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67)
467화 땅의 주인 (2)
알미너스 백작가.
라프도니아 왕가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존재했던 위대한 가문 중 하나는 아니다.
하지만.
[알미너스 중앙 거래소] [알미너스 은행]이 기관을 소유한 ‘알미너스 상회’가 백작가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영향력만큼은 그들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
초대형 클랜 중 하나인 톱니이빨의 후원자로 그 영향력이 미궁에까지 닿아 있기도 했고.
“잠자코 있진 않을 거 같았지만, 설마 모즐란에 공론화를 시킬 줄이야.”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말에 아멜리아도 공감을 하는 기색으로 피식 웃었다.
“생각 이상으로 백작가의 배짱이 두둑하더군. 무허가 토벌을 시도한 정황이 뻔한 와중에 이런 수를 쓸 거라곤 나도 예상치 못했다.”
“에밀리, 네 잘못이 아니니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책임감? 내가 왜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어…….”
그냥 그런 말을 할 타이밍 같아서 한 건데…….
아니었으면 말고.
왠지 멋쩍었기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발신일이 이틀 전인데, 왜 알려주러 오지 않은 거냐?”
“바쁠 걸 알기도 하고, 그전에 확인할 것도 몇 가지 있었으니까. 만약에 오늘도 네가 집에 안 오면 내가 찾아가려고 했다.”
“확인할 것?”
아멜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지난 이틀 동안 확인한 몇 가지를 내게 말해주었다.
꽤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우선 벌써 사람을 풀었는지 주점에서 말이 나오고 있더군.”
알미너스 백작가에서 여론전을 시작했다.
“대충 예상은 가지만, 뭐라고 그러던가?”
“전부 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엔 우리가 수를 써서 다 잡은 계층군주를 도중에 훔쳐 갔단 얘기다. 아, 참고로 아예 녀석을 소환한 게 우리일지 모른단 추론도 있었다.”
“역시 그런가…….”
“그래도 그게 헛소문이라고 반박하는 자들도 상당하다. 다행히 네가 그동안 밟아온 길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더군?”
그래, 틈틈이 올려둔 명성 수치의 효과 덕분이란 말이지.
이거 좀 뿌듯할 지도—.
“하지만 서둘러야 할 거다.”
“응?”
“그때 너에게 도움을 받은 탐험가들에게 접근을 하는 걸 봤다. 회유해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만들 생각인 거 같더군.”
“…회유? 검증 마법이 있어서 거짓 증언은 못 할 텐데?”
“혹시 모르고 있는 건가? 모즐란의 재판에서는 묵비권 행사가 가능하다. 아마 불리한 질문은 전부 답하지 않고 넘긴 뒤, 진실의 일부만 말하며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만들겠지.”
“……음, 그래도 우리 쪽이 훨씬 더 신빙성 있지 않나?”
“아니, 판례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보통 증언이 엇갈려 분별하기가 어려울 땐, 재판에서 증언 비중 자체를 낮추는 식으로 진행되니까. 흔한 전략이지.”
어… 그렇구나…….
“근데… 넌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냐?”
“지난 이틀 동안 자료를 보며 숙지했다.”
“…….”
어쩌면 진짜 천재인 건, 얘 언니가 아니라 얘가 아니었을까.
내심 감탄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아멜리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넌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냐?”
“재판이 열리는 건 기정사실이니, 우선 그때 네 도움을 받았던 이들 중에 증언을 해줄 자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멜베스에 도움을 요청해라. 역사가 깊은 만큼 이런 분쟁도 여러 번 있었겠지. 실력 좋은 법관이 한 명쯤은 있을 거다.”
“오, 그다음엔?”
기대하는 눈으로 응시하자, 못내 부담스러웠는지 아멜리아가 시선을 피했다.
“……내가 잘하는 건 조사지, 해결책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래, 딱히 더 생각나는 게 없다는 거구나.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그때 열심히 듣고는 있지만 대화에 참가는 하지 못했던 에르웬이 그리 말했다.
마음은 고마웠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먼저 말할 테니, 그때까지 너희는 신경 쓰지 마라.”
부족장으로서의 업무는 충분히 보고 왔으니, 이제 클랜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다.
***
무려 나흘 만의 퇴근.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는 곧장 집을 나서 모즐란 본청으로 향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도 있지 않은가.
본격적으로 전략을 세우기 전에 정보를 먼저 수집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하나.
‘……왜 하필 본청으로 불러가지고.’
지난날, 드왈키가 체포됐던 모즐란 지부야 해당 관할 구역인지라 7구역 안에 있었으나, 본사라 할 수 있는 본청은 황도 카르논에 자리해 있다.
‘……돈 좀 쓰더라도 군용 승강장을 이용할까?’
문득 그런 유혹이 눈앞에 아른거렸으나, 클랜 아다바다의 클랜장으로서 끝내 유혹을 떨쳐냈다.
암, 한 번 탈 때 그게 얼마인데?
가는 동안에 자면 시간 낭비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본청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얀델 남작님 이리로 오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이내 모즐란 본청에 도착하자 신분을 말할 것도 없이 소속 기사들이 예의바르게 나를 맞이했다.
격세지감이란 게 이런 걸까.
물론 이번에도 좋은 일로 온 건 아니지만, 예전엔 드왈키 건으로 찾아갔을 때 건물에 발도 제대로 못 붙이게 했었는데.
심지어 본청도 아니고 지부였음에도 그러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모즐란의 의장 크리스티나 베알론입니다.”
날 맞이한 모즐란의 수장은 단아한 외모의 중년 여성이었다. 평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모즐란 소속이니 이 아줌마 역시 기사일 터.
“베알론? 베알론 백작가를 말하는 건가?”
“예. 베알론 백작님께서 저의 오라버님이 되시지요.”
“그렇군. 근데 원래 의장이 이런 일까지도 하는 건가?”
“사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오나 작위 귀족분 간의 분쟁은 극히 예민한 사항이기에. 혹여 실수라도 할까 싶어 제가 직접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얼른 해봐라. 편지에는 방문하면 자세한 얘기를 해주겠다던데.”
“예, 아무래도 서한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는지라. 크흠,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아줌마가 내 눈치를 쓱 보더니,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만 귀족 출신답게 서론은 길었고, 본론으로 들어간 건 편지에 담긴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풀어 말하는 과정을 거친 후였다.
“……보통 이런 경우엔 합의를 권하는 바입니다. 알미너스 백작님께서도 얀델 남작님만 응한다면, 요구한 액수를 낮춰주겠다고 확실하게 약속을 하셨고요. 하지만…….”
이내 아줌마가 쓰윽 날 올려다봤다.
“남작님께서는 그걸 원하지 않으시겠지요?”
거, 그걸 말이라고.
“물론이다.”
“그럼 결국 왕립 판결소로 사건을 넘기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후 의장은 판결소로 넘어갔을 때의 절차와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그중엔 진술서를 쓰는 것도 있었는데…….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기록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진술서 작성은 다음으로 미뤘다.
그야 재판에서 쓰일 진술서가 아닌가.
변호사를 대동한 뒤 전략적으로 쓰는 게 옳다.
따라서 건물을 나선 뒤에는 곧장 토끼 남작가로 직행.
“얀델 남작님……? 어머님에게는 방문에 대해 언질을 받지 못했습니다마는.”
날 맞아준 것은 남작의 딸이었다.
애석하게도 토끼 남작은 현재 업무가 있어서 왕궁에 가 있다는 모양.
오늘 내에는 돌아온다기에 그냥 기다기로 했다.
그리고 또 얼마나 흘렀을까.
“얀델 남작, 이곳엔 어쩐 일입니까? 미니아에게 들어보니 한나절은 기다리셨다는데…….”
“리리비아 남작, 네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 말입니까? 일단 자세히 말해보시지요.”
날이 저물 즈음에 돌아온 토끼 남작은 내 이야기를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일지 모르지만… 얀델 남작님은 정말 폭풍 속에서 태어난 사람 같군요.”
“…….”
“일단 법관이라면 솜씨 좋은 인물을 알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무리겠고, 내일까진 직접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신경써줘서 고맙다. 근데 혹시 빈방이 있나?”
“빈방이라 하심은……?”
“집에 가서 잤다가 내일 다시 오는 건 번거롭지 않나.”
“……얀델 남작님께서는 라비기온에서 지내는 중이었지요. 알겠습니다. 이따 사람에게 말해 방을 하나 비워놓으라 하지요.”
“고맙다.”
오케이, 그럼 숙박도 해결.
이후로는 토끼 남작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했고, 그다음에는 수정구를 빌려 에르웬과 아멜리아에게 외박을 하게 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처음 뵙겠습니다. 얀델 남작님. 제임스 엘크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리리비아가 소개해준 법관을 만나 상담을 받았다.
내 얘기를 모두 들은 법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군요. 일단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모즐란에 공식적으로 기소된 내용은 ‘공헌도에 따른 전리품 분배 요구’가 맞습니까?”
“맞다.”
뒤에서는 내가 쓰레기짓을 한 것처럼 소문을 내는 중이지만, 일단 소송의 내용은 그렇다.
“어찌됐든 톱니이빨이 이번 사냥에 있어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니 그만큼의 지분을 내놓으라더군.”
소송의 근거는 미궁재난법에 있었다.
재난 시 각 탐험가들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할 의무가 있었고, 그로 인한 전리품 분쟁도 매번 반복됐다.
덕분에 관련 법률도 마련이 되어 있는 상태고.
“어렵군요…….”
“…그 정도인가?”
“예. 공헌도에 따른 분배 요구는 미궁법에 따른 적법한 요구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구를 당당하게 한 걸 보면, 본인들의 공헌도를 증명할 수단도 있을 것이 분명하고요.”
그리 말한 법관이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알미너스 백작가에서 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어떻습니까? 결국 판결소로 가도 최대한 분배금을 줄이는 식으로 흐르게 될 텐데, 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놈들이 계층군주를 무허가로 소환했다고 의심되는 정황이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워진 목소리.
다만 법관은 여전히 업무적인 말투로 답했다.
“그건 이 사건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정황뿐이지 않습니까? 증명도 어려울 테고, 증명을 한다 해도 분배와는 별개의 사건이 될 겁니다.”
쉽게 말해, 추후 알미너스 백작가에서 벌금을 내든 징역을 살든 분배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뜻.
“얀델 남작님께서 원하는 선택을 하실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너무 노엽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후, 그래, 여기서 얘를 탓할 건 아니겠지.
“제임스,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협의하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얀델 남작님께서 말씀하신 ‘정황’을 무기로 쓴다면, 분배금을 훨씬 더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짊어질 위험 부담이 훨씬 더 적지요.”
“위험 부담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래도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막무가내인 내 물음에도 제임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예. 이게 최선입니다. 분배금 지급은 결국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알미너스 백작가에서 모즐란에 제기한 중재 신청을 취하하는 게 아닌 이상은 말입니다.”
그래, 그런 거구나.
나는 이쯤에서 법률 상담을 끝마쳤다.
딱히 얻은 게 없는 듯했으나, 그래도 제임스 덕에 앞으로의 방향성은 잡혔다.
‘취하를 시켜야 한다 이거지.’
요지는 알미너스 백작이 알아서 물러나게 만드는 것.
쉽게 말해, 위협할 총알이 필요하다.
***
법률 상담이 끝난 후.
곧장 모즐란에 방문해 법관의 도움을 받으며 내게 가장 유리하도록 진술서 작성을 끝마쳤다.
일단 재판까지는 가지 않는 게 베스트인 거 같긴 하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니까.
만일을 위해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 한다.
‘재판이 열리려면 두세 달은 걸릴 거랬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기에 알미너스 백작과 직접 만나보는 일은 뒤로 미뤘다.
그야 지금 가서 뭐가 변하겠는가?
따라서…….
딸랑-!
돌아오는 길에 탐험가 길드를 방문했다.
그리고 일반 안내원이 아닌 지부장의 접대를 받으며 토벌 신청서를 작성했다.
[공포의 군주 드레드피어.]토벌 대상은 1층의 계층군주인 바로 그 녀석.
“…이 토벌 신청서는 오랜만이로군요.”
그야 그렇겠지.
5등급 클랜이 4등급 클랜으로 승급을 원할 때는 다른 방법도 많으니까.
보통 창설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실력은 충분해서 빠르게 승급을 하고 싶은 자들만이 이놈을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토벌 일자는 바로 이 다음 미궁이 열린 때……. 이거 서둘러 각 지부에 공문을 올려야 하겠군요.”
다행히 허가는 문제없이 나왔다.
“아십니까? 공문이 걸리자마자 한바탕 난리가 날 겁니다.”
모를 리가.
내가 바라는 바가 그건데.
“토벌 참가 인원이 다섯 명이라니…….”
“…….”
“만약 성공한다면 최후의 대현자 이후 열 번째로 있는 위업이 되겠군요.”
알미너스 백작을 상대하기 위한 첫 번째 총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