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20)
가길 코리아의 인사과장 서아인이 떠나고 난 이후, 건우는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서리가 내린 서리태 밭을 확인하고, 풍성하게 자란 들깨 밭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들깨도 슬슬 수확할 때가 됐네.’
소아의 성장 촉진 능력으로 인해서, 들깨도 서리태에 이어 수확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건우가 예상했던 시기보다 훨씬 일렀다.
‘빨라서 나쁠 건 없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리태와 들깨의 수확 일정을 확정지었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심게 될 농작물을 떠올렸다.
‘당연히 배추하고 무를 심어야지.’
배추는 포트에 먼저 파종해서 키운 후에 밭에 옮겨 심고, 무는 밭에 직접 파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배추하고 무를 키울 때는, 소아의 힘은 빌리지 말아야겠어.’
소아의 성장 촉진 능력을 빌리게 되면, 김장철에 맞춰서 배추와 무를 수확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계획을 세운 건우는, 대뜸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해 봤다. 슬슬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전 일과는 여기까지만 하고, 밥 먹으러 가야겠다.’
건우는 그러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길 잠시, 무녀 라일라가 슬쩍 다가오더니, 건우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우 님. 허락 하나만 구해도 될까요?”
그 물음에, 건우는 점심 메뉴 고민을 잠시 뒤로 미루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뭔데요?”
“괜찮다면 박예준 님, 박예란 님과 함께 시내 구경을 다녀오고 싶어서요.”
“셋이서만요?”
“네. 셋이서만요. 안 될까요?”
라일라의 물음에 건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셋이서만 따로 움직이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표정 관리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아뇨. 설마 안 될 리가요? 당연히 되죠.”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라일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에 건우는 당황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허락이라뇨? 아니에요.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허락까지 하겠어요? 라일라 씨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라일라를 일으켰다. 그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셋이서만 따로 움직인다는 건가요?”
그 물음에 라일라가 한 차례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박예준 님이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셋이서 같이 시내 구경을 가지 않겠냐고요”
“예준이가 그랬어요?”
건우는 그녀의 말에 놀라면서, 슬쩍 박예준을 바라봤다.
박예준은 잔뜩 들뜬 표정을 지은 채,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딜 놀러 갈지 정하는 모양이었다.
그에 반해서, 박예란은 그런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둘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예준이가 노력을 많이 하긴 하네.’
그러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건우.
라일라를 향한 박예준의 열정이, 건우에게 묘한 감흥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는 사이, 라일라가 말을 이었다.
“박예준 님의 제안을 들으니,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지구에 나올 때마다, 이건우 님께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건우가 침음을 흘리면서 물었다.
“지구 정착 생활을 위해서 하는 예행연습 같은 건가요?”
“네. 맞아요.”
건우는 라일라의 대답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확실히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즐겁게 놀다 오세요.”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짓자, 라일라도 마주 보면서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잠시 후.
라일라는 박 남매와 함께 시내로 떠났고, 건우는 하와와 소아, 엘, 가온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우는 몰랐다.
이 일이 어떤 식으로 번지게 될 것인지…….
* * *
아이들과 집에서 점심을 해결한 건우는, 오후 일과를 하기 위해서 던전 농지로 향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그곳에 있진 않았다. 엘프와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아서, 짧은 시간만 농사일을 하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지구로 나온 건우가 향한 곳은 바로 횡성 자동차 운전 연습 학원이었다. 오늘이 운전면허 장내 시험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한 번에 가자.’
건우는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시험에 사용할 트럭의 문을 열었다.
그때, 그를 향해 소리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왓!”
“파이팅!이랍니다!”
“건우, 파이팅! 힘내!”
갸웅!
하와와 아이들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건우를 응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건우는 그런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아이들의 응원이 있으면, 할 수 있어.’
그렇게 의지를 불태운 건우는, 나름 멋있는 자세로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는 것부터 시작해서, 배운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해진 코스를 전부 돌은 건우가 트럭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왕?”
“통과했나요?”
“몇 점이야? 백 점? 천 점? 만 점?”
갸웅!
잔뜩 기대하면서 성적을 묻는 하와와 아이들.
그에 건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지만…….”
그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우울하게 변했다. 건우의 말투와 분위기만 봐도 탈락이라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났다.
“……10점 감점당해서 90점! 통과했어!”
건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긋 웃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건우에게 향해 달려들면서 활짝 웃었다.
“하와앗!?”
“통과했답니다! 만세!”
“건우가 우리를 속였어! 그래도 좋아!”
갸옹!
아이들은 건우의 합격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건우는 그것이 기꺼워서, 아이들을 한꺼번에 안아 주었다.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이 나를 도와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어.”
그는 빈말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와와 아이들이 카트를 통해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시험에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건우가 아이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한 번에 합격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의 정체는 바로 강사 유준성이었다.
건우가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건우 씨는 통과했을 겁니다. 처음에만 조금 헤맸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감을 잡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들은 건우는 하와와 아이들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방금 유준성이 말한, 감을 잡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오늘은 고기 파티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다.
그때, 갑자기 유준성이 검은 비닐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건 합격 선물입니다.”
“합격 선물이요?”
“네. 원래는 도로 주행까지 합격하시면 드리려고 했는데…… 얼마 후면 제가 그만두게 되어서, 미리 드리는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에게 비닐 봉투를 넘겼다. 건우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정말요?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신다고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 말에 건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안 좋은 일로 그만두시는 건 아니죠?”
그가 그렇게 묻자, 유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일자리가 생겨서 시골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겁니다.”
“와, 정말요? 정말 다행이네요. 축하드려요.”
유준성의 말을 들은 건우는, 진심을 다해서 그를 축하해 주었다.
그 덕에 유준성의 표정이 활짝 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선물이 뭔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그 말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닐봉지를 슬쩍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호두처럼 생긴, 검은색의 뭔가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건우가 고개를 들면서 유준성에게 물었다.
“이것들은 뭔가요? 먹는 건가요?”
그가 그렇게 묻자, 유준성이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고기 열매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죠. 아! 그럼 혹시 이게…….”
“네. 그게 그 고기 열매의 씨앗입니다. 생각나서 한번 가져와 봤습니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한번 심어 보세요.”
유준성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그리 말했다.
그에 건우는 무척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설마 특수작물의 씨앗을 선물이라고 줄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걸 그냥 팔아도, 돈이 꽤 될 텐데…….’
특수작물은 상품성이 없어도,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 이유는 특수작물 자체가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기 열매의 씨앗은 누군가에게 쉽사리 선물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런 점에서 건우는 놀란 것이다.
그때, 유준성이 말을 더했다.
“그게 특수작물이라고 해서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량도 얼마 안 되고, 처리하는 것도 일이라서 드리는 거니까요. 편하게 사용하세요.”
그 말에, 건우는 은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봐, 유준성이 신경 써 주는 게 느껴진 것이다.
건우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인사하자, 하와와 아이들도 유준성에게 배꼽 인사를 건넸다.
유준성의 표정이 활짝 핀 꽃처럼 밝아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른 교육생들도 봐 줘야 하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러길 잠시.
건우는 뭔가 결심한 듯이 멀어지는 유준성의 뒤를 따라붙었다.
“저기, 선생님!”
“음, 네?”
건우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돌려세우는 유준성.
건우가 그런 유준성의 앞에 서더니, 대뜸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괜찮으시면, 전화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에 술 한잔 사겠습니다.”
그 말에 유준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준성의 전화번호를 따는 데(?) 성공한 건우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까 전에 마음먹었던 대로, 고기 파티를 시작했다.
“하와앙!”
“와구와구!”
“쩝쩝쩝쩝!”
갸웅!
건우가 구워 주는 고기를 신명 나게 먹는 하와와 아이들.
부모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전부 하와를 닮아 가나? 엄청 빨리 먹네.”
“그러게요. 그런데 너무 빨리 먹으면 체할 수도 있는데…… 얘들아, 천천히 먹어. 체할라!”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의 먹는 속도를 조절해 주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하와는 프리롤(?)이었다.
건우가 그런 하와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누굴 닮아서, 먹는 모습도 저렇게 예쁠까?’
그는 그러면서, 하와의 개인 접시에 이제 막 익은 고기를 왕창 올려 주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하와.”
하와가 다 먹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그 모습에, 건우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다 먹었어?”
그 물음에 하와가 빵빵한 배를 문지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와!”
“혹시 어디 아파? 아직 다섯 근밖에 먹지 않았잖아.”
다섯 근이면 3kg.
웬만한 이들이라면 엄두도 못 낼 양이었지만, 하와가 다섯 근만 먹었다는 것은 소식을 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건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하지만 하와는 괜찮다면서, 그냥 컨디션이 별로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음, 그러면 다행인데…… 혹시 모르니까, 아프면 바로 말해야 돼. 알았지?”
“하왓!”
하와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건우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온 수박을 어마어마한 기세로 먹기 시작했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안심했다.
‘하와가 수박 때문에 배를 조금 남겨 뒀던 거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든 가족들의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저녁 식사가 끝날 때쯤, 한 사람이 건우네 집을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깔끔한 집사복을 입은 집사 나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