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09)
309화 원탁 (3)
대화 중에 몇 번이나 있었던 정적이 다시금 길게 이어진다.
“…….”
“…….”
아우릴 가비스는 평온한 눈길로 나를 보았고, 나 역시 이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왠지 숨이 막혀 왔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 속에서.
“자…….”
아우릴 가비스가 입을 열었다.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로.
“그럼 이제 내 차례군?”
그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늙은이는 어느 철학자가 말한 심연과 같았다.
이 대화를 통해 선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
[원본을 클리어한 자들이 20년 뒤에는 몇 명이나 있나?]그는 첫 질문을 통해 내 ‘대체품’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자네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나?]두 번째로는 내게 결함이 있는지를 살폈다.
그렇다면, 과연 세 번째는 무엇일까.
그 해답이 지금 그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자네가 심연의 문을 넘어 혼이 깃들게 된 그 육신의 이름이 뭐였는가?”
비요른 얀델이라는, 나의 이름.
익명에 가려진 이 영적세계를 벗어나 나를 찾기 위한 수단.
“니벨즈 엔체란 말은 말게. 그날 뭔가 애매한 기분이 들어서 확인을 해 보았으니까.”
‘니벨즈 엔체’란 이름을 대었을 때,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잘 넘어간 줄 알았건만.
“그날 내가 물었던 건 자네가 ‘이곳에서’ 쓰는 이름이었지?”
내가 섞은 트릭을 눈치챈 아우릴 가비스는 조사를 시작했다.
“알고 있나? 라프도니아에 그 이름을 쓰는 자가 총 7명이 있더군. 그중 여섯은 직접 찾아가 평범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네마는…….”
“한 명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지.”
“6등급 탐험가, 니벨즈 엔체.”
“종족은 놀랍게도 바바리안이었네. 분명 인간식 작명이라 여겼네만.”
말이 이어질 때마다 사방에서 벽이 좁혀져 오는 기분이었고, 덕분에 나는 깨달았다.
[……자네, 혹시 바바리안인가?]아까 농담처럼 했던 그 말조차 내 속내를 떠보기 위한 화술의 일부였단 것을.
만약 내가 위장 신분의 이름을 댔다고 한들, 종족은 그대로 따랐으리라 여겼겠지.
“그럼 다시 묻겠네.”
이내 아우릴 가비스가 한 번 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자네가 심연의 문을 넘어 혼이 깃들게 된 그 육신의 이름이 뭐였는가?”
다른 이름으로 둘러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저렇게까지 조건을 달아 놓고 물었을 때, 말할 수 있는 정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니미럴.’
다른 건 몰라도 이름만큼은 감춰야 한다.
아우릴 가비스가 어떤 ‘인물’인지도 알게 됐지 않은가.
적이라고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를지언정,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찌 나라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물론 안쓰럽네. 책임감도 느끼지. 아마 이런 마음을 평생 지닌 채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네.]이 늙은이는 결코 아군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대답하지 않겠다.”
당당하게 묵비권을 행사한다.
“흐음…….”
아우릴 가비스는 의외로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내 반응조차도 흥미롭다는 듯 관찰할 뿐.
“아무래도 많이 곤란한 질문이었던 모양이군? 하긴, 자네가 나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네. 그럼 다른 질문으로 바꾸지.”
그는 내 이름을 듣지 못한 것에 크게 미련 갖지 않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 몸에서 눈을 뜬 지 얼마나 되었나?”
연차를 묻는 질문이다.
20년 뒤에서 온 걸 알았으니, 저 정보를 얻음으로 아우릴 가비스는 내가 ‘바바리안’의 몸에서 눈을 뜨는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답하지 않겠다.”
“그래? 그럼 다른 질문을—.”
“아니, 이제 질의응답 시간은 끝이다.”
나는 미련 없이 진실게임을 종료했다.
아직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이 늙은이는 고양이 주머니 같은 존재가 아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판단했다.
여기서 더 대가를 치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잠깐, 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다. 선수는 당신이었으니, 문제는 없을 텐데?”
내 일방적인 말에 아우릴 가비스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응시했다.
하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겠지.
몇 번씩 질문을 하자고 미리 정해 두었던 것도 아니니까.
단지 아쉬움을 내비칠 뿐이었다.
“예상외로군. 분명 자네도 내게 궁금한 게 잔뜩 남았으리라 여겼네마는.”
“글쎄.”
확실히 질문 리스트는 페이지 단위로 남았다.
실제로 다음에 내가 할 질문은 성주가 갖고 있는 기록의 파편석을 이용해 원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였다.
그러나…….
‘미리 하지 않기를 잘했네.’
지금 생각해 보면 뒤로 미룬 게 다행이다.
저 질문을 통해 내가 지금 노아르크에 있다는 정보가 역으로 노출될 수도 있었을 테니.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이내 빤히 나를 바라보던 늙은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돌연 칭찬의 말을 뱉었다.
“참 보면 볼수록 영리하단 말이지.”
“…….”
“그럼 이제는 어쩔 텐가? 돌아갈 텐가?”
예상과 달리 아우릴 가비스는 신사적으로 나오며 내가 원하면 언제든 돌려보내 줄 것처럼 말했다.
‘……어떡하지?’
이렇게 일찍 진실게임이 마무리될 거라고는 예견치 못했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역시 아쉬운데.’
잠시 고민한 나는 결국 아까 세워 둔 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아까 말했던 그건 어떤가?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자 했던 거.”
“응? 그건 이미 끝난 얘기 아닌가?”
“아이디어는 좋은 거 같아서 말이다. 몇 가지를 고치긴 해야겠지만.”
암,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들은 보고 가야지.
***
아우릴 가비스와의 진실게임은 러시안룰렛과도 같다. 한 번 한 번 턴을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하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렇다.
하지만…….
‘한정판 정보는 이만하면 됐어.’
어차피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리고 아우릴 가비스만 쓸모 있는 정보를 가진 것은 아닐 터였다. 그 대상이 나보다 수십 년 일찍 이 세계로 불려 온 이계의 악령들이라면 더더욱.
“흐음, 꽤나 재미있는 생각을 해 냈군.”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정보 공유.
다만 반드시 그것은 진실이어야 하며, 참가자 중 절반이 모르는 정보여야 한다는 것까지.
미래의 원탁을 고스란히 따와 룰을 설명하자, 아우릴 가비스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괜찮을 거 같네. 방금 생각했다기에는 틀도 제대로 잡혀 있고. 자네 원래는 무슨 일을 했나?”
답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물론 솔직히 말해 줄 생각은 없지만.
“질의응답 시간은 끝났다고 했을 텐데?”
내가 까칠하게 답하자 아우릴 가비스가 살짝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단지 호기심에 물었을 뿐이네. 그리고 애초에 막 대단한 비밀을 물은 것도 아니지 않나?”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당신이 물어보니까 이 질문에도 뭔가 의도가 숨겨져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아무튼, 잠시만 기다리게. 자네가 말한 규칙을 추가하려면 아무래도 권한을 더 불어넣어야 하겠군.”
이내 아우릴 가비스가 보석에 손을 댄 채로 정신 집중을 하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후우우우웅-.
육안으로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으나, 한여름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석 주변의 공기층이 굴절되기 시작했다.
“다 끝났네.”
“생각보다 쉬워 보이는군?”
“허허, 그렇게 말하니 굉장히 억울해지는군. 믿든 말든 자네 선택이네마는, 이거로 나는 이 공간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을 잃었네.”
음,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는데…….
그런 눈치로 힐끗하자, 늙은이가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설명해 왔다.
“대표적으로 구현력이 있지. 사념을 집중시켜 사물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는 아직도 가능하지만, 실제의 것과는 차이가 날 테고.”
대충 흘려듣던 나는 움찔했다.
구현력, 사념 집중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실제의 것과 차이가 나게 된다니…….
“잠깐만, 혹시 아까 사이다 맛이 밍밍하던 것도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질문에 아우릴 가비스는 주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마는. 문제라도 있나?”
당연히 있다.
앞으로는 그 사이다의 청량감을 맛 볼 수 없다는 뜻이니까.
“…….”
“자네, 그거 심각한 수준의 사이다 중독일세.”
“…….”
“근데 그 정도로 그리워하는 걸 보니, 이곳에 넘어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군?”
뭐래, 이 늙은이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정보를 캐내려는 게 참.
덕분에 정신이 들어서 나도 은근슬쩍 물었다.
“……그건 됐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딱 봐도 그 권한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능력 같은데.”
“후후.”
아우릴 가비스는 그런 내 속내를 알면서도 귀엽다는 듯 답했다.
“그때 자네가 말했지 않나. GM이라는 별명을 지닌 자에게 초대장을 받았다고.”
아, 그런 말도 한 적이 있었지.
“그래서?”
“그 말은 이 공간의 소유권이 그자에게 넘어갔단 뜻이네. 그렇게 된 경위는 모르겠네마는, 어차피 다른 놈 손에 넘어갈 거라면, 구태여 알맹이까지 넘길 이유가 없지.”
대충 무슨 심리인지는 알 거 같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짓거리라 해도, 서비스 종료 일자가 정해진 망섭이라면 얘기가 다르니까.
온갖 개뻘짓을 해도 전혀 아깝지 않다.
다만, 궁금한 것은 하나다.
“GM에 대해선 왜 더 묻지 않지?”
“허허, 자네도 그 별명 말고는 잘 모른다고 했지 않나.”
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
고개를 주억이며 납득하고 있자, 아우릴 가비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설령 아는 게 더 있더라도 굳이 묻고 싶지는 않네.”
“……어째서?”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아우릴 가비스는 어딘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했지 않나. 관측된 미래는 무슨 일을 해도 바꿀 수 없다고.”
음,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는 뜻이려나?
그가 남긴 말에 뭔가 알 듯 말 듯한 기분이 들던 때였다.
“잡담은 이만하면 됐으니, 어서 가 보세. 그치들도 재밌어할 거 같군.”
아우릴 가비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이동했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원탁이 있는 그 방으로.
***
수십 개의 좌석이 자리한 원탁.
끼이이이익.
아우릴 가비스가 연 문 너머로 들어서자, 그 안에 앉아 있던 네 남녀의 시선이 모인다.
“……마스터.”
그들의 반응은 동일했다.
지난번에 날 보내 놓고 뭔 짓을 했는진 몰라도, 다들 아우릴 가비스를 보며 두려운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뒤에… 그때 그자도 있군요.”
나에게 호기심을 내비친다.
그러나 지난번에 아우릴 가비스가 내 정체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어 놔서일까?
호기롭게 입을 여는 자들은 없다.
“…….”
“…….”
그렇게 묘한 침묵이 잠시간 원탁의 방에 감돌았다.
정적을 끝낸 것은 아우릴 가비스였다.
“허허, 다들 너무 얼어 있군.”
그 한마디는 절대자의 말과도 같았다.
마치 지금부터는 긴장을 놓아도 된다는, 약자들을 위한 배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요. 마지막에 그런 모습을 보이셨으니까요…….”
이름 모를 여인이 참아 왔던 숨을 내뱉듯 입을 열었고, 아우릴 가비스는 미안하게 됐다며 껄껄 웃었다.
이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유해졌다.
“아무튼, 다들 모여 있다니 잘됐네. 내가 이번에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재밌는 걸 만들게 돼서 말이지.”
이내 아우릴 가비스가 원탁의 중심부에 보석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교류를 목적으로 자네들을 이곳에 불렀으나, 사실 그동안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 않던가? 어쩌면 이거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지 모르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르큘리스의 단장으로 추정되는 흑의 사내의 물음에 아우릴 가비스가 회담의 룰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얘기가 끝난 후에 나온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절반 이상이 모르는 정보를 말해야 한다라, 어렵군요.”
여인은 어딘가 염려하는 기색이었고.
“하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교류가 될 것이오. 그동안은 다들 속내를 감추기만 바빴으니.”
카구레아스, 그런 이름을 가졌던 중년 사내는 달갑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스터도 참가하는 것이외까?”
어린아이의 외모와 달리 중후한 말투를 쓰는 꼬맹이, 파멸학자는 그저 하나만을 물었다.
“물론, 나도 참가할 생각이네. 여기 옆에 있는 이 친구도 마찬가지고.”
아우릴 가비스의 답변에 네 남녀의 시선이 내게 또다시 모였다.
어딘가 껄끄럽다는 눈빛이었다.
하긴, 정체도 모르는 이방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회담에 끼겠다고 하면 정보가 있어도 말하기 싫겠지.
‘내가 일단 편애를 받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정말 자기들이랑 급이 맞는지도 궁금할 테고.’
음, 어떡하지?
일단 자격을 증명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긴 한데.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아우릴 가비스를 불렀다.
아니, 정확히는 부르려 하던 차였다.
“저기…….”
“아, 그냥 마스터라 부르게. 내 이름을 아는 자는 자네뿐이니.”
어, 갑자기?
늙은이가 칼같이 내 말을 자른, 그 순간이었다.
“……!”
“……!”
“……!”
네 남녀의 눈빛에 이채가 실렸다.
‘뭐야, 이거…….’
솔직히 말해, 당혹스럽단 말로도 부족했다.
아니, 이 늙은이는 대체 여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던 거야?
“이름을… 안다고……?”
설마 이름도 안 알려 줬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이걸로 넘어갔으니 잘된 건가?’
얼떨떨한 감정을 추스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자니, 아우릴 가비스가 내게만 보이게끔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거, 속이 빤히 보이게.’
늙은이가 날 돕는 이유야 명백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아우릴 가비스는 이 회담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내 제안에 옳다구나 승낙을 한 것도,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고 싶어서였겠지.
아니, 어디 그뿐인가?
“자자, 앉아들 있게. 경계하는 건 당연하네만, 정 그러면 저 친구가 첫 번째 차례로 입을 열면 되는 거 아니겠나.”
아우릴 가비스는 자연스레 분위기를 유도했다.
내가 대단한 정보를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분위기를.
“……그보다 일단 다들 참가할 건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늙은이의 수작에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건 또 뭘까.
“……!”
“……!”
또 네 남녀의 동공이 확대된다.
마치 믿기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는 듯이.
“어찌 마스터에게 저렇게 가벼운 말투를…….”
“……한데 마스터도 별말을 안 하시는군요.”
아니, 진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드륵.
그래서 그냥 아무 곳에나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를 기점으로 한 명씩 입을 열어 참가 의사를 밝혀 왔다.
“참가하겠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누가 이런 자리를 마다하겠어요?”
불참을 선언하는 자는 0명.
아우릴 가비스는 흡족한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사회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럼 만장일치로 합의가 끝났군. 소개 같은 건 할 필요 없으니, 이제 시작해 보세. 자네가 먼저 한 다음에, 시계 방향으로 돌지.”
그 말에 또다시 내게로 시선이 모였다.
아무리 나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처음 만들어진 회담의 첫 순번 아닌가.
내가 뱉는 정보의 질에 따라 이들이 꺼낼 정보의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얕보이는 건 좋지 않겠지.’
20년 후의 원탁에서 배운 게 있다.
일단 있어 보이는 척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원탁 회의 중에 별거 아닌 정보들로 턴을 넘겨도 뭔가 숨은 속뜻이 있으리라 여기며 대강 넘어가는 일도 여럿 있었고.
‘흐음, 그럼 뭐로 할까.’
나는 잠시 고민을 이어 가면서도 천천히 원탁에 앉은 일원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가 나를 향해 강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열의가 넘치는 건 아우릴 가비스였다.
‘그래, 내가 이 분위기에서 뭘 정보로 밝힐지 아주 궁금해서 죽겠다 이거지?’
덕분에 고민이 끝났다.
이 노인네가 뭘 기대하는진 알겠지만…….
‘어림도 없지.’
내가 원탁 짬이 얼마인데.
고민을 끝마친 나는 입을 열었다.
아우릴 가비스에게 쓸데없는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회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그것.
“땅의 마녀는 살아 있다.”
이름하여 수사자류雄獅子流.
제 1식第一式, 정보 돌려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