도일 때나 무림맹일 때도 계속 쾌당에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의 별호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쾌당에 가입했을 때는.
내부에서 마군자(魔君子)라 불렸다.
그 마군자와 노신이 경공을 겨루기 위해 이곳을 찾았으니 내가 놀랄 수밖에.
너무 인상적이고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내라서 상념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은 대체 어떻게 상대하지?’
만약 내가 쾌당의 고수들을 전부 하오문으로 포섭한다면 나는 단박에 강호의 정상권에 있는 문파의 수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들도 전부 나처럼 괴팍하고 제멋대로여서 그렇다.
심지어 쾌당에서는 마도에서 무림맹으로 적을 옮긴 것에 대해 별 반응도 없었다.
그냥 경공을 겨루고 수련하는 게 더욱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도행이 작별을 고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문주, 또 보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련주, 일위도강 알아내면 흑묘방으로 연락해.”
사도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내가 의뢰를 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찾아내면 연락하겠네.”
“어서 꺼지도록.”
나는 떠나는 남천련을 바라보고 있다가 협곡의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수하들은 수하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오문주는 문주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나는 늘 시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전생에는 쾌당에 가입하는 것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쾌당의 고수들을 단 한 명이라도 하오문에 끌어들일 생각이다.
나도 달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달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저들의 순수한 광기와 집착은 존중하겠으나.
세상사에 필요한 것은 저들의 무공 실력이다. 세상사에 초연한 방관자들을 내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어떤 싸움에서 내 수하 백 명 정도가 죽어야 할 일을 서너 명만 죽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만큼 고수를 영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눈을 감은 채로 명상에 잠겨 있자…….
잠시 후에 마군자와 노신의 속삭임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작게 들렸다.
「아직 안 갔는데?」
「곤란하군. 쫓아낼까?」
「더 기다려 보자고.」
마군자와 노신은 내 무공수위를 낮춰 보고 있을 것이다. 너무 젊었기 때문에 협곡에서 치고받고 싸운 흑도의 젊은이 정도로 생각할 게 뻔했다.
나는 근처에 아직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서, 심호흡을 했다.
이어서 협곡의 중앙에서 혼자 몸을 가볍게 풀 듯이 움직였다.
“후우…… 쓰읍…… 후우…… 쓰읍…….”
호흡도 일부러 과장되게 하다가 느닷없이 절벽으로 질주했다. 일부러 요란하게 뛰어서 돌무더기를 튀어 오르게 했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박!
어차피 세상에 쾌당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경공에 미친놈들이다.
나는 절벽에 훌쩍 뛰어올라서 중앙 부근을 가로로 맹렬하게 달렸다.
누가 봐도 미친 짓거리.
하지만 쾌당의 고수들에겐 그저…….
‘어? 제법 달리네.’ 하는 정도일 것이다.
나는 혼자서 절벽을 오르고, 뛰어내리고, 거미처럼 들러붙었다가 온갖 지랄 발광을 하면서 협곡에서 뛰어다녔다.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나 밥도 안 먹고 뭐 하고 있냐. 아…….’
잠시 후에 마군자와 노신이 다시 재미있는 것을 구경하러 등장한 고양이들처럼 눈을 빛내면서 나타났다.
내가 두 사람을 주시하자…….
거지 놈이 실실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거, 어린놈이…… 좀 달리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중한 어조로 대꾸했다.
“웬 거지새끼냐?”
“…….”
내 막말에 당황한 노신이 마군자를 바라봤다.
“아니, 거지한테 대놓고 거지라고 하는 경우가 있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마군자가 대꾸했다.
“몰라, 이 거지새끼야.”
마군자가 팔짱을 끼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세가 좋지 않아. 허접해. 그렇게 달리다간 금방 무릎이 나갈 거야.”
나는 마군자를 노려봤다.
‘나도 알아. 이 새끼야.’
하지만 이번에도 속마음과 다르게 대꾸했다.
“어디서 지적질이야? 거북이 등껍질같이 생긴 놈이.”
마군자가 눈을 부릅떴다.
“……!”
옆에서 노신이 낄낄대면서 웃다가 뒤로 쓰러졌다.
“으하하하하하하…….”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나는 지금 하오문의 명운(命運)을 걸고 매우 심각하게 전략적으로 막말을 던지고 있었다.
막말도 전략적인 사내.
그것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