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92)
엘프주의 향에 한 번 놀란 집사 나이트는, 엘프주의 빛깔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이건…… 아름답군. 녹인 에메랄드를 보는 것 같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프주가 든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와인 잔에 부딪힌 엘프주가 찰랑거리면서 오묘한 빛을 살짝 뿌렸다.
“허어.”
그것을 본 나이트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엘프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있었다.
“크아하! 조오타!”
시원한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과일 안주를 집어 먹는 아버지.
어머니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말했다.
“여보. 품위 있게 좀 먹어요. 손님도 와 계신데…….”
“허허. 품위? 당신, 어느새 귀부인이 다 됐네. 나이트 씨 앞이라고 그러는 거야?”
“이이는 말을 해도 꼭…….”
어머니는 그리 말하면서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러다가 와인 잔을 기울여 엘프주를 마셨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역시 맛있네. 종이컵에 먹었을 때보다 맛있는 것 같다, 얘.”
어머니의 말에 건우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보는 맛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아버지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고말고. 내가 이 엘프주를 딱 보는 순간, 이건 유리잔에 마셔야 된다고 단번에 알아차렸잖아.”
그는 그렇게, 살짝 으스대듯이 말했다.
그때, 아직도 엘프주의 향과 빛깔에 취해 있던 나이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엘프주라고 하셨습니까?”
나이트의 물음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 아버지. 엘프에 관해서는 비밀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 순간, 건우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제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뭔가 어울리지 않나요?”
건우의 대답에 나이트가 잠깐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작명 센스가 좋으시군요. 아주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건우는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재빨리 자신의 몫인 엘프주를 쭈욱 들이켰다.
“크흠.”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감탄사가 나올 뻔한 것을 참는 건우.
나이트가 그런 건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관상만 하고 있던 엘프주를 입 안에 살짝 머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볍게 돌리는 듯하더니, 부드럽게 목으로 넘겼다.
“허어. 이건 아주 좋군요.”
엘프주를 맛본 나이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웬만한 술은 대부분은 마셔 본 그로서도, 엘프주 같은 고급스러운 술은 마셔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이트가 천천히 자신의 감상을 내뱉었다.
“특히 입 안에 남는 잔향이 무척 좋습니다. 목 넘김도 부드럽고, 끝 맛도 달콤하군요. 끝 맛이 달콤하면 입 안에 텁텁함이 남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 것도 없다니…… 정말 좋은 술입니다. 다만, 거친 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맛이겠군요.”
단 한 모금으로 꽤 세세한 부분까지 감상을 내뱉은 나이트가 다시 엘프주를 들이켰다. 이번에는 잔이 빌 때까지 쭉 들이켠 것이다.
나이트는 잔을 전부 비우고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후우. 정말 훌륭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상품성은 충분하겠죠?”
“네. 충분하다 못해서 넘칠 정도입니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고급술이라는 느낌입니다. 그건 그렇고 발효주 맞습니까?”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네 가지 특수작물을 이용해서 만든 발효주예요.”
그 대답에 나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특수작물로 만든 술이라는 말씀입니까? 그것도 네 가지나? 어허, 어쩐지……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과 향이다 싶었습니다. 네 가지 특수작물로 만든 술이라니…… 허허. 제가 호강하는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건우 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에 건우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나이트는 그런 건우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건우 님은 이 술을 상품화시킬 생각이십니까?”
“네. 그래서 나이트 씨에게 시음을 부탁드려 본 거예요. 가능하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정확히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농사를 짓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그 외에 것은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감도 안 잡혀서요. 하하.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물론 그에 대한 비용은 제가 지불할 거예요.”
그리 말한 건우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농사만 지을 테니, 나머지는 다 도와 달라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트가 두 눈을 반짝이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정말요?”
“네. 그리고 비용도 일체 받지 않겠습니다.”
“네?”
건우는 나이트의 말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건우의 표정을 본 나이트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이건우 님께서 신화그룹에 주신 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나이트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로 인해 신화그룹은 돈도 돈이지만, 그 외의 여러 이점들을 많이 얻었다. 그것은 지금 건우와 한 계약으로만 갚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 신화그룹 자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신화그룹과 한 계약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기에, 나이트의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건우가 볼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러면 제가 불편해서요. 도와주시는 일에 대한 비용은 제가 지불할게요. 잘 아시겠지만, 제가 이제 돈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더욱 신세를 갚기 어려워서 문제이지요. 그러니, 이번 일은 부디 저희에게 전부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숙이는 나이트.
나이트가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자, 건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 달라는 사람하고 도와주는 사람의 모양새가 어찌 바뀐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나섰다.
“아들. 이건 그냥 나이트 씨한테 맡겨 보는 게 어떻겠냐?”
“네? 하지만…….”
“마냥 안 받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베풀 줄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베품을 받는 것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 말에 건우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이번에는 그 베품이란 거…… 한 번 받아 볼게요.”
그 말에 나이트가 고개를 들면서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건우 님. 이번 일은 제가 나서서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건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이트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사이, 둘의 합의를 이끌어 낸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참, 보기 좋네.”
그는 그러면서 은근히 남은 엘프주를 자신의 와인 잔에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버지 억제기가 바로 옆에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손목을 턱하고 잡은 것이다.
“여보.”
위협적인 어머니의 음성.
자칫 잘못하면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게 될 거라고 본 아버지가 은근슬쩍 잡았던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풋!하고 웃어 버렸다.
* * *
“하와~”
“조심히 들어가세요!”
갸웅!
뺙!
하와와 엘, 가온, 빙닭의 배웅 인사에 신비술사 조윤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아, 가기 싫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억지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대문을 나섰을 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24시간, 365일, 아침, 점심, 저녁까지 아이들하고 같이 있고 싶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리 생각하는 조윤아의 표정이 금세 우울해졌다.
그때였다.
그런 그녀의 뒤로 따라붙은 나이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아쉬우십니까?”
“네. 아쉽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내일, 다시 놀러 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놀러 올 때까지는 못 보잖아요.”
그 말에 나이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한 거라면 조윤아가 원하는 것을 다 해 주고 싶은 나이트였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조윤아가 하와와 아이들을 24시간 계속해서 같이 있을 수 있을 방법을 떠올렸다. 납치, 감금 같은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납치, 감금도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이 방법도 그에 못지않은 극단적인 방법이니…… 흠, 어떤 면에서는 납치, 감금보다 현실성이 없군.’
나이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떠올린 방법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때, 조윤아가 말을 걸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전에, 뭔지 모르지만 무척 좋은 향이 나던데…… 이건우 님이 나이트에게 뭘 보여 준 거예요?”
그 물음에 엘프주를 떠올린 나이트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집에 들어가셔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아요. 집도 바로 앞이니까요.”
조윤아는 그러면서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대문만 벗어나면 집이 바로 코앞이니, 현관문을 여는 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조윤아가 소파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상태로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 나이트를 바라봤다.
“자, 이제 말해 주세요. 오늘 이건우 님이랑 무슨 얘기를 나누신 거예요?”
그 물음에 나이트가 바로 대답했다.
“오늘 이건우 님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요?”
“네. 엘프주라는 술이었습니다.”
그 말에 조윤아가 흠칫 놀랐다.
“엘프주라면…… 저희가 아는 그 엘프들이 만든 술이라는 건가요?”
“이건우 님은 자신이 지은 이름이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엘프들이 빚은 술이 맞는 것 같습니다.”
둘은 건우가 엘프들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엘프주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엘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윤아가 소파에 맡겼던 몸을 바로 세웠다.
“엘프들의 술이라면, 한 번 마셔 보고 싶네요. 아까 퍼지던 향도 무척 좋던데…….”
그 말에 나이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나이트.
그에 조윤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요? 저도 나이가 나이인데…….”
“그래도 신체 나이가 어려서 안 됩니다. 술이 좋지 않은 작용을 할지도 모릅니다.”
조윤아는 그 말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표정을 풀었다.
“아무튼 상품성은 있었나요?”
그 물음에 나이트가 다시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술맛이었습니다. 심지어 무척 좋았습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술맛이라…….”
“굳이 따지자면 칵테일 중 몇몇 종류와 비슷하긴 한데…… 그 깊이가 다릅니다. 여러 술을 섞어서는 나올 수 없는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그 말에 조윤아는 잠시 팔짱을 끼고 엘프주의 맛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어떤 술도 입에 대본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그 맛을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흠. 상상이 안 가네요. 역시 한 모금이라도 좀 마셔 봐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안 됩니다.”
“칫! 역시 안 통하나?”
조윤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쉬워했다. 물론 진짜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저 장난스러운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엘프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 주제는 엘프주의 대량 생산과 유통, 판매, 홍보 등에 관한 세세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