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기간트
상급기사라는 말에 장로의 표정이 잔뜩 굳어버렸다.
“여기서 꼼짝도 말고 계십시오. 그대들은 우리의 희망이니,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선 안 됩니다.”
희망.
바깥에서 온 이 손님들은 그들에게 더없는 희망과 같았다.
판게니아가 멀쩡하고, 그곳에서 들어왔다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 의미.
물론, 그들의 ‘신’을 구하기 전까지 장로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지만, 적어도 이제 막 태어난 드워프들로하여금 명맥을 잇게끔 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니 이 두 손님만큼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자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어딜 가는 거지?”
“······ 막아야지요.”
장로의 눈빛엔 결의가 가득했다.
노쇠한 몸이지만, 적을 맞이할 준비가 된 전사의 눈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저 ‘기사’라는 존재들과 싸워온 덕에 생긴 기개(氣槪)이리라.
비록 무섭고 두렵지만, 절대 피하지는 않는다.
쿠르르르릉!
“9레벨 보안구역, 뚫렸습니다!”
“누군지 확인 안 됐어?!”
“아, 아직 모르겠습니다!”
“8레벨 돌파!”
주변이 요란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빠르게 해결하고 오겠습니다.”쉬익!
장로가 손을 젓자 거대한 갑옷이 소환됐다.
역시나 일반적인 갑옷은 아니었다.
‘눈이 달려있군.’
갑옷의 중앙에 붉은 눈이 달려있다.
이윽고 붉은 눈이 사방을 돌아보더니.
치직! 치지지직!
묘한 소음과 함께 장로의 몸에 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마치 생명체처럼 말이다.
저 갑옷 또한 ‘룬’으로 제조된 게 틀림없었다.
수호 성검과 마찬가지로 진화할 수 있는 갑옷이다.
제알아서 장로에게 달라붙은 갑옷은 아예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와······.”
곧이어 완성된 모습에 디트리히가 감탄을 터트렸다.
장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예 다른 존재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로가 설명했다.
“룬을 먹을 수 있는 무장을 극한에 이르게 진화시킨 모습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기간트’라고 부릅니다.”
기간트라.
허나 그것은 로봇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이 비슷한 모습을 판게니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고렘이랑 비슷한 건가?”
“고렘······ 원리는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지요. 돌아와서 마저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고렘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존재.
하기야 사람이 고렘을 입을 수는 없다.
반면 장로는 저 기간트라 불리는 무장을 입었다.
‘룬’으로 만들어져 진화한 문명의 이기.
확실히 특이하다.
쿵! 쿵! 쿵!
대략 2.5m에 이르는 기간트를 입은 채, 장로가 쉘터를 벗어났다.
*
‘알차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이 주변에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는데······.”
상급기사.
이 세계의 정점에 다다른 존재.
또한, 이곳은 그의 구역이기도 했다.
자신의 구역에서 알 수 없는 마력이 발생했으니 확인 차 들른 것이다.
그리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백에 이르는 자신의 애완동물이 모조리 전멸해 있었던 탓이다.
“어떤 놈이 내 애완동물을 다 죽인 것이냐!”
애완동물이자, 비상식량이었다.
심심할 때 한 마리씩 잡아먹는 재미도 있었고, 제알아서 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꽤 상당했다.
저만한 숫자를 모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했던가.
그게 한 순간에 사라졌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쾅! 쾅! 콰르릉!
결국, 화가 난 알차카가 지면을 마구 폭발시켰다.
그 과정에서 지하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난쟁이 놈들이 언제 이런 땅굴을 또 만들어 둔 거야?”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작게 혀를 찼다.
난쟁이 드워프들이 설마 이런 곳에 땅굴을 파고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아직도 곳곳에 드워프들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게 설마 자신의 구역이리라곤 상상치 못한 것이다.
알차카가 검을 들었다.
화르르르르륵!
검은 불이 마구잡이로 일렁대는 대검.
그것을 휘두르자, 지면이 파이며 드워프들의 모습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콰릉! 콰르릉!
수백의 드워프가 마총을 들고 쏘아냈다.
그러나 검은 불길은 마탄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하급 기사면 모를까, 상급 기사인 알차카에게 저런 허접한 물건들은 통하지 않았다.
“먹어치워라!”
알차카가 대검을 들었다.
동시에.
쿠아아아아앙!
대검의 크기가 하늘을 덮을 만큼 커다랗게 변했다.
이윽고 대검이 땋을 덮었고, 곧 무수히 많은 ‘입’들이 튀어나와 드워프들을 포식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물러나!”
“5레벨로······!”
드워프들이 더 깊은 땅굴로 몸을 숨겼다.
알차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땅굴 하나는 예술로 파두는군.”
두더지들 아니랄까 봐 땅굴을 파고, 막는 기술 하나는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깊은 곳으로 다다를수록 더 단단하게 만들어둔 탓에 뚫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기야 이만한 기술을 지녔으니 그들과 전쟁을 한 것이겠지만.
물론, 그래봤자 발악일 따름이다.
드워프는 패배했고, 이곳은 패잔병들이 모인 도망처일 뿐이었다.
상급 기사가 뚫지 못할 벽은 없다.
아무리 드워프들이 날고 긴다고 해도 제한 없이 무한하게 진화할 수 있는 그들과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끼에엑!
그때였다.
땅을 훑고, 뚫던 그의 대검이 비명을 내지르며 축소됐다.
무언가가 그의 무기를 공격한 것이다.
곧이어 나타난 기간트를 보고, 알차카는 두 눈을 부릅떴다.
“오, 뭐야. 아직도 드워프가 다룰 수 있는 기간트가 남아있었나? 아니면 새로 만든 건가? 아니지, 너희들의 신이 납치됐는데 새로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기간트.
드워프들이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만든 신의 무장.
드워프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정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는 패배했고 신을 빼앗겼으며, 모든 기간트는 파괴되거나 압수됐다.
당연히 남아있는 게 없어야 하건만.
전신에 은빛이 감도는 2.5m 크기의 기간트를 보자 알차카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그 기간트를 먹어치우면 나는 더 강해질 수 있겠지.”
기간트가 지닌 핵은 기사들에게도 아주 특별한 원료다.
온갖 룬이 합쳐지고, 저들 기술자들의 기술이 닿아 만들어진 핵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뛰어났다.
중급의 기사가 기간트를 먹어치워 단번에 상급의 기사로 발돋움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급의 기사가 더 많은 기간트를 먹어치우면, 능히 왕이 될 수 있다.
알차카는 이미 다섯 개가 넘는 기간트를 먹어치운 전적이 있었다.
고로.
‘내 먹이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기간트를 먹는 건.
먹어치울 수만 있다면, 한동안 정체된 자신의 진화에 불을 지펴줄 터.
알차카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팟!
빛과 같은 속도로 알차카의 다리가 장로의 머리를 걷어찼다.
쿠아아앙!
지면 깊이 처박힌 장로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이이이잉!
슈아아아아아아악!
장로의 머리 위로 빛이 모여들더니, 이내 수만의 갈래로 뻗어 나가 알차카를 노렸다.
압도적인 광경.
닿는 모든 것을 태우고 부숴버리는 빛의 작렬이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빛의 무리를 바라보며 알차카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검게 물든 주먹을 그대로 뻗어 냈다.
꽝!
딱 한 번의 파공음.
그게 끝이었다.
수만 발로 나뉘어져 달려들던 빛의 광선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 찰나.
스팟!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장로의 손에는 금색의 할버드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알차카의 머리를 자를 기세로 온 힘을 다해 내리쳤으나.
“느려.”
탁!
잡혔다.
할버드가 그대로 알차카의 손에 붙잡혔다.
“······!”
“느리고 약하군. 제법 괜찮은 기간트 같은데, 사용자가 너무 늙은 건가?”
알차카의 눈가에 여유가 생겼다.
과거의 전쟁에서 기간트는 기사들에게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실제 수많은 기사가 기간트에 명을 달리했다.
허나, 드워프는 그들과 달리 나이를 먹는다.
늙는다는 말이다.
신을 빼앗긴 저들은 기간트를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간트를 다룰 수 있던 드워프도 대부분 죽었으니, 남아있는 자들의 나이는 이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기껏 끌고 왔지만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여흥 거리도 되지 않는구나. 이래서야······.”
콰직!
할버드가 부서진다.
작게 혀를 찬 알차카의 손이 순식간에 장로의 목을 쥐었다.
“두더지들. 너희는 그냥 얌전히 먹혀라.”
장로가 몸을 비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필 알차카일 줄이야!’
알차카는 과거 드워프들과의 전쟁에서 맹활약을 떨친 기사.
셀 수 없이 많은 드워프를 죽이고, 기간트를 먹어치운, 상급 기사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자였다.
왕의 수호기사까지 된 적이 있는 존재가 바로 알차카였다.
만약 지면을 부순 괴물이 알차카라는 걸 알았다면 필사적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비상로를 통해 움직인다면 적어도 전멸하진 않을 테니까.
한 명이라도 살려보내는 게 드워프들의 목표.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간을 끄는 것뿐.
다른 드워프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땅굴은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어떻게든 합류만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드워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꽈릉! 꽈르릉!
“장로님을 놓아라!”
“쏴라! 놈을 떨어트려!”
용맹한 드워프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도리어 장로를 구하고자 모든 마탄을 쏟아부었다.
‘아아. 왜 도망가지 않고!’
장로는 다급해졌다.
의지는 좋았으나 결국 만용이다.
모두 전멸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물며 저 아래에는 중요한 손님이 있다.
판게니아에서 들어왔다면, 다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할 수만 있다면 드워프 종족은 살아남을 수 있다.
고작 자신의 목숨 따윈 아무것도 아니거늘.
“도망······!”
“귀찮은 두더지들이로군.”
알차카가 대검을 지상에 떨어트렸다.
쉬익!
쉬이이익!
그러자 떨어진 대검에서 튀어나온 무수히 많은 ‘입’들이 드워프들을 먹어치우고자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이제 곧 저들에게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장로를 절망에 빠트릴 터.
그 아름다운 음률을 듣고자 알차카는 잠시의 유예를 두었다.
“너의 아이들이 전부 먹히는 걸 가만히 지켜봐라.”
“으으으으······!!”
장로가 몸을 떨었다.
분하고 원통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사, 알차카의 기분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음?”
한참을 기다려도 기대한 비명이 없다.
알차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뭐냐, 네놈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떨어트린 대검을.
자신의 무기를······.
가볍게, 쥐고 있는 녀석이 있다.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서 말이다.”
불현 듯 나타난 존재.
남자는 드워프가 아니었다.
저 모습은 드워프라기보단, 기사에 가깝다.
허나 기사라면 알차카가 모를 리 없다.
남은 건 하나.
“······네가 내 애완동물들을 모조리 죽인 녀석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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