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06
◈ 106화
NPC 크록.
아마 이놈을 처음으로 만난 곳은 마일드 왕국일 것이다.
‘레벨이 190일 즈음이었나.’
C급 던전 마일드 왕국.
분명 왕국을 침공하는 몬스터를 퇴치할 뿐인 단순한 시나리오의 던전이었다.
왕국 NPC와 합심하여 성을 수호하기만 해도 충분히 공략 가능한 그런 던전.
하지만 강서준은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유는 변질된 왕을 숙청하기 위해서였다.
‘놈이 왕을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왕, 아니 왕인 척 연기하던 크록.
사사건건 퀘스트를 방해하고, 일부러 플레이어나 NPC를 사지에 몰아넣는 걸 보면서 의심했다.
이윽고 단서를 잡아내어 정체를 밝혔고, 결국 ‘히든 시나리오’까지 찾아냈던 기억이 난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그 얼굴도 진짜는 아니겠지.‘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NPC 출신인 이놈이 정말 한국인일 리는 없을 터.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를 잡아먹어 그 형태로 변한 것일 테니까.
‘빌어먹을. 대체 얼마나 잡아먹은 거지?’
포식의 권능.
고롱이의 변신 스킬인 ‘트랜스폼’을 닮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스킬이었다.
‘놈의 스킬은 일회성이니까.’
강서준이 마일드 왕국에서 크록의 정체를 어떻게 밝혀냈을까.
성내에서 의문의 실종 사건이 자꾸 발생하기에, 이를 역추적하다 보니 왕에게 닿은 것이다.
‘놈은 변신 상태를 유지하려면 관련된 것을 계속 먹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인간 형태를 유지하려면, 인간을 주기적으로 먹어 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새로 변할 때까지 영구성을 띠는 고롱이의 트랜스폼과는 다른 스킬이었다.
‘결국 그 방에 있던 시체는 환상이 아니라는 거지.’
서울이 게임이 된 이래로 저놈이 언제 인간을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시체들이 전부 놈에게 잡아먹힌 인간의 수라고 친다면.
‘못해도 100은 넘을 거야.’
크록은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검을 뽑아 들면서 말했다.
“네놈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뭐?”
“또한 되살아난 공포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는 눈빛에 잔떨림이 없었다. 그 시선 속엔 ‘공포’라는 감정은 담겨 있지 않은 것이다.
놈이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다만 지금은.”
순식간에 놈의 인영이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자, 코끝으로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났다.
본능적으로 검을 맞대었다.
“쓰러트려야 할 적일 뿐.”
채애애앵!
놈이 휘두른 대검이 묵직하게 정면을 압박해 왔다. 그다지 크지 않았던 체구에 비해서는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강서준은 마력을 집중시켰다.
“공포라…… 그건 마음에 드는데.”
이번엔 강서준의 차례였다.
[스킬, ‘마력 집중(E)’을 발동합니다.]한껏 뽑아낸 마력이 놈의 대검을 밀어냈다. 또한 속도를 높여 놈의 전신에 얕은 찰과상을 입힐 수 있었다.
동시에 다른 손엔 ‘파이어볼’을 두르면서 말했다.
“근데 지금의 난 별로 안 무서워? 그렇게도 만만해 보이나.”
[조합 스킬, ‘파이어 익스플로전(F)’을 발동합니다.]콰아아앙!
그가 내지른 일격을 버티질 못하고 크록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놈의 대검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놈은 미련 없이 대검을 내던지며 말했다.
“아니, 네놈은 여전히 무섭지. 하지만 이젠 상관없을 뿐이야.”
그러더니 어디선가 활을 꺼내어 화살을 걸었다. 속사포로 쏘아낸 화살이 곡선을 그리면서 강서준을 향해 쏜살같이 다가왔다.
그뿐일까.
강서준은 주변의 마력이 요동치는 걸 확인했다. 곳곳에서 마법이 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 인간이 저리 다양한 스킬을 쓰다니. 아마 수많은 플레이어를 포식하면서 일시적으로 빼앗은 ‘스킬들’일 것이다.
놈이 단언하듯 말했다.
“절대자의 앞에선 너나 나나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걸!”
“……뭐?”
피이이잉!
쿵! 쿠웅! 쿠아앙!
창졸간에 날아온 화살을 피해 몸을 접었다. 그 간격을 노리고 날아온 칼바람이 강서준의 옷깃을 스쳤다.
마법과 화살이 겹치는 전장.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무협지의 스킬인 초상비조차 극성으로 발동해도, 고작 F급이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모든 스킬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깨에 한 발.
허벅지에 한 발.
등짝엔 폭발.
겨우 공격이 멈췄을 때는 이미 전신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뒤였다.
[스킬, ‘초재생(F)’을 발동합니다.]“후우…….”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크록을 노려봤다. 정면에서의 놈은 이미 사람의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쪽 어깻죽지를 뚫고 나온 새빨간 날개. 등허리에서 삐져나온 꼬리.
마지막으로 도마뱀처럼 툭 튀어나온 입.
“그 모습 오랜만이네.”
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이어졌다.
공중을 날기 시작한 놈이 꼬리를 마치 제 손처럼 휘두르며 공격을 가했고, 마법과 검, 각종 다양한 기술이 동시에 강서준을 공략했다.
꽤나 익숙한 패턴이었다.
‘이건 마치…….’
소싯적 ‘케이’를 상대하는 느낌이 아닌가. 다양한 스킬들의 조합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게 거슬릴 정도였다.
일순 동시에 폭발하는 스킬의 향연은 절로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하지만 한계가 있을 거야.’
강서준은 공격을 일체 포기하고 회피에 전념했다. 어차피 놈의 스킬을 쓰면 쓸수록 그 내용이 소모되는 일회성 스킬.
이대로 놈이 먹어 댄 것들만 소화시켜도, 빈껍데기인 놈을 쓰러트릴 수 있다.
그게 놈을 공략하는 방법이었다.
“같은 방법을 쓰는구나?”
문제는 크록도 드림 사이드의 2회 차라는 사실이다.
놈은 허공에서 검은 연기를 띄우며, 그 자리에 갇혀 있던 무언가를 꺼내어 먹었다.
사람이었다.
“말했잖은가. 준비가 필요했다고.”
그 준비가 이 준비였나…….
강서준은 침음을 삼키며 새롭게 추가된 매직 미사일을 피해서 몸을 던졌다.
이대로면 놈의 스킬이 떨어지는 것보다 그의 체력이 먼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강서준이었다.
“정면 승부밖에 방법이 없겠어.”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이매망량’을 발동합니다.] [장비 ‘도깨비 왕의 반지’의 전용 스킬, ‘도깨비 불’을 발동합니다.]온몸에 도깨비갑주를 덮어 쓰고, 재앙의 유성검 위로는 푸른 도깨비 불꽃이 타올랐다.
강서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모두 날 엄호해.”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백귀들이 그의 주변에 섰다.
로켓과 라이칸은 한 세트처럼 뭉쳤고, 오가닉은 굳건한 보스 몬스터처럼 크록을 노려봤다.
그리고 크록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마그리트 님께 영광을…….”
그러자 놈의 전신은 붉은색 용의 비늘로 가득 뒤덮였다.
용아병의 최종 단계.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네놈이 부활했으면 마그리트 그놈도 부활한 거겠지.”
“감히 네놈이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야, 크록아.”
강서준은 대뜸 말을 잘라먹으면서 물었다.
“네가 말한 절대자가 혹시 마그리트는 아니지?”
“……?”
“그렇다면 넌 아주 큰 착각을 하는 거야.”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의 스킬마저 발동시켰다. 붉은 연기가 금세 유성검으로 흡수됐다.
푸른 도깨비불 사이사이로 붉은 에너지가 한 올 한 올 피어올랐다. 제 피를 먹여 더욱 강화된 재앙의 유성검이 슬슬 발아하고 있었다.
“마그리트. 그 새끼 용은 절대자가 아니야.”
“……네놈이 어찌 그분을.”
“그 새끼도 결국 나한테 뒈졌으니까.”
“뭐?”
해츨링 마그리트.
레벨 400쯤이었나.
A급 던전 중 용과 관련된 ‘해츨링의 요람’에서 그는 마그리트라는 건방진 레드 드래곤을 잡아 죽였다.
‘약한 놈은 아니었지만.’
아직 진짜 용으로 각성하지 못한 놈이었다. ‘용의 무기’가 없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개체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다지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준 놈도 아니었다.
흔한 몬스터 중 하나였지.
“그, 그럴 리가…… 어찌 그분이.”
“그야 네가 알 턱이 없겠지. 네가 죽은 건 한참 전이니까.”
부활한 이후로도 마그리트가 곧이곧대로 사실을 밝혔을 리는 없다. 그 오만한 용 새끼의 주둥아리가 인간에게 개발렸노라고 말하진 않을 테니까.
강서준은 은근한 눈으로 재앙의 유성검을 내려다봤다.
그래. 그때도 이 검으로 찔러 죽였지.
“어쨌든 마그리트가 네놈 뒷배라는 거겠지. 그거면 됐다.”
물론 컴퍼니라는 거대한 세력의 뒷배로 보기엔 ‘마그리트’ 한 놈으로는 모자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가 아직 이 세계에 현신할 것 같진 않았다.
그놈들도 부활했다면 언제고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즉, 당장 이곳에 영향을 주는 놈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을 치라면 ‘마그리트’일 것이다.
강서준은 약간 벙 찐 얼굴의 크록에게 말했다.
“결국 내가 죽인 놈들은 하나같이 전부 부활했다고 봐도 되려나.”
크록의 상태를 보아하면 기억까지 보존되는 듯했다. 가장 골치 아픈 점이었다.
‘하긴, 현 세계에 컴퍼니가 너무 빨리 자리를 잡긴 했어.’
놈들의 규모는 대한민국의 정부와 연결된 아크보다도 컸다. 강서준은 늘 그게 이상했었다.
이미 세력이 있던 대한민국보다 더 빨리 세력이 커지는 회사라.
단순히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 됐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모자랐던 것들이었다.
‘경험자가 있다면 말은 달라지지.’
플레이어만이 2회 차가 아니라면.
NPC 그리고 특수 개체에 해당하는 초엘리트 몬스터의 경우에도 이번이 2회 차라면.
더욱 순조로웠을 것이다.
“……으으! 그럴 리가 없어! 마그리트 님은 이 세계의 절대자!”
크록이 부정하며 바로 날개를 접어 날아왔다. 비행 속도가 마하를 넘어섰는지 소닉붐마저 일어났다.
“글쎄. 아니라니까?”
콰아아아앙!
피하지 않고 맞부딪쳤다.
오만이 아니었다.
‘이매망량’과 ‘재앙의 유성검’을 멀쩡한 상태에서 전부 발휘하니, 생각보다 훨씬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크록 정도는 두렵지 않았다.
‘이거 내가 너무 흥분했네.’
동시에 오가닉의 창이 놈의 허리를 찌르고, 라이칸이 휘두른 방망이가 머리를 노렸다.
약간의 생채기가 늘어났다.
“비켜라!”
크록의 꼬리가 빠르게 휘둘러지며 오가닉과 라이칸을 밀어냈다.
대신 틈이 생겨났다.
푸우욱!
재앙의 유성검이 놈의 비늘을 꿰뚫었다. 서늘한 절삭음이 귀에 내려앉을 즈음엔 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커헉……!”
근데 놈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잡았다.”
“뭐?”
놈은 재앙의 유성검이 두렵지도 않은지 더욱 강서준에게 접근했다. 찔린 부위에서 피가 흡수되면서 더더욱 재앙의 유성검이 신이 난 듯 검신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놈은 다가왔다.
오히려 죽는 게 영광이라는 듯 희열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넌 그분을 결코 이길 수 없느니라. 너의 오만함 또한 미리 알고 계셨으니.”
“……뭐 하는 짓이야?”
문득 강서준의 전신으로 검은 연기가 뒤덮이고 있었다. 그 속에 숨겨졌던 마그리트의 의지도 보였다.
이놈, 지금 자신을 먹으려 한다.
[용아병 ‘크록’이 ‘포식의 권능’을 발동합니다!]“……마그리트 님께 영광을!”
“크윽……!”
그리고 강서준이 말했다.
“……이라고 할 줄 알았냐.”
타아아아앙!
별안간 쏘아진 마탄이 크록의 옆통수를 가격했다. 단단한 용의 비늘이 일그러질 정도의 공격력이었다.
놈이 당황했지만, 정작 신경 쓸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으라차!!”
순식간에 앞으로 내달려든 사내가 크록의 꼬리를 꽈악 움켜쥐었다. 크게 반원을 그린 크록은 볼품사납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콰아아앙!
그때에도 크록은 본인이 무슨 상황에 빠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강서준은 자신의 몸을 엄습하던 어둠을 다소 신경질적으로 털어 내면서 말했다.
“거 봐. 마그리트 그놈이 얼마나 허접한 놈이면 이 무기의 성능조차 제대로 모르냐?”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블러드 석션’을 발동 중입니다.]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은 ‘블러드 석션’은 본래 피를 흡수하여 검을 강화하는 스킬.
그리고 이 스킬의 부가적인 기능은 상대의 피를 흡수하면서, 상대의 스킬에 간섭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설령 ‘환상’일지라도.
강서준은 주변으로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들 지친 얼굴이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
크록이 피를 토하며 말했다.
“끄, 끝이라고 생각 마라. 게임은 계속될 테니…….”
곧 죽을 놈이 재수 없게.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아니, 다음은 없어.”
재앙의 유성검이 크록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이번에야말로 이 게임의 진짜 엔딩을 보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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