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58
757화 무너진 자들
오차르의 옆에 쓰러진 냥펀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검을 꺼냈다.
그대로 튀어 나가기만 하면 바로 그을 수 있었으나.
“흐으윽! 아흑!”
자세히 보니 냥펀 이 녀석, 쓰러진 게 아니라 엎어져서 울먹이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공블공블. 내 통장이 너무 아팡!”
“에라이.”
-따악!
“안 그래도 서러운데 왜 때리냥!”
오차르가 박혀 있던 벽을 부수는 데 지출이 좀 있던 모양이다.
나야 개념이 있어서 어떻게 해결했지만 냥펀은 없으니까.
다른 대체재를 이용해서 빼냈을 거다.
“어쩔 수 없지. 넌 개념이 없는데.”
“왠지 욕 같은뎅.”
콩콩.
내 정강이를 차던 냥펀의 눈이 삐딱해진다.
욕이 아니라 팩트인데. 억울하군.
그래도 걱정 마시라.
“그거 아마 방법이 있을 거 같아.”
“방법? 개념 상대하는 거?”
“어.”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개념 무기를 꺼내 건넸다.
상인인 만큼 냥펀 역시 감정하는 능력은 있었으니.
“오앙. 무기에 개념을 박아 뒀넹? 이거랑 비슷하잖아?”
바닥에 흩어져 있는 파편을 발로 밀었다.
따지고 보면 오차르가 갇혀 있던 벽도 개념을 넣어 만든 것이니 비슷한 종류기는 했다.
그 수준과 기능은 천지 차이지만.
“뭐야. 너희도 끝났냐?”
“살려 주세요. 이 미친 사람이랑 둘만 남겨 두지 말아 주세요!”
해결을 한 건 우리뿐만이 아닌지 켈런이 츠므라를 끌고 돌아왔다.
상태를 보아하니 꽤나 고단한 일이 있던 거 같았지만.
‘그거야 본인 팔자지.’
탐사대에 합류한 이상 고생은 확정이다.
“이건 아까 말한 대로 우리가 챙긴다?”
“관심도 없으니 알아서 가져가.”
켈런이 개념을 흔들자 오차르가 질색한다.
진짜 싫어하네, 이 녀석.
하기야 혼돈의 파편이든 괴이체든 필요 이상의 개념을 가지고 싶지는 않겠지.
잠깐만.
‘혼돈의 파편이 개념을 더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대로 붕괴하나?
감당 못 할 힘을 쓰다 보면 보통 그렇게 되던데.
아니면 다른 뭔가가 된다든가.
호기심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 냈다.
혼돈의 파편이 뭣 하러 먹지도 못할 개념을 흡수할까.
그것보다는 그런 녀석이 개념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게 맞았다.
아무튼.
“억제라. 이건 고립. 내가 가져온 건 길치군.”
3개의 개념이 모였다.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개념이었으며.
“빨리 끝났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더군. 다들 고생했네.”
곧이어 레베카와 마일러도 돌아왔다.
아예 발파 작업이라도 했는지 마일러의 옷에는 돌가루가 가득했다.
그러면서 개념을 건네는데.
“평온과 뿌리?”
켈런이 미간을 찌푸렸다.
“맞네. 아무래도 숭배자 측에서 네임드 한 마리를 잡아서 분해한 거 같더군.”
둘이 가지고 온 개념은 다른 괴이체에게서 뽑아 온 거 같았다.
재료로 쓰기 위해 괴이체를 잡은 건가.
골 때리는 이야기였지만 우리야 좋은 소식이었다.
처치 곤란한 객체 하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니.
깊게 들어가면 찝찝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자가 과한데.”
“이곳을 거점으로 쓰려했던 건 확실하네요.”
상급 괴이체를 붙잡는 데 사용한 개념이 너무 많다.
어디 잡다한 개념이면 또 모를까 지금 나온 것들은 그 가치가 상당했으며.
“개념 무기요?”
“이런 건 처음 보는군.”
오랫동안 탐사대와 처리반으로 활동한 이들도 처음 보는 물건, 개념 무기까지 사용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
“숭배자들의 나라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지.”
“틀린 말이 아닐세. 그동안은 우리끼리의 싸움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등반가도 섞여 있으니.”
“소식을 전하도록 하죠. 긴급한 사항이에요.”
숭배자들도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겠다는 신호탄이다.
운이 좋았다.
남쪽으로 오지 않았다면.
네임드 괴이체를 잡으며 나아가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게 있을지 몰랑.”
더불어 이번 일은 이곳만 한정된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99층 필드 전역에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냥펀은 바로 오필리아에게 커뮤니티로 소식을 전했고.
“이야. 이제 좀 살 만하네. 다들 고마워!”
자신을 구속하던 개념이 빠져나간 오차르가 개운한 표정으로 어깨를 돌렸다.
[우리 집 개미굴이 힘을 되찾습니다!]-개념, 허기와 미궁이 움직입니다.
-우우우웅.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혼돈과 기운.
나름 정적이었던 성채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물체가 생명처럼 박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쾌하며 공포스러웠으니.
“으히이익!”
“워워. 진정해. 약속했잖아. 곱게 보내 준다고.”
경험이 가장 적은 츠므라가 기겁하며 켈런의 뒤로 숨었다.
확실히.
‘그냥 마주쳤으면 골치 아팠겠군.’
이건 성채가 아니다.
오차르.
저 녀석의 몸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지.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어쭙잖은 혼돈의 파편보다도 강할 거 같다.
혼돈의 파편처럼 하나의 격을 이루지는 못했을 뿐, 개념을 활용하고 날뛰는 건 동격 그 이상이다.
이게 바로 상급 괴이체.
놀랍다.
“다른 상급 괴이체도 너랑 비슷한 수준인가?”
“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
숭배자들의 왕이 활동하기 시작한 이상 상급 괴이체와 마주치는 건 필연이다.
“별로 친한 편도 아니고 활동 구역도 달라서 자세하게는 말 못 하겠는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녀석이 찡긋, 눈을 깜빡였다.
“날 이긴 녀석은 없지.”
거짓말이군.
최소 녀석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이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하나.
-꿈틀.
녀석이 말할 때 성채가 꾸물거렸다.
본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괴이체는 거짓말을 못 한다고.
지금까지 본인이 만났던 상급 괴이체를 상대로 지지는 않겠지만 모든 상급 괴이체랑 비교하면 본인도 모른다는 뜻이다.
애초에 괴이체끼리 싸울 일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고.
“오늘 밤만 묵고 떠나지.”
“편한 대로 해. 해가 중앙에 뜨기 전에만 나가면 상관없어.”
드드드득.
바닥을 변형시켜 침대로 만든 녀석이 나른한 표정으로 엎어진다.
“그때는 배가 고파지거든.”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약간의 의지로 우리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말.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전에 나가지.”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없으니까.
“후우. 이제 좀 쉬겠네요.”
“저, 저저.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담이 약한 친구로구만. 천천히 가세.”
“으냐아앙. 오늘은 피곤하다구.”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자러 간다.
오차르의 배려인지 꽤 화려하고 아늑한 방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두는 건 덤.
나 또한 자러 가려다 멈춰 섰다.
“왜?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졸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볼 말이 있다.
“혹시 너 토도 하냐?”
“응?”
“우웩. 이거 있잖아.”
“어… 할 수 있겠지?”
“그래. 잘 자라.”
“아니, 아니. 그런 건 왜 물어보고.”
“약속했다? 서로 도와주기로?”
“지, 진짜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건데! 야!”
녀석이 뭐라 물었지만 무시하고 침상에 올랐다.
오차르를 이루는 개념이 허기와 미궁이고.
‘이 성채가 녀석의 몸과 마찬가지라면.’
이거.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그건데.
“말 좀 해 봐. 어? 그건 왜 물어보는데. 사람 불안하게.”
“좀 꺼져라.”
“야아아아!”
왜 남의 침실까지 쳐들어오고 그러냐.
녀석의 등덜미를 잡고 창문 밖으로 던졌다.
* * *
숭배자들의 나라.
99층의 지배자가 왕으로 군림하는 곳이자 동시에 필드 곳곳에 영향을 퍼트리는 세력.
숭배자 중에서도 수준 높은 이들이 득실거렸으니.
“빨리빨리 움직여!”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들의 전투력은 보장되어 있었으며 괴이체라 한들 그들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다른 몬스터들?
“길닦이 놈들, 깔끔하게 안 치우고 말이야. 퉤.”
“어쩔 수 있나. 못나서 바닥이나 쓰는 놈들인데.”
이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를 정리하는 이들은 하층민에 불과했다.
다른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받지 못해 몬스터나 처리하는 그런 사람으로.
이전까지는 숭배자의 왕국에서만 활동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동쪽 구역 담당은 바로 움직이고 서쪽은 대기한다!”
“파견 나간 녀석들 소식이 왜 없어?”
“그, 탐사대에 당했답니다.”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 정찰대 보내!”
등반가가 들어왔다.
탑에서 등반가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천천히 흐르던 필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
탑 안에서 살아가는 NPC들에게는 하나의 이벤트였으며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누가 뭐래도 탑은 등반가들을 위해 존재하며.
“이번에 제대로 한탕 하자고.”
“가뜩이나 이번에 상납할 게 빠듯하구만.”
“그래도 우리는 좀 낫지. 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들에 비하면 말이야.”
NPC는 자신의 역할을 증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한다.
안전지대에 들어가지 못한 NPC에게 주어진 의무는 무거웠다.
그럼에도 숭배자들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을 찾을 수 없었다.
99층.
상징과 같은 층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우상이자 영웅.
신적인 존재였으며.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위로 갈지 모르겠군.”
“보나 마나 그 녀석이겠지.”
“왜? 다른 후보자들도 있는데.”
100층에 오르는 자는 그들의 왕, 베드록 바알루제에 의해 정해졌으니까.
영겁의 세월 동안 바뀌지 않은 사실이었다.
예외는 존재했으나 변수는 많지 않았다.
조금은 심심한, 어쩌면 반복적인 행위에 대한 지루함까지 느껴지는 일상이었으나 약간의 흥분이 흐르고 있었으니.
“이번 후보자는 탑에서 나가지 않은 자의 가호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블아이라고 했던가. 그렇게까지 날뛴 녀석은 별로 없지 않았는가.”
“펠라인의 갑옷을 입고 있다던데.”
“그뿐만인가. 천사와 악마의 날개를 달고 있다고!”
“거짓말 좀 하지 말게.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진짜라니까? 사진 못 봤어? 괴상하다니까!”
“둘 다 닥쳐. 왕께서 신경 쓰시는 자이니.”
조현수.
이블아이의 존재와.
“천계의 후계자도 있다던데.”
“으음. 쉽게 볼 일은 아니군.”
오필리아.
구원자라 칭송받는 존재.
“난 그 쫄쫄이가 위로 올라갈 거 같아.”
“아, 그놈? 나사가 좀 빠진 놈이더만.”
“몇 개가 아니라 대부분이겠지.”
“걔 말고 벌거벗은 놈도 있다더라.”
“이번 세대는 괴상한 애들이 유독 많은 거 같네그려.”
그 외 탈모맨이나 섹시가이, 그 외 다양한 인물들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100층으로 올라가는 자는 누구인가.
이번 세대 혼돈의 파편으로 지정되는 자는 누구일까.
선택은 오롯이 숭배자들의 왕에게 달렸지만, 오랫동안 탑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잡다한 소문과 루머도 소중한 흥밋거리였다.
악의와 호기심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도 그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어디에 있나?”
“장치 세팅 끝났는데.”
“으음. 이번 조합은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니다. 원하는 개념은 얼마든지 꺼내 쓰라고 하셨으니.”
정보와 공략법을 차단하기 위해 묵혀 두었던 개념이 대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작자.
자연적으로 생성된 괴이체가 아닌, 의도적으로 괴이체와 개념 무기를 만들어 내는 이들이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송팀, 무너진 자들을 꺼내.”
“각별히 조심해라! 안에서 터지면 너희 목도 날아가는 거다!”
“예! 맡겨 주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흡수한 존재들도.
꾸물거리면서도 분명하게.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