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Corpse-Collecting Warrior RAW novel - Chapter 295
결전(4)
드드드드······!
지면이 들썩인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골짜기 절벽으로 굴러떨어지는 낙석들.
험준한 골짜기의 기암괴석 사이를 내달리며, 댈런은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혼자 괜찮겠소?’
‘시간만 끌 거다. 빨리 움직이기나 해라.’
그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바텐더의 얼굴.
‘이딴 곳에서 죽으면 우리 약속도 없는 거야. 선대 깃털 마녀의 시체는 영원히 지하궁전에서 썩게 되는 거라고.’
‘쯧, 하여간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타테앙카트처럼 쥐구멍을 파서라도 살아있을 테니 걱정 말아라.’
오랜 시간 함께한 마녀의 타박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황동빛의 진체를 드러내던 고룡의 자태.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저 너머의 산골짜기 사이에서 거대한 포효와 함께 진룡의 거체가 솟아오른다.
[――――!!]언령의 힘에 공기가 떨리고, 붉은 하늘이 호수처럼 물결친다.
하늘에서 교차하는 수십 줄기 용의 숨결.
서로를 빗겨나가는 붉고 푸른 마력과, 그 사이를 비틀어 관통하는 녹갈색 직선.
━━━━━━!
신비가 신비를 지운다.
수십 가지 권능의 파도가 언령의 선고 앞에 찢어발겨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비늘과 이빨. 찢긴 날개를 달고 추락하는 거체들.
비명과 주문으로 점철된 하늘의 전투를 등진 채, 일행은 처음의 속도를 잃지 않고 골짜기를 주파했다.
“저기다!”
바위틈 사이의 빛을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치고.
울렁─
차원문 같은 부정형의 통로를 일시에 통과한다.
“댈런, 비잘리나의 복수를 맡기겠네.”
끈적한 피의 바다와 시체의 산을 앞에 두고, 난쟁이의 결의를 뒤로 다시 한 번 달린다.
「영역 개방 : 원한을 쏘아올리는 왕가의 거병」
쿠구구구···!!
이전보다 배는 커진 거병의 포화가, 한때 쑴의 영역이었던 파멸궁전의 장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아카샤!”
거병 위에 올라탄 난쟁이의 환호성에 힘입어, 완전히 성장한 청린용의 숨결이 용암이 흘러넘치는 대지를 얼려버렸다.
냉기와 열기가 충돌하고, 갑주 위로 포탄이 내려앉는다.
꽈과광! 쩌저저저―!
포성과 열기를 등에 업고 다시 한 번 통로를 통과하자, 지독한 시취(屍臭)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이제 우리 차례구만.”
강처럼 흘러가는 피와 진물을 내려다보며, 시체로 뒤덮인 산봉우리 위에서 펠버가 말했다.
“뱀파이어 백작의 영토에서는 끝내 승부를 보지 못했었지. 무덤에서 일어난 녀석들과 못다한 싸움을 이어갈 시간이야.”
“거의 이길 뻔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노인장. 그 발언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소.”
“어허. 당시에는 체급 차이가 크지 않았나. 6위계에 올랐으니 지금부터가 진짜일세.”
우우우우······!
하늘을 수놓는 망자들의 귀곡성 아래에서, 주문만으로 반신의 위에 오른 대마법사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웅―!
발밑에서부터 구축되며 퍼져나가는 마법진.
황금빛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력 사이 약동하는 주문의 울림.
“엘르. 메멘토 라클리아.”
유려한 금빛의 곡선이 지면을 뒤덮은 뼛조각과 내장 위에 새겨지고.
수백 종류 상형문자들이 선과 선 사이 공백을 채우며 그 범위를 확장한다.
「영역 완전개방 : 태엽을 앞서감는 대지의 손」
사방으로 뻗어나간 영역의 힘이 곁에서 보조하던 청년 마법사에게 집중된다.
기억과 존재를 대지라는 개념으로 삼아, 과거와 미래를 읽어내는 것을 넘어 원하는 시점을 현실의 시간대에 고정.
성장기의 소년을 장성한 청년으로 만들어버린 경우와 달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전된 비기가 수 년 정도의 시간을 당겨온다.
오랜 싸움 속에서 덥수룩해진 금발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
정갈한 예복 위에 마탑의 갈색 로브를 차려입은 청년이, 손을 들어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엘르― 메멘토 엘레구스”
「영역 완전개방 : 태엽을 되감는 대지의 손」
반신의 위에 오른 스승의 발자취를 쫓아, 본인 역시 수 년 내에 같은 자리에 오른 것인가.
두 겹으로 덧씌워진 황금빛 마법진이 공명하며, 일대의 시간선을 뒤틀고 농락하기 시작한다.
「영역 공명」
「칠칠쌍륜개전(七七雙輪開殿)」
「만상일원포(萬狀一原砲)」
쿠과과과과―!!
저 멀리서 다가오는 시체 거인들을 향해 쏘아지는 수백 가닥의 황금빛 포격.
동시에 댈런과 루시아, 시에나의 몸을 감싼 마력이 세 사람을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몸조심하게, 댈···!”
공간 전이되며 끝까지 전해지지 못한 응원.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조금의 손실도 없이 그대로 전달되어 느껴진다.
“갑시다.”
도끼를 뽑아든 댈런은 눈앞에서 빛나는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울렁이는 시공간의 괴리감. 짧은 통로를 지나쳐 발을 디딘 곳은 드넓은 전당이었다.
츠즈즈즈······.
아스라이 부스러져 떨어지는 별빛의 향연.
수십만 개의 별이 빼곡하게 뒤덮은 천구 아래, 십자 형태로 교차하는 십여 미터 너비의 좁은 외길.
“댈런, 여긴 백안의 선각자의···.”
[도착했구나, 필멸자들이여.]날카로운 전성이 천구 아래를 아득하게 메웠다.
댈런은 망설이지 않고 도끼를 던졌다. 공간을 빗겨낸 도끼가 희끗거리며 사라지고, 이내 수백 미터를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주군의 신묘한 안배 아래 움직이는···자, 잠시아악!]도끼날이 번쩍인 도착지는 새대가리 괴수의 부리 앞이었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번쩍이고, 거대한 악마의 몸뚱이가 바람에 휘말린 나뭇잎처럼 붕 떠서 날아간다.
[끄아아아―!]부리 위에 도끼를 꽂은 채 날아간 대악마는 십자로 뻗은 길 옆의 공허로 추락했다.
점점 멀어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뭐였습니까?”
“아부 잘하는 새대가리.”
“예?”
“에낙사구스 직속 대악마요.”
“···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
방해꾼이 사라지고 나서 일행은 천구에 뒤덮인 전당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여유는 많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낙사구스는 일곱 번째 구역을 차지한 채, 끊임없이 결계의 핵을 장악하려 하는 중일 터.
놈이 성공하는 순간 도시 전역이 지옥으로 뒤바뀌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이하고 말겠지.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전당에 남겨두고 온 동료들을 위해 서두르는 게 맞았다.
“···찾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그런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단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분명 새로운 출구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
위쪽의 천구와 아래쪽의 공허 사이에 십자로 난 길이 매달린 이 전당은, 금강궁에서도 백안의 선각자 알리아트가 기거하는 전당이었다.
시간을 노래하는 별들의 연회장.
물의 신 시셀라의 화신체를 집어삼킨 영역의 모습을, 그대로 본따 지상에 고정시킨 예언자의 처소.
“다른 전당으로 이어지는 출구나, 아니면 일곱 번째 구역으로 건너가는 통로라도 있어야 할 텐데······.”
“적어도 다른 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어. 금강궁의 다른 초월자들과 달리, 알리아트의 영역은 계승받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 본인의 소유였으니까.”
십자로 뻗은 길 저 아래, 까마득한 공허를 내려다보던 시에나가 말했다.
“다른 전당들이 지옥의 모습에 침식당한 건, 더이상 그 영역의 원래 주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제대로 계승받았다고 해도 분명히 조금은 틈이 생길 수밖에 없어.”
“······뭐?”
“하지만 이 천구의 주인인 알리아트는 도시를 만들기 이전부터 살아온 괴물이야. 아무리 에낙사구스라도 오염시킬 수 없었을 테고, 당연히 요새화된 스물여섯 전당에서도 가장 마지막 순서로 빼뒀겠지.”
“······.”
‘이 주문쟁이가 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눈으로 댈런에게 고개를 돌리는 루시아.
다만 시에나의 의견 자체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원래라면 느슨하게 이어져있어야 할 전당들이, 대여섯 개씩 합쳐진 채 대지옥의 모습으로 변질된 게 대체 뭘 의미하는가.
이 흉물을 만든 에낙사구스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놈의 의중을 거꾸로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낙사구스는 금강궁을 점령하자마자 대부분의 악마를 불러들여 전당들을 요새화했지.”
댈런은 턱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놈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라는 소리요.”
시간.
시간에 쫓기는 건 댈런과 일행만이 아니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봤을 때, 에낙사구스에게 댈런은 그동안 자신의 계획을 번번히 훼방 놓던 요주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온 저력이 미궁도시 팔시온에 결집하고 있는 와중에, 그런 요주의 인물이 자취를 감춘 걸 보고 놈이 할 생각은 하나뿐이었을 터.
‘어딘가에서 힘을 키우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단순한 초월자의 위계를 뛰어넘어, 악신과 그 대지옥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준비.
에낙사구스가 대륙 외곽부터 세력을 불리며 침공을 이어가는 대신, 미궁도시를 곧장 공격한 것 역시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놈의 입장에서 대륙을 반쯤 집어삼킨 시점에, 준비를 마친 댈런이 돌아와 미궁도시와 힘을 합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전개일 테니까.
그런 맥락에서 이미 도시를 완벽하게 함락했음에도, 혹시나 돌아올지 모르는 댈런에 대해 추가적인 대비를 한 놈은 그야말로 책략의 귀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금강궁과 스물여섯 전당의 요새화는 놈의 입장에서도 시간을 버는 용도였다.
혹시나 댈런이 돌아왔을 경우, 일곱 번째 구역을 완전히 손에 넣을 동안 그를 저지할 방어선을 만들어둔 것.
‘그리고 요새화의 기본 중 하나가, 통로를 하나로 좁히는 거지.’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라 하더라도 출입구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출입구라는 건 근본적으로 요새의 약점이기도 한 바.
동서남북은 물론 암문과 샛길까지 뚫려있는 도시보다, 단 하나의 도개교와 성문만이 존재하는 성채의 방어가 견고한 건 당연한 이야기다.
에낙사구스가 느슨한 거미줄처럼 얽힌 전당의 통로들을 전부 정리하고, 스물이 넘는 전당을 단 넷으로 합쳐 길을 강제한 것 역시 그 때문이겠지.
‘요새화가 목적이었다면 전당을 침식한 대지옥은 통로를 지키는 요새 역할일 거다. 그렇다면 분명 여기가 마지막이 맞을 텐데.’
스물여섯 전당의 마지막이 이곳이라면.
일곱 번째 구역으로 넘어가는 통로 역시 여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터.
문제는 결계의 핵은 댈런 자신도 본 적 없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도시가 박살난 뒤에야 그 잔해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중에는 어딘가에 꽁꽁 숨겨진 건지 찾아볼 수조차 없던 장소.
스물여섯 초월자를 제외하면, 금강궁의 고위 귀족들에게도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던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천구를 올려다보던 댈런의 머릿속에, 문득 파른이 했던 이야기가 한 번 더 스쳐지나갔다.
‘금강궁을 무너뜨린 뒤, 에낙사구스는 하늘 저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 위로 올라간 뒤, 붉은 소용돌이를 도시로 내려뜨린 에낙사구스.
「회검(回劍)」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새대가리 악마를 후려친 도끼가 오른손에 쥐어진다.
[크아아악! 예언의 주인공! 네놈을 도끼와 함께 묻어버리겠다!]공허 저 아래쪽에서 울려퍼지는 새소리를 무시하고 도끼를 집어던진다.
휘리───
빛의 원반이 향하는 곳은 저 위쪽, 수십만 개의 별이 반짝이는 천구의 정중앙.
───쩍!
있는 힘껏 던진 도끼가 천구 한가운데 박힌 순간, 파문이 일며 숨겨진 공간이 드러난다.
어둑한 우주의 일부분이 마치 과일 껍질처럼 벗겨지며, 저 하늘을 향해 뻥 뚫린 구멍이 나타난 것.
쿠구구구구······!
사특한 기운이 구멍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와 천구에 휘몰아친다.
마치 이 자리의 모든 걸 으스러뜨리려는 듯, 천구의 공기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사악한 마력.
찡그린 시야에 구멍 바로 위쪽에 소용돌이치는 붉은 기운이 보였다. 하늘로 올라간 에낙사구스가 뻗어내렸다는 붉은 회오리였다.
이 압력을 뚫고 저기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할 즈음, 멀어졌던 새소리가 훌쩍 가까워졌다.
[단조로운 몸부림도 거기까지다, 예언의 주인공이여!]쿵!
공허에서 솟구쳐 십자로 뻗은 길 위에 착지하는 거체.
댈런의 도끼에 맞고 저 아래로 떨어졌던 새대가리 악마였다.
새와 인간, 뱀과 사자를 뒤섞은 모양의 악마는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킬킬 웃고 있었다.
놈이 부리를 쩍 벌려 갈라진 혀로 핏줄기를 핥으며 외쳤다.
[네놈이 바라보는 곳은 물리적인 하늘이 아닌 천상의 모방체! 단순히 날개가 달렸다 하여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라! 원본부터가 상승의 법칙이 아니라면 범접할 수 없는 장소인 바. 주군의 힘으로 그 법칙은 이미 망가진 지금···.]“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이야기군.”
[···엘, 뭐라?]“역시 중간 보스는 바로 잡으면 손해야. 적당히 패놓으면 알아서 단서를 가르쳐주는데.”
[···요사스런 혀로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대악마가 팔과 날개를 한껏 펼쳤다. 일렁이는 천구의 마력. 주문의 전조였다.
댈런은 피식 웃으며 발을 들어올렸다.
「영역 강림 : 거꾸로 솟아오르는 폭포」
가볍게 발을 구른 순간, 위와 아래의 개념이 뒤집히고.
「반전(反轉)」
둥실 떠오르기 시작하는 댈런의 모습을 본 새대가리 악마는, 주문을 쏟아내는 것도 잊고 부리를 떡 벌렸다.
“···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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