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7
57화
공기가 얼어붙었다.
잘만 입을 나불대던 놈들은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미래가 반대쪽 복도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스름한 음영이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었다.
“말해봐.”
우드득.
뼈가 돌아가는 소리가 살벌했다.
한미래가 망설임 없이 남자의 팔을 붙잡아 뒤로 꺾었다.
이모아는 잠시 질끈 눈을 감았으나, 이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새 된 소리를 내며 덤벼들던 여자가 복도 구석으로 처박혔다.
남자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노기에 찬 얼굴이 누구 하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포효했다.
그러나.
빠악!
한미래의 팔꿈치가 남자의 등을 직격했다.
목 뒤를 붙잡아 벽으로 밀치고, 충격에 나동그라진 놈의 뒷덜미를 잡아 여자의 위로 내팽개쳤다.
꼴사납게 엉긴 둘은 벌벌 기며 흐느끼는 소리만 종종 내뱉었을 뿐.
한미래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지금 개처럼 기고 있는 건 니들 같은데.”
어흑, 어흐으윽…… 숨만 내쉬던 남자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너, 네가 이, 이러고도…….”
빠악!
이번엔 머리통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시멘트 복도 바닥에 내리친 한미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아의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발 튀어.’
나는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빌었다.
모아야. 제발 튀어. 달려!
한미래의 발소리가 근처에 다가오자, 이모아가 다시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쿵쾅거렸다.
흡.
한 번 심호흡을 내쉰 이모아가 발걸음을 뗐다.
“미래야!”
한미래를 붙잡았다.
1초가 천 년처럼 느껴지는 시간.
나는 눈이라도 감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신줄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에 고작 이모아의 호흡에 맞춰 숨 쉬는 것이 전부일 뿐.
바싹 마른 이모아의 입이 달싹였다.
한미래를 붙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러니까 화랑은, 아니, 나는…….”
“…….”
“그러니까 그게…….”
듣고 있는 내가 다 억장이 무너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면 제대로 정리를 하고 붙잡든가.
아니면 그냥 도망치든가!!
망했다는 걸 직감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이모아의 시선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한미래는 무슨 일인지 그 자리에.
이모아에게 붙잡힌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두 개의 숨소리가 엉켰다.
다시 용기를 낸 이모아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나는,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혈압이 오른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계속 혼자서 상상만 해왔는데…….”
“‘우리’.”
덜컥 한미래가 말을 잘랐다.
당황한 이모아의 시선이 한미래에게 맞닿았다.
그녀는 억지로 참는 듯한.
그러나 숨기지 못한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압력에 온몸이 짓눌렸다.
한미래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이모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모아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마침내, 코너에 몰린 순간.
“가만히 있어.”
한미래가 씹어 뱉듯 속삭였다.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대로.”
공기처럼 있으라고.
한미래의 마지막 말이 입김처럼 흩어졌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를 보며 생각했다.
‘망했네.’
응. 이건 틀려먹었다.
친구?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됐다.
이모아와 한미래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까무룩한 암흑이 찾아들었다.
***
그날 밤.
불도 켜지 않아 캄캄한 방 천장을 보며 나는 몇 시간 째 생각 중이었다.
‘이모아와 한미래.’
둘 중 누구의 상황이 더 이해 가냐고 묻는다면…… 사실은 한미래의 쪽과 가까웠다.
오로지 힘.
등급만이 전부로 여겨지는 각성 세계.
한미래는 누구보다 그 ‘힘’의 수혜를 받고 새빛중학교에 와 있다.
이 학교에서 등급은 곧 권력이다.
기록, 등수, 점수에 예민한 놈들이 드글드글한.
하지만 텃세 부리는 수저 놈들의 따돌림.
장학금을 받고 들어왔지만, 실상은 화랑의 개 취급.
근데 그 화랑의 딸은 ‘비리’, ‘낙하산’ 소리나 듣는 E급이니.
‘경멸이 차곡차곡 적립될 만도 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한미래에게 거는 시비 역시 자기가 더 세다고 생각하는 부류나 비슷한 등급에서 일어났다.
그게 아니면 앞에서 대놓고 그녀를 욕하고, 싸움을 거는 놈들은 없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떨면 떨었지.
‘철저한 계급사회.’
앞에 붙은 알파벳으로 사람들을 구분할 때부터 이 세계는 그랬다.
그런데.
‘그걸 이모아가 깨버렸다.’
새빛중학교에서 이모아는 권외 존재였다.
경쟁에는 속하지 않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별종.
그 피라미드 사이를 막 넘나드는 유일한 인간.
한미래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모아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더 그 존재가 모욕적이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견고히 힘의 관계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미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차라리 이모아가 진짜 눈치 없는 짓을 해서(이미 약간 한 것 같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서, 한미래와 악연으로 얽힌 거라면 깔끔하게 들이 박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아의 배경과 주변 환경들로 인한 오해.
이건 나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겸 동생 안 한다고. 호적 파달라고 할 수도 없고.’
팔등으로 눈 위를 지그시 눌렀다.
모든 계획은 어그러졌다.
애초에 한미래를 내 편으로 끌고 오겠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오만이었을지 모른다.
얼굴을 벅벅 문질러댔다.
그러나.
“……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보자.”
아직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고.
그렇게 희망회로를 굴렸다.
주문처럼 중얼중얼 세웠던 계획을 더듬었다.
“내가 한미래를 끌고 오려는 이유는, 얘가 명암 편에 붙었을 때 엄청난 전력이니까. 만약에 진짜 용의자라면…….”
‘이모아를 죽이는 걸 망설이게 하기 위해서.’
그걸 위해 꼭 친구가 되어야 하는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떠오르는 한 가지 방향성은.
“한미래가…… 이모아한테 가진 편견을 조금이라도 깰 수 있게.”
한미래는 이모아를 모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자신이 가진 편견에 매몰되면 실체는 흐려지고 부정적인 복제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너무 싫은데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 사람도 나처럼 밤에는 수면 잠옷 입고 자겠구나.
발 시려워서 폭닥폭닥한 수면 양말 챙겨 신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라고.
여기서 포인트는 ‘나처럼’ 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모아가 말했던 ‘우리는 비슷한 것 같아’ 와 같은 결이긴 했다.
이모아도 어렴풋이 알고 그런 말을 한 거겠지.
‘…… 너무 직구라 한미래의 버튼을 누르긴 했지만.’
아주 약간의 이해만 남길 수 있다면.
정말 1초라도, 주춤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고요히 머리를 굴렸다.
어찌 됐든,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면 한미래와 얽혀야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고요히 암흑을 더듬던 번쩍 눈이 뜨였다.
종례 시간, 스쳐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르륵 떠올랐다.
‘실습. 이라고 했지.’
입술을 씹어대며 다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본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한미래와 이모아의 마지막 적기라는 생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
탁탁탁탁.
분필 소리와 함께 칠판 위로 또박또박 이름들이 적혔다.
“박지찬, 유한결. C조.”
“진소희, 김은하, 최명호. D조.”
호명될 때마다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중에는 기뻐하는 아이도, 아쉬워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서이수 선생은 멈추지 않았다.
맨 위 판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그리고 대망의.
“이모아, 한미래. J조.”
우리의 이름이 불렸다.
휙, 휙.
또 여러 눈동자들이 굴러갔다.
예상했던 바이기에 전혀 놀라지 않은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왜냐면.
‘내가 로비했거든.’
***
3시간 전, 교무실 안.
“선생님.”
“아, 모아구나.”
서 선생은 이제 교무실에서 이 제자의 얼굴만 보면 조금 두려워졌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할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아이는 한동안 손가락을 꼬물대더니, 작게 운을 뗐다.
“그, 오늘 정하는 실습 파트너 있잖아요…….”
“응, 왜?”
“저…… 미래랑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실습.
한 학기에 한 번, 같은 반 학생과 팀을 짜서 포탈을 공략해오는 훈련.
어떤 이론을 어떤 상황에서 적용했는지.
전투 중 상대의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혼자서만 훈련하다 보면 객관적인 평가를 잃을 수 있으니, 서로 체크하고 보고하는 시간을 의무적으로라도 가지게 하자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그동안 미래를 꺼리는 학생들밖에 없었는데.’
티는 내지 않지만, 서 선생은 아이들과 한미래의 관계를 다 알고 있었다.
학기에도 몇 번씩 한미래에게 맞았다는 놈들이 속출하니 모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한미래의 문제가 아닌 것 역시.’
친하게 지내라. 인성을 길러라.
학생들에게 잔소리해 봤자 들어먹긴커녕 따돌림만 더 심해질까 싶어 말도 못 했다.
서 선생이 최대한 신경 써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훈련.
적어도 이 작은 야생에서 무시는 당하지 않게, 조금 더 시간을 내 봐주는 것 빼곤 할 수 없었는데.
이모아가 선뜻 그 아이와 하겠다고 나서니 놀라웠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아이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변명하듯 덧붙였다.
“제가 조금…… 그렇잖아요.”
“…….”
“미래랑 친해져 보고 싶어서,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서…….”
이모아는 잘못을 저지른 애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웅얼대는 목소리가 안으로 먹혀들어 갔다.
서 선생은 가슴 한구석에 물감 퍼지듯, 따듯한 감정이 번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교직 생활, 약 7년.
‘이렇게 감동적인 순간이 나에게도!’
그러나 겉으론 티 나지 않게 표정을 관리했다.
큼큼. 목을 몇 번 가다듬었다.
“원래 실습 파트너는 밸런스를 생각해서 정해지는 거 알지?”
“네, 알아요. 저랑 미래가 많이 차이 난다는 것도. 그래도…….”
“생각은 해 볼게.”
“……!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짜 감사해요.”
아이는 벌써 승낙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이 확 펴선 교무실을 떠났다.
드르륵.
옆 파티션의 이 선생이 의자를 빼고 물어왔다.
“그렇게 해줄 거예요?”
서 선생은 한숨을 파악 내질렀다.
“신경 꺼요.”
***
그리고, 다시 지금.
파트너가 발표되자마자 앞자리 신하나가 고개를 꺾다시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있었다.
‘야, 너 어쩔 거야!’ 입으로 벙긋거리는 걸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신경 쓸 쪽은 내가 아니라.
‘한미래다.’
한미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 선생님이 교탁을 짚었다.
“조 번호, 파트너 다 안 까먹었지? 내일까지 서로 상의해서 어느 지역 맡고 싶은지 1순위, 2순위, 3순위 다 적어 와라. 1순위만 적어오면 아예 다른 데로 보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네에.”
“종례 끝. 내일 보자.”
칠판을 탁탁 두드리는 나무 막대기를 끝으로 아이들이 우후죽순 일어섰다.
각자 파트너를 향해 찾아가거나, 문자 하라며 나가는 소리들이 들렸다.
나 역시 걱정스러워하는 신하나의 눈빛을 지나쳐 한미래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느릿한 손길로 가방을 챙겼다.
“상의 안 할 거지, 나랑은.”
“…….”
“그럼 경로는 내가 짜서 낼게. 그래도 되지?”
통보하고 뒤를 돌았다.
입가로 스물스물 웃음이 피어올랐다.
이왕, 어차피 가야만 할 실습이라면.
‘나는 한미래와 다이아.’
모두를 해결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