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55)
155화 수사자 (1)
녹차 비스무리한 차를 마시고 있다.
장소는 행정청 근처의 어느 다과점.
함께하는 멤버로는 행정청 7급 사무관 샤빈과 그녀의 절친 라그나가 있다.
참고로 처음 있는 모임은 아니고…….
하수도 의뢰로 인연을 맺게 된 후, 가끔 샤빈의 주도하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
빈도로 따지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 이따가 돌아가시면 동료분들한테 이것 좀 나눠주세요. 저희 행정청 근처에 새로 생긴 쿠키 가게에서 파는 건데, 요즘 엄청 인기예요.”
“……그러지. 챙겨줘서 고맙다.”
이처럼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시답잖은 잡담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이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간혹 쓸모 있는 것들이 나온다.
“아, 맞다! 제가 그 얘기를 했던가요? 이번에 마석 환전 수수료를 연차에 따라 감면해 주던 제도가 없어질 거 같아요.”
“얼마나 확실한 거지?”
“저희 사무장님은 거의 통과될 거라고 보시더라고요.”
니미럴.
아직 1년 차도 안 된 나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식.
“시행은 언제부터 될 거 같나?”
“음, 빠르면 내년, 늦으면 내후년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군.”
늘 그랬듯 쓸모 있는 얘기가 끝나면 일상적인 이야기가 반복됐고, 내가 지루하다고 느낄 새면 어김없이 샤빈의 입에서 유익한 정보가 뱉어졌다.
우연이 아니란 건 두 번째 모임에서 깨달았다.
‘무슨 조련당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샤빈은 알고 있었다.
이런 미끼라도 없으면 내가 이 심심한 모임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는걸.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역시 얘 때문이겠지.’
“어때요? 라그나? 요즘에는 별일 없어요?”
도서관의 사서, 라그나 리타니옐 페프로크.
처음에는 몰랐는데 얘는 사회성이 거의 바닥을 긴다. 그래서일까? 샤빈은 내가 얘랑 사이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거, 자기가 무슨 엄마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별일 없습니다.”
“그렇구나. 비요른 님한테 하고 싶은 말은요? 아까부터 혼자 너무 조용히 있는 거 같은데.”
“하고 싶은 말……. 어쩌면 하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 그래요? 그럼 속 시원하게 해 보세요. 이미 두 분은 친구잖아요?”
그리 말하며 샤론이 나를 보았고,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친구 아닌가.”
첫 모임에서 악수를 나누며 했던 친구 약속.
사실 그게 무슨 의미인가도 싶지만…….
뭐, 어떡하겠는가.
행정청에서 일하는 샤빈은 내게 도움될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끔 하수도 제외 개꿀 의뢰를 주기도 하니 그저 잡힌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는 수밖에.
“친구…….”
내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대화 내내 가만히 있던 라그나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훈계하듯 읊조렸다.
“비, 비요른 얀델. 책을 멀리하면 안 됩니다.”
“아, 요즘에 바빴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다.
미궁에서 나오고서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을 정도니까.
“그럼…… 내일은 오는 겁니까?”
“오늘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용살검이 남기는 했지만, 이거는 크로비츠가 약속을 잡아오기 전까지는 딱히 할 일은 없을 터.
마법사 구인 건만 마무리되면 나도 한동안은 좀 편히 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그나 리타니엘 페프로크.”
슬슬 본론을 꺼낼 차례가 됐다.
바쁜 와중에도 모임에 참가한 건 사실 이 목적 때문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십시오. 속 시원하게. 우리는 치, 친구 아닙니까.”
“암, 그럼요!”
라그나가 먼저 ‘친구’란 단어를 꺼내자 샤빈이 흐뭇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오케이, 이 정도면 판은 깔렸고.
“혹시 탐험가가 될 생각은 없나?”
“……그때와 똑같은 제안이군요.”
“그래.”
예전에도 한 번 했던 제안이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리 팀은 훨씬 더 구색이 잡혔으며, 이제 명색이 ‘친구’ 아닌—.
“아, 안 돼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라그나의 답변을 기다리던 차에 샤빈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소리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라그나? 거절할 거죠? 당연히 그래야죠. 미궁이 어떤 곳인데!”
착오였다.
샤빈이라면 탐험가 일도 사회 경험이라며 날 도와줄 거라 여겼다. 알고 지내는 탐험가만 해도 수십 명은 되는 모양이니까.
탐사에 대한 거부감도 적으리라 판단했다.
애초에 셋이 함께 있을 때 얘기를 꺼낸 것도 그래서였고.
한데 얘가 먼저 나서서 초를 칠 줄이야.
“……샤빈, 너무 겁 먹지 마세요. 저는 아무 데도 안 가니까.”
이내 라그나가 샤빈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러자 이성을 되찾았는지 무안한 얼굴로 다시 착석하는 샤빈.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내 제안은 거절이라는 뜻이군.”
“예. 저는 도서관 일이 마음에 듭니다.”
사서 일이 마음에 든다라…….
순순히 믿기에는, 과연 누가 이곳에 관심이나 갖겠냐며 먼 곳을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차라리 뭔가 이유가 있어서 떠날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현명할 터.
‘결국, 얘는 실패군.’
내심 아쉬웠다.
몇 번인가 모임을 하면서, 얘 마법사 등급이 엄청 높다는 걸 알았거든.
최소 5등급 이상인 마법사.
그런데 나이도 젊어서 추후 성장의 여지까지 있다니?
‘하긴, 그런 얘가 도서관 사서나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사정이 있단 거겠지.’
나는 깔끔하게 미련을 지웠다.
아쉬운 인재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지금 정도의 친분으로는 사연이 뭐냐고 물어봐도 순순히 답해 줄 거 같지 않고.
“어, 근데 비요른 님 팀에 마법사가 있지 않았어요? 그 행정 마법사 출신의…….”
이내 평소 상태로 되돌아온 샤빈이 물었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녀석은 죽었다.”
“아…….”
그것으로 오늘 모임은 끝이었다.
***
‘친구모임’을 끝낸 뒤, 나는 마탑으로 향했다.
약 2달 만의 방문이었다.
와, 연구 협조가 끝난 지 벌써 그만큼이나 지났구나.
“어? 얀델 씨?”
“오랜만이군. 들어가도 되나?”
“뭐, 그러세요.”
오래간만에 찾은 레이븐의 개인 연구실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산처럼 쌓인 문서더미와 마구잡이로 널브러진 각종 마법 재료들.
좀 치우고 살면 안 되나도 싶었지만…….
“아무 데나 놓지 말고 이리 줘요. 놓은 위치를 까먹으면 안 돼서.”
음, 어디다 뒀는지 다 기억을 하니까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커니즘인 건가?
어쩌면 나름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두 달간 코빼기도 안 내비치더니.”
의자 위에 있던 문서를 레이븐에게 건넨 뒤 자리에 앉자마자 날아온 물음이었다.
처음엔 플라스크에 물이라도 담아서 가져다 주더라니.
이제 비즈니스 관계도 아니라 이건가?
뭐, 서론이 짧은 건 반길 일이었다.
어차피 앞에서 암만 밑밥을 깔고 아부를 해도 결정에 영향을 줄 여자가 아니니까.
결과가 정해졌다면, 시간이라도 아껴야지.
“너에게 제안할 게 하나 있다.”
“말해 봐요.”
“새로 만들 팀에 마법사 자리가 빈다.”
“한마디로, 이번에도 영입 제안인 거네요?”
레이븐이 피식 웃었다.
얘기를 꺼내자마자 정색했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 하긴 그땐 작은 발칸이라는 이명도 얻기 전이었으니까.
“얀델 씨, 그때 제가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
“팀원들 전부 6등급 이상에, 신관까지 있으면 좋겠다고 그랬지.”
“그래서요? 어떻게 됐는데요?”
나는 솔직하게 멤버 소개를 했다.
일단 신관이 없다는 것부터 해서 시작은 7등급 근딜인 미샤였다.
“흐음, 7등급이요?”
“어차피 이번 달 내에 6등급으로 승급이 될 거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라.”
왠지 못미더운 표정이라 내친김에 미샤가 가진 정수의 등급만 읊어주자, 얘도 표정을 풀었다.
“그렇다면야.”
그다음은 아이나르 차례였다.
핏빛 성채를 같이 클리어한 사이였기에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당당히 말해 놓고 9등급? 아니, 그보다 왜 아직도 9등급인 건데요? 그때 본나이트의 정수를 먹었잖아요?”
“미샤 칼스타인과 마찬가지다. 승급 신청을 할 시간이 없었다.”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
지금쯤 어제 대판 싸웠던 둘이서 탐험가 길드에 방문해 승급 신청을 했을 터.
최소 7등급은 받을 것이다.
7등급 정수 하나에 무려 4등급 정수를 보유 중인 상황이니까.
“4등급 정수를 계승했다니……. 그렇다면 말이 또 달라지긴 하네요.”
“말이 7등급이지, 6등급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 부분은 내가 직접 싸워 보고 판단한 거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그래서 마지막 한 사람은요?”
“아브만 우리크프리트. 흑곰족 출신의 5등급 탐험가다. 무기로는 대형 석궁을 쓰지.”
이내 탱커 소환수에 대해서도 말해 주자 레이븐이 조금 표정을 달리했다.
“그 정도면 어디를 가도 환영받을 거 같은데, 어쩌다가 얀델 씨 팀에 들어갔대요?”
“인연이 있었다. 적어도 동료 뒤통수는 치지 않을 거 같다더군.”
“확실히……. 그런 쪽으로는 믿을 수 있기는 하죠.”
의외로 쉽게 납득하고 넘어가는 레이븐.
다만 멤버 구성을 모두 듣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었을까?
“그런데 탐색꾼은요?”
마침내 기다려 왔던 질문이 나왔다.
사람이란 연출에 따라 정보의 인상을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툭 뱉었다.
“아, 그 말을 하지 않았군. 우리크프리트는 인도자다.”
“……그게 정말인가요?”
“맹세라도 해 줘야 믿겠나?”
“아니, 그건 아닌데…….”
나는 피식 웃으며 당당히 어깨를 폈다.
그리고 조금씩 꿈틀거리는 양심의 가책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래,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잖아?’
곰아저씨는 인도자다.
단지 길치일 뿐.
아무튼 곰아저씨가 인도자란 걸 밝힌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자존심을 부리고 싶은지, 고민하는 척하긴 했지만…….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다. 맨날 돈이 부족하다고 구시렁거리지 않았나. 일단 6층까지 가는 게 목표이니, 본격적으로 탐사가 진행되면 돈은 부족하지 않을 거다.”
“으음.”
“팀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 마법사로는 안 된다. 너처럼 실력 있는 마법사가 필요하다.”
“으흠?”
“아, 그리고 하나 더. 인도자가 있으니, 균열에 들어가거나 미궁에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는 일도 몇 번은 있을 거다. 너처럼 제대로 된 마법사가 이 가치를 모르진 않을 테지?”
“흐으으음.”
조금 더 설득하는 식으로 나서자 레이븐도 자존심을 굽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까지 간절히 말씀하신다면야.”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그야 영입 제안을 듣고서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탐사에 관한 생각 자체가 없었다면, 내 말을 이만큼이나 들어주지도 않았을 터.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말해 봐라.”
“저한테 탐사는 언제나 2순위예요. 1순위는 제 마법 연구가 될 테고.”
“간단하게.”
“뭔가 연구할 주제가 생기면 한두 달 정도는 쉴 수도 있어요. 어쩌면 아예 빠질 수도 있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얀델 씨가 이해해 줬으면 해요.”
내심 긴장했지만,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우리가 무슨 정규 클랜인 것도도 아니고.
급작스럽게 결원이 생기는 건 이쪽 업계에서 흔한 일이다. 하물며 콧대 높은 마법사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래, 이 정도면 양반이지.
“좋다. 대신 미리 말해 줘라. 아예 나가는 거면 새로운 마법사를 구해야 하니까. 한두 달 정도면 용병을 쓰면 그만이고.”
“네. 그러면 됐네요.”
그렇게 마지막 멤버가 정해졌다.
아루아 레이븐.
알테미온 학파 소속의 6등급 정통 마법사.
“그럼 이제 진짜 동료가 됐네요?”
“잘 부탁한다.”
영입 성공.
***
이후로 우리는 짧게 대화를 나눴다.
팀이 만들어질 토대가 잡혔을 뿐, 아직 팀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 않나.
“다 같이 모여 길드에 팀 등록도 하고, 분배 관련 얘기도 나눠 볼 참인데 언제가 좋겠나?”
사실상 미팅 단계에서 팀이 엎어지는 일도 허다하기에 되도록 일찍 만남을 갖고 싶었다.
새 멤버를 구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판단.
그러나 애석하게도 최종 미팅은 일주일이 넘게 딜레이 됐다.
“뱀파이어 수호자 관련 논문이 막바지 작업 중이라서요. 다음 주에는 학회에 등재되는 것까지 전부 끝날 거니, 그때쯤에 모였으면 좋겠네요.”
되도록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다음 달에 끝나는 거였다면, 내 제안을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여러모로 시기가 좋았다.
얘 정도 스펙이면 솔직히 우리보다 좋은 팀도 구하려면 구할 수 있었을 테니.
“그럼 17일 날 만나는 거로 하지. 장소나 시간은 일행과 상의해 보고 우편을 보내겠다.”
“그러면 고맙죠.”
그 대화를 끝으로 마탑에서 나온 나는 미샤와 곰아저씨를 순서대로 만났다. 그리고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숙소로 돌아와 푹 쉬었다.
그다음 날은 도서관에 방문했고, 이후로는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무난한 일상이 이어졌다.
“우와아아!! 그렇게 거대한 메이스는 처음 본다!!”
아이나르와 대련을 하며 (진)거대화 모드를 연습한다든가.
“솜사탕도 사줬으면서 이것까지 사준다고? 비요른, 너는 무슨 주술사의 항아리라도 되는 것인가?”
“사주는 게 아니라 투자……. 아니, 빌려주는 거다. 나중에 돈을 벌면 다 갚아야 한다.”
미샤까지 셋이서 컴멜비에 방문해 아이나르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한다든가.
“원래 숙소는 어쩌고? 요리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은 얼마 없지 않나.”
“됐다. 이제 전부 사 먹을 거당. 어차피 맨날 쟤가 다 뺏어먹지 않냥!!”
때마침 비게 된 옆방으로 미샤가 이사를 온다든가.
“당신, 그동안 혼자서 미궁에 들어갔으면서 나를 속인 거야?”
“여, 여보. 자, 잘못했소. 살려 주시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셋이서 다 같이 방문한 곰아저씨네 가게에서 미샤가 눈치 없이 입을 놀렸다가 곰아저씨가 죽을 뻔한다든가.
그런 잔잔한 일상으로 이뤄진 날들이 흘렀다.
그리고…….
[23 : 59]15일 자정까지 1분을 남겨 둔 시각.
나는 편하게 침대에 몸을 뉘었다.
「캐릭터의 영혼이 공명하며 특정 세계로 이끌립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