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
002화 외당의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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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있는 외당 회의가 있는 날.
평소와 같이 지문이 닳도록 싹싹 비볐건만, 성문경비에서 순찰로 임무가 바뀌었다.
‘허어! 큰일이구나.’
갈 길이 멀건만 하필이면 가장 돈이 안되는 임무를 배정받다니.
이래서 언제 목표를 이룬단 말인가!
무거운 마음으로 유소평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생각보다 편하게 받아들였다.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돌아가면서 근무지가 정해지는 것인데.”
하긴, 이게 생떼 부린다고 되는 건 아니긴 하지.
다른 조에서도 군침을 흘리는 근무지가 바로 성문경비니까.
“그래도 인당 한 냥씩은 챙겼으니 크게 불만은 없을 겁니다.”
유소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 구역이랍니까?”
“태룡로.”
유소평의 얼굴이 구겨졌다.
***
해가 지자 우리는 태룡로로 몰려갔다.
구룡성 최고의 번화가답게 주루와 객잔이 늘어서 있고 홍등가에서는 반라의 여인들이 창틀에 몸을 기대어 행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조원들의 표정이 이렇냐고?
바로 이곳이 고생을 직살나게 많이하는 근무지여서 그렇다.
외당은 현대 사회의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번화가일수록 취객들과의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의 취객을 생각하면 안 된다.
아무리 정파의 탈을 쓰고 있어도 무림인이란 기본적으로 칼부터 휘두르는 싸이코패스 살인마인만큼,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또한, 고수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릴 때면 힘없는 외당무사들은 줄초상을 치를 수밖에 없다.
“한 달만 참자. 내가 다음엔 좋은 곳으로 받아올게.”
“…예.”
내 격려에도 조원들이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잠시.
“도둑이야! 저놈 잡아라!”
“꺄악! 어딜 만지는 거예욧!”
“너 이 새끼! 오늘이 네놈 제삿날로 만들어주마!”
“다 죽여버리겠어!”
여기저기서 사건사고가 밀물들어오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진형이랑 당팔이, 소평이는 저쪽으로 나랑 양강이 이쪽을 맡는다.”
“예!”
그렇게 조를 두 개로 나눠 뛰어다닌지 지 세 시진.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자 꽉 들어찼던 태룡로도 한산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구먼.”
“이게 다 이상한 근무지를 받아온 조장 때문이 아니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입이 튀어나온 양강을 다독이며 근처 객잔으로 향했다.
“배고픈데 밥이나 먹고 가자.”
“조장이 사는 거요?”
“각자 내는 거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조장은 정말 쪼잔하오.”
더치페이가 얼마나 깔끔한 문화인 줄도 모르고.
“어서옵쇼!”
“삶은 돼지고기하고 국수 한 그릇씩 내와라.”
동전을 튕기며 주문을 하니 점소이의 허리가 폴더처럼 휘었다.
아깝긴 하지만, 내가 들를 때면 고기라도 한 점 더 챙겨주는 놈이다.
한 두 번 오고 말것이면 몰라도 자주 올 거면 이렇게 챙겨주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항상 감사합니다요! 나리.”
잠시 기다리자 점소이가 쟁반 가득히 음식들을 담아왔다.
“맛있게 드십쇼!”
“오냐.”
그렇게 시작된 식사.
“후루룩. 쩝쩝. 으허! 카악! 후루룩.”
양강이 입맛 떨어지는 소리를 냈지만, 더치페이의 승부에서는 많이 먹는 사람이 승자, 나 역시 바쁘게 젓가락을 놀렸다.
“술도 한잔하는 게 어떻소?”
“좋지.”
“여기 백주 두 병!”
“예이!”
양강이 주문을 넣자 점소이가 아닌 객점 주인이 술을 가져왔다.
“이놈들아. 근무 시간에 웬 술이냐?”
외당에서 은퇴하고 객잔을 차린 곽삼이었다.
평소 그와 친하게 지내던 양강이 편하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싫소?”
“팔아주면 나야 고맙지.”
“그럼 됐지. 뭘.”
“그나저나 할만은 하냐?”
“신임 조장이 생각보다 수완이 있어 편하게 지내고 있소.”
“끌끌, 등천각 출신이라 빡빡할 줄 알았건만 신기하네그려.”
그렇게 잠시 담소를 나누던 차에 위층에서 소란이 들려오더니 점소이가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주인 나리!”
“뭔 일인데 이리 소란스러운 거냐?”
“위층에서 무림인끼리 싸움이 났습니다!”
“에잉!”
곽삼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겠습니까?”
내 염려에 곽삼이 팔을 들어 보였다. 이십 년의 짬밥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두꺼운 근육이 꿈틀거렸다.
“나 아직 팔팔하다. 걱정하지 마라.”
“그러시다면야.”
그렇게 자신감에 가득 찬 곽삼은.
“크, 큰일났네. 아무래도 고수끼리 싸움이 붙은것 같아. 자네들이 좀 도와줘야겠네!”
올라간지 30초만에 사색이 되어 뛰어 내려왔다.
“고수면 우리도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꽈당! 와장창!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자 곽삼의 얼굴이 더욱 허여멀건하게 바뀌었다.
전 재산을 털어 객잔을 차린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퇴직금 몰빵해서 차리는 요식업이 위험하다는 거지.’
실제로는 퇴직금은커녕 주휴수당조차 나오지 않는 구룡성이었지만 말이다.
“해결만 해준다면 내 자네들에게 이만큼을 사례하겠네.”
더는 안 되겠는지 곽삼이 양손을 펼쳐 보였다.
백주 열병까지는 서비스하겠다는 표시였다.
꽤 만족스러운 퀘스트 보상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결하고 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어.”
“괜찮겠소? 고수라는데. 그거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잊었나 본데 나 등천각 출신이야.”
“아···.”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치면 서울대 법대가 바로 등천각이다.
비록 내가 워라벨을 챙기기 위해 외당을 지원했지만, 그곳에서 피땀 흘리며 무공을 수련한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술이 식기 전에 다녀오겠다.”
백주 한 잔을 따르며 비장하게 말하니 양강과 곽삼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다.
“이거 찬술인데···.”
그렇게 계단을 올라 살펴보니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권각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당탕!
대머리가 기회를 잡고 장발의 가슴을 수차례 가격했다.
“크흑!”
촤라랑.
장발의 눈이 충혈되더니 허리춤에서 대뜸 검을 빼 들었다.
본격적으로 피를 보겠다는 뜻.
더 지체하다간 이 층에 있는 식탁이 모조리 쪼개질 것 같아서 나는 곧바로 놈들 사이로 들어갔다.
“동작 그만. 칼 집어넣어. 성 내에서 무기 사용은 금지된거 모르나?”
“권사를 상대로 싸우는데 검객이 검을 쓰지 않는 건 말이 되고?”
그건 또 그러네.
“아무튼, 여기서 싸움질은 금지다.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 부숴 먹은 식탁값은 물어주고. 그거 여기 주인장의 피땀 어린 돈으로 산 거다.”
“흥! 나 쾌검살 웅초가 외당 무사 따위의 경고를 들을 것 같으냐!”
놈이 전형적인 싸구려 삼류 악당의 대사를 내뱉으며 검을 들었다.
‘얼마나 못 배워 처먹었으면···.’
백번 양보해서 술 먹다 싸울 순 있다 치자. 무림이니만큼 현대사회보다 과격할 수도 있고.
그래도 남한테는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그걸 순화시켜 말했음에도 너 따위의 말은 듣지 않겠다. 에베베베 거리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너도 같은 생각이냐?”
대머리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놈이 일방적으로 덤벼선 것뿐이오. 검을 집어넣으면 나 역시 싸움을 멈출 용의가 있소. 그리고 식탁은 내가 부순 게 아니니 물어줄 수 없소이다.”
대머리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쾌검뭐시기를 보며 물었다.
“어쩔래? 저렇게 나오는데 계속할 생각이냐?”
“흥! 둘 다 죽여버리겠다!”
놈이 순식간에 공간을 접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이뤄지는 발검.
기세와 스피드로보아 별호에 쾌자가 이 들어갈 만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쾌검은 등천각에서 질리게 본 나였다.
턱.
보법을 밟아 몸을 슬쩍 피한 후, 등천각 공통과목 중 하나인 금나수법, 삼양수(三陽手)로 놈이 검을 뽑기 전에 오른손을 잡아챘다.
“헉!”
“계속할 거야?”
“이익!”
결국, 검을 뽑지 못한 놈이 권각을 휘두르며 나를 떨쳐내려 했지만.
뻐엉! 콰직.
내 앞차기가 놈의 가슴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코르륵.”
대포알같이 날아가 나무 기둥에 몸이 박힌 놈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피해보상을 위해 놈의 품을 뒤지고 있자 대머리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웅초 정도면 운남성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낭인인데. 삼초지적도 되지 않다니. 대단하군.”
“그러니까 술 처먹고 싸우면 안 되는 거야. 본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하니 이 꼴이 나잖아?”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소만.”
“뭐, 그럼 이놈이 약한 거로 하자.”
“이름이 어떻게 되오?”
“알아서 뭐하게?”
“그냥, 앞으로 오가며 볼 것 같은데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그렇소.”
“진무전. 외당 십칠조의 조장이다.”
“십칠조장 무전이라···. 기억하겠소.”
그 말을 끝으로 대머리가 객잔을 나갔다.
기절한 놈의 전낭에서 은자 세 냥을 꺼내 곽삼에게 가져다주니 그가 함지박만한 웃음을 지었다.
나머지 두 냥은 내 품에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웅초놈을 포박하여 외당 뇌옥에 가둔 다음 날.
오랜만에 집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던 차에 익숙한 얼굴이 찾아왔다.
등천각 시절 후배였던 적화란이었다.
홍화수검(紅華秀劍)이라는 별호답게 붉은 장미꽃 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적화란이 찾아오자 주위가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것처럼 밝아졌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그러게? 이게 얼마 만이냐?”
“선배가 외당을 지원한 후 한 번도 못 봤으니 얼추 이 년은 되었네요.”
“좀 찾아오지 그랬어. 오면 밥도 사주고 했을 텐데.”
“정말요?”
당연히 구라지.
열심히 돈 모아서 하루빨리 구룡성을 떠야 하는데 남들 밥 사줄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야 당연하지. 오늘은 야간 근무라서 힘들 것 같고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기약 없는 아갈약속을 내뱉으니 적화란이 기뻐했다.
“알았어요. 조만간 한번 들를게요.”
응 들려도 안사줄 거야.
“그나저나 오늘은 웬일이냐? 네가 여기까지 다 오고.”
“그야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왔죠.”
뜬금없는 채권추심에 머리에 벼락이 내리친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동안 말이 없길래 잊어먹은 줄 알았건만!’
“그···. 게 얼마였더라?”
“어째 빌려 간 사람이 그걸 기억 못 해요? 이자까지 아홉 냥이잖아요?”
“동전으로?”
그녀가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은자로!”
“크흠, 내가 요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은근슬쩍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 적화란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나중에 주셔도 돼요.”
“정말?”
“새로운 차용증에 수결만 해주시면요.”
적화란이 차용증을 꺼내어 보여줬다.
적룡당의 악명높은 고리대 차용증이었다.
‘크윽!’
“주, 주마.”
결국, 침상 밑에서 돈을 꺼내어 오자 오래된 악성 채권을 회수한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돈 필요하면 말씀하시고요. 선배는 특별 이자로 모실게요.”
그 말을 끝으로 떠나는 적화란을 보며 나는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 사정을 알면서 이자까지 챙기다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년이다.
“크흑! 빌어먹을 년. 내 그렇게 잘해줬건만.”
생각해보니까 처음부터 상태가 이상하긴 했다.
돈을 빌리려 편지를 써서 불러내니까 말을 더듬지 않나.
‘하, 할 말이 뭐, 뭐, 뭐예요. 오, 오늘만큼은 다, 다 들어드릴 테니까 얼마든지 말해보세요.’
대뜸 전낭을 얼굴에 던지지 않나.
‘나쁜 새끼.’
욕까지 하고 갔고.
어쩌면 악명높은 적룡당주의 손녀답게 성격파탄자일지 모른다.
그나저나 이 손해를 어떻게 메꾸냐.
삼처사첩의 꿈이 한 걸음 더 멀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