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98)
499화 바다의 신 (5)
박준호의 고개가 위로 꺾였다.
붉은 화염으로 뒤덮인 하늘이 보인다.
노을처럼 붉은 하늘을 제하고 실제로 타오르는 화염을 눈에 담았다.
허공에 둥둥 뜬 불덩어리는 거대한 새의 모습이었다.
“결국 이리 엮이는군.”
박준호는 불사조와 처음 대면했을 때를 떠올렸다.
타이베이 개척마을을 맡아, 주변 신수들을 사냥하며 거점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을 때였다.
여기저기 기괴한 신수들이 모두 튀어나오는데, 불사조를 닮은 저 불의 새는 어디 던전을 터트리고 나왔는지, 어떤 다른 행성에서 넘어왔는지 알 길이 없다.
본디 존재했던 것처럼 나타나, 하늘 위를 이리저리 배회할 뿐이었다.
하필 그곳이 타이베이 개척마을 주변이라, 녀석이 언제 마을을 덮칠지 노심초사하면서도 마땅히 공격할 방법이 없어 그저 지켜만 보던 신수였다.
녀석은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의 통신을 교란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침묵시킨다.
녀석이 하늘에 뜨는 순간 모든 네트워크 수단을 잃는다. 오직 직접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그것 외에 녀석이 주는 피해는 전무했다. 다른 신수처럼 영역을 정해 주둔하지도 않았으며, 휘하에 군주 몬스터들을 두고 부리지도 않았다.
인간도 몬스터도 먼저 공격한 적이 없고, 심지어 한 번도 땅에 내려앉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결국 이리 되었어.’
박준호는 불사조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위화감과 불안함을 느꼈었다.
그랬기에 꽤 오래도록 타이베이 개척마을에 머무르며 녀석을 경계해왔다.
녀석이 꺼림칙했던 건 어쩌면 지금을 예고해서일지도 몰랐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불새가 고도를 낮추자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리처드. 이거 화면이 왜 이래?”
“아, 형님들! 지금 통신장애가…….”
“어어? 조종이 안 먹혀! 추락한다.”
침식구역과 신의 사제들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던 수십 대의 카메라가 먹통이 되었고, 몇몇 드론들이 제멋대로 날기 시작했다.
운 나쁜 드론 한 대는 침식구역으로 돌진, 그대로 허공에 멈춰 조금씩 존재가 지워지듯 사라져버렸다.
하늘을 나는 요트 위에 탄 엘프들은 딱히 전파방해를 받지 않았다.
흔한 휴대폰 하나 가진 사람이 없었다.
“오우, 역시 신화시대!”
“으음, 피해야 하지 않소?”
“쫄았소?”
어느새 쪽배를 타고 합류해온 드워프들의 말에 엘프들이 반박했다.
“아니, 불타 죽을 수는 없잖소?”
“그럼 그냥 길드에 남아 있지, 왜 따라왔소?”
“이, 영광된 순간을 두 눈으로 담는 걸 자랑으로 아시오. 대대로 후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 생긴 것인데 어찌 그리 겁부터 먹으시오?”
“끄음.”
엘프들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뒤로하고 가즈라는 마력을 일으켜 방어막을 펼쳤다.
꽤 먼 거리임에도 전해져 오는 열기가 제법 심상찮았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구경꾼인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오.”
가즈라의 말에 가니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을 비롯한 초보 마법사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으나, 지금 불새의 기색은 심상찮다.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는 모양새가 꼭 침식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듯한 모습.
불새의 공격에 박준호의 바다 밀어내기가 멈추면 어찌 될까?
김미소의 신전 건립이 취소되면 또 어찌할까?
“우리가 도와야겠소.”
가즈라의 음성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정령왕의 계약자였던 그다.
지금 느껴지는 불새의 기운을 그저 신수에 비교할 수 있을까?
못해도 정령왕과 동급.
“헌데 반신들도 감당이 안 되면 우리가 어찌 돕는단 말이오?”
가니언의 의문은 지극히 당연한 것.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요트 위의 엘프들이 부산한 가운데, 불사조는 계속해서 하강했다.
“하나미!”
“하잇! 부사장님.”
“올라와서 여기 맡아.”
“하잇!”
박준호는 가부좌를 틀고 일어섰다.
무턱대고 침식 주변의 바다를 밀어내던 때였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하나미에게 맡겨도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했다.
물기둥의 중심에서 조화력을 물의 힘으로 찬찬히 바꿔 8개의 기둥으로 찬찬히 흘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균일하게 주변 바다를 밀어낼 수 있다.
수십 수백 방위의 바다를 균형있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작 8개다.
이 정도면 하나미도 충분하겠지.
“……할 수 있겠어?”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마친 박준호를 보며 하나미가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준호는 다시 확인했다.
“연습이 아냐. 해낼 수 있어야 넘길 수 있어.”
“넵!”
하나미는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었다.
공기중에서 물방울이 생겨나 하나미의 손바닥에 물의 공을 만들어냈다. 물공에서 더듬이 같은 것들이 생겨나더니 촉수처럼 쭉 뻗어 나왔다.
열 개의 촉수가 위로 쭉 길이를 늘이더니 한데 모여 링을 만들어냈다. 지금 그들이 딛고 선 돔 형태의 물기둥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동시에 열 곳 정도는 제어가 가능합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컨트롤이면 충분하다.
부족한 조화력은 어차피 동료 사제들이 모아다 줄 것이다.
“좋아. 여기 앉아.”
준호가 자리를 비켰고, 그가 있었던 자리에 하나미가 앉았다.
“받아.”
“네, 허읍!”
하나미는 가부좌를 틀고 앉자마자 전해지는 묵직한 압박에 하마터면 발작하듯 일어설 뻔하였다.
‘이, 이런 압박이라니.’
심해에 가라앉은 기분이 이러할까?
온몸이 터질 것 같다.
이 압박감을 기본으로 견디며 물을 컨트롤해야 한다.
여덟 개의 물기둥은 멋으로 띄운 게 아니다.
츠츠츳.
물기둥을 타고 도도히 흘러가는 조화력이 느껴진다. 그 하나의 물기둥이 한방위를 점하고, 균일하게 바다를 밀어내고 있다.
그런 곳이 사방으로 여덟 곳.
‘정신 차려. 할 수 있다.’
하나미는 동료들의 조화력이 불쑥 들어올 때마다 기운이 나면서도, 묘하게 균형이 깨져 그것들을 제어하느라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박준호 부사장처럼 말하기는커녕, 다른 데 신경 쓸 집중력이 하나도 없다.
새삼 홀로 버텨낸 그가 대단해 보였다.
준호는 기둥에서 뛰어내려 침식구역에 발을 디뎠다.
“신수가 침식구역에 닿으면 어떻게 되지?”
“아직 정보가 없습니다.”
“신격을 지녔으니 우리처럼 유지될 수도 있죠.”
“저게 신수가 맞나요?”
“무엇이 됐든, 녀석이 여길 공격하기 전에 요격합시다.”
“좋아요.”
녀석을 사냥하는 데 굳이 사제들만 나설 필요는 없다.
쐐애애애액.
와이번 동수가 등장하자마자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등에 타고 있던 고상운 박사는 벌써 도시에 내려주고, 대신 명진 스님이 타 있었다.
“영생을 산다는 불새가 무슨 연이 있어 이리 다시 모습을 보이는지…….”
침식 구역을 지나며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불사조는 우리가 막아내겠소!”
자신있게 소리치고 날아간 동수와 명진은 불사조를 막아서자마자 뚫리고 말았다.
화르르륵!
“어어?”
거대한 불길이다.
일렁이며 타오르는 거대한 불은 동수와 명진을 그대로 통과했다.
“스, 스님. 얼른 좀 꺼 줘요.”
“안 꺼지고 있소!”
와이번 위를 동수가 데굴데굴 굴렀다.
여기저기 옮겨붙은 불은 지옥불이라도 되는 듯 잘 꺼지지 않았다.
와이번 동수가 별수 없이 바다를 향해 입수하고 나서야 불이 꺼졌다.
“어, 어쩌죠?”
“……애초에 저것이 신수인지도 모르겠소.”
물리력이 없다.
불 그 자체인 것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가?
그때 바다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쏴아아아아아!
준호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 물기둥이 하늘 높이 올라 불사조를 향해 쏘아졌다.
촤라라라!
물리력이 없는 불 그 자체라면 물로 끌 수 있지 않겠는가?
촤아아아!
준호가 던져낸 물 덩어리가 불새에게 맞으며 주변에 구름이 생겨날 정도로 수증기를 피워냈다.
후우우웅.
곧 수증기를 뚫고 하강하는 불사조의 크기가 전에 비해 작아져 있었다.
“토, 통한다!”
“부사장님한테 조화력 몰아줘요.”
사제들이 절반씩 나뉘어 하나미와 박준호에게 조화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준호는 넘치는 힘으로 무차별적으로 물 덩어리를 쏘아 올렸다.
촤르르륵! 푸시시시!
던지는 족족 맞아 나가며 수증기를 토해냈다.
“잘한다!”
이쯤 되자 사제들도 준호를 응원하며 긴장을 늦췄다. 이대로 해결될 성싶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준호는 기묘한 위화감이 계속해서 커지는 기분이었다.
‘왜 피하지 않지?’
신수는 신성방어막이 존재한다.
그것을 뚫기 위해 똑같이 신격을 지닌 이들의 공격이 필요하다. 헌데 지금 쏘아 보내는 물 덩어리는 그저 바닷물이 아닌가?
간단히 신성보호막만 펼쳐도 막아낼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방향을 틀어 피해 내도 될 것이고, 고도를 다시 올려 다른 공격 패턴을 찾아도 될 터인데.
‘공격? 공격하는 게 맞나?’
생각해 보면 불사조는 그저 날아오고 있었다.
타이베이 상공을 날아다닐 때도 그러했다.
녀석은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그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존재했고, 존재한 뒤로는 그저 하늘을 배회하며 날아다닐 뿐이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 하강을 하고 있었다.
공격하기 위해 고도를 낮춰 하강한다고만 생각하였다.
박준호는 고민하면서도 계속해서 물폭탄을 날려 보냈고, 주변을 가득 메운 수증기만큼이나 활활 타오르던 불사조의 열기는 사그라들었다.
이젠 활짝 펼친 날개가 고작 3미터는 될까?
날개를 활짝 펼친 대머리독수리 서민수와 비슷한 덩치까지 작아졌다.
이백 미터 정도 상공까지 내려앉은 녀석이지만, 작아진 덩치 덕에 아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준호는 혹시라도 녀석이 침식구역에 닿는 것을 우려해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이 공격하든 말든, 무슨 마음으로 접근했든지 간에 위험요소는 미리 제거해야 옳다.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도 물폭탄은 계속해서 쏘아 보냈다.
푸시시시.
작아진 덩치만큼이나 그 열기는 대단치 않았고, 물덩어리를 크게 할 필요도 없었다.
준호는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불사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걸었다.
침식구역의 바깥으로 가서…….
“어?”
준호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침식구역을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하던 불사조의 경로가 틀어졌다.
‘날 따라와?’
100미터 위까지 날아온 불사조다.
준호가 걸음을 빨리해 이동해 보았다.
화르르륵.
이제는 비둘기 정도만 해진 불사조가 옆으로 날았다.
‘나다.’
박준호는 전율이 일었다.
애초에 녀석의 목표는 침식도, 신전건립의 방해도 아니다.
녀석이 타이베이 상공을 날았던 이유도, 지금 여기 나타나 다가오는 이유도 모두 하나다.
‘날 죽이기 위해?’
이 기묘한 불안함과 커져 가는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퍼어어억, 푸시시시.
그간 또 수십 대의 야구공만 한 물 덩이를 맞아 참새만 해진 녀석은, 덩치는 작아졌지만 그 존재감은 더욱 커져 갔다.
위화감이 커진다.
불안함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배어난다.
그사이 더 작아져 메추리만 해진 녀석과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타타탓!
준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파파파파!
쉴 새 없이 쏘아지는 물폭탄이지만 명중하는 건 적다. 녀석의 덩치가 작아지며 얻은 유일한 이점일까.
푸시시시시.
말벌만 한 정도로 작아진 녀석이지만 준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물, 물!’
꺼트릴 수 없는 불이 자신을 태우러 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도망쳐야 한다.
물이 필요하다.
아예 물속으로 도망치자.
침식구역의 끝.
바닷물과의 거리는 500여미터.
‘우라질.’
멀다.
안전구역 확보를 위해 바닷물을 너무 멀리 밀어버렸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적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게 만들었다.
휘릭!
뛰었다.
침식구역을 딛고 바닷물을 향해 날았다.
푸시시시.
제 몸의 불길을 사그라뜨리며 날아오는 녀석의 크기는 모기만 했지만, 준호의 눈엔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존재감이 있었다.
녀석과의 거리는 10센치.
화르르륵.
불사조가 준호의 몸에 닿았다.
스르르륵.
꺼트릴 수 없을 것만 같던 불사조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흩날린 재가 준호의 몸에 흡수되었다.
풍덩!
내던져진 그의 몸이 관성에 따라 바닷물에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