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04)
건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난생처음 보는 종족이 다짜고짜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뭐지? 드워프들은 원래 첫 만남에 이렇게 인사하는 건가?’
건우는 그러면서, 재빨리 족장 얀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 드워프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얀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얀의 눈동자도, 건우 못지않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건우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드워프가 둘의 모습을 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작은 물건을 꺼내 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제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드워프가 꺼내 들었던 작은 물건은 동시 통역기였다. 다만, 평범한 통역기는 아니었다.
‘이건 엘프들이 사용하는 마법하고 비슷한 느낌인데?’
건우가 생각한 것처럼, 드워프가 사용하는 통역기는 엘프들의 마법과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었다. 언어를 언어로 번역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 자체를 전달해 주는 방식이었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드워프는 건우와 얀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너무 오랫동안 안 써서 망가졌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멀쩡한 통역기를 우악스러운 손바닥으로 퍽퍽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깜짝 놀라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안 망가졌어요! 알아들었어요.”
“아, 그렇습니까? 워낙 오래된 거라, 고장이라도 난 줄 알았더니…… 역시 우리 선조들 실력은 알아줘야겠군요! 음하하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기절해 있던 다른 드워프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건우와 대화를 나누던 드워프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대뜸 다른 드워프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정신 차리고 전부 이리로 와! 거기, 기절해 있는 놈들까지 대충 끌고 와!”
그의 말을 들은 드워프들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하라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명이 넘는 드워프들이 건우의 앞에 모여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와!”
“다 털이 수북한데, 작답니다!”
“전부 나만큼 작아!”
갸웅!
하와와 엘, 소아, 가온은 그런 드워프들을 보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종족의 등장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건우와 얀도 신기하다는 듯이 그들을 보면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음, 드워프들은 생김새가 다양한 대신에…… 특징이 상당히 뚜렷하네요.”
“그렇군요. 저도 문헌으로만 알았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 신기합니다.”
그렇게 잠시 후.
모든 드워프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건우와 대화를 나눴던 드워프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우리를 지옥에서 꺼내 줘서 고맙습니다, 은인!”
그와 동시에 우르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다른 드워프들.
다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냥 앞선 드워프가 무릎을 꿇으니 따라 하는 모양새였다.
대표로 말하던 드워프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일을 주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다른 드워프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일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건우는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그리고 왜 자꾸 무릎을 꿇어요? 일어나세요, 다들.”
그가 그렇게 말하자, 대표 드워프가 뒤를 돌아보면서 외쳤다.
“은인께서 일어나라고 하신다! 일어나, 다들! 아직도 기절해 있는 놈은 뺨을 후려쳐서라도 깨워!”
그 말에 건우가 다시 화들짝 놀랐다.
“아니, 기절한 사람의 뺨을 왜 후려쳐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일어나는데…… 흐음.”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절하게 내버려 두세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대화를 통해서, 드워프가 만만치 않은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 얀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자연과 함께 머무는 자들’의 오랜 친우여.”
“오, 당신이 ‘자연과 함께 머무는 자들’이구만? 도와줘서 고맙소! 아까, 기절한 척 누워서 곁눈질로 슬쩍 봤는데…… 친우가 이분께 도움을 청한 거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직접 도와주려고 했지만…… 힘이 닿지 않아, 이건우 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오오! 존함이 이건우 님이셨군.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난 자들’의 대장인 무타무타라고 합니다.”
대장 무타무타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더니, 박수를 크게 한 번 치고 팔을 활짝 펼쳤다.
“으하하하!”
그리고 크게 웃는 무타무타.
건우는 눈치껏, 그것이 일종의 인사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하와와 아이들도 그것을 눈치채고 무타무타를 따라 했다.
“하와! 하와와!”
“엘이랍니다! 하하하!”
“소아야! 으히히!”
갸웅!
아이들은 무타무타의 인사가 재밌었는지, 연신 따라 하면서 드워프들과 인사를 나눴다. 덕분에 부족 마을은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건우는 그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곤한 종족이 확실하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 * *
한바탕 요란한 인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장내가 진정되었다.
그 후, 건우는 간단한 이야기만 나누고 부족 던전을 벗어났다.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지친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와!”
“재밌었답니다!”
“응! 재밌어!”
갸웅!
던전 농지로 돌아와 하와와 아이들은 드워프와의 만남이 무척 재밌었는지, 연신 그에 대해서 떠들기 바빴다.
그때, 던전 농지에 있던 뀨뀽이와 장군이가 다가왔다.
“뀽?(무슨 일이냐뀽?)”
―흠, 뭔가 일이 있던 건가?
둘이 그렇게 묻자, 하와와 아이들이 앞다퉈서 드워프와 있었던 일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인사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충분히 귀여웠지만, 웬일로 건우의 입에선 한숨이 나왔다.
‘내일 다시 만나야 하는데…….’
벌써부터 드워프들과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피곤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랑 너무 안 맞아.’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여기로 오기 전에 얀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얀 씨가 내일까지 최대한 인간의 상식을 드워프들에게 알려 준다고 했으니까, 그걸 믿어 봐야지.’
그는 그러면서 정신 산만한 인사법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건우의 스마트폰이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건우가 의아해하며 살펴보니, 뒤늦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스마트폰에 찍히는 것이 보였다.
“아. 연락이 엄청 왔었구나.”
건우는 그러면서 누구한테 연락이 왔는지 살폈다. 그리고 곧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예준이하고 예란이한테 문자라도 하나 남겨 뒀어야 했는데…….’
같이 일하기로 했던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에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잔뜩 와 있었던 것이다.
건우는 미안한 마음에 재빨리 박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예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건우의 전화를 곧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건우 형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연락이 너무 안 돼서 걱정했습니다.
그의 걱정 어린 말에, 건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문자라도 하나 남겨 놨어야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었거든.”
―큰일입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에서 신의 후예로 모시고 있는 드워프들을 전부 데려왔으니, 분명 큰일이긴 한데…….’
그걸 그대로 말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결국, 그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큰일은 아니야. 그냥 갑작스럽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을 뿐이니까.”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잘 해결됐습니까?
“응. 잘 해결됐어. 아무튼, 정말 미안해. 너무 급해서 연락도 잊었다.”
―괜찮습니다, 형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박예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관대하게 건우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물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십니까?
“오늘 저녁에? 별다른 약속은 없는데?”
―그럼, 오늘 정수찬 셰프 레스토랑에 같이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마침 순번이 돌아왔습니다.
그 물음에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정수찬의 레스토랑에 가는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나랑 가도 돼? 수찬 씨네 레스토랑이면, 부모님이랑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아?”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순번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부모님이랑은 스케줄이 안 맞게 됐습니다.
그 말에 건우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럼 같이 갈까?”
건우는 그렇게 박예준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건우는 박예준 다음으로 연락을 준 사람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찬 씨는 웬일이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건우는 정수찬이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수찬은 금세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수찬 씨. 저 건우예요. 연락하셨더라고요.”
―아, 건우 씨군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저녁 시간에 방송 나가는 거 알고 계십니까?
“방송이요?”
―네. 특집 방송 기억 안 나십니까?
“아.”
건우는 정수찬의 말에 ‘SBC특집 방송 ― 요리사와 식재료’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늘이 방송 날짜라는 것도 기억해 냈다.
“깜빡 잊고 있었어요. 좀 바빴거든요.”
―그러시군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오늘 저녁이요?”
건우는 그 말에 방금 전에 박예준과 잡은 약속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아마, 수찬 씨네 레스토랑에 갈 것 같은데요?”
―저희 레스토랑에 말입니까?
건우는 살짝 의아한 듯한 정수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정수찬이 알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마침 잘된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건우 씨를 초대하려고 했었습니다.
“저를요?”
―네. 같이 특집 방송을 시청하면 재밌지 않겠습니까? 예준이한테도 제가 한 번 더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니 가족들 전부 데리고 오셔서, 같이 TV보면서 식사하시지 않겠습니까?
“저야 좋죠.”
건우는 그렇게 정수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그 누구에게도 나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건우는 통화를 마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
‘오늘따라 연락 온 곳이 많네.’
건우가 그러면서 전화를 건 인물은 바로 신비술사 조윤아였다.
그녀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윤아야, 전화했어?”
―네, 전화 드렸어요. 통화 괜찮으세요?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무슨 일인데?”
건우의 물음에 조윤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이집트에 있던 드워프들이 갑자기 다 실종됐대요.
“아.”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신가 해서요.
그 말에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음, 혹시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을까?”
―좋아요.
“그럼 우리 집에서 보자. 금방 갈게.”
그렇게 건우는 조윤아와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끊었다.
‘윤아는 엘프에 관해서 알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잘됐다. 드워프에 관한 것도 의논을 좀 해 봐야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와와 아이들을 찾았다.
그리고…….
“뀽뀽!”
―음하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이들 앞에서 드워프들의 인사법으로 인사하는 뀨뀽이와 장군이를 볼 수 있었다.
은근히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래도 오늘까지만 봤으면 좋겠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