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25
24화. 꿈속의 나비 (7)
짐작하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균열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이 인공 균열임을 알아챘고, 떡하니 최종 보스의 표식이 박힌 금속 조각까지 주웠으니까.
어디든 ‘눈’이 될만한 물건이 숨어 있거나 근방에서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나오란 대로 나올 줄은 몰랐지만.’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새는 몹시 고상한 푸른 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양손으로 쥐면 딱 들어올 크기 정도로 아주 작았다. 누가 봐도 굉장히 연약하고 해가 되지 않을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나는 균열 안에 나타나는 건 전부 마수 취급하는 원칙주의자고, 다른 하나는 제 나이의 절반 이상을 균열 공략하는 데에 쓴 베테랑이다. 나머지 하나는 저게 뭔지 아는 나고.
일단은 최이안이 냅다 저 새를 죽일까 걱정이 돼서 한 발 앞으로 나서려는데, 나보다는 신유하가 좀 더 빨랐다.
“누구신지 물어도 될까요?”
첫 만남에 할 법한 지극히 평범한 물음에 최이안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차더니 사슬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차르륵.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금 허공을 가르기 전에, 마석과 감응하고 나서 처음으로 마수를 향해 자연의 가호를 씌웠다.
팅! 튕겨 나오는 사슬을 보며 최이안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요한 후배님, 저거 데리고 나가려고? 껍데기가 귀엽다고 홀랑 넘어간 거야?”
“뭔 헛소리를 하십니까. 유하가 뭔가 하려는 것 같으니 잠깐 기다리라는 겁니다. 어차피 저게 뭔지 아무도 모르잖습니까. 대화 정도는 위험한 것도 아니고.”
누구 좋으라고 저걸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는 말인가.
균열이라는 균열은 전부 헤집고 다니는 최종 보스가 자신의 가장 강대한 적인 협회에 손길을 가장 늦게 뻗었던 건, 전부 협회가 균열 밖에 존재해서이다.
왜냐하면, 최종 보스는 결코 균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제약에 걸린 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바깥의 상황을 오로지 부하들의 시선에만 매달려야 하는 자인데, 그런 자의 눈을 밖으로 가져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뻔하지. 그날로 협회 정중앙에 흑색 균열 생긴다.’
폴짝폴짝 보호막 안을 뛰어다니며 몸을 부딪치다가 금방 포기한 파랑새가 태연하게 부리로 깃털을 고르는 걸 보며 팔짱을 꼈다.
자신이 만든 균열이 박살이 났고, 그 상황을 만든 당사자들이 이곳에 있는데도 여유로운 모습에 배알이 꼴린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는 낌새가 느껴지면 보호막은 바로 해제할 겁니다. 그땐 선배님이 원하는 대로 죽이시면 됩니다.”
내가 건넨 타협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최이안이 순순히 사슬을 팔찌로 되돌려보내며 신유하에게 가장 앞자리를 내놨다.
특이 사항을 기록할 의무가 있는 신유하는 고맙다는 듯 나와 최이안에게 눈인사하고는 다시 새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와 대화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대답해줬으면 좋겠어요. 당신, 누군가요?”
-누군가와의 대담은 늘 즐거운 법이지. 특히 나는 걸어온 대화는 거절하지 않는다네.
자그만 부리를 달각거리며 새가 연신 동그란 구 형태의 보호막 안을 종종걸음쳤다. 즐거워 보이는 새가 귀엽기는커녕 재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보호막을 내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데, 최종 보스 특유의 선문답에 정작 답변을 들은 신유하보다 최이안이 먼저 짜증을 냈다.
“누군지 물었는데 뭔 엉뚱한 말만 하고 있어. 우리 바쁜 사람들이거든? 빨리빨리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놔.”
-거참, 태양의 왕관이 고른 자가 이리도 폭급한 자일 줄이야. 난 그 애는 좀 더 온유한 자를 고를 거라고 여겼는데, 기분 좋은 빗나감이로구나.
그 순간 최이안의 기세가 변했다. 조금 전까지 불같이 타오르는 강렬한 기세였다면, 지금은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다.
“안 그래도 협회장이랑 비슷한 늙은이 말투여서 성질나는데, 작작 하지?”
-오, 이런. 역린이었나?
“야.”
-나는 교양 있는 자이니, 여기까지만 할까.
콩알만한 금색 눈동자가 반으로 접혔다. 보이기나 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은 눈이 우리를 한 번 쭉 훑더니 신유하에게 고정됐다.
-내가 누구인지 물었으니 답을 해주고 싶다만, 그 전에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일세. 그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혹 신여월이라는 자와 혈연 사이인가?
“어머니를 아시나요?”
-아하하하, 어머니, 그렇구나, 어머니란 말이지. 하하하. 이리 놀라울 데가 있나. 평생 홀로 살 것처럼 굴더니만 아이가 있었어.
보호구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파랑새는 기괴했다. 단순히 동물이 사람처럼 굴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아니꼬운 기색이 강렬하게 느껴져서다.
일전에 최종 보스의 흔적을 보고 신여월이 지독한 표정을 지었던 것처럼, 꼭 그만큼 저 새의 뒤에 있을 최종 보스도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도 선물을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푸른 새는 제 몸에서 깃털 세 개를 부리로 물어 뽑아내더니, 그대로 던졌다.
아이온이 담긴 물체가 보호막을 통과하면서 순간적으로 울렁거렸지만,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기에 혀를 살짝 깨물어 무표정을 유지했다.
최종 보스가 내던진 깃털은 각자의 앞에 둥둥 뜬 채로 멈췄다. 의심스럽게 그것을 노려보자 최종 보스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봤자 새한테서 나오는 소리라 소름만 돋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 또한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누구인지 물었지. 그걸 들고, 신여월에게 가서 보여주려무나. 우리는 제법 연이 깊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걸세.
“그다지…. 좋은 대답을 들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설마! 그 반대일 거야, 내 장담할 수 있지.
새 주제에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드는 꼴이 아니꼽다. 최종 보스에 대해선 좋은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생각이 더 삐딱선을 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어볼 건 물어봐야 하니까 최대한 예의 바르고 침착하게 새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면 이 친구에게만 주면 되는 것을 왜 저희에게까지 깃털을 준 겁니까? 자기가 누군지 스스로 밝히지도 않고, 자신의 소개를 협회장님께 미룬 자가 주는 건 껄끄러워서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됩니까?”
-으음? 받은 물건을 어떻게 할지는 내가 관여할 수 없다네. 그 깃털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처분은 그대의 뜻대로 하면 되네. 버리고 싶다면 버려도 좋고, 보관하고 싶다면 그리하면 된다네. 물론 나야 기껏 건넨 선물이니, 잘 써줬으면 좋겠지만 말일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옆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새를 노려보던 최이안이 깃털을 자비 없이 태웠다. 깃털은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르르 흩어졌다.
-저런.
“불만이라도?”
-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네. 그것이 그대의 뜻이라면 존중해야지.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새를 보다가 내 몫의 깃털을 잡았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물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걸 사용하는 사람에 달린 것이니 일단 들고 가볼까.
혹시 몰라서 아이온으로 잘 감싸서 보관함에 넣자, 최이안이 언제든 없애고 싶으면 부르라며 속닥였다. 그 제안을 감사히 받아먹고, 새에게 둘렀던 보호구를 없앴다.
착잡한 표정으로 깃털을 챙긴 신유하가 입술을 옴짝거리다가 부드럽게 웃는 모양을 만들어냈다.
“당신의 정체는 그럼 어머니께 여쭤볼게요. 한데 그러려면 저희가 여기서 나가야 하거든요. 당신이라면 출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나요?”
자유로워진 파랑새는 그저 작은 눈을 반으로 접더니, 활기차게 우리 주변을 넓게 한 바퀴 날았다.
최이안이 거슬려서 어쩔 줄 모르는 손을 움찔거렸고, 신유하는 묘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도 이상을 눈치챘다.
“엇, 이게 왜 바닥에….”
“설마….”
딛고 선 자리 바로 아래의 바닷물이 휘몰아치더니, 그 중앙에 희미하게 서서히 넓어지는 출구가 보였다.
저기로 들어가라고? 우리가 이를 부득 갈아붙이자 파랑새가 깔깔 높은 소리를 내며 휙 멀어졌다. 어느덧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파랑새가 잔뜩 웃음기 어린 말로 우리를 배웅했다.
-바다로 왔으니 바다로 돌아가야 순리지 않나. 하지만 혹여 겁이 나 뛰어들지 못할까 싶어 약간 도움을 줬을 뿐이라네.
뭔 블랙홀도 아니고 출구 주제에 사람을 빨아들여? 설마 저 바닷물까지 밖으로 배출되는 건 아니지?
기겁한 내가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황급히 지팡이를 휘둘러봤지만, 세찬 물살을 막아낼 순 없었다.
풍덩! 기어이 출구에서 나오는 강한 힘으로 바닷물에 온몸이 적셔지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잘 가시게들. 다음에 또 보세.
귓가를 스치는 작별 인사에 이를 앙다물었다.
‘또 만나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한 방 먹인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최이안의 격한 욕설과 신유하의 앓는 소리를 양옆으로 들으며 흐름에 몸을 맡겼다.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간질이고, 이내, 철퍼덕 내동댕이쳐지듯 바닥에 주저앉게 됐다. 밖이었다.
“어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물에 푹 젖어서 나오니? 설마 하는 건데, 심해는 아니었지?”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한 윤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태평한 모양에 알게 모르게 긴장했던 몸이 쭉 풀리며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축축한 몸이 찝찝해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물기를 날리고 윤혜아와 똑바로 마주했다.
“심해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네, 평범한 섬과 바닷가였고, 약간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너희?”
“음, 그러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고르는 사이, 멀찍이 떨어져 발을 쾅쾅 굴러가며 화병이 날뻔한 속을 달랜 최이안이 빛처럼 달려와 소리쳤다.
“누님! 최근에 공략팀으로 들어간 적 있어요?”
“아니, 없어. 마지막으로 들어가 본 게 벌써 5년은 됐지.”
그보다 더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윤혜아의 말에 이번엔 신유하가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면서 물었다.
“그럼 혹시 누나가 지금처럼 밖을 담당했을 때, 공략팀 쪽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말한 적은 있어요?”
“글쎄…. 지금 너희가 최근 들어 가장 이상하고, 굳이 따지면 지난주에 특이했던 팀은 있어.”
“지난주 언제, 무슨 팀이요?”
“으음, 두 팀이었는데. 하나는 서귀포에 갔던 7조고, 다른 하나는 부천에 갔던 이시영 선생님하고 심초연 부장님 페어였어. 두 쪽 모두 되게 이상한 얼굴로 나왔길래 물어봤었는데, 뭐라고 하셨더라….”
턱을 문지르면서 기억을 더듬던 윤혜아가 금방 떠올랐는지 말을 덧붙였다.
“7조는 오늘 당직 내내 움직여서 잘못 느낀 걸 수도 있는데 출구가 조금 늦게 나타난 것 같다고 했고, 이시영 선생님 페어는 누군가 자꾸 지켜보다가 뒤늦게 문을 열어주는 느낌이 든다고 했어.”
“그 외에 다른 말은 안 하셨고요?”
“7조 때는 다들 너무 피곤해 보여서 일단 자라고 보냈었고, 선생님께는 자세히 물어봤지. 균열 안에서 누가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딱히 소득은 없었어.”
윤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느낌일 뿐이고, 마땅히 댈만한 증거도 없으니까 좀 더 확신이 생기면 여월 님께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하셨거든.”
“그렇군요.”
“그래도 보고서에는 다 적었다고 하셨으니까, 유하 네가 한 번 찾아봐. 네가 못 보는 건 없잖니.”
“예, 그럴게요.”
“응응, 그럼 우리 이제 본부로 돌아가자! 나오자마자 말해준다는 걸 내가 잊었는데, 긴급회의 소집됐어.”
손뼉을 짝 치며 윤혜아가 유쾌하게 웃었다.
긴급회의가 소집되는 건, 협회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나 크게 행사가 있을 때 정도니까 전혀 웃을만한 내용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돌아가자는 말에 긍정하려던 신유하가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기울였다가 눈을 크게 떴다.
“긴급회의요? 누가 모은 건데요?”
“듣고 놀라면 안 된다?”
개구쟁이처럼 눈웃음을 친 윤혜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김휘율 전 부협회장님.”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이안과 신유하가 작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굳혔고, 나는 다른 의미로 놀라서 뻣뻣하게 목이 굳었다.
‘김휘율이 살아 있다고?’
협회에 전투원으로서 가입하게 되면, 은퇴는 딱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첫 번째는 죽음. 두 번째는 죽지는 않았지만, 전투에 두 번 다시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다치고, 치료도 불가능할 경우. 협회에 가입할 때 계약서에 명시된 부분이다.
첫 번째인 죽음은 은퇴라기보다는 순직에 가깝고, 두 번째인 부상은 지금껏 딱 한 명 있다고 진예신이 분명 말해줬었다. 옆에 있던 신여월은 원한다면 만날 수도 있다며 이름까지 알려줬었고, 그건 김휘율이 아니었단 말이다.
‘자료실에 남은 문서에는 분명 은퇴라고 되어 있었다고. 순직도 은퇴라고 표기한다고 했으니, 김휘율은 소설과 게임 설정 그대로 메인 스토리 시작 전에 죽었구나, 했더니만!’
김휘율이 지닌 능력은 아주 독특한 편에 속하고, 그것 때문에 최종 보스가 무척이나 공을 들여서 일찌감치 무대 밖으로 밀어낸 거였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진예신도, 소설 주인공인 신유하도 김휘율의 이름만 알지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이 협회에 소속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저 놀라는 얼굴을 봐라. 이미 신유하는 김휘율과 만난 적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건 진예신도 마찬가지겠지.’
사람이 좀 적당히 최종 보스의 앞길에 걸림돌만 두고, 친구 두 놈만 챙겨서 살아보려고 했더니만 온갖 곳에서 방해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껏 내가 쌓아온 게임 지식이 앞으로 많이 변할 것이고, 이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라며 누군가 등을 떠미는 느낌이다.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야. 보호받는 것도 마찬가지고.’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 지부로 향하는 윤혜아의 뒤를 쫓으며 굳은 목덜미를 꾹꾹 눌렀다.
할 일이 태산 같고, 알아야 할 것이 바다보다 깊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원흉을 잡는 것.’
긴급회의가 끝나자마자 진예신의 멱살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