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33)
정령 농사꾼 – 33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설, 설마 아니겠지?’
건우는 던전 농지가 정신없이 흔들리자, 크게 당황했다. 전에 있었던 가벼운 트라우마가 불쑥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흔들림이 멈추면서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바윗덩어리 하나만 불쑥 솟아오르자, 긴장감이 확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건우는 그 바위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잘 했어, 하와!”
“하와와~”
건우가 칭찬하면서 다가오자, 하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 순간, 바윗덩어리가 저절로 깎여나가면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점차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건우가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기한데?’
지금까지 건우가 본 땅의 정령들이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와도 마찬가지인지, 땅의 정령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모든 형태를 갖춘 땅의 정령을 본 건우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레알 조각미남이네.”
그가 감탄한대로 땅의 정령은 조각미남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남자답게 잘 생겼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진짜로 조각된 미남.
‘이 정도면 투빈이나, 짱돌건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
참고로 투빈이나 짱돌건은 대한민국 최고 미남으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조각미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도 눈앞의 진정한 조각미남에 비하면 추남이라 불릴 정도였다.
“와, 진짜 더럽게 잘 생겼다.”
건우가 자기도 모르게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때, 조각미남이 두 사람을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의지를 타고 전해지는 차가운 목소리. 하지만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 묘한 목소리에 하와가 먼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왓!”
언제나 같은 상쾌한 인사. 하지만 조각미남은 그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 건우만을 직시했다.
-무슨 일?
건우의 말만 듣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에 하와가 불만인 듯 볼을 잔뜩 부풀렸지만, 조각미남은 끝까지 하와 쪽으로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에 건우가 난처하게 웃으면서 하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참아.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으니까.”
그 말에 부풀린 볼에서 바람을 빼는 하와. 하지만 여전히 입술은 살짝 튀어나온 것이 삐진 것이 분명했다.
건우는 그런 하와가 귀여운지 볼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조각미남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저쪽에 바위를 만들어줘. 저기 보이는 사육장만 한 크기로.”
그는 그러면서 미리 봐둔 곳을 가리켰다. 혹시 모를 사고 방지를 위해서 사육장과 작업장의 완전히 반대편이었다.
그에 조각미남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알겠다.
크그그그그!
대답과 거의 동시에 진동이 이는 던전 농지.
건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지정한 곳에 통짜 바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딱 좋아. 저 정도 크기면.’
작은 집채만 한 바위.
건우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조각미남에게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 순간, 조각미남으로부터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기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세!
크그그그극!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솟아오르면 안 되는 바위가 계속해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와왓!”
“대단하답니다!”
삐삐삐-!
하늘을 뚫어버릴 듯이 치솟아 오르는 바위에 감탄하는 두 정령과 벌 하나. 건우는 감탄조차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잠시 후, 단순히 큰 바위는 작은 바위산이 되고 나서야 솟아오르는 것을 멈췄다.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 마지기나 되는 밭을 차지한 바위산.
건우의 상식선에서 봤을 때, 이 정도의 이적을 가능케 하는 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비슷한 수준의 정령은 있었지.’
태풍, 그 자체와 같았던 바람의 정령이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거기까지 떠올린 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조각미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각미남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서비스다.
“뭐?”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믿기 싫은 문자들이 떠올랐다.
‘설, 설마.’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조각미남이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차갑기만 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장난스러워졌다.
-반가웠다.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조각미남이 무너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건우의 무릎도 힘없이 꺾이면서 무너졌다.
그리고,
“하와와~”
“무척 높답니다!”
비이~
두 정령과 한 벌은 바위산을 구경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이다.
***
한 달.
두 번째 위대한 존재와의 만남이 있고 난 이후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건우는 그간에 다시 한번, 웬만한 일로는 강력한 정령을 소환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태풍과 같은 바람의 정령, 작은 바위산을 가볍게 만들어내는 땅의 정령.
건우 스스로 그런 존재들과 마주할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지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한테 그리 적대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함부로 소환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어.’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그들과 다시는 볼 일이 없길 바라면서 던전 농지 한 곳에 위치하게 된 바위산으로 다가갔다.
‘역시, 그냥 양봉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커. 커도 너무 쓸데없이 커.’
건우는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바위산이 생겨나자마자, 여왕바위벌이 바위산 속에 둥지를 틀어서 다행이긴 했다. 하지만 바위산이 너무 커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들어 아쉬운 상황이기도 했다.
‘쯧. 어쩔 수 없지.’
농사꾼은 천재지변 역시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대범함이 필요한 법.
건우는 그리 생각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번 일을 천재지변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꼭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그런 존재들이 천재지변이 아니면 뭐가 천재지변이겠어?’
그는 그러면서 여왕바위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위산에 비하면 티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주먹만 한 구멍. 여왕바위벌이 둥지를 짓기 위해 파고든 구멍이었다.
“하와. 오늘도 부탁해.”
“하와!”
하와는 그리 대답하면서 바로 땅의 정령 하나를 소환했다.
-뭉!
일주일 전에 봤던 조각미남과는 다르게 대충 만든 찰흙 인형같이 생긴 땅의 정령. 건우는 녀석에게 작은 병을 건네주었다.
“부탁해.”
-뭉!
건우에게 작은 병을 받아든 땅의 정령은 거수경례를 취하면서 곧바로 그것을 머리에 이었다. 그리고는 작은 구멍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하루에 한 번, 땅의 정령을 통해서 여왕바위벌에게 먹이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래. 많이 먹고, 더 많이 뱉어 내거라.’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와와 함께 잠시 대기했다. 서로의 손가락을 잡고 손가락 씨름을 하면서 말이다.
“후후후. 또 이겼다.”
“하왕······.”
건우에게 손가락 씨름을 연속 세 판이나 연속으로 진 하와가 볼을 부풀렸다. 아무래도 손가락이 극도로 짧은 하와가 불리한 싸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는 지치지도 않고 건우에게 손가락 씨름을 제안했다.
‘한 번 정도는 져줄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하와와 손을 마주 잡았다.
바로 그때, 땅의 정령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뭉!
비어있는 작은 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땅의 정령. 그런데 녀석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음? 무슨 일 있어?”
건우가 그렇게 묻자, 땅의 정령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잠시 후, 건우는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호. 드디어 성충이 보이는구나.”
한창 알과 유충, 번데기만 잔뜩 있던 벌집에 제대로 된 바위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이는 땅의 정령이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이상현상이었겠지만, 건우가 생각하기에는 축하할 일이었다.
“아무튼 잘 알았어. 고생 많았어. 돌아가도 좋아.”
-뭉!
건우의 말에 거수경례를 하고 땅으로 스며드는 땅의 정령.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먹이를 늘려야겠어.’
그는 그러면서 앞으로의 양봉 농사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와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와와!”
어느새 건우의 엄지손가락을 꾹 누르고 있는 하와의 엄지손가락.
건우와 땅의 정령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하와가 건우의 엄지를 제압한 것이다.
“하와하와~”
하와는 건우를 이겼다는 사실에 기쁜지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그에 건우가 씨익 웃으면서 하와를 꽉 껴안았다.
“하와! 치사해!”
“하와와~”
둘은 그렇게 한바탕 하하호호 웃으면서 떠들었다.
***
농사를 짓는 상황에서만 보면, 정령은 만능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건우가 느끼기에는 절대로 만능이 아니었다.
특히 그것을 가장 느낄 때가 바로 밭에 이랑과 고랑을 만들 때였다.
“자, 내가 그어놓은 대로 고랑을 파서 옆에 쌓아.”
-무웅.
-뭉뭉.
-뭉!
건우의 말에 땅의 정령들이 거수경례를 하면서 고랑을 팔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전체적으로 고르게 뒤집어져 있던 밭을 작대기로 그으며 가로 질렀다. 이렇게 선을 잡아주지 않으면 땅의 정령들이 제대로 된 고랑과 이랑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원래 밭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게 선을 잡는 거니까.’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선을 똑바로 잡은 상태로 고랑을 파고 이랑을 쌓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그것은 농기계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농사를 지을 때, 선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그 뒤의 일들이 더 어려워지고, 땅을 100%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뭉!
-뭉뭉!
-무웅!
건우가 만들어준 선을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고랑을 파는 땅의 정령들. 그 옆으로는 자연스럽게 흙이 쌓이면서 이랑이 만들어졌다.
‘잘하고 있네.’
건우는 슬쩍 뒤를 돌아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건우의 눈에만 보이는 무형의 선이 밭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역시 각성을 하니, 선을 잡는 것도 편하구나.’
밭에 보이는 무형의 선은 바로 건우의 능력인 농사꾼의 축복으로 인한 것이었다. 밭의 선을 잡는 것도 농사꾼이 갖춰야할 능력! 그것의 보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건우가 나서서 만드는 밭은 세상에서 가장 반듯한 밭이 될 수 있었다.
“자, 이제 한 줄 끝. 이렇게만 쭉 가자!”
건우가 그렇게 외치자, 땅의 정령들을 각자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뭉!
뛰어난 단합력!
건우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선을 그어나갔다. 땅의 정령들은 그 뒤를 졸졸 따랐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행보를 잠시 멈추게 하는 존재가 있었다.
“하와~”
바로 하와였다.
하와는 물통과 컵을 든 채로 부모님을 이끌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 뒤를 따르면서 커다란 바구니 두 개를 하나씩 나눠 들고 있었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잠시 일을 멈추고 마중 나갔다.
“어? 하와한테 간식만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에이, 가끔은 이렇게 자연에서 밥을 먹는 것도 좋은 거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가 새참 바구니를 바닥에 놓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다. 매일 집구석에서만 밥을 먹으니까 물린다. 물려.”
“어머머? 당신, 그랬어요? 제가 지은 밥이 물렸다는 말이죠? 그럼 이제부터 스스로 밥 지어 드세요!”
“뭐? 이 여편네가 또 시작이네! 대체 나한테 왜 그래!?”
시간만 나면 티격태격하는 부모님. 그때, 하와가 나서서 두 사람의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하와~”
그러자 부모님이 얼굴을 붉힌 채, 어색하게 웃으면서 티격태격하던 것을 멈췄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모님도 참 한결같아.’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새참 바구니에서 새참거리들을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 수찬 씨?’
건우는 정수찬에게서 온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통화를 끊으면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은 외식 어떠세요?”
“하와!?”
외식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하와.
건우는 그런 하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응. 맞아. 오늘 저녁은 수찬 씨네 가서 밥 먹자.”
그렇게 건우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 외식 약속을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