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19)
319화 메모리 (4)
과연 나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최근 몇 개월 동안 내가 품고 있던 의문이다.
게임에서야 이 수치면 어느 정도가 되겠다 감이 잡히지만, 그것만으로 실감하긴 어려웠다.
이곳은 단순한 게임 속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딱 좋은 상대일지도.’
오러 발현이 가능한 ‘평기사’만 하더라도 6층 탐험가와 대등하게 여겨지며, 대인전만 놓고 보면 그 윗줄로 쳐준다.
다만 나도 스펙은 딱히 꿀리지 않는다.
물론 혼령각인도 아직 6레벨에 불과하며, 레벨도 낮아 이 시대의 강자들에 비하면 정수 개수가 압도적으로 적지만…….
오우거에 바이욘에 스톰거쉬까지.
3등급이 정수가 무려 셋이나 된다.
정수 조합도 근본이 없는 게 아니라 시너지가 일어나도록 맞췄고.
무엇보다 탱커가 기사에게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이유는 딜 부족 때문인데, 이는 악마분쇄기로 커버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로 조건은 똑같아.’
한 방 맞으면 골로 가는 건 서로 마찬가지.
“…….”
“…….”
어두운 계단 위에서 때아닌 정적이 이어졌다.
내가 강하게 나오자 저쪽도 어딘가 찝찝해진 걸까?
‘괜히 세게 나갔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놈은 신중하게 나와의 거리를 쟀다.
다만 그럴수록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저 옛날 검객들의 대결이 한 호흡만에 정해졌다고 하듯.
“…….”
“…….”
승부는 한순간에 갈렸다.
스윽.
처음 움직임을 보인 건 상대 쪽이었다.
단 한 걸음.
딱 그만큼 부족한 거리를 채우기 위해 녀석이 계단 한 칸을 오른 그 순간.
“푸흐으으읍!”
나는 혀를 씹어서 머금고 있던 산성피를 놈의 면상에 뿌렸다.
다만, 녀석은 이를 피하지 않았다.
주먹이 날아들어도 눈 하나 꿈쩍 안 한다는 복서처럼, 표리부동한 자세로 검을 뻗었다.
시체 골렘 정수가 사기인 이유였다.
산성피에 대해 아는 새끼가 없거든.
아무래도 피쯤이야 그냥 뒤집어쓰면 그만이라 여긴 거 같은데…….
치이이이이익-!
놈의 검보다 산성피가 먼저 닿았다.
녹는 소리만 날 뿐, 비명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암만 단련을 했어도 사람인 이상,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일시적으로 놈의 눈이 감기며 검 끝이 흔들렸다.
그 틈을 타 나는 옆으로 몸을 비틀며 날아들었다.
타닷.
체공한 상태에서 검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신경 쓸 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한데 검에서 전해진 감촉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을까?
스륵.
놈이 왼손으로 들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첫 수가 무위로 돌아갔으니, 이번 턴은 수비로 버텨 내겠다는 판단.
하얀 빛무리가 방패 표면에 맺힌 걸 보니 방어계 스킬도 하나는 갖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녀석의 두 번째 패착이었다.
이 망치에는 방어구 관통이 붙어 있거든.
콰아아아앙-!
사정없이 망치를 내리찍은 즉시.
“커헉!”
놈이 입을 벌리며 핏물을 뿜어냈다.
눈빛에는 당황스러운 감정만이 가득했다.
하긴, 방패로 잘 막아 냈는데 왜 몸이 아작났는지 이해가 안 됐겠지.
그러나 이해와 납득은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타닷.
놈은 위험하다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서, 계단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든 정비할 시간을 벌어 보겠다는 것.
이게 놈의 세 번째 패착이었다.
나한테는 그랩 스킬도 있거든.
후우우우우웅-!
[초월]과 [폭풍의 눈]을 연계해 멀어지던 놈을 눈앞으로 끌고 왔다.그리고…….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콰직, 콰직, 콰직!
나는 녀석의 머리가 짓뭉개질 때까지 연신 망치를 내리쳤다.
***
“아우, 땀 나.”
총 세 번의 확인 사살을 마친 나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불과 몇 초간의 전투였지만 심력 소모가 상당했던 탓이다.
뭐, 그래도 보상은 확실했지만.
‘캬, 장비가 무슨 최소 4단계에서부터 시작하네.’
성주가 투자를 많이 했는지 장비가 제법 좋다. 차마 두고 갈 수가 없기에 얼른 장비를 벗겨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조금 자리가 부족해서 가장 가치가 적은 것들을 빼내야 하긴 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문제.
문득 아멜리아가 남긴 쪽지가 떠올랐다.
기록의 파편석을 얻고서 혼자 가라던가?
‘……뭘 가라는 거야. 장비들 묻어둘 곳도 아직 못 찾았구만.’
암, 이것들을 어떻게 모았는데 그냥 두고 가.
그거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 못 가지.
애초에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는 물건인지도 알 수 없고.
‘아무튼, 다시 안 올 기회니 얼른 그것부터 챙기자.’
루팅을 끝마친 나는 발가벗겨진 사체를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툭.
계단 자체도 굉장히 넓었지만, 전부 내려가니 스무 명은 너끈히 지나갈 법한 넓은 통로가 나왔다.
참고로 그 끝에는 거대한 문이 자리했는데…….
‘살짝 열려 있네.’
근처에는 당장 보이는 인물이 없었다.
따라서 최대한 기척을 죽여 문 쪽으로 다가갔다.
피난소 용도로 설계된 문 너머 거대한 공동에는 딱 한 사람만이 자리해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맞고 벗겨진 정수리.
뒤룩뒤룩 살찐 뱃살.
딱 봐도 좋은 옷감을 사용한 듯한 화려한 의상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한 쌍꺼풀.
예전에 한 번 멀리서 본 적이 있는 성주가 틀림없었다.
“……오마누스 경인가?”
그때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성주가 불안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흐음, 어쩔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모습을 비추었다.
“자네는… 철가면?”
성주가 날 보며 흠칫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온다던 오마누스 경은 어디 가고 자네가…….”
“오마누스라면 죽었다.”
“…….”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죽인 건 나다.”
“……!”
내가 담담하게 사실을 고하자 성주가 눈을 부릅뜨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거, 쓸데없는 짓 하기는.
그런다고 도망칠 수 있겠냐고.
“읏! 놓게! 놓으란 말이야! 무엄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얼른 다가가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자 성주가 한껏 역정을 내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도시의 지배자라기엔 굉장히 추한 몰골이었다.
쩝, 그러게 암만 아무도 모르는 패닉룸이라고 해도 호위 좀 더 데리고 숨지 그랬어.
“뭐, 뭘 원하는 겐가……! 그, 그만! 말로 하게!”
한 손으로 성주를 집은 채로 툭툭 몸을 치며 간단하게 소지품을 뒤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아멜리아가 말하길 반드시 품에 소지하고 있을 거라던데 정말이었다.
그게 목걸이 형태일 줄은 몰랐지만.
툭.
힘을 줘 목걸이를 끊어낸 다음 성주를 놓아줬다.
두 눈을 뜨고 선대가 남긴 보물을 빼앗긴 성주가 노발대발하며 소리쳤지만, 그래도 생각은 있는지 내게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좋아, 일단 이건 챙겼고…….’
혹여나 손에 닿는 것만으로도 작동이 될까 우려한 나는 목걸이 줄만 잡고서 기록의 파편석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놈……! 그게 어떤 건 줄 알고!! 어서 이리 내놔라! 내놓으란 말이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이라도 좀 뽑아줄까?”
“…….”
일단 성주의 입을 다물린 뒤, 차분하게 물었다.
“기록의 파편석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나?”
“놈! 정말 이걸 노리고… 으, 읍!!”
“묻는 것에 대답만 해라. 여긴 너와 나뿐이니까.”
“……너에게 말해줄 게 있을 거 같으냐!”
의외로 성주는 제법 질겼다.
처음에는 성을 냈고, 그다음에는 모른다고 하다가 결국 한 대 처맞은 다음에야 선대들이 남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쓰는 방법이 없다고?”
“이, 일단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그, 그렇소……. 시대의 부름을 받은 자가 곁에 오면 빛이 뿜어져 나오게 된다고…….”
기대도 않던 정보였다.
아멜리아의 말에 따르면 노아르크 성주조차도 사용법을 알지 못해 보관만 했다는 모양이었으니까.
근데 실은 다 알고 있었다 이거지.
‘액티브가 아니라 조건 충족 시 자연 발동되는 식이었구나.’
혹시나 해서 물어보길 잘했다.
“이제 의문이 풀렸으면—”
“됐고, 이거나 말해봐라. 만약 시대의 부름을 받은 자가 다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 그걸 대체 왜 궁금—”
지능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성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네, 설마……!”
하긴 대놓고 티를 냈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숨길 생각도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는 대로다. 그러니까 말해봐라.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 어쩐지… 아무도 모르는 이곳까지 어떻게 찾아왔나 했는데, 그런 배경이…….”
“또 묻지도 않은 소리.”
쓰읍하고 소리를 내자 성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질문의 답을 내놓았다.
“와, 왔을 때와 마찬가지라 들었소. 이곳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치면 다시 부름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귀찮게 됐군.”
“……나도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소?”
이제 어떡할까 고민하던 차에 성주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미, 미래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소이까?”
그리 묻는 성주의 눈은 기분이 나쁠 정도로 반짝거렸다. 설마 영웅처럼 역사에 이름이라도 남겼을 거라 기대한 걸까?
“그건 왜 묻는 거냐?”
“다, 단지 호기심이오……. 자네가 이곳에 왔으니 이제 그 미래는 없겠지만… 궁금할 수는 있지 않겠소.”
그래, 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긴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보물이라든가 하는 얘기가 나왔겠지.
“아, 오늘 일은 어떻게 됐소? 오르큘리스, 그 잡것들을 이 도시에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소?”
“그렇게 미래가 궁금한가?”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눈을 감아 봐라.”
“……감았소.”
“뭐가 보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다행이다.
뭔가 보인다고 하면 곤란해질 뻔했는데.
“그게 네 미래다.”
나는 힘껏 망치를 내리쳤다.
***
털썩.
성주의 육신이 힘을 잃고 쓰러진 자리에 붉은 피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몇 달간 지내며 보고 들은 것에 반만 사실이어도 충분히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애초에 원래 이날 죽는 운명이기도 하고.’
참고로 성주 살해는 세간에 오르큘리스의 짓이라 알려졌고, 아멜리아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밝혀졌듯.
진짜 범인은 나다.
‘뭐, 이젠 새삼 놀랍지도 않지만.’
사실 죽일지 말지는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끝내 망치를 내려친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그냥 떠난다 해도, 성주는 오늘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며 역사가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만에 하나.
사실 내가 죽인 게 대역일 뿐이고.
진짜 성주가 지상으로 도망쳐 신분을 감춘 채 20년간 온세상을 완벽히 속였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결과는 변하지 않는 것—
“어……?”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유레카를 외친 철학자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온 세상을 속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