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31)
231화 뉴에이지 (1)
초대왕이자 불멸왕이라 불렸던 절대 군주.
라비기온 3세.
수천 년간 라프도니아를 통치했던 그의 서거 이후 즉위한 개벽왕은 도시에 뿌리깊게 내린 선왕의 잔재를 털어내고자 많은 정책을 펼쳤다.
대표적으로 역법 개정이 있었다.
1년, 13개월, 365일.
미궁이 열리는 주기를 보다 편하게 계산하기 위해 한 달을 30일로 고정했고, 남은 일자를 맞추기 위해 5일뿐인 13월을 만들었다.
또한, 포탈에 손을 대 한 해의 마지막 미궁 주기를 35일로 바꾸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은 있었다.
직관성을 위해 매해 5일을 낭비하는 게 실리적이지 않다는 것.
하나 개벽왕은 꿋꿋이 매년 13월마다 성대한 축제를 벌이며 민심을 샀고, 해가 거듭될수록 바뀐 역법에 적응되며 논란은 잦아들었다.
아, 연호도 두 번이나 바꾸었다.
처음엔 개벽왕의 이름을 땄으나, 길고 발음이 어려운 탓에 민중들은 왕의 별명을 써서 불렀고, 자연스레 왕가에서도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개벽 154년, 5월 2일.
각 차원 광장에서 뿜어진 일곱 개의 불기둥이 라프도니아 상공을 뒤덮었다. 서기관의 손으로 역사서에 적혀 오래도록 기록될 참사였다.
***
“니미럴.”
손으로 옆을 잡고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침대맡에 세워 둔 목발을 짚으며 방을 나선다.
아오, 빌어먹을 계단.
“비요른! 일어났으면 부르지, 왜 혼자 낑낑대냥.”
1층에서 요리 중이던 미샤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부축을 해주었다.
이러니까 진짜 환자라도 된 거 같네.
아, 환자 맞나?
한 달은 정양해야 할 거라더니, 아직도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가 않는다.
“자, 앉아랑. 나오고서는 이게 제대로 된 첫 식사지? 오랜만에 신경 좀 써봤당.”
미샤가 아이나르를 데리러 간 사이, 나는 숟가락을 쥔 채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사흘이나 지났네.’
그날로부터 3일이 지났다.
물론 실감은 거의 안 난다.
돌아온 첫날은 생존자들 전부가 피곤한 와중에도 왕가에 끌려가 미궁에서 있던 일을 진술해야 했고, 그다음 집에 돌아온 뒤부터는 계속 잠만 잤으니까.
‘……미친 새끼들.’
불기둥이 터져 나오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설마 빈집털이를 노렸을 줄이야.
차원문이 열리는 광장 중심부에 트랩을 설치해 뒀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그것도 일곱 개나 되는 모든 광장에.
‘……앞으로는 진짜 어떻게 되는 거지?’
정상적으로 미궁이 폐쇄되며 나온 우리들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으나, 제3 왕실기사단을 비롯해 수많은 대형 클랜이 말 그대로 소멸한 상황.
물론 그중에도 생존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중심부에서도 외각에 차원문이 형성된 몇몇은 마법진이 빛을 뿜자마자 즉시 물러나며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한 백 명 정도 된다던가?
아, 참고로 이는 일곱 개의 차원 광장 전부를 포함한 숫자.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훌륭한 지휘관은 완벽한 선택을 하는 자가 아닐세. 해야 하는 선택을 하는 자지.]해야 하는 선택을 한 자들은 죽었고.
버려진 자들은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싸운 끝에 살아남았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입장.
만약, 그때 내가 놈의 제안을 듣고서 동료를 버리고 빠져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었겠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뱉은 순간, 뒤에서 미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근데 아이나르는?”
“등짝을 내려쳐도 아예 꿈쩍도 안 한당.”
“많이 피곤했나 보군.”
“응. 그냥 나중에 잠깐 일어나면 그때 한 번 더 차려 주려고.”
거, 피곤한 건 자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미샤는 우리가 잠만 자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깨어나 밥을 차려오는 등, 정말 잠만 자며 쉴 수 있게 도와줬다. 그 와중에 목발도 어디선가 구해와서 챙겨주었고.
여러모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동료.
“안 먹고 뭐 하냥?”
멍하니 미샤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었다.
힘들었던 하루가 끝났음을 말해 주는 듯한 맛.
“……에르웬은 어떡할 거냥?”
식사가 거의 끝마쳐질 무렵 미샤가 물었다.
에르웬은 첫날 조사를 끝마친 뒤, 언니의 시신을 이끌고 요정족의 성지로 향했다.
“글쎄, 장례가 끝나면 찾아오기로 했으니, 그때 자세히 얘기를 나눠 볼 생각이다.”
“으음, 그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미샤가 툭 하고 말했다.
“그냥 아예 이 집으로 데려오는 건 어떠냥?”
뭐지? 떠보는 건가?
아니면 단지 미리 안 된다고 선긋기?
일순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으나, 암만 봐도 그런 말투는 아니다.
“무슨 뜻이지?”
“그… 언니랑 같이 지냈다고 했지? 거기에 계속 있으면 더 힘들 거당. 그렇다고 혼자 나와 살라고 하기에는 조금 걱정되고.”
“그래서?”
“여섯 명이서 미궁에 들어갈 순 없으니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를 때까진 보살펴주는 게 맞는 거 같당.”
아, 그래 이런 여자였지.
왠지 기특하기도 해서 농담하듯 놀렸다.
“요정은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이익, 날 대체 뭐로 보는 거냥? 기껏 열심히 차려서 먹여놨더니, 방금 먹은 것들 다 뱉어라. 다 뱉어!”
툴툴거리며 나를 흘기는 미샤.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짓눌리는 것만 같았는데.
“왜 웃냥? 사람 기분 나쁘게.”
“그냥 고마워서 그랬다.”
“…………아오, 또 갑자기.”
짜증난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미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머리 위에 돋아난 귀와 꼬리만 아니면 그냥 평범한 인간 같다.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더 자란 적단발.
오뚝한 코와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몇 마디 말만 나눠 봐도 푼수데기란 걸 알 수 있지만, 처음 얼굴만 봤을 땐 엄청 까칠하고 도도할 줄 알았는데.
“…….”
“…….”
뒤늦게 주변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주방.
“저…….”
미샤가 뭐라 입을 열러던 찰나였다.
똑똑똑.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가 보지.”
“……응, 난 식탁 정리나 좀 해야겠당.”
목발을 짚으며 걸어가 현관문을 여니 반가운 인물이 서 있었다.
“카일 페브로스크.”
“하하, 반갑네. 그간 잘 쉬었나?”
“오자마자 잠만 자다 이제 일어났다.”
“그럼 잠깐 얘기를 나눌 시간은 되겠군?”
“물론이지. 들어와라.”
이내 옆으로 비켜주자 카일이 집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식탁을 치우던 미샤와 인사를 나눴다.
“어! 카일 님?”
“미안하네, 칼스타인 양. 내가 찾아와서 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거 같은데.”
“이익, 놀리지 마랑! 나랑 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흐음, 아니라고? 그렇다면 실례했군.”
진심으로 몰랐다는 듯 사과하는 카일.
미샤가 눈치를 주듯 나를 한 번 보더니, 휙 고개를 돌려 마저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도 거실 소파에 앉았다.
“사실 더 일찍 찾아오려 했네마는, 알다시피 나도 일이 많아서 말일세.”
“이해한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그래, 그렇지…….”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생긴 불편한 정적.
이내 미샤가 예전에 사둔 쿠키를 소파 탁상에 올려두고는 편히 얘기를 나누라며 방으로 돌아갔다.
“오, 라느머스 제과점의 거군?”
“그래? 유명한 곳인가 보군.”
덕분에 전환된 분위기.
나는 좀 더 편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넉넉하면 처음부터 듣고 싶은데.”
“이후 일정까지는 꽤 시간이 있네마는, 처음부터라니?”
“파멸학자 말이다. 그때 그 늙은이랑은 어떤 일이 있던 거지?”
궁금했지만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깨어났을 땐 7일 차가 끝나기 직전이었고, 그마저도 에르웬을 보살펴야 했으니까.
도시로 돌아온 다음에야 말할 것도 없고.
그날의 차원 광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아, 그거 말인가…….”
카일이 쿠키를 베어 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법사와의 전투를 말하는 것이라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여럿 있었으나, 핵심만 논하자면 간단했다.
일대일에서 졌다.
수년간 준비했던 ‘각성’은 제대로 쓰기도 전에 압도적인 마법 연계로 궁지에 몰렸다.
그래서 비완성 상태로 마법을 활성화하며 피해를 입히기는 하였으나…….
“그토록 노력해 겨우 따라잡았다 여겼건만, 모두 내 착각이었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차이가 더 벌어져 있는 듯하더군.”
카일은 벽을 마주했다.
어떻게 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더욱 굴욕적인 건 그럼에도 그가 살아남았단 것이다.
“……재능이 아깝다고 했네. 웃기지 않나? 나는 그의 적수조차 되지 못한 걸세. 아마 날 살리려 했던 게 아니었다면, 그 정도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겠지.”
이내 이야기를 마쳤을 때 카일의 표정에는 그림자가 가득했다.
“꺼내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을 텐데, 얘기해 줘서 고맙다.”
“자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네. 어쩌면 이번 일로 그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니까.”
후, 역시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번 일로 왕가에서는 파멸학자의 위험도를 한 단계 격상했네. 단장의 바로 밑이지. 솔직히 직접 그를 겪은 나로서는 단장과 같은 급으로 쳐도 무방하다 생각하네마는……. 몇 번을 말해도 다들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더군.”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내가 겨우겨우 맞춘 항마력 세팅을 평타로 뚫는 마법사.
과연 그런 괴물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만약 서로가 정상인 상태에서 우연히라도 미궁에서 만나게 된다면 몇 분 안에 전멸을 면치 못하리라.
“아무튼, 그래서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었네.”
음, 그래도 파멸학자 새끼 성격상 귀찮게 복수를 하러 오진 않을 거 같은데.
광대놈이라면 모를까.
“시체 수집가는 어떻게 됐지?”
“아직 소식이 없네. 떠나기 직전에 자네에게 치명상을 입었다고 듣기는 했네마는, 아마 살아 있겠지.”
“……그렇군.”
그나마 광대는 낫다.
이번에 천 단위의 시체군단을 잃었으니까.
복구하는 데 엄청난 시일이 필요할 터, 적어도 성장할 시간은 있다.
“아, 그래서 생존자가 얼마나 되나?”
“차원문을 타고 나간 그들을 말하는 거겠지?”
“물론이다. 백 명 정도 살았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내 말에 카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는 103명일세. 그걸 살아 있다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네마는.”
“무슨 의미지?”
카일은 이번에도 마법사만의 전문 용어들을 써가며 뭐라 뭐라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그러니까 흑마법이 가미된 특이한 마법이라 신성력으로도 치료가 제대로 안 됐단 말인가?”
“그러네. 지금은 전부 의식이 없는 상태지. 언제 깨어날지. 아니, 깨어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네.”
“거, 아주 지랄맞군.”
생존자 얘기가 끝난 다음에는 ‘그 사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체 어떻게 벌어진 일인 것인가.
왕가의 나름 고위층이라 할 수 있는 카일은 숨김없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 적어도 몇 달은 준비해야 겨우 작동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마법인데 어떻게 하루 만에 광장에 그런 걸 준비한단 말인가?”
그날, 나를 포함한 모든 탐험가가 가졌던 의문.
그 해답은 실로 간단했다.
“알고 보니 눈을 피하기 위해 하수도에 마법진을 그렸더군.”
땅굴에 사는 놈들답게 아래에서 일을 벌였다.
“조사 결과, 노아르크 측의 결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네. 즉, 놈들에게는 외부로 나올 수단이 있거나, 미리 빼돌려 둔 인력이 있다는 뜻이지.”
그의 추측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미리 빼돌려 둔 인력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멜리아.’
도시에 잠입한 노아르크 출신의 스파이.
지금까진 딱 잘라 적이라 하기엔 애매했다.
그들의 증오는 왕가를 향했을 뿐이지, 나를 향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 적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 여자는 계속 노아르크의 밑에서 일을 할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나는 그 일로 인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내가 노아르크로 들어갈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본론?”
“현재 도시 쪽 상황은 좋지 않네. 이 도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인력들이 대거 죽었으니. 이대로 가면 경제부터 무너지겠지.”
이는 나도 예상하던 바였다.
탐험가들은 미궁에서 자원을 캐오는 광부다.
기사들이 강하긴 해도 이것만큼은 탐험가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한데 상위 탐험가들이 깡그리 죽었다.
뭐, 보이콧을 하던 몇몇 대형 클랜.
그리고 인식표가 생기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상황을 지켜보던 상위 탐험가들이 상당수 남아 있긴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아마 그들은 더 이상 미궁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 걸세. 적어도 미궁이 안전해졌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안전하지 못한 미궁.
참 웃긴 표현이다마는, 이해는 된다.
이번 회차에 미궁에 들어가 살아 돌아온 게 이천 명도 채 안 되는 상황.
과연 이 상황에 누가 미궁에 들어가 마석을 캐려 하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지금까진 인식표, 그리고 제3 왕실기사단의 존재가 탐험가들을 안심시켰지만, 이젠 그 실상이 까발려졌으니.”
미궁에서 노아르크로부터 우리를 지키겠다던 기사들은 대형 클랜들과 작심해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 만 단위의 탐험가를 버리고 도망쳤다.
“부끄럽네마는, 누군가 회의 중에 그런 말도 하더군. 차라리 생존자가 아예 없었던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카일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겪으면 겪을수록 잔인한 세계란 생각이 든다.
뭐, 투정을 부린다고 변하는 게 있겠냐마는.
“그래서 이제 나는 파멸학자, 시체 수집가에 이어 왕가까지 조심해야 하는 건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나.”
농담과 진심 섞인 내 우려에 카일은 손사래를 쳤다.
“자네는 집에만 있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지금 자네는 왕가에서 몹시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네.”
“……자세히.”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 여정을 함께했던 생존자들 입에서 자네 얘기가 퍼져 나가는 중이네. 며칠만 더 지나도 아마 이 도시에서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자는 없어지겠지. 무려 혼자서 시체 수집가를 그 지경으로 만든 신성 아닌가!”
“……혼자라니, 부탁이니 제발 어디 가서 그런 헛소문은 퍼뜨리지 마라.”
“이 친구도 참 겸손은.”
아니, 겸손이 아니라 진짜 내가 부담된다고.
그냥 누구보다 열심히 앞에서 구른 착한 놈.
그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이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명성이다.
혼자 싸웠다고 한다면 오히려 광대 쪽이니까.
놈은 우리 팀과 싸우는 와중에도 수많은 시체군단으로 중견 탐험가 수백 명으로 이뤄진 본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걔도 진짜 괴물이란 말이지.’
나는 짧게 스쳐 지나간 상념을 정리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게 왕가랑은 무슨 관계지? 나 정도 수준인 탐험가는 왕가에 널리고 널렸을 텐데.”
“하지만 자네처럼 상징적인 탐험가는 얼마 없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안 그래도 왕가를 향한 불신이 생기고 있지 않나. 이번 일이 기폭제가 되리란 건 자명한 사실. 왕가는 판단했네. 혹여 자네가 그들의 구심점이 된다면 자칫 큰 불길로 번질 수도 있…….”
니미럴.
“……응?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왠지 날 제거하겠단 말로밖에 들리지 않아서.”
순도 100%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일은 껄껄 웃었다.
“걱정일랑 말게. 자네에게 어떤 처우를 취할지는 이미 회의를 통해 확정이 났으니까.”
확정이 났다고?
아, 그래서 왕가는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건가?
“그만 뜸들이고 어서 말해 봐라. 이제 보니 오늘 온 것도 그것 때문인 거 같은데.”
내가 재촉하자 카일은 자기가 더 뿌듯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하하네. 머지않아 자네에게 아주아주아주 큰 보상이 있을 걸세.”
왕가에서 내게 당근을 주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