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88)
건우가 신화그룹의 사모님과 만나고 있던 날.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터벅터벅 걷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이찬우. 사업 실패로 인해서 집안의 재산을 거덜 낸 건우의 남동생이었다.
이찬우는 분명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 잠적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구름의 땅이라 불리는 중국의 윈난성, 그곳 최남단에 위치한 푸얼시였다.
이찬우는 현대적인 발전과는 거리가 먼 푸얼시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제갈량 동상이 그를 담담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찬우는 그런 제갈량 동상을 올려다보면서 각오를 다졌다.
‘이곳에서 성공하겠어. 그리고 다시 가세를 일으키겠어.’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신종 차(茶) 때문이다.
푸얼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이차(푸얼차)의 본고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그 보이차보다 뛰어난 차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찬우는 그 소문을 듣고 푸얼시까지 온 것이다. 보이차의 최대 생산지인 푸얼시 어딘가에서 신종 차도 재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보이차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게 아니다. 등급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 모든 보이차보다 뛰어난 차를 유통할 수만 있다면······ 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그는 그러면서 지난 사업 실패를 떠올렸다.
동업자가 사업 자금을 들고 도망간 것이 지난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동업자가 사업 자금을 들고 도망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업 자체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찬우는 그날의 실패와 그로 인해서 기울어진 가세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만약 이번 사업도 실패한다면, 고향에 돌아가서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신종 차의 재배 농가를 향해서 나아갔다.
지난 실패를 밑거름 삼은 그는, 차 농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신종 차에 대한 정보부터 모으려는 셈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젠장! 젠장!’
이찬우는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몸만 겨우 빼내서 도망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중국인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는 이찬우를 잡으려는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더 다급해졌다.
‘이런 미친 곳에서 도망쳐야 돼! 그런 물건을 신종 차라고 속여서 팔다니!’
그렇게 이찬우는 추적자들을 피해서 몇 날을 숨어 다녔다. 그리고 추적자들의 꼬리가 떨어져 나갔을 때, 그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나는 사업할 팔자가 아닌 거야. 고향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자.’
그가 그렇게 각오를 다졌을 때였다.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 발자국’이 당신의 도주 실력을 보고 감탄합니다.]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 발자국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세상을 얻을 자’로 각성합니다.]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 발자국이 시련을 내립니다.]「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 발자국의 첫 번째 시련!
전 세계 모든 국가 수도에 발자국 남기기.
목표 : 전 세계 모든 국가 수도에 발자국을 남긴다.
성공 보상 1 : 발자국을 하나 남길 때마다 모든 능력치 +0.5 영구 상승.
성공 보상 2 :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본 발자국의 선물.」
덜컥 각성을 해 버린 것이다.
이찬우는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문자를 보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곧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못난 아들, 최고의 초인이 되어서 금의환향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이대로 전 세계를 순회할 생각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찬우가 고향으로 내려가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할 것 같았다.
***
이찬우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건우는 던전 농지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청고추(풋고추)였다.
건우는 고추가 더 익어서 홍고추가 되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한 번 고추를 따 줘야만 했다.
‘고추가 너무 많이 달리면 부러질 수도 있으니까.’
고추는 대와 가지가 유독 약한 작물이었다. 힘을 조금만 주면 툭 하고 부러질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추가 열릴 때가 되면, 청고추를 따서 무게를 줄여 줘야만 했다. 고추가 너무 많이 달리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대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건우가 고추 하나를 따서 등급을 확인해 보았다.
「고추 – S급.
정령의 가호를 받은 고추. 던전 농지의 특별한 기운을 받아서 자랐다. 신비로운 알싸한 맛과 식감을 지니고 있다.」
‘S급!’
최초의 S급 일반 작물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던전 농지에서 키운 작물만이 S급에 도달한다는 것이 확실시 되는 순간이었다.
건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면서 지난 열흘 동안 고민하던 것의 대답을 결정했다.
‘거절하자.’ 신화그룹 사모님이 자신에게 한 제안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건우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평생을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사모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농사를 짓지 못할 거야.’
신화그룹의 상당한 지분을 가진, 대주주라는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많은 돈은 윤택한 삶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평범한 삶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업을 등지는 사람, 로또에 당첨돼서 사치에 물드는 사람, 부모님의 건물을 물려받고 집세만 받아 가면서 살아갈 뿐인 사람 등등.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느끼고 있는 희열을 놓치기는 싫었다.
공들여 키운 고추가 S급으로 자랐을 때의 그 쾌감!
그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것이었다.
“그래. 어차피 돈은 앞으로도 썩어 날 정도로 벌 수 있어. 그따위 신화그룹 대주주 자리, 줘도 안 가······.”
‘······지겠다.’는 말까지는 꺼내지 못한 건우가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신속히 안 움직이나!? 고추 수확도 못해서야 바람의 정령이라고 할 수 있나!?
-힝!
장군이의 당찬 목소리에 맞춰서 빠릿하게 움직이는 바람의 정령들.
바람의 정령들은 지금까지 보여 주지 못한 신속한 움직임으로 정확하게 청고추를 따고 있었다. 장군이가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낸 성과였다.
‘장군이가 정령들을 잘 다루는구나. 정령들도 말을 잘 듣고. 그런데 장군이는 어디서 농사 지식을 얻은 거지? 내가 알려 주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장군이를 든든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만도 갖고 있었다.
“왜 자꾸 내 손길을 거부하는 거니?”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멀어지는 장군이. 건우는 하루하루 장군이의 배를 쓰다듬지 못해서 애가 탔다.
그때였다.
갸웅!
가온이 열심히 일하는 장군이에게 날아가더니 폭 안겼다. 둘 다 크기가 비슷해서 그런지, 장군이가 힘겹게 가온이를 안아 보려다가 엉덩방아를 폭 하고 찧어 버렸다.
-가온, 이 녀석! 일할 때는 그러지 말거라.
화를 안 낸 것도 아니고, 화를 낸 것도 아닌 애매한 화내기.
가온이 방긋 웃었다.
갸웅!
-흠, 그래. 알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구나.
장군이는 그러면서 가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가온은 장군의 볼록한 배에 볼을 비비면서 폭신한 감촉을 즐겼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가온이한테 질투심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뀨뀽?(왜 손을 멈췄냐뀽?)”
작은 소쿠리를 등에 지고, 건우가 딴 청고추를 받아 내고 있던 뀨뀽이가 건우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뀨뀽이에게서 작은 소쿠리를 벗겨 냈다. 그리고 배를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뀨뀽!?”
간지러워서 자지러지는 뀨뀽이.
‘그래. 뀨뀽이도 나쁘지 않아.’
장군이 대신 뀨뀽이랄까?
뀽튜브에서 ‘뿔돼끼’라는 별명이 붙어 버린 뀨뀽이인 만큼, 배의 폭신함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였다.
합심하고 있던 하와와 엘이 건우가 하는 것을 보고서 도도도 달려왔다.
“하와!”
“저도 예뻐해 줄 거랍니다!”
그러면서 건우와 함께 뿔토끼의 배를 간질이는 둘.
“뀨, 뀨웅!”
뀨뀽이의 묘한 울음소리가 던전 농지를 가득 채웠다.
***
뺙!
빙닭은 오랜만에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의 손을 벗어나서 묵계리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최근에 시련을 이겨 낸 박예준이 빙닭을 데리고 수련을 하겠답시고 계속 붙잡아 두는 바람에, 오랜만에 맞는 자유 시간이었다.
물론 이것도 강제로 얻은 자유 시간이었다. 쉽게 말해서, 자꾸 귀찮게 구는 박예준을 떼어 놓고서 몰래 나온 것이다.
뺙뺙!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자유를 얻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박예준이 귀찮게 굴어도, 박예준이 주인인 만큼 빙닭은 웬만하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다만, 지금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었다. 슬슬 소환을 유지할 마력이 부족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와에게 받은 마력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간 박예준과 함께한 수련으로 인해서 마력이 빨리 소모된 것이다.
물론 빙닭은 박예준에게 마력을 받는다는 선택지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최근의 박예준은 시련을 이겨 낸 이후로 마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에, 빙닭을 상당히 오랫동안 소환시켜 둘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빙닭은 굳이 하와를 찾아 나섰다.
박예준의 마력과는 비교조차 하기 민망한, 하와의 포근하면서도 방대한 마력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빙닭은 자신도 모르게 하와의 마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뺙!
그렇게 열심히 묵계리를 돌면서 하와를 찾는 빙닭.
하지만 던전 농지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하와를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쉽게 발견될 던전 농지라면 이미 발견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던 빙닭.
뺘아악.
마력 부족으로 인해서 기운이 떨어진 녀석이 결국 힘없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천천히 역소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워블랑 돌쇠가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돌쇠는 가온과 친해진 이후로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리고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무리를 만든 상태이기도 했다.
냐아~ 냥! 양! 냥냥! 냐옹! 야앙!
엄청난 숫자의 고양이 무리.
돌쇠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쇠를 우두머리로 인정한 묵계리 고양이들이었다.
현재 녀석들은 옆 마을 고양이들의 영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돌쇠를 위시한 영역 확장에 나선 것이다.
참고로 돌쇠는 그 싸움에 끼려는 것이 아니고, 그냥 고양이들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서 가는 중이었다.
옛 성현의 말에도 있듯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은 놓칠 수 없는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심지어 쩌리들의 싸움 구경이라면 더더욱 놓칠 수 없었다. 원래 싸움은 쩌리들의 싸움이 더 재밌는 법이었다.
그렇게 걷던 돌쇠.
돌쇠가 빙닭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냐앙?
뺘아악.
서로를 발견한 둘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돌쇠 쪽에서 먼저 관심을 끊고 지나가려고 했다.
만약 빙닭에게서 하와의 마력의 향기가 나지 않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돌쇠가 가던 길을 멈추고 빙닭을 바라봤다.
냐앙?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하와와 무슨 관계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빙닭은 더 이상 대답할 힘도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역소환이 될 정도로 마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돌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와의 마력 향이 나는 빙닭이 그냥 역소환 되게 놔두기에는 찝찝했던 것이다.
돌쇠는 결국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하기로 했다. 빙닭에게 자신의 마력을 나눠 주기로 한 것이다.
돌쇠의 순수할 정도로 광폭한 마력이 빙닭에게 주입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