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63
762화 머리
심장에 박혀 있던 개념을 꺼낸 녀석.
숭배자의 왕이 떠넘긴 선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녀석의 눈에 감출 수 없는 환희가 감돌다 사라진다.
왠지 모르게 뒤로 살짝 몸을 뺀 녀석이 부르르 입꼬리를 씰룩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함정이냐.”
“어?”
쩌어억.
녀석의 얼굴이 갈라지더니 눈이 한 쌍에서 네 쌍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얼굴 전체가 눈으로 뒤덮일 정도.
요란하게 각자 다른 각도로 굴러가는 눈깔을 바라보자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래! 너의-나의 선물을 받는 척하고 나를 공격하려는 속셈이겠지!”
“아니, 뭔.”
“그 누구도 이런 걸 가지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나의-지성을 속이기에는 너의-수작이 얕구나!”
어쩌라는 거야.
줄 거면 주고 말 거면 말고.
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러냐.
“좀 내놔 봐. 확인 좀 해 보게.”
“하하하하! 너의-연기는 나의-눈을 속일 수 없다!”
데구르륵.
녀석의 눈이 굴러간다.
그러다 일시에 멈추더니.
-섬찟!
심장을 옥죄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냥 느낌이 아니다.
-꾸드득.
무형의 기운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봐라! 너는 거짓말을……!”
녀석이 멈춘다.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갸웃하고는 살포시 땅에 박아 뒀던 촉수를 회수한다.
내 위에서 내려오더니 손을 뻗어 일어서는 걸 도와주기까지.
슥슥. 놈의 심장(선물)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는 내민다.
“너의-선물이다. 진실된 자여.”
아무래도 내 진심이 통한 모양.
슬쩍 녀석을 바라봤다.
[후엔다]-무너진 자입니다!
-눈치와 판별,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념과 혼돈에 오염되어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내게 호의적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저번에 만났던 녀석보다는 상태가 좋아서인가 권능이 통한다.
눈치와 판별이라.
저걸로 거짓말을 했는지 탐지했겠지.
■■로 이루어진 개념은 보나 마나 선물이겠고.
-두근두근.
녀석의 심장이 맥박 친다.
포장지로 이루어진 심장이라.
직접 꺼내기는 했지만 선물 상자에서 이어진 혈관은 여전히 놈과 이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녀석도 신체 일부와 합쳐져 있었군.’
그 녀석은 혓바닥이었나.
아무래도 개념을 강제로 주입하는 건 대상의 신체 일부를 변형시키는 형식인 거 같다.
“그냥 뜯으면 되나?”
“내가-네가-원하는 대로.”
일단 무너진 자들은 어휘력이 형편없어지는 건 알겠다.
뭔가 말을 이상하게 한단 말이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망설임 없이 선물 상자를 받았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맥박.
뜨끈한 온기가 올라오는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 상태에서 질문을 던졌다.
“이거 뽑으면 넌 어떻게 되지? 딱 보니 네 심장인 거 같은데.”
“나는-심장 정도 뽑혀도 문제없다. 너도-마찬가지일 터. 그대 또한 혼돈의 파편이니. 이는 굴레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를 본인과 같은 혼돈의 파편이라 생각하고 있다.
반쯤은 사실이니 반박하기도 뭐하군.
본인이 괜찮다니.
-뚜두둑.
그대로 심장을 뽑았다.
혈관이 촉수처럼 꿈틀거리고 시커먼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다.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녀석은 반대인 모양.
“크하아악! 시원하-구나!”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서 비틀거리는 녀석이 온몸을 떤다.
확실히 놈에게는 이게 이물질이 맞는지 흔들리던 육체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거란 말이지.”
난 내 손에 쥐인 선물을 내려다봤다.
아직 움직인다.
무너진 자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궁금했다.
이 선물이라는 거.
‘받는 판정이 어떻게 되는 거지?’
강제로 전달이 되나?
아니면 내가 받아들이는 순간 선물을 습득한 것으로 처리가 될까.
다른 기믹이나 트리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게 궁금하냐면.
‘선물을 받고 내가 흡수하지 않아도 된다면 개꿀이거든.’
개념은 개념대로 받고 무너진 자는 자유롭게 풀려나고.
가뜩이나 괴이체를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놈들까지 상대하면 우리 쪽에 승산이 없다.
구속에서 풀려난 무너진 자들이 전장에서 탈주해도 좋고, 숭배자의 왕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을 가하면 베스트다.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거 따지면서 했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
이미 경험적으로 알지 않던가.
어느 정도는 위험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조심하는 건 좋으니 권능을 사용했지만.
[베드록 바알루제의 선물]-탑으로 돌아온 자가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내용물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열어 봐야 한다는 것이었고.
“야. 부탁 좀 하나 하자.”
“너의-부탁을 왜? 내가-들어줘야 하지?”
“이거 반품할까?”
상자를 흔들자 녀석의 눈이 흔들린다.
동시에 살기까지 느껴진다.
“이미 나는-나의-역할을 다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이거랑 너랑 연결되어 있는 거 느껴지잖아.”
쿡쿡, 상자를 손가락으로 찌르니 녀석이 움찔거린다.
몸에서 떼어 냈어도 개념으로 연결된 선물은 여전히 녀석에게 영향을 준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혼돈의 파편이 가만히 이곳에서 대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너도-나를-이용하려 드는 것인가!”
“그냥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상자 깔 건데 여차하면 네가 나 좀 죽여 보라고.”
“그런 부탁을 들어줄—! 까? 그럴까?”
화를 내려다 멈춘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별로 손해인 것도 아닌 부탁.
오히려 본인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그가 이런 고초를 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숭배자의 왕이라는 미친놈이 내게 선물을 전하라고 강제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죽어서 99층에서 내려간다면?
그럼 일이 틀어지더라도 다시 무너진 자가 될 일은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녀석이 화색을 지었고.
“좋다!”
“오케이.”
-부욱.
난 그대로 상자의 포장지를 열었다.
놈에게 부탁한 것은 일종의 보험.
혹시 모를 상황에 있어 조금이나마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개념이 흡수되기 전에 안전지대로 빠져나가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베드록 바알루제의 선물을 개봉합니다!]아니나 다를까, 상자를 여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와 함께 상자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내게 달라붙었으니.
[탑으로 되돌아온 자의 선물이 강제 부여됩니다!] [개념, 폭발이 흡수……!] [개념, 반골이 이를 거부합니다!]-철퍽.
냅다 내 심장에 달라붙으려는 것을 붙잡아 바닥에 던졌다.
힘없이 떨어져 꾸물거리는 무언가.
“…….”
“…….”
-끼이이에엑!
바들바들 떨면서 꿈틀거리던 심장이 애처롭게 고개를 들었고 나도 화답하듯 발을 들었다.
우직!
“크허억!”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녀석.
아, 맞다.
이거 녀석의 심장이었지.
거기에 선물로 사용되었던 심장이 핏덩이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개념, 폭발이 다시 숙주에게 돌아갑니다.]도로 무너진 자에게 흡수되었다.
혹시나 하기는 했는데 이게 되네.
아쉽게도 개념을 붙잡아 두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거부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은 반골이었고, 그 능력은 상대방의 개념과 혼돈이 부여하는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었으니까.
숭배자의 왕은 내게 개념을 강제로 선물할 수 없다.
따로 잡아다가 억지로 이식하거나 한다면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아마 녀석도 알게 될 거 같긴 하다만.
‘그 와중에 진짜 맞춤 개념으로 선물해 줬네.’
폭발이라니.
반사적으로 패대기치기는 했지만 순간 끌리긴 했다.
왠지 저건 먹어도 될 거 같기도 하고.
“아니지. 괜한 욕심 부리지 말자.”
잘못 먹었다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소화 못 시킬 거면 먹어 봤자 탈만 난다.
그건 그건데.
“네놈-이 나를-우롱해!”
바닥에 엎어졌던 녀석이 이를 갈며 고개를 들었다.
다시 개념이 흡수돼서 그런지 흐물거리는 모습으로 악의를 잔뜩 담은 눈빛을 쏘아 댔다.
-쿠오오오오!
일제히 올라오는 기세.
지금까지 보여 줬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잠깐. 오해가 있다.”
“내 심장을 집어 던지고 밟아 터트리는데 오해가 있었다? 변명이라도 해 보아라!”
“…밟기 너무 좋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에에.”
찰싹.
덕춘이가 내 뒤통수를 쳤다.
내가 생각해도 옹졸한 변명이긴 한데 뭐라도 말해야 할 거 같아서.
“진짜 사람이 못됐다.”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던 자이언트 스윙, 멜러디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사람이 극도로 분노를 느끼면 온몸이 떨린다고 하던가.
그건 무너진 자도 마찬가지로 보였고.
“크아아아악!”
이성을 잃은 녀석이 달려들었다.
-푸화아아악!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촉수.
전방위. 14개의 크고 작은 촉수가 나를 덮친다.
바로 백스텝으로 자리를 피했다.
“야, 저거 날릴 수 있어?”
“되겠냐!”
“상위 괴이체도 별거 없구만.”
녀석이 울컥하기는 했지만 당장은 공격을 피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는지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나도 마찬가지.
끈질기게 쫓아오는 촉수를 피하고 검으로 튕겨 냈다.
그와 함께 오로라 빔.
-찌유우우웅!
다섯 가닥의 광선이 놈과 촉수를 덮쳤으나.
-터어엉!
-파사사삭!
녀석은 피하기는커녕 전진하며 오로라 빔을 쳐 냈다.
촉수가 뭉쳐 거대한 가지가 되고 급소를 노리는 공격을 막았다.
‘저 상태에서도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그럼 좀 까다로운데.
사실상 혼돈의 파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지만.
-퍼어어엉!
놈의 촉수 일부가 스스로 폭발해 터져 나갔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하나 더 있다.
그것도 본인과 어울리는 개념이 아닌 강제로 주입된 개념.
스스로 컨트롤이 안 되는 만큼 사용하기는커녕 방해되고 있다.
‘개념을 사용하는 것만 따지면 혼돈의 파편보다 아래.’
더불어 신체가 무너진 영향 때문인지 처음 만난 놈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촉수를 사용하고 있다.
정교한 타격을 하기 힘든 형태라는 것인데.
“네놈을 죽이-고! 심장을 직접 박아 넣을 것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덩치가 커지고 힘이 강력해졌다.
객체마다 차이가 있긴 할 거다.
-촤아아악!
서로 엉켜 두꺼운 3개의 촉수가 머리와 몸통, 다리를 노리고 들어온다.
저 정도 두께면 부위를 나누는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어딜 맞아도 몸 절반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악마화(SSS) Lv.2] [절대 영역(SSS) Lv.2]어중간하게 상대하는 건 불가능.
즉시 스킬을 사용하며 검을 비틀었다.
[검강] [절삭(SSS) Lv.8]카가가각!
쇳덩이를 긁는 소음과 함께 파편이 튀어 오른다.
“흐읍!”
더욱 힘을 줬다.
신축성 있으면서도 단단했지만 못 뚫을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내 영역 안에서는 놈도 자유롭지 못하니.
-쩌억!
잘 익은 수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동아줄처럼 엉켜 있던 촉수가 분해된다.
탄성을 이기지 못한 촉수 가닥이 철퇴가 되어 사방을 후려쳤다.
-타아앙!
어깨와 허리를 강타한 촉수가 다시금 증식하며 온몸을 찔러 왔지만 그보다 빠르게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콰아아앙!
솟아오르는 불길 속, 놈도 타격을 입길 바랐으나.
“미리 눈치챘다 이건가.”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녀석이 촉수로 몸을 둥글게 말아 피해를 최소화했다.
속으로 놈들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렸다.
이대로 싸우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소음을 듣고 다른 놈들이 올 수도 있고.
그렇다면.
“멜러디, 내가 신호하면 날 던져!”
“너를? 좋아!”
협공을 하는 수밖에.
신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뒤로한 채 놈에게 파고들었다.
촉수가 온몸을 찌르고 두드렸지만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
“잡았다.”
“저리 떨어지지 못해!”
녀석의 머리통.
날 떨치기 위해 놈이 몸부림쳤으나 떨어질 리가 있나.
[달라붙기(S) Lv.MAX]악착같이 붙잡고 있는데.
남은 건 멜러디의 날리기.
“지금이야, 날려!”
“전력으로 날려 줄게, 다시는 보지 말자!”
냉큼 내 다리를 붙잡은 녀석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늘어나는 가속도.
피가 머리로 쏠리며 아찔함이 느껴졌으며.
“무엇-을!”
내가 붙잡고 있는 녀석도 덩달아 나와 함께 돌았으니.
“잘 가라!”
콰르르릉!
폭풍과 함께 회전이 최고점에 이르는 순간, 멜러디가 나를 놓았다.
말 그대로 자이언트 스윙.
나와 무너진 자가 포탄처럼 쏘아져 올라갔고, 바로 그 순간.
[무지개다리(S)]역주행했다.
날아가는 방향과 정반대로 무지개다리가 뻗어 나간다.
이동 중 파괴 불가.
거꾸로 나아가는 힘.
그리고 내가 잡고 있는 건.
-뿌드득.
녀석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