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51)
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 451화
납치
단순히 ‘기술’만 배우는 것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룬에 대한 이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으니, 구조에 관한 개념 자체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규칙.
죽으면 ‘룬’이 되는 이 기괴한 현상에 대하여 말이다.
하지만 구조 자체의 이해를 돕는 존재들이 내 옆에 있었다.
‘마검 사탄, 그리고 압셀.’
이 둘이야말로 이 원생의 세계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존재들 아닌가.
룬 자체로 진화하여 마검이 된 사탄과, 비록 지금은 약해졌으나 ‘세 왕’ 중 하나였다는 압셀의 신체를 비교하고 탐구하면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없을 정도였다.
‘사탄과 압셀 덕분에 세계의 규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지.’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룬의 발생’과 ‘진화’였다.
특히 룬의 발생은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면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개념이었다.
‘룬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최초의 기원부터 알아야만 했다.
세계가 만들어질 때 왜 하필 이런 구조로 생성되었는가.
천상이 만든 실험실이니, 당연히 ‘천상’의 개입이 있을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
‘천상이 개입하여 이런 세계가 된 게 아니라, 이런 세계라서 천상이 개입한 것이다.’
이 세계만의 독특한 규칙이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결국, 모든 건 ‘룬’이다.
천상조차 실험하고 싶어했던 독특한 규칙의 중심에는 ‘룬’이 있다.
그리고 이 ‘룬’은.
‘···룬은 영혼이다.’
나는 그렇게 정의했다.
생체에 없으나, 죽은 뒤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 ‘룬’이야말로 ‘영혼’이라고.
영혼의 형태가 물질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닐는지.
이 세계의 원생물들은 정제된 영혼을 먹고 더 높은 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검(劍)조차도 자아만 있으면 룬을 뱉어낸다는 ‘블랙’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자아란 영혼이고, 이 세계에서 영혼은 곧 룬이다.
모든 영혼을 지닌 것들은 죽으면 ‘룬’을 뱉어낸다.
‘이 세계에 태어난 영혼들은 불안정하다. 하나로서 완성되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다른 영혼을 필요로 한다.
서로를 포식하여 진화하도록 설계됐다.
그 이유 또한 나는 알 것 같았다.
‘창조신이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이 세계를 창조한 적이 없다.’
본래 세계는 ‘태초신’이라 불리는 창조신이 뿌리를 내리며 탄생한다.
그 뒤에 ‘세계수’가 나타나 생명을 잉태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세계엔 아무것도 없다.
태초신도, 세계수도, 다른 신의 격에 이른 무언가도.
그래서다.
이 우연히 탄생한 세계가 영혼을, 룬을 먹어 무한하게 진화를 유도하는 이유는, 세계를 지탱할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함이다.
‘······ 멸망이 예고된 세계로군.’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당연히 밑의 단추가 잘 꿰어질 리 없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지고한 존재는 남을 먹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를 수호하는 용신도 없다는 건 용신회의 절대자들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
다만.
그럼에도 살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세계가, 모든 존재가.
압셀의 육체를 탐구할수록 나는 그 복잡하기 그지없는 룬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얼기설기 아무런 규칙없이 진화하는 것 같지만, 모든 생명체가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완성되고 싶어한다.’
불안정한 세계를 안정화할 수 있게끔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드워프’에 있다.
드워프들이 가져온 유일한 가능성.
‘불안정한 룬을 안정화하는 작업을 통해, 그 욕망의 일정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바로 기간트다.
진화할 수 있는 무기!
드워프의 신이 만들어낸, 기사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계의 희망과도 같았다.
기간트를 만드는 건 그 영혼의 ‘불안정’함을, ‘안정’적으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영혼의 파동을 맞추고, 룬 자체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주는 것.
마검 사탄이 가장 좋은 예다.
파장이 맞는 룬을 찾아내어, 구애를 통해 ‘하나’가 됨으로써 급진적인 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물론, 그조차도 ‘포식’과 비슷한 형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진화를 위한 포식의 횟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룬의 안정화를 통해 포식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될 터.
하지만 나의 목적은 그보다 더 위다.
‘포식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는 룬의 완성.’
아예 포식 자체를 하지 않아도, 룬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태고’가 아닐까?
가장 위대한 원형의 존재가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아직 이 세계엔 그러한 존재가 없다.
마검도, ‘세 왕’도, 포식하지 않으면 진화할 수 없다.
강해지는 게 불가능하다.
하여, 나는 첫 번째 완성품을 보며 말했다.
“실패작이군.”
실패작이라고.
내가 바란 영혼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포식 없이 스스로 진화하는 룬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으므로.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자네는!”
“이렇게 영롱한 룬을 만들어내고도······!”
“제, 제발 내게도 알려다오! 룬을 어떻게 정제하는 거지?”
블랙 스미스들은 안달이 났다.
기존의 ‘룬’을 가다듬어 기간트로 만들어내는 건, 드워프의 신만 가능했던 기예.
기술에 대한 이론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들은 룬을 정제할 수 없었다.
그걸 내가 가능케 한 것이다.
애초에 생명체가 죽을 때 나타나는 룬은, 다른 생명체에게 먹혀야만 효용이 생긴다. 룬 스스로 다른 룬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정제를 통해 ‘룬’ 자체가 포식이 가능토록 만드는 게 ‘기간트’를 만들어내는 핵심 기술이었다.
그리고 룬을 정제하는 건 이 세계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
블랙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입을 열고, 마치 경외라도 하듯이.
*
디트리히는 훈련이 끝나면 항상 땅굴 바깥으로 사냥을 나섰다.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동시에 룬을 먹여 ‘수호 성검’을 진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디트리히가 땅굴을 나서면 어김없이 압셀이 따라붙었다.
“이 주변은 슬슬 시시하군. 오늘은 더 멀리가보자, 압셀.”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디트리히도 거리낌없이 압셀의 이름을 불렀다.
압셀이 딱히 하는 건 없지만, 왠지 동생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디트리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압셀에게 해주곤 했다.
뉘엿뉘엿 해가 져가는 시간.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디트리히는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혼자가 익숙했다. 어머니는 한 번 바다로 나가면 몇 달씩 돌아오지 않곤 했으니까.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집에서 혼자 불안에 떠는 건 내 역할이었지.”
“······.”
“그래서 어릴 때는 어머니가 싫었다. 왜 매일 나만 기다려야 하느냐고 투정을 부리곤 했어.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서야 어머니도 누군가를 평생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만인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될 것이다.”
“······.”
“가족을 버리지 않을 거야, 나는. 절대로.”
세르닐 왕.
어머니를 버리고, 디트리히를 버린 남자.
심지어 디트리히가 왕국에 도착했을 때도 외면했다.
수호 성검에 의해 왕이 되었음에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디트리히는 그런 비겁자는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버리는 짓 따윈 절대로.
그러다 문득 디트리히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갑자기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서 미안하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아무튼 슬슬 들어가자, 압셀.”
“······.”
압셀은 멍하니 디트리히를 바라봤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디트리히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영롱하고 깨끗한 룬이다.
압셀은 영혼의 형태를, ‘룬’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녔다.
하지만 디트리히의 것과 같이 ‘깨끗한 색’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룬은, 무슨 맛일까.’
압셀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
그러다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지, 압셀?”
“······.”
압셀의 표정이 하얗게 새었다.
방금 자신이 한 생각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워프는 룬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압셀은 틀림없이 ‘룬’을 먹고싶다고 생각했다.
압셀은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압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위, 투명한 것들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허공에 네 명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보호색을 벗듯이 점차 색을 갖추고 형태가 나타나며.
킁! 킁!
“···찾았다.”
그 중심에 선 기사가 냄새를 맡더니, 디트리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수호기사 안드로.
그는 ‘룬드말 왕’의 명령에 따라, ‘다른 세계의 신’을 조사하는데 차출되었다.
비록 자신보다 격이 낮은 ‘상급 기사’ 따위의 말을 들어야하는 게 짜증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왕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무려 세 명의 수호기사가 투입된 일이다.
드워프의 신을 납치할 때도 셋의 수호기사가 투입되었으니, 생각보다 큰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시하군.’
잡아들인 것들은 나약하기 짝이없었다.
물론, 한놈은 꽤 반항적이었지만, 그래봤자 드워프였다.
게다가 수호기사들의 무력 수준도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예전 수호기사들에 비해 그 무력의 수준이 훨씬 상향평준화 되었다.
알차카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낼 만큼 말이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세계의 신’ 아닌가.
“알차카를 일격에 죽인 게 정말 이놈들인가?”
축 늘어진 디트리히와 압셀을 보며 안드로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을 이곳까지 인도한 상급 기사, 후암이 말했다.
“같은 냄새가 난다.”
“그 불길한 마력의 잔향도?”
“그래. 그리고 그건 둘 다에게서 나.”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하지?”
“······모르겠다. 알차카를 상대할 때 힘을 다 쓴건가?”
후암은 고개를 갸웃했다.
디트리히와 압셀에게서, ‘불길한 마력의 향’은 쏟아지듯 났다.
본인이 아닌 이상 이만한 향을 내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런데 알차카를 일격에 죽였다고 하기엔, 너무 약한 것도 사실이었다.
“너희들은 이 둘을 왕국으로 데려가도록.”
“남아서 뭘 할 작정이지?”
“이 주변에 있을 ‘땅굴’을 찾아내 소탕할 것이다.”
수호기사 안드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나약한 놈들을 잡아봤자, 별 성과라고 할 것도 없으니까.
수호기사가 무려 셋이나 차출된 일이다.
이대로 돌아가면 수호기사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결국, 후암과 다른 두 수호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늦진 말도록.”
“아아.”
그들이 떠나간 다음에야 안드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더 지난 뒤.
“······ 찾았다.”
안드로는 근처의 땅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펄럭!
수호기사 안드로의 등 뒤로 박쥐의 그것과 같은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이어, 검은 날개에서 무수히 많은 마력의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가 진동할 정도로 가공할 수준의 마력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전부 증발시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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