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Corpse-Collecting Warrior RAW novel - Chapter 291
성자(3)
화륵.
손등 위에 불꽃이 내려앉는다.
신성문신처럼 하얗게 빛나는 불꽃. 심문관들이 익히는 단마의 백염과도 유사한 이글거림.
불꽃은 손등의 신성문신을 따라 서서히 번져갔다. 마치 신성문신을 형태를 그대로 덧칠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작열통이 그 위를 덮쳤다.
“······!”
“···댈런?”
으득.
대답은 없었다.
이가 갈려나가는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입가를 따라 한 줄기 선혈이 주륵 흘러내렸을 뿐.
“댈, 런······.”
그 모습에 놀란 성기사의 눈망울이 고였던 눈물을 또륵 하고 흘려보냈다.
물론 댈런은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뇌리는 이미 타들어가는 격통에 잠식당하고 있었으니까.
‘···썩을. 이런 식인 줄은 생각 못했는데.’
시체를 회수하며 스킬을 습득한다 해서 당장 그 모든 원리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특히나 고유 스킬의 경우 완숙해져 원리를 통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형태인 흑마법이나 기적의 경우, 완숙해지더라도 온전한 인과를 역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번 역시 그런 경우였다.
고유 스킬인 광역 부활을 얻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가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시발 종교쟁이. 부활 스킬 찾으러 온 걸 알았으면 주의사항이라도 설명해주던가···!’
대가는 단순한 작열통을 넘어섰다.
신성 문신과 신성력을 태워 희생한다는 건, 그 효능과 산물의 반대급부를 대가로 치른다는 의미.
죽음을 무효화하는 역리를 행하는 데는, 또 다른 역리의 제물이 필요한 법이었다.
손에서부터 시작한 백염이 천천히 번져나가면서, 그 역리의 강도는 점점 더 잔혹해졌다.
뿌득!
손목의 문신에 백염이 붙자, 말아쥔 주먹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손목 안쪽에 새겨지는 신성문신은, 검을 쥐었을 때 악력을 더해주는 기초적인 효능을 가진 문신.
문신을 희생하는 대가는 손아귀 힘의 절제 없는 발산이었다.
그 결과는 단단한 육신만큼이나 강인한 힘에, 뼈가 어그러지고 근육이 찢겨나가는 현상.
치익······!
독성에 저항하는 문신에 불이 붙은 순간, 맹독에 닿은 듯 살점이 녹아내린다.
뚜둑! 뚝!
다리의 근골을 단단하게 해주는 신성 문신은, 이제 다리뼈를 쥐어짜고 슬개골을 으스러뜨렸다.
[댈런! 정신 차리거라! 의지를 집중해!]“······!”
치이이이이···!!
적창의 외침과 함께 용혈이 전력으로 작동했다. 무너져내리는 즉시 재생하기 시작하는 신체.
끊어진 힘줄이 순식간에 이어진다. 터진 위장과 창자가 봉합되며 오염 부위를 태우고 재생시켰다.
두개골 안이 곤죽이 되었다가 형태를 되찾고,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거세게 약동했다.
전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파괴와 수복. 실상 죽음과 삶을 끝없이 반복하는 행태.
신위를 뛰어넘은 육신은 이미 미스릴 병장기에도 상처 입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바. 그러나 그 철벽을 허물고 부수는 건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었다.
‘생각, 해보면, 이상하긴 했지···!’
선행 캐릭터로서의 육성 난이도와는 별개로, 성자의 능력치는 초월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었다.
악마 한둘쯤은 맨주먹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는 영웅이, 단순히 신성력과 기적을 소실했다 해서 용의 한 입 거리 간식으로 순순히 먹히는 건 이상한 일.
진룡의 재생력은커녕 자신보다 체력 수치마저 낮았던 성자 댈로스는, 대체 이 모든 고통을 어떻게 견뎌낸 것일까.
혼미해지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건, 이곳에 오기 전 나눈 문답이었다.
***
‘네가 지금껏 싸워온 이유는 무엇이냐?’
설산 앞, 댈런이 품은 의문에 대한 사내의 반문이었다.
궁금했었다.
어차피 영원궁전인지 어딘지로 돌아갈 거였으면서, 왜 악마의 아가리에 스스로의 몸을 들이밀었던 건지.
수백 수천의 지옥도를 돌아다니며 악마를 도살하고, 악신의 좌에 닿기까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투쟁에 바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댈런의 물음에 사내는 웃으며 되물었다.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야 소중···.’
소중하니까.
반사적으로 내뱉으려던 말은 또 다른 의문에 삼켜졌다.
지구에서의 자신은 일상의 소중함을 정말로 몰랐을까?
아무리 방구석에 틀어박힌 은둔자였기로 친구와 연인, 가족에 대한 애정을 아예 느끼지 못했던 걸까?
‘···아니.’
깨닫지 못한 게 아니었다.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 뿐.
소중한 걸 소중하다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건 한 걸음 더 나아간 의지가 요구되는 일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소중한 인연들. 행복을 느껴 마땅했던 일상.
과거와 지금의 자신을 나누는 건 무엇일까.
그건 감정이면서 동시에 가치관이고, 냉정한 성찰인 동시에 또렷한 의지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한참을 망설인 끝에 고른 단어는 진부했지만.
‘그래. 나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입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가장 정확한 답임을 느낄 수 있었다.
「광역 부활(廣域 復活)」
──────터엉!
파문이 퍼져나간다.
발밑에서부터 밝게 그려지는 백색의 동심원.
──────터엉!
핏발 선 눈으로 발을 들어 내리찍는다.
지면을 두드리는 발걸음에, 동심원의 영역이 더 넓게 퍼져나갔다.
백색 성역의 넓이는 파른과 루시아를 감쌀 정도까지 뻗어나갔다.
포식자의 저주에 잠식되어가던 루시아의 상처는 곧장 씻은 듯이 날아갔다.
“······아.”
앙다문 입술이 풀리고, 가녀린 탄성이 흘러나온 순간.
쩌적.
석상처럼 굳어버린 파른에게서도, 단단한 얼음이 깨지는 듯 희미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쩍―
시작은 머리칼이었다.
잿빛으로 굳은 머리칼이 금빛으로 물들어 나풀거리고, 이마와 뺨이 혈색을 되찾으며 눈꺼풀이 천천히 깜빡거렸다.
얼굴과 목, 가슴과 팔, 보다 아래쪽까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청년의 육신.
색깔을 빼앗겨 흑백으로 바래버린 장면이, 다시금 역동적인 색채로 물드는 광경이었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 듯, 천천히 내쉬어지는 깊은 날숨.
“―하아.”
“···파른?”
“예, 심문관님. 이거 설마 꿈은 아니겠죠?”
뺨을 더듬거리는 파른의 모습은, 다 큰 청년임에도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성역의 확장을 멈춘 덕에 고통에 조금이나마 적응한 댈런은, 그 순수함에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무리하지 말아라. 두 번은 안 살려준다.”
“알겠습니다.”
파른이 청년의 모습을 유지한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광역 부활은 치르는 대가만큼이나, 그 능력 역시 막강한 고유 스킬.
범위 안에만 있으면 저주와 부상을 전부 치유할 뿐 아니라, 부활하는 대상은 최상의 컨디션과 상태로 되살리기까지 했다.
사망한 지 몇 주 이상 지난 경우만 아니라면, 효과를 받는 대상자를 시전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점까지.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라는 순리를 정면에서 역행하는 스킬.
대가를 감안하더라도 정상을 벗어난 이 능력이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흑마법이나 기적처럼 다른 존재의 힘을 빌려오는 스킬은 이런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
사실 흑마법은 지옥에 가서 악마를 두들겨 패면 그 비밀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 그럼 기적은? 영원궁전에라도 가봐야 하나?
‘언젠가 뒈지면 알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어찌됐건 오늘은 아니었다.
쓸데없는 고민을 뒤로 한 채, 다시 한 번 발을 내리찍는다.
──────터엉!
다시 한 번 성역이 확장된다.
적응한 듯했던 격통이 더 크게 몰려오지만, 이를 악물고 발을 구른다.
──────터엉!
포식자의 시체까지 뒤덮은 성역.
동시에 수십에 달하는 정예 성기사와 병사 수백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 쿨럭!”
“나, 나 잡아먹힌···어라?”
“살았다! 살아있···!”
[조용─!]무너진 공터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전성.
한마디로 일대의 소란을 잠재운 목소리의 주인, 기사단장 에드거 라인하르트가 지체 없이 명령했다.
“전원 전투 준비. 자리를 사수하고 성자를 지켜라.”
──────터엉!
군말을 더할 여력은 없었다.
이마에 핏대 솟은 채 다시 한 번 성역을 넓혀나갈 뿐.
──────터엉!
“으헉!”
[···아버지.]공중에서 흐릿하게 튀어나와 우당탕 넘어지는 난쟁이와, 방금 잠들었다는 듯 스르르 눈을 뜨는 청린용.
──────터엉!
“댈런. 와주었구만.”
“감사드립니다.”
대마법사가 끌끌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는 동안, 그 제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터엉!
거리를 뒤덮고 건물을 집어삼킨다.
일대를 하얗게 물들인 신성력은 성벽을 넘어 금강궁과 황금 거리를 파고들었다.
시이잇···!
땅과 대기를 오염시킨 사특한 지옥의 마력이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맞부딪힌 지옥의 기운은 불에 탄 듯 전소되고, 건물과 땅에 자라던 내장과 눈알은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을 뿐.
──────터엉!
순은 구역의 광장과 여관들이 하얗게 물들고.
──────터엉!
술집 늘어선 청동 구역의 대로변이 정화된다.
청동 구역의 동서남북 지구 전체를 휩쓸고, 낮은 거리와 하수도마저 수복한 신성력은 마침내 청동 성벽에까지 닿았다.
성벽 위에서 병사가 되살아나 마물의 창에 찔렸던 가슴팍을 더듬고, 집과 함께 불타 죽은 가족은 마당에서 일어나 쓰러진 집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이들은 이내 전부 한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대도시 전역을 장악한 성역. 그 백광의 파도가 시작되는 근원지를 향해.
“···엄마, 하늘에 칼이 떠있어.”
빈민가의 한 아이가 중얼거렸다.
백금 구역의 상공에는 거대한 검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금강궁에서 휘몰아치는 핏빛 회오리와 대비되는, 새하얀 성광으로 불타는 백색의 검.
도시의 지옥 마력을 전부 몰아내고, 오염의 발산지인 핏빛 회오리와 붉은 하늘에까지 이빨을 드러내는 신성의 오오라.
“···어라?”
다만 당장에라도 붉은 하늘을 무너뜨릴 듯하던 신성력의 파동은, 어느 기점에서부터 서서히 줄어들며 제 영역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마치 죽은 이들을 되살린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전부 했다는 것 같은 모습.
─────·········.
거대도시를 뒤덮던 성역이 도시 규모로 줄어들고, 마을 크기를 지나 거리 하나 범위까지 갈무리된다.
이내 점으로 수렴한 성역의 중심에는, 한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온몸이 으스러진 채 가까스로 버티고 선 다리.
불에 전소된 장작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어깨.
“······푸흐.”
입을 열자 새하얀 증기가 용의 숨결처럼 쏟아져 나왔다.
천천히 들어올린 눈꺼풀 안쪽에서는, 세로로 찢어진 검붉은 동공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발, 두 번은 못해먹겠군.”
정적에 물든 공터 한가운데.
정예병과 성기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사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렸다.
“성자 새끼, 지옥에나 떨어졌으면.”
“···댈런. 당신은 참으로 전쟁신의 은총을 받은 성자로군요. 저 기사단장 에드거 라인하르트를 포함해, 전 성기사단은 당신의 명에 따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 사지가 쑤셔서 그런지 말이 좀 헛나왔군. 에낙사구스를 조지러 갈 시간이라는 이야기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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