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57)
한 종의 멸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지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건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의외로 별 느낌이 없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멸종 작물인 지옥초를 심어야 하는 건우.
그는 최대한 기대하지 않고 그것을 심기로 했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었다.
‘아마 큰 확률로 실패하겠지. 멸종한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일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분에 상토를 채웠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적당한 깊이에 지옥초의 씨앗을 심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지옥초의 씨앗이 그렇게 생사의 기로에 섰다.
하와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었다.
“하와~”
잘 자라라고 응원해 주는 하와.
건우가 그런 하와에게 물었다.
“하와는 지옥초가 잘 컸으면 좋겠어?”
“하와!”
“그래? 그럼 나도 잘 크길 빌어 줘야겠네.”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정말 설명대로라면 잘 안 크길 빌어야 하지 않을까?’
뭐든지 지옥으로 떨어뜨린다는 지옥초의 설명.
건우는 그것이 과장된 설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슬쩍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옥초는 누가 봐도 던전 태생인 특수작물일 테니까 말이다.
바로 그때,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건우는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나이트 씨. 지금 방문해도 되냐고요? 네. 마침 오늘, 쉬는 날이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오세요.”
건우가 그렇게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대문으로 들어오는 조윤아와 나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잠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제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살던 이전에도 꿀차 한 잔 타기도 전에 도착했는데, 옆집으로 이사 온 지금에는 당연히 더 빠르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분을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가끔씩 오가면서 살펴볼 생각이었다.
“자, 손님맞이하러 가자. 하와야.”
“하와!”
건우와 하와는 그렇게 조윤아와 나이트를 맞이하러 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를 뜨고······.
지옥초를 심은 화분에 작은 싹이 슬슬 올라왔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잠시 후, 날벌레 하나가 별생각 없이 지옥초 싹에 내려앉았다.
꿀꺽.
싹의 입이 작게 벌어지면서 날벌레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자신의 몸집을 조금 더 키웠다.
지옥초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영월 신비술사 조윤아와 그녀의 집사 나이트는 한동안 하와를 보러 오지 못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 봤자,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나이트는 그 지난날의 일들을 간단하게 건우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한동안 격조했습니다.”
모든 설명을 들은 건우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이제 상품의 해독제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건가요?”
“네. 자동 공정 시스템이 완전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에 필요한 모든 기계장치와 아티팩트의 설계도를 아가씨가 준비해 두셨습니다. 나머지는 신화그룹에서 알아서 준비를 마칠 겁니다.”
조윤아와 나이트가 지금까지 한 일은 바로 상품 해독제의 자동 공정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중상품 이상의 해독제는 초인의 손길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건우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대단하네요. 덕분에 앞으로는 상품의 해독제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겠네요.”
“네. 전부 이건우 님 덕분입니다. 이건우 님이 높은 등급의 독피시를 제공해 주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건우는 나이트가 자신에게 공을 돌리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뇨.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오히려 윤아하고 나이트 씨가 고생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의뢰비는 만족하셨습니까?”
건우는 그 물음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짐짓 태연한 척하면서 대답했다.
“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넣어 주셔서 놀랐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독피시의 수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상품의 해독제 보급은 이건우 님께 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거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뀨뀽이와 뀨뀽이를 돕는 뿔토끼들이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나중에 뀨뀽이하고 뿔토끼들을 위한 놀이터라도 하나 지어 줘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이트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건우가 말을 잘한다기보다는 나이트가 워낙 말을 잘해서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러다가 문득 나이트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혹시 이건우 님은 방송에 생각 없으십니까?” “방송이요?”
건우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이트가 고개를 주억였다.
“네. 이건우 님만 괜찮으시다면 방송에 출연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건우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의문을 품었다.
“으음, 무슨 방송이죠?”
“공익적인 차원의 방송입니다. 신화그룹에서 진행하는 방송은 아니고, 이건우 님께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말씀드려 보는 겁니다.”
“저한테 제안이 들어온 방송이라고요?”
건우가 놀라서 되물었다.
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독피시를 키운 장인님에게 온 제안입니다. 아무래도 이건우 님의 신상을 마음대로 밝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비밀에 붙여 두었습니다.”
“아, 그러셨나요? 감사합니다.”
건우는 나이트의 세심한 배려에 새삼스레 감사를 느꼈다.
나이트가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테헤란로 던전이 해결됨에 있어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독피시였습니다.”
당연히 건우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레온과 마릴다 다음이 독피시였던 것 같은데······.’
건우의 생각대로 검색어 1위가 레온, 2위가 마릴다였고 3위가 독피시였다.
물론 지금 당장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독피시가 주목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
나이트가 말을 이었다.
“초인 협회 원주지부장이신 백천수 님은 이를 통해서 비전투직 초인들의 인식을 높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백천수 님이 독피시를 통해서요?”
건우는 제대로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나이트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독피시로 해독제를 만드신 아가씨와 독피시를 재배한 이건우 님의 활약을 토대로, 비전투직 초인의 인식을 좋게 변화시킬 공익 방송을 찍을 생각인 듯합니다.”
건우는 그제야 고개를 주억이면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좋은 일이네.’
현 사회는 유독 전투직 초인들에게 열광하는 추세였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활동을 하는 것이 전투직 초인들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전투직 초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비전투직 초인들이 있기에, 전투직 초인들이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비전투직 초인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천대받고 있기는 하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역시 백천수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대단한 양반이야. 이런 공익 활동에도 열심히고······.’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나이트가 말을 이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제가 백천수 님께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
건우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곧 한숨을 가볍게 내쉬면서 대답했다.
“아무래도 방송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습니까?”
나이트는 건우가 스스로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방송 출연을 거절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한 결과였다.
나이트는 미리 준비했던 질문을 던졌다.
“혹시 방송을 꺼리는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그는 이 질문으로 건우가 숨기고자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 물음에 건우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저한테 한 가지 문제가 있더라고요.”
“문제가 있다고요?”
나이트는 그렇게 되묻고는 건우의 대답에 무섭게 집중했다.
건우가 난처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네. 카메라 울렁증이 너무 심해서요. 하하하.”
“카, 카메라 울렁증 말씀이십니까?”
나이트는 자기도 모르게 맥 빠진 목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앞에 서 봤는데, 온몸이 경직돼서 못 살겠더라고요.”
“음, 그런 문제라면 저희 쪽에서 해결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카메라 울렁증 정도는 심리 치료를 통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나이트의 말에 건우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 말고도 제가 별로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요. 아무래도 이번 제안은 거절해야만 할 것 같네요. 백천수 님께 잘 말씀해 주세요.”
건우는 그렇게 백천수가 준비하는 공익 방송을 거절했다.
나이트도 더 이상 같은 주제로 제안하거나, 다른 질문을 건네지 않았다.
방송 거절이야 어차피 예상했던 부분이었고, 궁금한 점이 남긴 했지만 파고들어서 질문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이트는 지금 이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건우가 나이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열심히 날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비- 비비-
매일같이 던전 하이패스를 통해서 다른 던전으로 원정을 떠나는 바위벌 원정대였다.
바위벌 원정대는 한 마리의 병정바위벌이 이끌고 있었는데, 이는 평범한 바위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병정바위벌은 둥지에만 머무르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던전 농지의 여왕바위벌은 굳이 병정바위벌에게 명령을 내려서 바위벌을 이끌게 시켰다. 처음으로 던전 하이패스를 이용하던 날, 던전 농지로 안전하게 귀환한 바위벌들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결국 여왕바위벌은 병정바위벌에게 통솔권을 줘서, 바위벌들이 적당한 시간 동안 꿀을 채취한 후에 다 같이 돌아오게 만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지능적인 명령이었다.
비-비비-
그런데 오늘 바위벌 원정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필이면 던전 하이패스가 생성된 곳이 어두운 동굴로 이루어진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힘차게 일을 시작하려던 바위벌들의 기세가 시무룩하게 변했다. 동굴로 이루어진 던전이라면 녀석들이 채취할 꿀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바위벌 원정대를 이끄는 병정바위벌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비- 삐-!
놀라운 리더십을 보이면서 원정대들을 독려하는 병정바위벌.
녀석은 바위벌들을 이끌고 던전 탐사에 나섰다. 그러길 잠시, 은은한 빛을 내는 꽃밭이 발견되었다.
비- 비비비-!
바위벌들이 신나서 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병정바위벌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게 잠시 후, 슬슬 꿀의 채취가 끝나 가고 있었을 때, 묘한 생명체가 목격되었다.
갸웅?
사람 머리통만 한 작은 생명체. 그것을 쉽게 표현하자면 트리케라톱스를 닮았다고 볼 수 있었다.
코끝에 작은 뿔이 돋아나 있었고, 이마에는 조금 긴 뿔이 두 개 더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꽃잎이 펼쳐진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누가 봐도 트리케라톱스를 닮았지만, 크기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닥파닥.
날개가 달려 있었다.
병정바위벌은 날개 달린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다가오자, 바위벌들에게 잠시 작업 중지를 알렸다. 그러면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도주할 준비를 했다.
원래 본능대로라면 싸워야 했지만, 사상 교육을 통해서 위험 상황 발생 시 무조건 도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어색했던 바위벌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맞서 싸우는 것보다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갸우!
점점 더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결국 병정바위벌은 바위벌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꺄웅!
분명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바위벌들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병정바위벌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삐이-!
산개 명령이었다.
바위벌들이 각자 넓게 퍼져서 던전 하이패스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당황하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꺄우! 갸우갸우!
짧은 앞다리와, 뒷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바위벌들을 잡으려는 녀석.
하지만 바위벌들은 그런 허우적거리는 움직임에 당해 줄 만큼 느리지 않았다.
결국 바위벌들은 전부 안전하게 던전 농지로 귀환했다.
갸우웅······.
아쉬워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그때였다.
크르릉.
소름이 끼칠 정도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갸웅!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반색하면서 그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날갯짓이 무척이나 경쾌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