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예상이 박살나는 순간에
무림맹에게 쫓겨보고, 마교에게 쫓겨보고, 서생들에게 쫓겨본 사람이 있나?
내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게 생겼다. 조만간 망령들에게도 쫓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림맹과 마교, 서생과 망령까지.
이 정도면 무림사에 다시 없을 전무후무할 업적이다.
이렇게 보면 나도 제법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삶이라는 게 항상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밝은 면을 굳이 꼽아보자면.
무림맹에 속해 있는 친구를 한 명 얻었는데, 그 사람은 나이가 나보다 많고 무공도 제법 강하다.
내 친구 임소백.
그런 의미에서 마교 출신의 친구도 한 명 있는데, 나이는 나보다 많고 무공도 제법 강하다.
내 친구 검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비록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차를 마시자는 연락도 오고, 동네 친구처럼 욕도 주고받고, 화려한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도 주선해주고,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취합해서 전달해주는 병신 같은 놈도 있다.
서생 측에도 인맥이 있다는 뜻이다.
내 인맥이 이렇게 화려하다. 어쩐지 나는 귀신과도 인맥을 쌓을 자신감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귀신은 이미 내게 천옥을 줬다.
소름…….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터라 월하관의 방에 들어가서 가부좌부터 틀었다.
이 정도면 옛 총본산의 망령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강호 전체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공손심은 망령들의 수준을 제왕이랑 비슷할 것이라 예상했다. 서문가주, 남궁검제, 도왕, 권왕, 군검왕, 검성, 신극, 백의서생 같은 자들이 뜻을 모아서 내게 동시에 덤비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다.
백의서생의 경공이 나보다 느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월광천을 준비하다가 검왕이나 검제에게 팔이 잘릴 수도 있고, 권왕에게 붙잡히거나 신극의 창에 뚫려서 쓰러지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아마 임소백도 쉽게 버티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개방 방주와 천악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제왕들보다 총체적으로 한 단계가 더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망령들이 전생에도 단체로 무림맹 근처에 출현했었다면 임소백도 꼼짝없이 당하지 않았을까? 내가 알기로 그런 사건은 없었다.
다만 백도가 곳곳에서 습격을 받았던 적은 있기 때문에 제왕들이 당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이를 토대로 나는 전생과 현생의 정보를 교차해서 재해석해봤다.
일단 나를 탕약에 넣으려고 온다는 말은 추측이다. 이보다 더 그럴듯한 강호행을 상상하다가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 번째 가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기에 나를 치러 오는 게 아니라고 가정해봤다.
사천왕의 수련 목적을 겸하는 강호행이라면? 그렇다면 사천왕은 제왕들에게 생사결을 제안하고, 이를 망령들이 지켜보거나 보조할 것이다. 물론 내게 도전하려는 놈도 있겠지.
두 번째 가설.
사천왕이 없는 상태에서 망령들만 등장한다면, 나를 탕약에 넣으려고 오는 게 맞다.
하지만 망령끼리 경쟁할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서 탕약을 나눠 먹을 인간들은 아닐 테니까. 망령은 교주 이외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망령끼리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서로의 서열도 의미 없고, 제멋대로의 주정뱅이들일 확률이 높다. 고로, 망령 개개인의 무력은 뛰어나지만, 망령들끼리 이간질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두 가지의 가설을 내 마음대로 종합하면 괴상한 결론이 도출된다.
망령은 분명 제왕들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겠지만, 이들이 망령이기 때문에 빈틈이 있을 것이다.
조직력이랄 게 없을 테니, 그것 자체가 빈틈이다. 만약 명령을 수행하고, 수하를 부리고, 동료와 힘을 합칠 수 있는 자들이라면 교주가 불러내서 높은 직책을 맡겼을 것이다.
이런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적인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망령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맨날 술에 취해 헛소리나 씨불여대는 사람들을 돈을 주고 고용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몇 가지 주워들은 말로 망령들을 분석했다.
망령(亡靈)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고, 망령(妄靈)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 총본산의 망령은 후자다.
나 혼자라면 이 망령들에게 꽤 시달리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색마, 귀마, 검마가 들어왔다.
검마가 다짜고짜 물었다.
“뭐라더냐?”
나는 세 명의 장수들에게 전황을 공유했다.
“백의서생의 말로는 옛 총본산에서 망령들이 떠났다는군.”
“이유는?”
“아마도 나를 탕약에 넣어서 끓여 먹으려는 것 같다던데.”
색마가 팔짱을 끼면서 대답했다.
“식인종이 오고 있다 이 말인가? 특이한 입맛이로군.”
귀마가 검마를 쳐다봤다.
“맏형, 망령들이 굳이 셋째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까 망령에 대해서는 검마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나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일까.
검마가 나를 쳐다봤다.
“이유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게 진짜 이유인지를 찾는 게 더 어렵겠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색마가 말했다.
“교주가 망령들에게 일러바친 게 아닐까요? 좋은 탕약 재료가 있는데 한 번 행차하는 게 어떻겠냐면서.”
“제자야.”
“예, 사부님.”
“셋째가 탕약에 들어가면 너도 뒤따라서 들어갈 확률이 높다.”
색마는 눈을 껌벅이다가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음, 어째서죠?”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검마는 나를 도울 텐데, 제자 놈은 사부를 외면할 수 없다. 고로 내가 탕약에 들어가면 검마도 들어가고, 그 제자도 들어가고, 귀마는 어버버 대다가 딸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다들 말이 없어서 내가 한마디를 해봤다.
“영양 만점이겠네. 오히려 좋아.”
“…….”
색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에 임했다.
“전혀 좋지 않아. 대책을 논의해보죠.”
“지금 하고 있잖아.”
“그랬군.”
검마가 말했다.
“망령은 이렇다 저렇다 정의할 필요가 없다. 각기 제멋대로이기 때문이야. 중상을 입고서 옛 총본산에 간 자도 있고. 처음부터 옛 총본산에 있었던 망령도 있을 테고. 은퇴한 장로, 쫓겨난 자들, 주화입마에 빠져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자……이런 자들이 모두 망령은 아니다.”
색마가 되물었다.
“그럼요?”
“이런 자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놈들이 망령이지. 사천왕이 옛 총본산에서 모두 살아남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셋째보다 먼저 탕약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겠지.”
나는 검마의 말을 듣고서 망령을 나름대로 정의했다.
“불쌍한 놈들이네.”
색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천왕이 불쌍하다고?”
“아니, 망령들.”
“불쌍하진 않은 것 같은데. 식인종이 왜 불쌍해.”
“탕약 재료가 뭔지 모르는 무식하고 불쌍한 놈들이야. 뒤지는 게 낫다. 사냥해서 탕약이 없는 저세상으로 보내줘야지. 이제부터 큰 틀의 전략을 설명해줄게. 나는 되도록 혼자 방치되는 게 좋아. 세 사람은 암살자로 합류하는 게 낫고. 망령이 나를 쫓아오면 세 사람이 달려가는 망령의 발을 거는 전략이랄까. 어차피 목표는 나야. 같이 뭉쳐 있으면 망령들이 방심하지 않아. 내가 혼자 있어야 방심하겠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말이야. 노는 놈들은 항상 빈틈이 많지.”
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색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가 엄청나네.”
“나는 원래 술주정뱅이들과도 대화를 잘 나눴어. 제대로 붙으면 내가 졌겠지만, 주정뱅이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전부 때려죽일 수 있었는데 참았지. 그때의 울분을 망령에게 풀겠다.”
귀마가 물었다.
“임 맹주에겐 말하지 않을 셈이냐?”
“임 맹주가 홀로 맹을 나와서 전력으로 도와야 해. 바쁜 사람에게 그것까진 바랄 수 없지. 싸움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맹주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긴 어렵고 바라지도 않아. 사실 나도 구체적인 전략은 세울 수가 없다. 직접 상황을 봐서 대처해야 할 테니.”
검마가 물었다.
“언제 출발할 테냐?”
나는 세 사람을 둘러봤다. 이제 딱히 무림맹에서 할 것도 없다. 우리는 임소백과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나누면서 작별을 고할 성격도 아니다. 성질대로라면 지금 출발하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참았다.
“하루 더 머무르자고. 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식사, 기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잠자리, 보초를 서주는 사람도 있어서 무림맹의 밤은 나쁘지 않아. 충분히 쉬었다가 밝을 때 떠나자고. 당장 나간다고 망령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우리가 뭐 탕약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편히 쉬어라.”
나는 세 사람이 각자의 방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드러누워서 눈을 감았다. 배가 살짝 고팠지만 이내 정신을 잃었다.
이상하고 의미 없는 꿈을 여러 차례 꿨다.
그러다가 술주정뱅이에게 한참이나 고생하는 꿈을 꿨다. 술주정뱅이는 입에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는데 나를 쫓고 있으면서 정작 욕은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어법도 맞지 않고, 의미도 없고, 순서도 엉망이고, 대상도 명확하지 않은 욕 그 자체.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개 같은 하늘아 땅이야 이런 염병할 눈깔 놈아… 뭘 쳐다봐, 죽고 싶어? 버르장머리,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이 새파란 점소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그렇게 부라려? 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어? 너 일로 와. 이리 안 와? 오늘 외상이야. 너 이 새끼 국수 그렇게 만들면 내 손에 죽어? 알았어? 대답. 아이고, 저 싸가지없는 새끼.”
내가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나오자, 주정뱅이 놈이 도망을 쳤다. 잠시 탁자에 앉아서 헛소리를 정리해서 요약해보니까 이런 말이었다.
“오늘도 외상이다.”
이것이 한심한 술주정뱅이의 어법이다. 대가리에 쓸모없는 게 가득 차 있어서 외상을 논할 때도 천지(天地)가 등장한다. 가끔 외상의 이유를 말하다가 황제를 거론하거나 무림맹주가 자신의 친구라고 주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임소백은 내 친구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더 잤다. 가끔 내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깨긴 했으나 나는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면서 정오까지 내리 잤다.
다행히 꿈에서까지 등장하는 망령들은 아니라서 간만에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회복되는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 * *
밥을 처넣은 다음에 월하관주에게만 떠난다는 말을 전하고 무림맹과 작별했다.
별일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거리를 거닐면서 당장 망령과 조우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열흘은 천천히 이동해야 동선이 발각되고 슬그머니 망령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한적한 곳으로만 이동했다. 당장 야영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객잔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괜찮은 반점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무림맹을 떠난 지도 사흘이 지난 한낮에…….
사대악인과 나는 유난히 한적한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마치 마적 떼의 습격을 받은 번화가처럼 보였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번화가여서 원래 이런 모습인가 싶기도 하고, 무언가 사건이 있어서 사람들이 떠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맞은편에서 도사 차림의 늙은이가 걸어오고 있었는데…….
당연히 쳐다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넷은 늙은이를 주시했다. 색마는 본래 싸가지가 없는 놈이라서 걸어오는 도사를 향해 중얼거렸다.
“저거 혹시 망령 아니야?”
하지만 가까이 다가올수록 도사의 복장이 꽤 유명한 의복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귀마가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곤륜파의 복장이다.”
우리가 백도의 고수들이라면 멈춰서 곤륜파의 검객과 인사를 나눴겠지만 우리에게 그 정도의 오지랖은 없다. 곁눈질로 한두 차례 쳐다봤다가 그냥 지나쳤다. 무엇보다 며칠 감지 않은 기름진 머리카락이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눈빛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몇 걸음을 걷는 와중에 뒤에서 발소리가 사라지더니 곤륜파로 추정되는 도사가 돌아섰다.
“야…….”
“야?”
우리 넷은 걸음을 멈춘 다음에 도사를 주시했다. 이렇게 보니까 전혀 도사 같지 않은 놈이 곤륜파의 의복과 검을 들고 있었다. 바람이 한 차례 크게 불자 도사 놈의 왼팔이 펄럭이면서 머리카락도 그제야 좀 흩어졌다.
귀마가 외팔이 도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오?”
아무래도 곤륜파의 의복을 뺏어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외팔이가 불쾌한 낯빛으로 검마에게 말했다.
“이봐, 십삼 호.”
“…….”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왜 인사를 안해.”
나는 저절로 검마의 표정을 확인했다. 검마의 표정에 당황함이 스쳤다가 이내 반가운 감정이 차올랐다. 적을 만난 표정인지 아군을 만난 표정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검마가 보기 드물 정도로 과하게 웃으면서 도사에게 말했다.
“늙은이, 죽으러 왔나?”
도사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더니 검마의 말에 대답했다.
“……배교자가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다니 교의 권위가 이렇게 추락했나?”
대체 이게 무슨 분위기지?
탕약의 재료는 맏형이었단 말인가?
검마가 도사를 물끄러미 주시하다가 우리에게 사태를 설명했다.
“광명검을 회수하러 온 망령이다.”
백의서생과 내 예상이 박살나는 순간에 등줄기가 살짝 서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