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s absolut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
대한민국 절대 재벌! 20화
이래서 인연은 참 묘한 것이다.
리에 아가씨는 내가 일본인으로 가장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얻어터질 때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그때는 거의 상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밤길 살펴 가세요.”
삼순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나는 살펴 갈 수 없을 것 같다.
왜냐고?
자식에 대해서는 인자한 사람도 비정해지기 마련이니까.
‘사장님을 다시 만나야겠군.’
딸 가진 부모라면 자기가 부리던 사람을 사윗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연서 한 장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서 쌓은 모든 신뢰를 잃을 수는 없다.
나카무라 사장님이 아무리 인자한 분이고.
내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조선인에게 딸을 줄 정도로 박애주의자(?)는 아닐 테니까.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그리고 나는 할 일도 많다.
하여튼 리에 아가씨는 주인으로 모시는 분의 딸이지.
내가 품을 여자는 아니었다.
물론 나도 리에 아가씨가 싫지는 않다.
‘아름다우니까.’
처음에는 벚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는데.
몇 년을 지켜보고 모셔 보니 무궁화처럼 강직한 면도 있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욕심낼 만한 여자는 아니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 * *
1943년 12월 25일.
나카무라 사장의 서재.
“왜, 내게 이것을······?”
돌아갔던 내가 신중한 얼굴로 다시 들어와서 리에 아가씨가 내게 보낸 연서를 내밀자.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으셨다.
‘이미 알고 계셨다는 건가······.’
연서는 아니더라도.
나를 향한 리에 아가씨의 마음은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대단하신 분이시다.
일본인들이 하찮게 여기는 조선인을 좋아하는 자신의 딸을 격리하거나.
나를 내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지금까지 공과 사를 구분하시느라.
참 많이 고민하고 참았으리라.
“리에 아가씨가 제게 보낸 편지입니다.”
“으음······.”
내 말에 나카무라 사장님은 작게 신음을 터트렸다.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왔습니다. 제가 받을 편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뜯어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보지 않은 것 같군.”
나카무라 사장님은 테이블 위의 편지를 물끄러미 보더니 내게 말했다.
“예, 안 보였습니다. 볼 필요도 없을 거라서……. 저는 제 분수를 잘 압니다. 상인이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린다면 위태로워진다는 것 역시 압니다.”
이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정말 더럽다.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가 그 사실을 부정해야 한다니.
기분이 더러운데, 이게 현실이다.
‘그래, 욕심내지 말자.’
더러운 기분이야 잊으면 그만이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 실패한 경영자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건.
이 시대의 진리일 것이다.
부자가 되면 리에 아가씨가 아니라도 열 여자를 건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나를 토닥였다.
“역시 마음은 송곳과 같구나, 끝내 이렇게 튀어나오는 법이니 말일세.”
그는 리에 아가씨의 마음을 알고 계셨다.
“강철, 자네는 정말 믿음이 가는군. 세상에 자네처럼 한결같은 사람은 몇 없어. 나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사람도 없군.”
사실 이 행동 역시 내일을 위한 포석 아닌 포석이다.
‘다 팔고 가면······.’
엄청난 기회를 놓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쥐뿔도 없던 때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믿어 주신 만큼 보답하겠습니다.”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앞으로는 리에 아가씨 앞에서 언행을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으음……!””그리고 내일부터 장부는 다른 직원을 통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참에 모피 거래를 위해 잠시 만주에 다녀오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단호해야 한다.
사실 처음부터 리에 아가씨가 내게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 나를 봤을 때는 본체만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거의 매일 얼굴을 보고.
상거지 꼴이 아닌 말쑥한 얼굴에 사람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과.
출중한 사업 수완을 보고 나를 달리 봤을 것이다.
한마디로 서서히 물들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멀리 떠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자네는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군. 그런데 말일세, 지금 내 기분이 참 묘하고 좀 무엇하다네.”
“예?”
“지금 자네는 내 딸의 마음을 거절한 게 아닌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나는 애써 담담한 눈빛으로 나카무라 사장님을 봤고.
그도 나를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사실대로 말해 주게, 자네는 정말 리에가 싫은가?”
쿵!
나도 모르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말도 안 되는 여러 상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혹시 조선인을 사위로 삼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나카무라 사장님은 내 능력과 내가 몇 년 만에 이룬 엄청난 성과를.
실제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리에 아가씨가 혼혈아라는 것도 생각했을 것이다.
즉, 나를 데릴사위로 집안에 받아들여 대를 이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아들의 성은 강이 아니라 나카무라가 된다.
‘반쪽짜리 일본인이니······.’
만약 리에 아가씨가 일본인에게 시집가면 무시당할 것이고.
천대받을 확률이 높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사실 이만큼 성공한 것은 장인어른 덕분이기도 하지.”
나카무라 사장의 장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조선말로 하자면 나는 자네처럼 쥐뿔도 없이 점원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네.”
“그러셨습니까?”
“그래, 내 장인께서는 나를 일본인이라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으셨을 것이네, 그저 내 능력과 마음가짐만 보고 자신의 딸을 내어 주셨지.”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나카무라 사장님과 내 경우는 분명 다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나카무라 사장님은 귀족이 되어 리에 아가씨를 일본 귀족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그 마음이 달라진 것.
“자네가 내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었지?”
“송구합니다.”
“나도 곰곰 생각해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더군.”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반쪽인 리에가 귀족 가문에 시집간다고 해도 차별받을 것이고, 무시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
일본인은 조선인을 열등한 2등 신민이라고 생각하고 차별한다.
조선인의 피가 섞여 있는 리에 아가씨도.
당연히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마음은 접었네. 뭐, 그래도 헌금은 계속해야겠지만 말일세.”
나를 정말 신뢰하시는 분이시다.
“저는 그저······.”
“리에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내가 봐도 자네는 잘생겼어.”
맞다.
잘생겼다.
“거기다가 능력도 출중하고.”
이미 내 능력은 다방면으로 보여 드렸다.
내 나름대로 내일을 준비하면서도.
나카무라 사장님의 이익을 얻느라 항상 노력했다.
내가 신임을 받은 후로는 나카무라 사장님의 사업도 승승장구했고.
총독부에서는 나카무라 사장님을 꽤 건실한 사업가로 인식했다.
그러다 보니 나카무라 사장님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졌다.
“과찬이십니다.”
“자네는 정말 리에가 싫은가?”
“제가 어찌 감히······.”
나를 떠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지 않다면 그 편지를 읽고 자네의 마음을 말해 주게.”
쿵!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3년 만에 이룬 신뢰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내 능력을 높이 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실 터놓고 말해 있는 집 자식 중에 누가 우리 집 데릴사위로 들어오겠나?”
역시 나를 데릴사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일본 귀족이, 그리고 좀 산다는 일본인의 아들이.
누가 조선인의 피가 섞인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오겠는가?
그는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적임자라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입니다.]몇 년 동안 들리지 않았던 메시지가 다시 내 뇌리에 울렸다.
‘선택의 순간······.’
이런 메시지가 뜰 때는 내 인생이 갈림길에 섰다는 뜻.
따지고 보면 세 번째 갈림길이다.
첫 번째는 고향에서 경성으로 올라가겠다고 결심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시라소니를 따라갈지.
아니면 리에 아가씨를 따라갈지 결정해야 했을 때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또 한 번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이 메시지를 통해 나는 나카무라 사장의 결심을 추측할 수 있었다.
‘으음······.’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나카무라 사장은 나를 떠나보내려 할 것이다.
그 역시 지금 당장은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이다.
‘곧 독립될 이 마당에······.’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이다
본질에서 나카무라 사장님은 일본인.
조선이 독립하면 도망치듯 열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내가 꼭 데릴사위까지 되면서.
나카무라 사장님을 비빌 언덕으로 삼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리에 아가씨······.’
부정해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자꾸 눈에 들어온다.
사랑은 국경도 없고 나이도 없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저……. 저는……!”지금은 무슨 말도 할 수가 없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