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d a tyrant from a slave trader RAW novel - chapter 59
“헤레이스. 앞으로는 절대 혼자 있지 마.”
“그래서 내가 헤레이스를 지켜주기로 했어.”
“아니야. 레이아스는 바쁜 것 같으니까 내가 헤레이스를 지켜줄 거야. 형. 레이아스한테 시킬 거 없어? 변경백을 맡기면 어때? 요즘에 국경이 흉흉하지 않아? 나는 레이아스가 그 일에 아주 적격일 거라고 생각해.”
쌍둥이들의 투닥거림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로젠비크가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내 옆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마. 무슨 일을 하건 내 옆에 있어. 용병들을 가르치는 건 이 녀석들한테 하라고 하자. 이제는 온종일 같이 지내는 거야.”
“하….”
쌍둥이들의 입에서 절망적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을 간과했었던 것이다.
헤레이스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젠비크는 신성제국으로 로이드를 보내 신관을 보내주기를 청했고 제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신성제국은 신성력이 아주 강한 신관을 보내주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 신관은 신성력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교황과 비견될 정도로 신성력이 강해서 신성제국의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다고 했다.
공공연히 퍼진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정보망을 가동한 결과 그런 소식들이 들어왔다.
로젠비크와 헤레이스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었다.
게다가 아주 어려서 로젠비크는 신관을 보자마자 한시름 놓았다.
쓸데없이 마성의 매력을 풀풀 풍기는 남자가 오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저렇게 어린 아이를 신관으로 세우기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키에르만 인잘로.
다섯 살의 신관은 찬란한 황금빛 머리카락에 신비로운 적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서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다고 했고 헤레이스를 지켜주러 온 그를 모두가 귀여워 해 주었다.
설마하니 그가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것은 마신도 마찬가지였다.
마신의 수난 시대가 갑작스럽게 도래했다.
* * *
마신은 인간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점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마계로 쉽게 돌아가지도 못했다.
대공을 죽인 것은 충동적이었다.
웬만해서는 자기가 한 짓에 후회를 하지 않는 마신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조차도 후회를 했을 정도였다.
그는 대공이 헤레이스에게 기억을 남겨놓고 갈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차원을 뛰어넘은 배신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대공이 남겨놓은 기억 때문에 헤레이스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5장
로젠비크 에버쿠젠은 명색이 황제라는 인간이 시도 때도 없이 헤레이스의 곁에 머물렀다.
헤레이스가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황제가 다른 일로 바쁘면 또 다른 에버쿠젠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들을 처리하고 헤레이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계나 마계의 존재는 인간계의 존재들에게 함부로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그들이 인간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들은 자그마치 대륙의 황족이었다.
로젠비크는 특히나 더 어려웠고, 레이아스와 루엔피스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제는 헤레이스도 신분이 바뀌어서 곧 황후가 될 터였다.
마신은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일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통에 한동안 혼란스러움을 갈무리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아직 인간계에 남아 있는 이유는 헤레이스의 죽음에 개입한 천신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천계를 압박하고 마계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그 일에 헤레이스를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일은 꼬여만 갔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얼굴은 써먹지 못하고 다시 바꿔야 했다.
헤레이스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 탓이었다.
헤레이스에게는 틈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제 설상가상으로 신성제국에서 웬 신관이라는 놈까지 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항마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신관은 헤레이스에게 몇 시간마다 한 번씩 성수를 뿌려줬는데 그것 때문에 마신은 헤레이스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무슨 신관의 신성력이 이렇게 강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헤레이스에게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서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인간들은 약한 주제에 쓸데없이 정을 많이 베풀었고 다른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기어이 그 일에 나서곤 했다.
마신은 헤레이스를 압박하기 위해서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는 게 좋을지 오랫동안 고민을 한 끝에 리카르도로 결정했다.
리카르도가 고난을 당한다는 걸 안다면 헤레이스가 가만히 있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리카르도 헤렌벤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신은 곧 그가 시간대마다 어디에서 뭘 하게 될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면 그는 혼자서 책에 파묻혔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을 보는 듯했고 엄청난 양의 일을 했다.
마계에도 그런 자가 있어서 마신은 익숙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기회를 노리던 그는 드디어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카르도의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리카르도가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들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고개를 들고 자기를 바라보고 누구냐고 하면서 당황하면 그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겁을 줄 생각이었는데, 처음부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는 도대체 고개를 들지를 않았다.
“거기에 두고 가.”
기척이 느껴지자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사각사각거리면서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리카르도 헤렌벤.”
마신이 싸늘한 소리로 그를 불렀을 때에야 리카르도는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자신의 집무실에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는 마신을 한번 보더니 그렇게 묻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분이 낮지 않은 리카르도의 이름을 그냥 막 불러버렸는데도 그는 화를 내지도 않았다.
마신은 혹시 그가 자신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리카르도가 그저 책을 보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건 마신은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들키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자 검은 물안개 같은 것이 그와 리카르도의 몸을 같이 감쌌다.
리카르도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그가 비명을 질렀지만 마신은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리카르도는 밧줄을 당겨 밖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마신은 그가 그러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흐릿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 * *
그들이 간 곳은 대공의 지하실이었다.
대공이 죽은 후 사람들이 대공저를 드나들었지만 지하실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감히 그곳에 들어가려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곳을 둘러싼 음산하고 강력한 마기는 결과적으로 대공의 지하실뿐만 아니라 대공저 전체를 감싸고 지켰다.
“리카르도 헤렌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리카르도를 원탁에 내려두고 마신이 물었다.
리카르도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건지 이해했다.
대공저의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은 숱하게 들었고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공포를 느끼기도 했었다.
리카르도는 자기가 마신에게 잡혀 그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 살아날 가능성은 없겠다고 느꼈다.
마신이 왜 자기를 그곳에 데려온 건지도 알 것 같았다.
자신과 헤레이스 님과의 친분을 이용해 헤레이스 님을 끌어 들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리카르도는 그의 뜻대로 되게 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붙잡힌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왜 자기가 선택된 건지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헤레이스의 주위에 있는 사람중 싸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로이드가 그와 조금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로이드는 전투 마법이 가능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리카르도뿐이었고 그 결과 그가 지금 그곳에 잡혀와 있는 거였다.
“나를 잡아서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리카르도는 그래도 의연하게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그동안 분에 넘치는 신임과 애정을 받아왔다.
헤레이스의 측근이라고 해서 마신에게 납치를 당해왔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일일 것이다.
헤레이스가 그를 아낀다고 마신에게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마신은 리카르도가 없는 용기를 끌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비웃었다.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네 시신을 헤레이스에게 보내야겠지. 헤레이스 아르시아가 겁을 먹고 내 말을 듣도록 말이다.”
“인간계에 와서 설치면 좋지 않을 텐데?”
리카르도가 설친다는 말을 하자 마신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감히 건방진 놈이 그따위 말로 자기를 도발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는 흔들렸다.
마신이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지옥 불이 둥실 떠올랐다.
그러나 리카르도의 몸을 바로 해치지는 못했다.
그것은 마신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인간계에 온 이상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다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사실 리카르도가 그동안 신관에게 성수를 받아 몸에 직접 뿌려오고 있어서 그런 거였지만, 마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리카르도는 누가 봐도 헤레이스의 측근 중에서 공식 최약체로 분류되는 사람이었기에 신관이 그도 특별히 챙겨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몸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리카르도는 일단 잡혀가 버리면 고생깨나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리카르도는 마신이 날린 불덩이가 자신을 확 살라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아무런 가능성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미련하게 고통만 당하고 죽느니 그냥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의 순간 희망이 보인 것이다.
신관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리카르도는 버텼다.
마신은 리카르도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았다.
뭔가 의지가 확실히 결연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마신은 리카르도가 함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연달아 공격을 날렸다.
그때마다 번번이 무언가에 막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명색이 마신이었다.
리카르도의 몸에는 점점 더 많은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곧 죽을 것처럼 치명적인 상처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오랫동안 방치가 된다면 그 상처들로 인해 죽을 가능성이 생길 것 같았다.
리카르도는 입술을 앙다문 채로 버텼다.
“이대로 돌려보내주는 것도 괜찮겠군. 아니면 헤레이스 아르시아가 스스로 여기에 찾아오게 만들까?”
리카르도는 자신이 결국 헤레이스의 발목을 잡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에 절망했다.
* * *
키에르만 인잘로가 짧은 다리로 토토토톳 바닥을 때리며 헤레이스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연무장에서 용병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헤레이스 님!”
키에르만의 다급한 목소리에 헤레이스가 즉시 멈추고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신관님?”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신관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고 있었다.
“리카르도 님이 안 보여요.”
“리카르도가요? 집무실이나 서재에 있을 텐데 거기에는 가 봤어요?”
“네. 거기에 가장 먼저 가 봤죠. 그런데 없어요.”
그리고 그는 헤레이스의 손을 잡아 끌었다.
헤레이스가 키에르만에게 잡혀 달려가는 동안 로젠비크가 그들을 발견했다.
귀족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연무장으로 헤레이스를 보러 가던 그가 헤레이스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