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96)
건우는 한동안 확 바뀐 온도를 느끼면서, 하늘에 떠 있는 마법진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허공에 그림처럼 그려진 마법진의 모습이 신기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법진이라고 하길래, 어떤 건가 싶었더니…… 무슨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숨겨져 있던 마법진을 드러낸 소아가 건우를 돌아보면서 싱긋 웃었다.
“어때? 대단하지?”
“응. 대단해. 솔직히 정말 많이 놀랐어. 그런데 어떻게 마법진을 허공에 그린 거야?”
살짝 들뜬 듯한 건우의 물음에, 소아가 씨익 웃었다.
“어떻게 한 건지, 건우가 한번 맞춰 봐!”
아까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장난스러운 문제를 낸 것이다.
장난 브레이커인, 다크 엘프 한이 나선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마법입니다. 저희들은 마력을 이용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진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건우에게 설명하려는 한.
하지만 그는 결국 그 설명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소아가 한을 홱! 하고 돌아보더니, 단숨에 뛰어올라서 양손으로 입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소아가 한에게 달라붙은 자세로 소리쳤다. 마치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 같았다.
“한! 방해하지 마!”
“읍읍!”
한은 갑작스러운 소아의 육탄 돌격에 놀라서 버둥거렸다.
그러는 사이, 소아가 고개만 돌려서 건우를 다그쳤다.
“건우, 이때야! 빨리 맞춰 줘!”
그에 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방금 전에 한이 하려던 말을 인용해 대답했다.
“마력을 이용해서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 거 같은데…… 맞아?”
“딩동댕! 정답입니다!”
건우의 대답에, 소아는 이빨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건우가 정답을 맞춘 게, 상당히 기쁜 모양이었다.
건우도 그런 소아의 웃음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건우가 볼을 긁적이면서 소아에게 말했다.
“소아야. 이제 한 씨는 놔줘도 되지 않을까?”
“앗!”
소아는 건우의 말을 듣고서, 뒤늦게 한의 입을 막고 있던 양손을 풀었다. 그리고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미, 미안해. 괜찮아?”
조심스럽게 한에게 사과하는 소아.
그에 한은 잠시간 쉬지 못했던 숨을 몰아쉬더니, 슬쩍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작은 무녀. 엄마 나무가 저를 반기는 모습을 잠깐 보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건우는 한의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엘프식 농담인가? 너무 진담같이 말해서 조금 무서운데?’
그가 그렇게 황당해하는 사이, 여유를 되찾은 한이 건우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건우 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마력을 이용해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습니다. 솔직히 이 방법은 효율이 좋지 않지만…… 농작물을 땅에 심게 되면 마법진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건우는 바로 한의 말에 수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땅속에 마법진을 그려 넣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땅속에도 몬스터가 살고 있더군요. 물어보니, 이건우 님이 키우시는 거라던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딥 어스 웜이에요. 커다란 지렁이죠.”
“그렇군요. 역시 이건우 님은 대단하십니다.”
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에 건우가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한 씨가 더 대단해 보이시는데요? 보세요. 더위가 싹 가셨어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봄의 기운을 만끽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름을 봄으로 바꾼다는 것.
건우에게 그것은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더 대단하다니…… 절대로 아닙니다. 마법은 재능이 좀 있고, 하는 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우 님의 몬스터를 키우는 능력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의 힘이죠.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힘입니다.”
그 말에 건우는 다시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이어지기 시작한 서로에 대한 칭찬 릴레이.
결국, 그 끝에 항복 의사를 내비친 것은 건우였다.
“좋아요. 제가 대단해요. 그러니까, 이제 금칠은 좀 그만둬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건우 님의 대단함은 몇 날 며칠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한은 목이 칼칼한지 두어번 목을 가다듬었다.
건우가 그런 한의 모습을 보면서 슬쩍 웃었다.
‘한 씨도 한 고집하는구나.’
그는 그러면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가장 큰 문제도 해결됐으니, 오늘부터 특수작물을 심어 봐야겠네요.”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순간적으로 한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 지금부터 바로 심는 겁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쉽지만…… 오후부터요. 지금은 던전 농지 밖에 일을 끝내고 와야 할 것 같아요.”
건우의 대답에 한의 반짝이던 두 눈이 빠르게 차분해졌다. 그리고 살짝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한과의 대화를 마친 건우는 곧바로 던전 농지를 나섰다. 그런 건우의 옆에는 손을 꼭 잡은 소아가 함께였다.
* * *
건우가 소아와 함께 과수원에 도착했을 때.
놀랍게도 과수원 작업은 모두 끝나 있었다. 건우가 너무 늦게 온 것이라기보다는, 남아서 일하던 초인들의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몸으로 하는 건 초인들이 최고야.’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구 쪽에 세워 두었던 경운기의 짐칸을 살폈다. 거기에는 아침에 미리 챙겨 두었던 새참 거리가 그대로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가져온 빵하고 음료수는 손도 안 댔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오순도순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인사 대신에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이것들 좀 드시면서 쉬세요!”
그 말에 과수원에서 일하던 모두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향했다.
건우는 새참 거리를 흔들고 있었고, 같이 온 소아는 양팔을 활기차게 흔들면서 인사하고 있었다.
“나, 왔어!”
소아의 인사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하와와 엘, 가온.
세 아이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짧은 다리로 도도도 달려왔다.
“하왕!”
“소아 님! 보고 싶었답니다!”
갸웅!
그리고 단숨에 소아를 덮치듯 안았다.
건우는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바디어택에 당해서, 넘어지려는 소아의 등을 재빨리 받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하와와 아이들을 타이르듯이 진정시켰다.
“애들아, 환영해 주다가 다치겠다. 진정해.”
그가 그렇게 말하자, 하와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소아와 손을 맞잡고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하루 못 본 것뿐인데도, 마치 몇 날 며칠을 못 본 것처럼 반가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으이구, 우리 뽀시래기들.’
건우는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서, 참지 못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어느새 건우에게 다가와 있었다.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 불의 꽃 박예란, 포식자 민서린, 집사 폰…… 돌쇠와 빙닭은 각자의 주인과 함께 와서는, 여전히 들떠 있는 아이들 무리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건우는 그런 일행들에게 새참 거리를 다시 한번 흔들어 보이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궁금한 것들이 많죠? 일단 먹으면서 얘기해요.”
건우의 제안에 네 사람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건우는 일행들을 이끌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적당히 큰 사과나무 두 그루 아래에 빈 포대 자루를 나눠서 바닥에 깔기 시작했다.
“자, 우리 귀염둥이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건우의 안내에 포대 자루를 깔고 앉는 하와와 아이들.
건우는 그런 아이들 사이로 대부분의 새참 거리를 놔두었다. 하와가 많이 먹는 만큼 많이 놔둔 것이다.
“먹으면서 잠깐 놀고 있어, 알았지?”
“하와!”
하와는 먹고 노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다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건우는 그런 하와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박 남매와 민서린, 폰이 깔고 앉은 자리로 향했다.
‘어떤 질문이 쏟아지려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근한 긴장감을 느꼈다. 하지만 금세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빈자리에 끼어 앉았다.
건우가 남은 새참 거리를 가운데 놔두면서 입을 열었다.
“새참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 먹으러 가요.”
“알겠습니다.”
건우의 말에 그리 대답한 폰은, 가운데 덜렁 놓인 새참 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손수 챙겨 주기 시작했다.
빵을 나눠 주고, 종이컵에 음료를 따라 주고…… 별것 아닌 움직임이었지만, 건우는 자신이 대우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네. 이게 프로 집사의 힘인가?’
건우는 그리 생각하면서, 이온 음료로 입을 축였다. 이온 음료는 무척 미지근했다.
그때, 건우처럼 이온 음료로 목을 축이던 박예준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음료수가 미지근하네요. 제가 차갑게 해드릴게요.”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박예준.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종이컵이 시원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박예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박예준을 바라봤다.
“너…… 언제 이런 것도 가능해진 거야?”
그가 보여 준 세밀한 컨트롤에 놀란 것이다.
박예준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수련 원투데이 한 것도 아니고…….”
그는 그러면서 시원해진 음료수를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곧 화들짝 놀라서 종이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음료수가 순식간에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박예준이 곧바로 이런 짓을 한 범인을 특정하고서, 박예란을 노려봤다.
“야, 무슨 짓이야!?”
“그냥 나도 네가 하는 것처럼 될까 싶어서 해 봤어.”
“그럼 네 거로 하던가!”
“그럼 재미없잖아.”
“뭐? 이 돼지가!”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건우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긴장감이 살짝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자신을 배려해 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착한 아이들이야. 내가 긴장했다는 걸 알고 분위기도 풀어 주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볍게 박 남매를 말렸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본론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음, 아마도 딥 어스 웜 때문에 놀라셨을 거예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네 사람. 그들은 건우에게 무섭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에 건우는 괜히 목을 한 번 가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바위벌 양봉을 하는 것처럼, 딥 어스 웜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그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네 사람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은 더 말해 보라는 듯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에 건우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끝이에요.”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네 사람의 허탈함이 가득한 탄식.
긴장의 끈이 똑 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탄식이었다.
건우가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딱히 이것 말고는 제가 해 줄 말이 없더라고요. 혹시 궁금한 점 있으세요?”
그 물음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폰이었다.
“저는 없습니다.”
그 말에 건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네. 제 역할은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잠시나마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저는 제 본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 지금 돌아가시게요?”
“네.”
“식사는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하겠습니다.”
폰은 그렇게 말하면서 뒷걸음질로 조심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을 때, 뒤돌아 가려던 그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면서 파란색 트레이닝 복의 옷깃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 옷은 빨아서 드리겠습니다.”
그에 건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폰이 자릴 뜨고, 건우는 박 남매를 바라봤다.
“너희들은 궁금한 점 없어?”
그에 둘은 서로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없습니다, 건우 형님.”
“저도 없어요.”
그에 건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서린을 돌아봤다.
민서린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