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예언선생 이자하.
마차가 적당히 멀어졌다가 멈추는 게 옳은 상황이었는데, 우리의 시야를 벗어날 때까지 움직였다.
“어?”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멀리 떨어져야 최대한 교주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마부는 교주에게 도전할 자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있었다.
지켜보던 혈교주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적당히 해라. 어디까지 가는 거냐?”
마차가 제법 떨어진 곳에서 멈추나 싶었는데 혈교주의 지랄 맞은 말에 재차 거리를 더 벌렸다. 정말 마부도 한 고집하는 사내라는 뜻이다.
다들 황당해서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에 교주가 말했다.
“됐다.”
그제야 멀리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교주님.”
그러니까 혈교주가 성질을 내든 말든 간에 마부에게는 전혀 안 통했다. 이제 경공 대결을 펼쳐야 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더니 불쾌하다는 것처럼 좌우로 찢어졌다.
내가 생각했을 때.
장거리는 백의서생이 유리하고, 단거리는 혈교주가 유리하다.
성향상 혈교주는 초반에 폭발하듯이 공력을 사용해서 공중으로 뻗어 나갈 게 뻔하다. 왜냐하면 마부가 성질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리는 이렇듯 유동적이다.
반면에 백의서생은 제운종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다가 막판에 뒤집을 성격이다.
그래서 승부는 마차까지의 거리가 관건이었다.
이것은 장거리인가, 단거리인가.
굳이 말하자면 단거리지만 도중에 한 번 멈춰서 마차를 찍은 다음에 방향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백의서생이 유리하다. 백의서생의 얍삽함은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예측이 맞을 것인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내기를 제안하듯이 말했다.
“백의서생에게 한 표.”
혈교주가 인상을 쓰면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이기면 어찌하겠느냐?”
나는 탁자에 있는 묵가비수를 가리켰다.
“비수를 선물로 주겠다.”
혈교주가 웃더니 전방을 주시했다.
“문주가 신호를 줘라.”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보여준 다음에 “딱.”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출발.”
혈교주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붉은색의 혈기를 좌우로 늘어뜨리고, 그 밑에서 백의서생은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채로 제운종을 펼쳤다.
두 사람은 질풍처럼 뻗어나갔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달빛과 장원의 불빛만이 남은 상황.
어느새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내 손바닥을 치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더니 신기한 광경이 보였다. 공중으로 뻗어나갔던 혈교주는 지상 위를 달리면서 돌아오고, 반대로 공중에서는 백의서생이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더니 혈교주보다 먼저 도착하자마자 탁자 위에 있는 묵가비수를 뽑았다.
호흡으로 따지면, 한 호흡의 차이도 안 될 만큼 비슷한 속도랄까.
백의서생이 재수 없는 표정으로 웃더니 묵가비수를 내게 던졌다.
나는 묵가비수를 품에 넣으면서 혈교주를 바라봤다.
“내 예상대로 백의서생이 조금 더 빨랐다. 안타깝게 됐군. 승부는 승부야.”
사실 이것은 백의서생이 더 얍삽했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불현듯 혈교주가 우두커니 서서 미친놈처럼 길게 이어지는 웃음을 내뱉더니 우리를 한 차례 둘러봤다.
혈기를 사용해서 그런지 혈교주의 얼굴은 그야말로 새빨갛게 익은 상태.
어찌된 노릇인지, 혈교주는 아직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과도하게 웃었다.
아무도 안 웃는데 혼자 길게 웃으면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다. 미친놈 전문가인 내가 잘 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혈교주는 정신의 밑바탕에 의외로 열등감이 짙게 깔려있는 사내가 아닐까. 그러니까 남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상태에서 그것에 대한 역효과가 웃음으로 번지고 있었다.
내가 은근히 싫어하는 태도가 있는데 그것은 벌어진 현상을 자신의 잣대로만 단정짓는 것이다.
통찰이 없는 단정만큼 역겨운 게 드물다.
‘쯧…….’
혈교주가 우리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우습나?”
일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다소 뻔했지만 나는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도 안 웃었다. 착각하지 마라.”
“다들 웃고 있지 않았나?”
“비무를 구경하다가 좀 웃으면 안 된단 말이냐? 하지만 결국에 대놓고 웃은 사람은 없었다. 네 자신이 너를 비웃었겠지. 광증의 출발이 보통 그러하니 남 탓하지 말아라. 여기서 네 억지를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긴 통천방이 아니야.”
혈교주의 눈빛에 새빨간 기운이 일렁였다.
“그러냐?”
혈교주가 히죽 웃더니 교주를 바라봤다.
“어차피 내가 지금은 교주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소.”
교주가 대답했다.
“그래서.”
“백의서생과 내가 교주의 힘을 빼놓는다고 뭐가 좋겠소. 교주께선 문주와 정정당당하게 대결하시길 바라고. 나는 백의서생과 승부를 이어나가겠소.”
혈교주는 자신의 생각만을 말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백의서생을 향해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경공이 다가 아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백의서생이 품에서 꺼낸 하얀 쥘부채를 펄럭이면서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차라리 져줄 걸 그랬나?”
백의서생이 실실 웃자, 혈교주가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노려봤다. 사실 이 미친 혈교주를 막을 사람은 천악과 교주밖에 없었다.
혈교주는 이제 무언가에 꽂히면…….
좋게,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나쁘게, 더 나쁘게 생각하는 사내가 되어버렸다.
광증도 종류가 다양한데, 이런 광증은 광견이 가진 것과 흡사하다. 이 흐름을 과연 누가 바꾸겠는가? 죽도록 처맞아야 바꿀 수 있을 터였다.
지켜보던 천악이 웃으면서 말했다.
“혈마야, 네가 이 자리에서 사지가 찢어지고 싶으냐? 선택적 분노를 일으킨 모양인데 내게 도전할 마음이 있다면 너란 놈을 인정해주마.”
혈교주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태도가 급변하는 사내여서 결국에 천악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백의서생의 마음을 더 자극한 것처럼 보였다.
“혈교주, 천악은 무섭고 나는 병신처럼 보이나? 원하는 대로 상대해주겠다. 비무든 생사결이든 좋을 대로 해라.”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교주를 제외한 자들이 전부 나를 바라봤다.
“음.”
나는 일부러 교주를 바라봤다.
교주가 두 사람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 하찮은 일에 황당할 정도로 쉽게 발끈하는구나. 나조차도 너희 둘의 우열을 그저 예측만으로는 가려낼 수 없으니 뜻대로 해라. 싸우고 싶으면 싸워야지.”
백의서생이 말했다.
“말 몇 마디에 이러는 것은 아니오. 애초에 서생을 죽인 적이 있는 사내라서.”
혈교주가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언제?”
“네가 죽인 고수가 한둘이었느냐? 정작 너만 몰랐을 뿐이다.”
“누구를 죽였는지 말해라.”
백의서생이 말했다.
“너는 전대 운향문주를 죽인 적이 있는데…….”
“아, 운향문이 서생 세력이었나? 멍청한 놈, 그런 것을 알려주다니.”
백의서생이 웃었다.
“내가 그런 것을 신경 쓰겠느냐?”
이때, 천악이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나는 천악의 표정을 보자마자 곧 혈교주가 처맞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나만 알아차린 것은 아닐 터였다. 주둥아리만 조심하면 백의서생과 싸울 수 있었는데 끝내 저런 광견은 스스로 매를 벌곤 한다.
통천방이었으면 난리법석이 났겠지만 이곳은 화산이다.
천악의 표정을 보자마자, 백의서생도 입을 다물었다.
허락을 구하거나, 양해를 바라는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천악은 곧장 혈교주에게 다가갔다.
혈교주가 물었다.
“천악, 도전이냐?”
“정신이 나갔구나.”
천악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이 맞붙었다.
백의서생이 똑똑한 것일까.
아니면, 혈교주가 무모할 정도로 미친놈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천악이 결코 잊지 않는 사내여서 그런 것일까.
이를 전부 종합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백의서생은 이런 정보를 그간 천악에게 공유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볼거리가 참 많은 싸움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달빛이 비추는 밤에 펼쳐지는 혈교주의 몸짓은 사방팔방으로 피를 뿌려대는 붉은 거미를 보는 것만 같았다.
화려하고, 난폭하고, 거칠고, 음험하고, 끔찍한 공격들로 천악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대체로 이 압도적인 사내 앞에서는 다양한 공격들이 모두 허망하게 흩어졌다. 그렇지만 혈교주도 수준이 높은 사내여서 이 싸움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천악의 손이 혈교주의 어깨를 붙잡은 것처럼 보였을 때, 분신을 내보낸 것처럼 흩어지던 혈교주가 갑작스럽게 역공을 취했다. 그러니까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앞서 삼재를 상대하는 동안에는 이런 움직임이 일절 없었다.
정말 얍삽한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혈교주의 기습이 통한 것도 아니다. 천악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혈교주의 기상천외한 기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회피하고, 걷어내고, 소멸시켰다.
그런 다음에 천악의 공격이 닿을 때마다…….
혈교주의 신체도 잔물결처럼 흩어지고 있었는데, 저러다가 한 번 걸리면 중상을 입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천악을 상대로 삼십여 초나 버티고 있었는데, 싸움이 길어지자 천악의 표정은 오히려 더 침착해진 상태였다.
침착한 표정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이렇게 보니까 천악도 정상은 아니었다.
분노한 채로 일어나서, 이내 침착해진 상태로 싸우더니 공력을 조금씩 더 끌어올릴 때마다 즐겁다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이 몰려온 것일까?
서서히 혈교주는 맞아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지 전신을 감싸고 있는 혈기가 정말 지랄 맞게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모용백과 매화장주는 아예 피신하듯이 뒤로 물러나고.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었던 우리도 일어나서 때때로 날아오는 뜨거운 열기를 손으로 쳐냈다.
가만히 위치를 고수한 채로 구경하는 사람은 교주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천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끝이냐? 더 발악해라. 주둥이를 나불댈 때보다 훨씬 보기 좋구나.”
도발이 제대로 먹힌 모양인지 혈교주의 등에서 핏물로 된 파도 같은 것이 거대하게 솟구치더니 수십 갈래의 채찍으로 쪼개지면서 천악을 뒤덮었다. 동시에 이제야 뽑은 혈교주의 장검에서 새빨간 검강이 벼락 치듯이 쏟아졌다.
이것을 어찌 비무라고 하겠는가?
처맞지 않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혈교주의 정신 사나운 공격은 천악이 손등을 한 차례 휘두를 때마다 커다란 붓으로 공간을 지운 것처럼 소멸했다. 싸울 때는 마냥 무식해보이지도 않았다.
일부는 보법으로 피하고, 전진하고, 후려치는 동작으로 거리를 바짝 좁힌 천악이 처음으로 손바닥을 내보이더니 장력을 쏟아냈다. 이제 보니까 장력의 방향이 우리를 향해 있지 않았다. 거리를 여러 번 바꾸면서 장력을 쏟아낼 기회를 기다렸던 모양새랄까. 검을 휘둘러서 막아내던 혈교주의 몸이 튕겨나가더니 공중에서 수직으로 뚝 떨어졌다.
혈교주의 검에 검사(劍絲)로 추정되는 절기가 모였다. 검기의 상위 기예이기도 하고, 검강의 변형이라고 부르는 문파도 있다.
천악은 혈교주가 절기를 준비하는 사이에…….
그냥 걸어서 다가갔다.
경험이 많아서 저런 것일까. 아니면 절기를 아예 뭉개듯이 무시할 생각인 걸까.
천악이 말했다.
“……해봐라.”
혈교주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자, 새빨간 실타래가 채찍 여러 개를 묶은 것처럼 한데 뭉친 모양새로 떨어졌다. 이렇게 보니까 거대한 채찍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히 후속 변화가 있는 공격이었다.
순간, 내 눈에도 천악이 절기를 사용하는 게 보였다.
복합적인 대응이었다.
폭발에 가까운 진격, 검사의 일부는 장력과 호신공으로 아예 튕겨내고, 혈교주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이에 간격을 없애듯이 접근하더니 혈교주의 팔을 붙잡고 이내 다른 손으로는 거의 동시에 멱살을 틀어쥐었다.
혈교주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떴다가…….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에 처박혔을 때 혈교주의 몸도 파묻힌 상태. 충격에 의해서 땅이 움푹 파였다. 문제는 천악이 혈교주의 멱살을 아직도 붙잡은 상태였다. 다시 혈교주를 끌어올린 천악이 방향을 바꿔서 땅에 다시 처박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딱히 말릴 사람도 없었다.
통천방에서 사고쳤던 것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는 것일까?
당연히 혈교주도 고수였기 때문에 호신공을 써서 버티고 있겠지만 몇 차례 더 이어지면 이내 숨이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붙잡힌 상태에서 펼치는 혈교주의 반격도 허우적대는 것에 가까웠다. 다시 이리 처박히고, 저리 처박히자 완전히 축 늘어진 채로 들어올려졌다.
뜻밖에도 먼저 모용백이 말했다.
“선배님, 비무였습니다. 화를 좀 푸시지요.”
매화장주도 용기를 내서 거들었다.
“선배님, 그래도 혈교주께서 선배님보다 약한 것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도전하면 인정하시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제야 백의서생도 나섰다.
“그만하게. 싸움 자체는 정당했네. 문주 말대로 광증을 겪고 있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천악이 그제야 대답했다.
“아, 광증이라…….”
천악은 멱살을 붙잡은 채로 눈높이를 맞추더니 혈교주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러냐? 그놈의 광증이 꽤 기회주의자처럼 발현되는구나. 적어도 문주 놈은 내 앞에서도 함께 터져서 죽겠다고 협박하던데 말이야. 그 정도는 되어야 광증이 아닐까 싶은데.”
멱살을 붙잡힌 혈교주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천악을 바라봤다.
“……그러냐? 나는 일월광천을 못 익혀서 그건 좀 아쉽구나.”
그제야 천악이 콧방귀를 한번 내뱉더니 멱살을 놔주고, 혈교주는 곧장 바닥에 허물어졌다.
이 상황을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다.
혈교주는 입만 살아있는 상태였다.
모용백이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천악에게 양해부터 구했다.
“선배님, 좀 살펴보겠습니다.”
혈교주의 상태를 확인한 모용백이 혈교주를 등에 업더니 장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혈교주의 입에서 떨어지는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뜻밖에도 백의서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때 마교주의 수하였던 혈마가 천악에게 처맞았으니, 이제 자신이 마교주에게 처맞을 것이란 예상을 한 것일까?
세상일이란 이렇게 돌고 도는 법이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진 것 같아서 내가 좀 떠들어봤다.
“봤어?”
맏형과 색마가 나를 쳐다봤다.
“뭐가?”
나는 혈교주가 질질 흘려서 만들어낸 핏자국을 가리켰다.
“저것 봐라. 혈교주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내가 피똥싸개라고 했어, 안 했어. 백의한테 패배하고 나서 그냥 졌소, 한마디면 될 것을……굳이 처웃다가 시비나 걸고 과거 행적이나 밝혀지고. 처맞고, 피똥싸고. 사람 참……. 숨은 붙어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화산까지 와서 이 피똥 싼 흔적은 어떡하지? 내일 치우라고 할까. 자기가 싼.”
색마가 침착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었다.
“그만해. 이상하게 불경을 듣는 거 같으니까 그만해라.”
처맞아서 피똥을 싼 사내마저도 비난할 수 있는 사내, 그것이 나다.
“역시 피똥싸개 걱정은 똥싸개.”
“알았어. 내가 똥싸개다. 알았다고. 그러자고. 네가 이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색마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