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62)
363화 신의 강림 (2)
김미소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평소 들어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음성이 맞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의 기괴한 소리.
하지만 회의실에 모인 모두는 머리에 박히듯 알아들었다.
[신수 안 잡고 뭐하냐, 다들? 오크 애들 많이 빡세냐?]“헉.”
“신탁이다!”
“오, 형님이? 유튭각이다.”
“나무관셈보살.”
“명진 스님, 불경을 외면 어떻게 해요?”
“으음. 실언했습니다.”
명진이 습관처럼 고개 숙이며 목탁을 두드리려는 걸 동수가 재빨리 손으로 막았다.
탁.
“다들 조용합시다.”
홍세희의 주의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김미소를 보았다. 은은한 빛에 휩싸여 하늘에 붕 떠있는 그녀의 모습은 신화 속 모습 그대로다.
신탁을 받드는 대사제의 표본이로다.
김미소는 생각으로 의지를 전달했다.
‘드래곤이 나타나 도시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드래곤? 몇 마리?]‘아직은 하나이온데, 그들을 소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시체의 탑이 여럿입니다.’
[으음……. 그거, 감당 불가능할 건데.]‘저희는 어떻게 하나이까?’
[오크. 오크만 잡아. 드래곤이 보이면 튀어.]‘신의 말씀을 받듭니다.’
파스스스.
김미소의 몸을 휘두르고 있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후우…….”
김미소의 입을 통해 삐져나온 긴 숨이, 그녀가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력을 소모했는지를 대변했다.
“작전 수립, 다시 하죠.”
조금 피곤한 기색의 김미소였지만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역할을 셋으로 나눕니다.”
김미소는 서민수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드래곤을 원거리에서 관찰하고 위치와 동향을 파악하는 조. 시체의 탑을 찾아 드래곤 소환을 방해하는 조. 나머지 하나는 오크 사냥 조로 편성하죠.”
서민수가 눈치껏 나섰다.
“드래곤 감시는 제가 하죠.”
“네. 좋아요.”
김미소가 생각해도 서민수 외에 그 역할에 어울리는 인물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모두 G등급의 대장들을 주축으로 팀을 짭니다. 이건 전면전이 아닙니다. 퇴로 확보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시체의 탑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수호 길드에서는 신의 사제나 기사로 임명된 이들을 G등급으로 불렀다.
반신의 경지.
거대 육상군주와 일대일 상대가 가능한, 규격외의 각성자 등급이다.
오로지 수호에 의해서만 발탁되는.
“그럼 팀이 너무 적은데요?”
용병들이 구백이 넘는다.
그런데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G등급 각성자는 부족하니…….
파팟.
“엇?”
그때 동수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음? 시주!”
옆에 있던 명진이 다급히 그를 붙잡아 목에 손을 짚어보니, 다행히 맥은 뛰고 있었다.
“임명된 거예요.”
사제인지 기사인지는 아직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G등급의 탄생이다.
“헛!”
“음.”
“아!”
회의실에 모여있던 간부 몇이 차례로 쓰러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김미소가 아니다.
박수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임명 가능한 모든 사제와 기사 자리를 내어주는 게 틀림없었다.
“나무아미타…….”
목탁 두드리던 명진도 쓰러졌고, 손을 꼭 잡고 기도하던 진세연도 쓰러졌다.
기절한 것은 회의실에 모인 이들만이 아니었다.
*일본에 미드얼 게이트가 열리며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긴장 상태로 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이곳만은 예외였다.
쏴아아.
개울 소리와 새 소리로 한가한 풍경을 자아내는 장원을 걷는 사내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멋져. 아주 멋져.”
어릴적 기억 속 사천당문의 장원과 흡족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그 이색적인 건축양식이 더욱 이곳이 지구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지게 했다.
수호시티 내성의 동문을 지나서만 출입이 가능한 분타 자리, 꽤 넓은 비밀스런 공간은 외부 단체를 위한 자리였다.
명조 스님의 봉림사를 시작으로 아미파 분타, 거기에 더해 사천당문이 자리 잡게 되었다.
“아, 좋구나.”
정원을 거닐어 웅장한 가주의 집무실 대청마루에 누워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동시에 아주 작은 회한도 들었다.
“이 좋은 걸 나만 보는구나.”
보란듯이 재기했으나 당씨 성을 쓰는 인물은 그 하나뿐이다.
“어디 양자라도 들여야 할 터인데.”
사천당문은 아주 폐쇄적인 가문이라 본디 철저한 혈계 위주로 가문을 꾸렸으나, 이제 남은 건 혼자뿐이고 후손을 이을 방도가 없으니…….
“고놈이 딱인데.”
의형의 조카.
박건우가 기재 중의 기재라 탐이 났으나, 이제 그 녀석도 화경의 고수가 되어버렸기에 후계로 키울 맛은 사실 들지 않는다.
이놈의 지구는 어떻게 된 게 화경의 고수를 주물공장에서 찍어내듯 막 찍어내고 있었다.
수련이 아닌 괴물 사냥으로 말이다.
“어쨌든 제자를 들이긴 해야 할 터인데.”
자식을 들이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제부터 사천당문은 혈계 가문이 아니라 무림문파로서 가지를 뻗어나가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에서 제자를 마구 들여서 전부 화경의 고수로 만든 다음, 구천으로 되돌아가면…….’
이것이야말로 금의환향이 아닌가?
살생부는 이제 사라졌지만, 정말 제대로 된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보란듯이 재건해 사천당가의 이름을 구천에 널리 퍼트려 제일가문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이고, 이놈 자슥. 또 혼자 히죽히죽 염병하고 있네.”
익숙한 잔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이숙자가 와 있었다.
“오, 역시 어머니!”
이 정도면 특급 암살자 수준이 아닌가?
바로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도 몰랐다.
무릎관절에 좋다며 꼬드겨서 사뿐사뿐 걷는 법이라며 알려준 무영보가 벌써 극성에 이르렀구나.
“염병. 이거나 냉장고에 넣어.”
회춘한 뒤부터 하도 어머니 소리를 듣다 보니, 이숙자는 당진철이 진짜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통 내성에도 왕래하지 않고 혼자 이 큰 장원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웃는 통에 실성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를 들은 이숙자가 걱정하며 찾아온 것이다.
“오, 김치! 김치 좋아!”
여러 종류의 김장과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넣어두며 말했다.
“역시, 세가에 종놈들이 없으니 안 되겠어.”
“허미나, 시상이 어떤 시상인데 종놈 타령이여.”
이숙자의 호통에 당진철이 찔끔하곤 말했다.
“나는 살림 못 한다. 가주의 체면 손상.”
“잔말 말고 장가나 가, 이놈아. 색시가 있어야 밥이라도 안 굶고 다닐 거 아녀?”
장가 가라는 소리에 당진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장가 갈 수 없다.”
“아니, 허우대 멀쩡한 놈이 왜 못 가.”
“좋지 못한 곳을……. 아니다.”
이숙자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는 다 할 수 없지. 당진철은 요즘 더 젊어진 듯한 이숙자를 보며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왜 진즉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머니로 모시는 이숙자다.
아니 거의 사천당가, 당숙자나 다름없다.
“동생. 동생을 낳아줘!”
“허미, 이눔시끼가!”
이숙자가 대경실색해 당진철의 등허리를 두들겼다.
“남사스럽구로 구십 넘은 노인네보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겉모습은 막 세월을 먹어가기 시작하는 아낙네 모습이건만 그 알맹이는 구순이 넘은 노파인지라, 이숙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퍼억, 퍽!
“억, 그만 때려. 나 아프다. 나는 가주. 너는 어머니.”
잽싸게 피하려고 애썼으나 이미 너무 가까운 거리를 내줘버렸다. 김장할 때 좋다고 금나수를 알려줬더니 그것마저 대성이다.
이숙자의 무공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면이 있었다.
물론 진심으로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겠지만, 고향 떠나온 당진철에게 지구에서 이만큼 살갑게 굴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숙자의 스매싱은 말 그대로 엄마의 손길이다.
등허리에 호신강기를 두르며 재롱부리던 당진철이 허전한 느낌에 뒤돌아보니, 이숙자가 부르르 떨며 기절해 있었다.
“엇?”
동생을 낳아 달란 소리가 그렇게 충격이었나?
기절할 정도로?
“어머니!”
당진철은 급히 맥을 짚으며 호흡을 확인했다.
‘정상이다. 뭐지? 독? 암기?’
사천당가의 유일한 후계자답게 주변을 살피며 범인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남의 손을 빌리는 게 당연한 상식.
의술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으니, 이숙자를 안아든 당진철이 훌쩍 뛰어 담을 넘었다.
파팟.
“당가의 가주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신니는 어딨나?”
“사고께서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파팟!
당진철이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아미파 분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이라면 천검야장의 딸과 박건우를 말함이리라.
담을 넘어 연무장에 발을 디디니, 아미파 최고고수 태사신니가 둘을 데리고 있었다.
“신니! 내 어머니 상태 좀 봐 주시오.”
다급히 말하며 다가가던 당진철이 우뚝 섰다.
“……?”
태사신니의 옆에 박건우가 누워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취아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태사신니가 심각한 얼굴로 건우를 진맥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이숙자와 상세가 같지 않은가?
이숙자를 건우 옆에 누이고 물었다.
“아미타불…….”
“어떻습니까, 신니?”
“빈승은 도통 이유를 짐작치 못하겠습니다.”
“흐흑, 저 때문이에요. 저랑 대련 중에 갑자기…….”
취아가 횡설수설하며 눈물을 흘렸다.
“네 탓이 아니다.”
태사신니는 정확히 보았다.
대련중에 건우는 분명 아무런 이유도 없이 쓰러졌다. 아주 잠깐 항거할 수 없는 상스러운 기운을 느끼긴 했으나…….
파파파팟.
그때 둘의 몸이 빛에 휘감겨 떠오르자 태사신니와 취아, 당진철이 동시에 놀랐다.
“맙소사.”
“아미타불……. 등선이라니…….”
이건 우화등선의 징조가 아닌가?
대련 중에 무슨 큰 깨달음이 있어 신선이 되려는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빛에 휩싸였던 이숙자와 박건우가 눈을 떴다.
*김미소는 점점 기절에서 깨어나 빛에 휩싸이는 사람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 수 있다.’
신이 되어버린 드래곤 레이드도 아니고 오크 사냥이다. 그리고 그들의 재단을 망치는 일이다.
이 정도로 많은 신의 기사가 탄생했는데, 못 할 일이 무엇이랴?
검객 장재식의 얼굴이 한층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동수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라, 무엇이든 깨부술 것처럼 위력적으로 변했다.
명진 스님은 정신을 차린 이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고, 진세연은 허탈한 음성을 뱉었다.
“마리아…….”
수녀인 그가 수호교단의 기사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신의 부정인가.
종교의 종말인가.
*“드래곤, 빡셀 텐데.”
수호는 김미소와의 통신이 끝나자마자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의 수호는 수없이 많은 과거의 기억을 흡수한 집합체다.
그 와중에 신룡대전을 경험한 아주 강력한 과거의 박수호도 있었다.
그의 기억 속 드래곤은 가히 신과 대적할 만한 힘이 있었다.
지금 지구에 남겨두고 온 식구들로는 상대가 불가능하다.
백사를 포함한 야수들이 전부 달려든다 하여도 승리는 커녕, 전멸을 각오해야 할 정도.
그야말로 급이 다른 존재.
“오크들도 빡세고.”
오크 주술사들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는 흡수한 기억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거인들은 또 어떠한가.
하나하나가 신급 군주에 필적하는 그들이니, 마땅히 그 정도 급은 되어야 상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여유 자리가 몇이지?”
그동안 숭배 스탯이 꽤 올랐으니 임명 가능한 사제와 기사들의 여유가 늘었다.
“믿음도 좋지만…….”
우선은 도움이 될 만한 녀석들부터 임명해 볼까?
수호가 신도들 리스트를 훑으며 하나씩 사제와 기사에 임명하기 시작했다.
“다 됐다.”
한계까지 다 임명하고 난 뒤 수호는 천룡인으로 변신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침식을 막는 것도 좋지만, 그 와중에 지구가 쑥대밭이 되어버리면 다 무슨 소용인가.
또 회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호가 구천 달을 벗어나 신계를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