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소문이 이렇게 무섭다.
“너희는 이 실패를 떠나서.”
“…….”
어느새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온 교주가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알던 사천왕들과 다르다. 내 손에 죽은 전대 사천왕과도 다르고. 그들은 후계자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내 편으로 만들거나, 죽여야 했다. 심지어 당시 사천왕은 자신들의 위에 있는 좌우사자들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싸우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지. 교에서 내보내서 독립을 시켰다면 일문의 종주가 됐을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왕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사내들이었지. 그런 사천왕이 이렇게 허약해졌구나.”
광명우사는 교주를 바라봤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교주가 말했다.
“너희는 옛 총본산으로 가서 원로들에게 도움을 청한 다음, 내가 부를 때까지 폐관수련을 명한다.”
“예, 교주님.”
“그때까지 교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말도록. 어떤 수련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강해지든지 간에 너희들 선택이다. 언젠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처럼 느껴지면 오늘의 죄는 그때 묻도록 하겠다. 물러가라.”
사천왕이 동시에 대답했다.
“교주님, 감사합니다.”
사천왕이 사라지고 나서야 교주가 광명우사를 바라봤다.
“우사, 검마에게 기습이 있을 것이라고 언질 줬나?”
광명우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반응은?”
“좌사에게 무슨 감정적인 반응을 기대하십니까?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교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검마에게 다 흡수당하길 바랐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겨우 장로 몇 명을 상대하다가 지쳤다면 광명검으로 흡수하지 않은 모양이야.”
“장로들이 많아서 싸우던 도중에 흡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정말 좌사가 무적이 되려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교주가 덤덤하게 말했다.
“축하해야지. 하지만 전대 검마들이 주장하던 도검불침은 무적이 아니다. 단순히 몸으로 창칼을 받아낼 수 있다고 해서 무적이 될 수는 없지. 강호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칠공(七孔, 이목구비의 구멍)을 막고 살 수는 없기에 어떤 고수든지 약점은 있기 마련이야. 다만 좌사는 전대 검마들보다 검에 대한 순수한 집착이 커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이 보일 뿐이다.”
“말씀하시는 대로 도검불침과 검법까지 대성하면 어쩌시려고 그랬습니까?”
교주가 우사를 바라봤다.
“너나 나나 그런 것을 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늙은이들이 활동을 멈춘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다음 강자들이 나올 때가 되었다. 검마가 대성하면 나도 마음 편히 좌사에게 교주 자리를 물려준 다음에 수련에만 매진했을 것이고. 왜? 너는 내가 교주 자리에 계속 있길 바라느냐?”
“배교자에게 어찌 높은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십니까.”
교주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누군가가 천마에 등극한다면 그가 누구의 눈치를 보겠느냐? 천마가 내뱉는 말이 곧 법이다. 우사, 자네도 마찬가지야. 무엇 때문에 강해지려는 것인지 대의를 잊지 말도록. 네가 나보다 강해지는 날이 오면 언제든 내 자리를 물려주마. 그것이 좌사와 너의 역할이고, 내가 생각하는 마도다.”
“예, 교주님. 물러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여쭙니다.”
교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사가 물었다.
“하오문주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아서 해.”
“저도 그럼 나중에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너무 이상한 사내라서 사천왕들의 말과 수하들의 정보로는 판단이 안 됩니다.”
교주가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예.”
교주가 자신의 관자놀이 주변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우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교주님 앞에서는 사마외도 무리도 다들 예의가 올바른 정상인이 되기 마련인데 특이한 사내로군요.”
교주는 우사의 말이 웃긴 모양인지 콧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평범한 사내였다면 허 장로가 눈여겨보지도 않았겠지.”
광명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좌사와 어울릴 수 있고 허 장로의 마음에 들 정도면 마도에 어울리는 사내가 아닙니까?”
교주가 고개를 저었다.
“정사마(正邪魔)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내도 종종 있는 법이다.”
***
처음에는 싸움이 끝난 다음에 도착하는 하오문을 보면서 당황스러웠으나, 점점 수가 불어나기 시작했을 때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왜 이렇게 뒤늦게 몰려오는 거야?”
소군평이 이끄는 흑묘방이 깃발을 펄럭이면서 도착하고.
독고생의 흑선보, 사신장, 금해, 홍신, 남천련이 간발의 차이로 도착해서 마교가 포위했을 때처럼 무너진 천리객잔을 포위했다.
나는 마교에게 포위당했다가 이번에는 수하들에게 꼼짝없이 포위를 당했다.
“…….”
싸움이 끝났다고 이야기해도 돌아가려는 놈들이 없었다.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연합을 대접하기 위해서 악인들과 의견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검마가 감탄한 어조로 말했다.
“문주,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이렇게 많았나?”
나는 남 일처럼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오. 모이니까 정말 많네. 실은 몇 명인지 나도 잘 모르는 터라.”
색마가 말했다.
“조금 늦긴 했다만 모이니까 장관이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다들 제각각이냐?”
“하오문은 본래 개판이야.”
귀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개판이라니? 이 정도 병력이면 결코 약한 세력이 아니야.”
내 연합 세력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에 대해서 색마와 귀마도 무척 놀란 상태. 덕분에 대충 구덩이를 파서 정리했던 천리객잔 주변을 할 일 없는 하오문도들이 달려들어서 대로변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소하고 정돈했다.
어쨌든, 하오문이라 그런지 다들 청소를 잘했다.
그 와중에도 일부는 마교 병력이 남긴 멀쩡한 전리품을 슬쩍 챙겼다. 도둑이었다가 하오문도가 된 놈들도 있을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홍신 사매가 그렇다. 병장기를 챙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어서 조금이라도 멀쩡한 것은 전부 하오문도의 품으로 사라졌다.
도와주러 왔다더니, 내가 봐도 정말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도와주러 온 놈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기에 색마가 풍운몽가에 부탁을 하고, 나도 돈을 지출해서 야영지에서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요약하면, 어림도 없었다.
더군다나 병력이 너무 많이 모인 터라, 백응지에 있는 강호인들도 구경하겠다고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하오문과 잔뜩 뒤섞였다.
나는 태어나서 이런 개판, 난장판, 아수라장을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후……적당히 좀 몰려오지.”
군중이 뜬금없이 많이 모이면 군중 심리가 작용해서 군중이 더 모인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계속 모여 들었다.
결국, 나는 천리객잔이 있던 자리에 임시 막사를 세워놓고 손님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말을 들어보니.
이미 무림맹에 의해서 소문이 하나 퍼졌는데.
그 소문은 벌써 마교의 일부 병력과 하오문이 맞붙어서 하오문이 이겼다는 황당한 소문으로 와전된 상황이었다.
잠시 들어보니 이 전투에 이름까지 붙었다.
백응대첩(白鷹大捷)이라고 했다.
소문이 개판으로 퍼지긴 했으나 다행히 백응대첩을 이끌었던 사내는 하오문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백도 세력에 의해서 공식적으로도 마교의 주적이 되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일전에는 매화루의 채향이에게 노래 한 곡조를 듣고 싶다고 내뱉었던 말이 매화루의 채향이와 자고 싶다는 말로 와전되었고.
지금은 어느새 내가 엄청난 수의 하오문도들을 이끌고 마교의 일부 병력을 몰살한 것처럼 소문이 퍼진 하오문주가 되었다.
소문이 이래서 무섭다.
그 소문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냐면? 백응지에 몰려 있는 객잔과 반점, 주루에서 술과 음식을 지원해서 천리객잔의 야영지로 보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마교와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하오문, 백도, 사대악인과 뒤섞여서 공짜 밥을 먹었다. 백도가 또 이런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면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어느 시점이 되자 저희끼리 웃고 떠들면서 술과 음식을 먹었다.
술까지 들어가자,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싸우러 온 놈들인지, 날 보러 온 놈들인지, 먹으러 온 놈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시끄럽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검마도 탈출하지 못한 채로 야영지에 갇혀서 술과 음식을 먹었다.
다행히 달은 밝았다.
***
“백응대첩에서 마교를 물리친 하오문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짝짝짝- 소리에 이어서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나는 기름이 덕지덕지 묻은 입을 소매로 대충 닦은 다음에 일어섰다.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둔 천리객잔의 잔해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봤다.
전부 앉아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
‘염병할, 많네.’
태어나서 가장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하오문만 있으면 대충 헛소리를 떠들겠는데 이미 백응지에서 온 강호인들과 강호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뒤섞여 있었다.
문득 나는 근처에서 돗자리를 펼친 채로 앉아 있는 백의서생을 발견했다. 이 미친 인간은 어느새 제자들과 함께 뒤섞여서 백응지에서 온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 새끼 완전 제대로 미친놈이네?’
백의서생이 제자들과 무어라 얘기하다가 웃더니 나를 가리켰다.
“……문주가 한 말씀 하신다. 다들 잘 들어라.”
“예, 사부님.”
나는 여기서 백의서생이 무력을 쓰면 절반 이상이 몰살될 것 같아서 백의서생을 애써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떠드는 지방 잡담이 줄어드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나는 주변이 고요해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
나도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떠든 적이 없었다. 또한, 군중 속에 백도, 흑도, 하오문, 악인이 있고 백의서생과 같은 미친놈들도 끼어있는 상황이었다. 완벽한 군중들이었다. 이런 놈들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하오문주 이자하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기 전에 술을 다시 마셨다. 도저히 논리정연한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취한 척을 해야만 했다.
“와줘서 고맙소. 한 말씀 드리자면, 결론부터. 하오문이 어떤 단체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겠지만 하오문은 일인문파(一人門派)라 할 수 있소.”
뜻밖의 선언에 여기저기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잠시 그것을 참아내다가 주둥아리를 개방했다.
“거 좀 닥치시오. 말하는데 왜 이렇게 떠들어?”
“…….”
나는 손바닥을 거칠게 부딪친 다음에 양허리에 손을 올렸다.
“주목, 주목!”
“…….”
“말했다시피 하오문은 일인문파요. 내가 문주고, 내가 문도가 되겠소. 나는 무공을 누구에게 전수한 적이 없소. 그러니까 정식 문도가 없는 셈이지. 이곳에 달려온 사람들은 일전에 내가 도와줬거나 살려줬던 강호의 형제들이외다. 나는 길을 가던 행상인도 하오문도라고 생각하고,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도 하오문도라고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하오문에 정식으로 속한 사람은 나뿐이오.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여러분들은 하오문주를 찾아오시오. 오늘 이후로 하오문 연합은 다시 해산하겠소. 내 말이 어렵나?”
색마가 횡설수설하는 나를 잡아서 끌어냈다.
“문주가 취했소.”
“놔라.”
나는 색마의 팔을 뿌리친 다음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따라 하시오. 하오문은 일인문파다.”
“하오문은 일인문파다.”
“문도가 괴롭힘을 당하면 하오문주가 나선다. 하오문주가 생각하는 문도는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전에 연이 닿은 강호의 형제들은 하오문 연합에 속한다. 이게 핵심이오. 결코, 이들은 정식적인 하오문도가 아닌 셈이니 함부로 괴롭히지 마시오. 다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겠지?”
단상에 오르기 전에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일까?
주변이 너무 고요했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아서 뺨을 한 차례 때린 다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이거 꿈이야?”
나는 술에 취한 김에 백의서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봐, 이 거북이 등껍질같이 생긴 백의서생 놈.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약자들 괴롭히지 말고 나를 찾아와. 알았어?”
하오문은 물론이고 사대악인과 백응지에서 온 강호인들도 일제히 백의서생을 주시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내 지적 때문에 전부 쳐다보는 중이었다.
백의서생이 어깨를 움직이면서 크게 웃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가 자네를 찾아가지 누구를 찾아가겠나?”
사람들은 백의서생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백의서생과 내가 나누는 대화의 의미도 모를 터였다. 하지만 나는 항상 진지하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
“서생, 무공을 익힌 자들끼리 해결하자. 약자를 함부로 죽이면 안 돼. 사람을 개미처럼 대해선 안 된다. 네 눈빛에서는 그게 보여.”
백의서생이 그제야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으니 문주, 그만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백의서생을 노려봤다.
“나보다 뛰어난 서생 같은 강자가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야겠지. 확인.”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다들 먹고, 마신 다음에 평안하게 돌아가길 바라겠소.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일일이 찾아와서 인사하지 말고 저녁 한 끼 먹고 집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별합시다. 이상, 하오문주 이자하였소.”
나는 손을 내저은 다음에 천리객잔의 잔해로 만들어진 단상에서 내려왔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하오문은 일인문파라는 소문이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뱉은 헛소리였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