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e 1 RAW novel - Chapter 1
1. 물난리
아버지가 TV에 나왔다. 그것도 지역 뉴스에. 엄마와 나란히 황토방의 아랫목에 앉아 있던 수연은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였다. 화면 속, 면사무소에서 나누어 준 초록색 캡모자를 쓴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것은 물난리다.”
저수지의 제방을 가리키는 동만의 얼굴이 결연했다.
“제 생각은 그려요. 아니, 이게 무슨 지하수라는겨. 내 보기에는 지금 저수지 물이 좔좔 아니 콸콸 새는 것인디.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면사무소에 알렸더니 걱정을 말랴. 봐유, 이게 지금 땅에서 솟는 걸로 보이나.”
물이 새는 지점을 가리키는 아버지의 얼굴 아래로 ‘주민 이동만’이라는 글씨가 떴다. 수연의 엄마인 정자가 황토방 창문 쪽으로 목소리를 높여 동만을 불렀다.
“여보, 수연 아빠. 뭐 해, 여태 기다려 놓고. 다 지나가겠네.”
물이 제방을 타고 자꾸 흐르는 것이 영 심상치 않다 말을 했던 것이 지난주. 저수지 제방 경사면에 접한 아로니아밭에 물이 흥건해진 것이 이번 주 초.
며칠 전에 면사무소에 알리고 시청 담당자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도통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만은 도무지 안 되겠는지 그제 아침 지역 방송국에 제보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고 있겠지. 아까부터 이장님이랑 통화하던데.”
수연은 대답하며 담요를 끌어당겨 무릎을 덮었다. 정자가 수연의 앞으로 딸기가 가득 담긴 그릇을 밀어 주며 말했다.
“하여간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어서는.”
정자가 제일 크고 예쁜 딸기를 포크로 쿡 찔러 수연의 입에 들이밀었다. 수연은 입을 벌리는 대신 포크를 잡았다. 딸기 끝을 조금 베어 먹고는 다시 그릇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고 정신이 투철한 건 좋은 거야. 밭이 흥건할 정도로 물이 새는데.”
“물이 새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덜컥 뉴스에 제보를 해. 담당 공무원은 얼마나 곤란해지겠어. 나랏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박에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자기 딸도 공무원인데 그 정도 이해심이 없어서 어떻게 해.”
수연은 엄마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 딸 지금 1년째 놀고 있는데요.”
“자랑이다. 누구는 신고를 해도 안 나와 보는데 넌 뭘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병까지 걸려선. 세상에 결핵이 뭐야 결핵이.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병에 걸려. 빨리 딸기 하나 더 먹어.”
갑자기 화살은 왜 이리로 돌아오는지.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까닭에 딸기는 대충 먹는 시늉만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른 것 같다. 수연은 포크를 들어 딸기를 찍었다.
“그 많은 직원 중에 너만. 이수연이만.”
정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수연을 바라봤다. 수연은 엄마의 시선을 피하며 딸기를 입에 넣고는 괜히 목덜미를 긁었다. 휴직 이후 9개월째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지만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작년, 기침이 유난히 심했던 계약직 직원이 결핵으로 판정이 나면서 사무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전부 불려 가 검사를 받았는데 그중 수연만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도 판정인데, 의사가 덧붙인 말이 수연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체력이 약하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더 잘 걸린다나 뭐라나. 부모님이 아무리 성화를 부려도 같이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수연은 머쓱하게 웃으며 정자에게 말했다.
“덕분에 푸욱 쉬잖아.”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바로 1년간의 병가를 썼다. 결석을 해 본 적도 없고, 휴학을 해 본 적도 없는, 1년에 1주일 정도의 휴가가 그나마 긴 휴식이었던 수연에게는 평생에 처음 있는 긴 공백이었다.
“쉬면 뭘 해. 세상 세상 그렇게 독한 약을 매일 먹어서는 토하고 쓰러지고 넘어가고. 그 약 먹다 골로 갈 뻔했는데.”
원래부터 아주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골골거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결핵 약이 어찌나 독한지, 잘 먹어야 한다는 말에 이 악물고 밥을 먹었는데도 살이 쭉쭉 빠졌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골로 가지 않습니다만.”
덤덤한 농담에 정자가 수연을 흘겨보다가 그때 생각은 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 번은 못 할 짓이지. 어휴.”
정작 약을 감당하는 수연은 의연한데 옆에서 부모님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토하면 토한다고 울며 등을 두드리고, 피부가 뒤집어지면 내 딸 얼굴에 흉이 지면 어떡하냐며 한걱정, 어지러워 주저앉으면 이러다 사람 죽겠다고 울상이었다.
“어쨌든. 다 나았는데 뭘.”
수연은 딸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나으면 뭐 하냐고. 몸에 진기가 요만큼도 안 남았다잖아.”
성실히 약을 삼킨 덕분에 완치 판정도 빠르게 받았으니, 한 달 정도만 쉬고 복직을 신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충청남도에서 제일 용하다는 한의사 할아버지가 수연의 맥을 짚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순간, 복직은 물 건너가 버렸다.
“그거야 치료하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고. 차차 좋아지고 있잖아.”
“그러니까 딸기 하나 더 먹어.”
엄마와 떠드는 사이, 화면 안에선 아버지가 급한 손짓으로 흙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흥복 저수지의 제방 경사면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 앞에서 기자는 몹시 진지한 얼굴로 멘트를 했다.
“담당 기관의 안일한 대응으로 일간 추정 5백 톤이 넘는 물이 며칠째 유실되고 있습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엄격하고도 근엄한 표정으로 기자가 마무리 멘트를 마친 뒤에서야 아버지 동만이 황토방으로 들어왔다.
“벌써 끝난겨?”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만이 아쉬워하는 찰나, 다시 요란하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이, 박성춘이. 웬일이여. 아아, 뉴우스? 본겨? 그렇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니께.”
동만이 전화를 받으며 수연에게 찡긋 윙크를 했다. 수연의 무릎에서 흘러 내려간 담요를 다시 올려 덮어 주고 방바닥을 짚어 본다. 한겨울보다 날 풀리는 요맘때가 더 으슬으슬 몸이 시리는 거라며, 동만은 별채로 지어 놓은 황토방에 장작을 부지런히 넣었다. 따끈따끈한 바닥을 확인하고는 딸기를 집어 수연에게 내밀었다.
‘먹었어.’
입 모양으로 대답을 하는 수연에게 동만이 더 먹으라 손짓했다. 수연은 입을 벌려 딸기를 깨물면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야지. 이장이 내일 마을 회관에서 보자고. 난리 났지 뭐. 시청에 도청에 농어촌공사에 난리났댜. 지금? 아, 이 사람아 이 시간에 무슨 막걸리여.”
동만이 슬쩍 정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길게 끌었다. 신고부터 제보까지의 길고 긴 무용담을 풀어놓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니, 나야 뭐.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우리 집?”
동만이 어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정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 집은 안 되지. 우리 마나님 쉬셔야지. 그리고 시방 우리 사무관님께서 내려와서 쉬는 중이여. 그려, 우리 큰따님. 그려, 대한민국 최고 대학 한국대 나온 우리 공주님.”
동만이 수연을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지 말라 만류를 해도, 사무관이니 한국대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덧붙이는 아버지의 습관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서른둘의 나이에 공주님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32년을 들어도 여전히 창피한 애칭에 수연은 한숨을 삼키며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려. 오늘은 홍관네서 만나. 그려.”
통화를 마친 동만이 옷걸이에 걸린 외투를 입고는 주머니를 더듬어 차 키를 찾았다.
“트럭 가져가게? 오늘 세호 없어.”
“세호 안 들어왔어?”
“민호한테 갔다고 아까도 말했는데. 하여튼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세호도 없는데 무슨 술이야.”
가든 일을 돕는 막내 세호는 고향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자식이었다. 맏딸인 수연은 서울 청사에서 근무를 했었고, 둘째 민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든든한 대리 기사가 부재중이라는 말에 동만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간 김에 홍관네서 자고 오지 뭐. 문단속 잘하고, 요맘때가 더 추워. 이불 꼭 덮고 자고.”
동만이 방문을 닫으며 좁아지는 틈으로 손을 흔들어 모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연은 슬쩍 손을 올렸다 내리는 것으로, 정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다시 TV에 시선을 주었다.
“하여튼 그저 술자리라면 빠지질 않아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수연아 7번. 7번 틀어 봐.”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채널을 맞추고 수연은 무릎에 턱을 괴었다. 밖에서 부르릉 트럭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나가는 것을 아는 진돌이가 웡웡 크게 짖었다. 트럭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수연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저수지에 새는 물이 뉴스에 나가다니. 담당 기관은 정말로 큰일이 났을 거다. 아버지가 방송국에 제보 전화를 거는 줄 알았으면 그것만은 하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수연이 네가 한번 말해 보겠냐는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었다. 아무래도 네가 말하면 귀 기울여 듣지 않겠냐면서.
아빠, 그건 좀 그래.
수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동만이 웃으며 알아서 하겠다고 했었다. 그때 그냥 이야기를 해 본다 할걸.
이제 혼이 나간 담당 직원들이 줄줄이 나와 보겠지. 물막이 공사를 하느라 복닥거릴 저수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연아, 고구마 먹을래?”
은박지에 싸서 아궁이에 넣어 놓은 고구마가 생각났는지 정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수연은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드라마 봐. 내가 가져올게.”
문을 열자 청량한 밤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수연은 문턱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적한 시골의 밤. 별은 반짝이고 공기는 청량하다.
“내일부터 시끄럽겠네.”
길 아래 저수지가 보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 시골 된장 백반과 민물 매운탕을 파는 곳. 어쩌다 가끔씩 저수지에 낚시를 오는 손님이 머물기도 하는 곳.
수연 가든의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