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야.
백의서생이 험악해진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네가 쾌당을 어찌 아는 거냐.”
나는 백의서생의 표정을 보면서 웃었다.
이놈은 내게 금구소요공을 던져줬던 은인 놈이다. 내가 금구소요공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강호 어딘가에서 맞아 죽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놈은 나를 미치게 만든 원흉 같은 놈이다.
금구소요공은 입문 과정과 초반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 쉬운 편이었으나 중후반부에 진입하면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게 여러 차례 주화입마를 선사했던 당사자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이놈 때문에 살아남았고, 이놈 때문에 괴롭게 살았다.
“서생, 네가 강호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
백의서생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자신에게 닥친 분노의 감정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그래?”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단하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쾌당을 아는 이유도 모르고. 내가 금구소요공을 익힌 이유도 모르는데. 너는 벌레 같은 놈들의 사연을 알 수가 없어.”
“문주, 이 자리에서 죽여달라는 뜻이냐?”
“단언컨대,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내가 밝히지 않은 정보를 인질 삼아 하는 말이 아니다. 이미 늦었어. 네가 준 월영무정공 때문에 나는 스스로 신공(神功)을 완성했다.”
“신공?”
이것도 사실 무리수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무표정을 유지했다. 계속 무리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앞서 사문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것도 무리수고, 쾌당을 말한 것도 무리수고, 신공을 완성했다는 것도 완벽한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공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늠하고 있을 백의서생에게 시선을 뗀 다음에 나는 서재를 둘러봤다.
“설마 내가 만든 신공도 이곳에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면 내가 같은 무공을 창안한 것일 수도 있잖아. 안 그래?”
“확인해봐라.”
나는 의식의 흐름과 백의서생에 대해 파악한 것을 토대로 그에게 약점이 없는지 계속 확인했다.
“당연히 그대도 무공을 새롭게 만들었겠지? 여기서 이 수많은 무공을 보고 익혔을 테니 말이야.”
나는 백의서생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나는 자네가 고금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신공을 창안했을 것이라고 본다. 암, 그래야지. 잠시만, 음… 네 서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깨달았다.”
백의서생이 바로 대답했다.
“무엇인가?”
나는 일부러 서재를 마음껏 구경하면서 탄식했다.
“자네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야.”
“무엇이 빠졌는지 말을 해라.”
“세 가지가 빠졌군.”
백의서생이 웃었다.
“세 가지나? 그럴 리가 없지. 제자백가의 실전된 무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멸문한 세력의 무공까지 모아뒀지. 의미 있는 독문무공이 강호에 존재하긴 하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어차피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래?”
나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저 내 예감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이 전생에 무림맹에 투신했던 이유는 임소백의 독문무공인 육전대검이 궁금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
다른 사람의 무공도 아니고, 무려 당대 무림맹주의 독문무공이다.
더군다나 임소백은 육전대검을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백의서생이 아무리 뛰어나도 알아낼 방법이 아예 없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으나 임소백 맹주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여태 멀쩡히 버티고 있는 이유가 독문무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육전대검은 영원히 사라지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일단 맹주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육전대검은 언급하지 않았다.
“봐라. 그 어딜 봐도 불가(佛家)의 무공은 없네. 그것이 첫 번째.”
백의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알고 있네. 나머지 두 가지는?”
백의서생과 싸우려면 거짓만으로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밀교(密敎)의 무공이 전혀 없구나.”
“밀교도 불가의 갈래인데 어찌 구분을 하나?”
“기원이 같아서 종교적인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학적인 부분은 불가와 궤가 전혀 다르다. 막상 잡부밀교(雜部密敎)의 대종사가 등장하면 삼재를 포함한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와 우열을 가려야 할 터인데 밀교를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겠나? 무공으로 따지면 그곳도 한 축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속으로 광승에게 사과했다. 잡부밀교의 대종사는 광승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단 엮고 봤다.
백의서생이 말했다.
“잡부밀교가 매우 폐쇄적인 곳이라고 들어는 보았으나, 그곳에 그렇게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말은 쉽게 믿지 못하겠군. 세 번째는 어디냐?”
나는 서재를 보면서 말했다.
“그대도 알겠지만, 당연히 곤륜(崑崙)이다. 곤륜이 없군. 없어. 어딜 봐도 없어. 없네. 없다. 불가, 밀교, 곤륜이 빠진 서재였구나. 그래도 이 정도면 대단하다고 해야겠지.”
나는 백의서생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대는 천하에 다시 없을 일대 기재(奇才)야.”
나는 일부러 아랫사람을 칭찬하듯이 말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백의서생의 표정을 확인했다. 내가 칭찬을 하자,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미친 새끼, 그걸 또 처웃고 있네.’
백의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것참 놀랍군. 일양현에서 점소이나 하던 놈이 어찌 이렇게 강호에 해박할까? 솔직히 말해서 놀랍네. 나와 무학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 강호에 드문 편이라서 말이지.”
다가오던 백의서생이 서재를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불가, 밀교, 곤륜은 빠졌지. 왜 그런 줄 아나?”
“어려웠겠지.”
“무공을 빼앗기느니 죽음을 택하는 자들이네. 하지만 곤륜의 늙은이가 쓰러지면 곤륜도 무척 약해질 것이네. 그때를 노려야지.”
“어느 세월에?”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해졌네.”
백의서생이 탄식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불가의 고승들을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말이야. 속세를 벗어났기 때문일세. 일단 가족이 없어. 돈도 없지. 욕심도 없네. 고승들은 약점이랄 것이 딱히 없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뭐?”
백의서생이 나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불가에 정확하게 어떤 고수가 있는지 우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네. 우리가 시도를 안 했을 것 같은가? 시황제 이래 가장 처참한 실패를 맛봤었지. 결국에는…….”
백의서생이 잠시 당황했다.
“아, 내가 이런 것까지 자네에게 말하다니.”
백의서생이 한숨을 내쉬는 동안에 나는 이놈이 말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러니까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전 시대에 불가를 한 번 건드렸다가 박살 난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안을 준비했다는 말을 하려다가 멈춘 것으로 추측했다.
백의서생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결국에는 불가에 대항하는 대척점을 하나 만들어내야 했겠군. 불가를 지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기 위해서 말이야.”
“…….”
“마도 세력을 골라잡아서 마교(魔敎)로 전환했나? 특정 종교를 약하게 만들려면 대척점에 있는 다른 종교로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겠지. 부추기면 저희끼리 알아서 싸울 테니 말이야. 교리가 정반대였을 테니.”
백의서생은 살짝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네는 진정 대화가 통하는 사내로군. 바로 그것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는 자비를 말하고, 마교는 무자비하게 돌아가고 뭐 그런 건가? 하지만 인간의 일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좀 아귀가 들어맞는군.”
“뭐가 말인가?”
나는 웃으면서 백의서생을 바라봤다.
“꼭두각시 조종하면서 놀려고 그랬는데 마교가 너무 커졌잖아. 그래서 삼 공자를 지원했군. 내부 다툼보다 효율적인 게 없지. 처음도 아니었을 테지. 이전에는 후계자 다툼이 더 컸었다고 하니까 말이야. 강호에 이래저래 온갖 지랄을 다 해놨구나.”
백의서생이 웃었다.
“……그게 우리 일이다.”
나는 돌아서고 있는 백의서생의 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설령 천악이 너희 쪽 고수라고 할지라도. 그자도 교주를 죽이지 못했다. 교주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강호의 일은 너희가 꾸미는 음모보다 매우 단순해. 이딴 서책들을 아무리 연구하고 실험해봤자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야.”
나는 백의서생이 총대장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교주와 임소백은 그 어떤 형식의 통제도 벗어난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백의서생은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자네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너무 많이 알고 있어. 확실히 그런 점에서는 내 제자들과는 격이 달라. 물론 격이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내 제자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말이야. 자네 말처럼.”
백의서생이 탁자의 어느 지점을 신경질적으로 때리자, 서재 한 곳의 벽이 뒤집혔다.
그곳에서 두 명의 사내가 나오더니 백의서생에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백의서생이 나를 가리켰다.
“하오문주 이자하다. 예의를 갖춰라.”
사내들이 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문주님, 오검(五劍)입니다.”
“문주님, 저는 육도(六刀)라 불립니다. 명성 자주 들었습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내들을 훑어본 다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갑다. 너희가 칠겸의 바로 위에 있는 사형들이로구나. 나도 칠겸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
“그렇습니까?”
“그놈이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진 않았을 텐데요?”
나는 헛소리를 최대한 많이 씨불여댔다.
“실력은 괜찮지만 둘 다 성격이 병신 같아서 사형 대접을 해주기 싫다고 하던데? 너희 둘 아니야? 오검과 육도, 맞네. 오징어랑 꼴뚜기를 닮았다고 하던데. 반갑다. 신기하게 생겼어.”
오검과 육도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황당하다는 것처럼 웃었다. 감정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백의서생의 제자 중에서는 강력한 고수들인 것처럼 보였다.
백의서생이 말했다.
“문주, 선택권을 주겠네.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증명하면 자네를 일단 손님으로 대우하겠네. 나도 자네가 천하에 다시 없을 기재라 판단해서 많이 양보한 것이네. 그러나 세 가지 중에서 하나도 증명하지 못하면 일단 노예 대우를 할 터이니 그렇게 알고 있게나. 살려주는 게 어디야…….”
오검과 육도는 어느새 절벽으로 향하는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백의서생에게 물었다.
“손님에서 노예는 너무 급진적인 거 아니냐? 뭔데?”
백의서생이 붓을 들더니 적으면서 말했다.
“첫째, 금구소요공을 익히게 된 사연. 둘째, 쾌당을 알고 있는 이유. 셋째, 네가 만든 신공이 사실인지 밝혀라. 마교 병력을 몰살했던 절기를 보여달라는 게 아니다. 네 입으로 신공이라 표현했으니 신공이겠지. 오검과 육도는.”
“예, 사부님.”
“문주가 대답하지 못하면 목숨만 붙여놓아라. 어떻게든 내가 살려보겠다. 강자니까 방심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멈춰라.”
솔직히 오검과 육도가 문제가 아니라 싸우다가 백의서생이 나를 기습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이런 고수들과 삼대일은 나도 버겁다.
백의서생에게 물었다.
“신공을 확인시켜주면 어쩔 테냐?”
백의서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 신공이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에 기록이 되어야 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자네를 당장 죽여서는 안 되겠지.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네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도록.”
나는 손가락으로 백의서생을 가리켰다.
“확인.”
백의서생은 제 입으로 내가 추측하던 것을 실토했다.
“적어도 임소백의 독문무공 정도는 되어야지.”
“암, 그래야지.”
나는 어깨를 떨면서 웃었다. 솔직히 그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백의서생이 곱게 미친놈이 아니라서 내게 활로를 제시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활로가 매우 좁다는 사실에 있었다.
‘신공이라…….’
그런 신공은 내게 딱 하나가 있다. 완성은커녕,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신공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 뒷짐을 진 채로 백의서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백의서생이 내게 물었다.
“뭐하나?”
“닥쳐라. 집중하는 중이야.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야. 내가 만든 무공도 감정적이라는 뜻이지.”
백의서생이 내 말을 받아적으면서 대답했다.
“세상에 감정적인 무공이라는 것도 있나? 자네도 정말 정상은 아니야.”
나는 진심을 담아서 백의서생의 말에 대답했다.
“있고 말고. 서생, 내가 왜 정상이 아닌 줄 알아? 내가 그동안 왜 그렇게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미친놈 소리를 종종 들으면서 살았는지 그 이유를 아느냔 말이다.”
백의서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느냐? 네가 본래 미친놈이었나 보지. 안 그래?”
나는 온갖 복잡했던 심정이 슬픔으로 가라앉는 감정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너 때문에 그래.”
이놈 때문에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던 전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는 천리객잔에서 내 상태를 확인하고 놀라던 삼복의 말을 기억한다.
‘문주님이 좀 이상한데요?’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으나 조금 달랐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미치는 중이었다. 순간, 눈에 무엇이 덮인 것처럼 세상의 색(色)이 살짝 변했다.
내가 덤덤한 표정으로 백의서생을 바라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백의서생이 내게 물었다.
“……대체 그건 무슨 무공인가?”
물론 나는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천옥에서 힘을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검과 육도의 표정도 백의서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눈빛이 지금 정상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백의서생의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이것은 자하신공(紫霞神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