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76)
576화 리턴 (2)
여우, 늑대, 고블린, 여왕, 나비.
그리고 나와 아우릴 가비스.
총 일곱 명이 모인 원탁의 방에 불편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탁 멤버들은 이 낯선 세계로 끌려온 지 최소 수 년은 훌쩍 넘은 올드 유저들이니까.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고요……?”
이곳에서 지낸 기간이 오래 됐기에 그들은 더욱더 잘 알고 있다. 심연의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가겠단 목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대부분이 이곳의 삶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왜,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상황이 달라졌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던전 앤 스톤]. 그리고 그 게임을 제작한 장본인 아우릴 가비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말한다.
게임을 하고, 거기서 이긴다면 상품으로 집 귀환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흐음, 이 정도면 괜찮은 보상이라 생각했네마는.”
플레이어라면 혹하다 못해 부나방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으나, 원탁 회원들은 의외로 침착했다.
그도 그럴 게, 이들이 누군가?
이 험난한 세상을 지금까지 헤쳐온 자들이다.
먹음직스러운 무언가가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무슨 게임인지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요.”
“만약 참가를 해야지만 들을 수 있는 거라면, 저는 듣지 않겠습니다…….”
곧바로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기보다는 제대로 된 판단을 위해 정보부터 수집하려는 회원들.
그들의 질문에 아우릴 가비스는 너그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참가를 해야지만 들을 수 있다니, 그럴 리 없지 않은가. 내가 준비한 게임은 아주 간단한 게임일세.”
참 이상한 일이었다.
말투만 보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데, 그걸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
아우릴 가비스가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이자, 가면이 벗겨진 회원들의 표정이 더욱더 경직된다.
과연 무슨 게임일까?
노망이 나서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같은 걸 시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마침내 노인네의 입이 열었다.
“바로 퀴즈일세.”
이 자리에 모인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게임이었다.
“퀴즈… 말입니까?”
“자네들이 아는 그 퀴즈가 맞으니 의심 어린 눈빛은 그만하게.”
“아니… 단지 어떤 식으로 되는 걸지가 궁금해서…….”
“아, 내가 그걸 말하지 않았군. 앞으로 내가 퀴즈를 내면 자네들은 답을 맞히면 되네. 사실인지, 아닌지. 선택지가 두 개뿐인 객관식 퀴즈지.”
“OX퀴즈 말이군요…….”
고블린이 어딘가 찜찜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곱씹자, 아우릴 가비스가 추가 설명을 보충했다.
뭐, 이걸 추가 설명이라고 봐도 될진 모르겠지만.
“퀴즈는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이 될 걸세. 아, 물론 도중에 포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말일세.”
“헤에……?”
나비가 ‘이것 봐라?’ 하는 느낌으로 소리를 냈다.
모두가 비슷한 심정이었다.
OX 퀴즈에서 탈락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하다니, 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일까.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이내 여왕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노인네는 또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놓았다.
“글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나. 난 언제나 자네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네.”
존중하기는 개뿔.
다들 집에서 게임하다가 끌려온 사람들이구만.
비꼬는 말투로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냥 머리에 참을 인을 새기며 참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니까.
“아무튼, 설명은 이만하면 된 듯하니 참가할 사람은 말해보게.”
이후 노인네는 참가 의사를 묻는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포기하거나, 탈락했을 때의 패널티가 없다는 말, 정말인 거죠?”
“걱정 말게.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이 게임은 자네들의 가면을 벗긴 것에 대한 대가라고.”
“그렇다면… 저는 해보겠어요.”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여왕이 참가 의사를 내비치는 것으로 모든 회원들의 참가가 결정됐다.
아, 물론 나는 빼고.
“미안하지만, 자네는 참가할 수 없네. 하지만 너무 서운해하진 말게. 어차피 자네는 이런 방법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돌려보내 줄 생각이 없는 거겠지. 내가 열심히 성장해서 언젠가 심연의 문을 열어야 하니까.
“헤에… 수사자 님이랑 저희는 뭔가 다르다는 건가요? 왠지 흥미가 생기네요.”
날 보는 나비의 눈빛이 조금 더 진해지는 것을 끝으로 아우릴 가비스가 박수를 치며 이목을 모았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해보세.”
뒤늦게 깨달은 것인데, 어느샌가 각자의 자리 앞에 O, X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뭐, 이러니까 진짜 미니게임이라도 하는 거 같네.
‘……분명 이 늙은이라면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 텐데.’
과연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자, 그럼 첫 번째 문제일세.”
OX 퀴즈가 시작됨과 동시, 저 늙은이가 왜 도중에 포기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우 가면은 마법사다.”
“……!”
“맞으면 O, 틀리면 X가 적힌 팻말을 들게.”
……이건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다.
***
첫 번째 문제가 나온 순간, 어색한 공기가 주변을 휘감는다.
“…….”
애써 표정 관리를 하려는 듯하지만,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여우.
그리고…….
“어…….”
그 사정을 알기에 더더욱 어쩔 줄 몰라 하며 여우의 안색을 살피는 고블린.
“흐음…….”
보아하니 여왕도 이 게임에 숨겨진 진실을 깨달은 듯했다.
뭐, 남은 둘은 아직인 듯하지만.
“헤에… 그냥 여우 님이 드는 팻말을 따라서 들면 되지 않을까요? 본인이 퀴즈 당사자인데.”
“호오, 나쁘지 않은 방법인 듯하구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여우에게 모였고, 이내 여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팻말을 들어 올렸다.
“동그라미구려.”
“정말 마법사셨네요. 왠지 그런 이미지이기는 했는데. 저기요 마스터님? 정답 확인을 할 차례 아닌가요?”
이내 나비의 물음에 아우릴 가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네. 전원 정답을 맞혔네. 그럼 두 번째 문제로 바로 가지.”
“…….”
“고블린 가면은 성기사다.”
그러려니 하던 늑대와 나비조차 아우릴 가비스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
“…….”
게임을 하는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해진 장내. 그 속에서 사람들은 O가 적힌 팻말을 들었고, 비슷한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여왕 가면은 단 한 번도 미궁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세 번째 질문의 정답은 O.
“늑대 가면은 한 클랜의 단장이다.”
네 번째도 정답은 O.
“나비 가면은 노아르크의 일원이다.”
당연히 다섯 번째도 답은 O였다.
사실상 이쯤 되면 X 팻말은 왜 만들어 준 건지 의문이 들 정도.
“자, 그럼 이제 여섯 번째 질문을 할 차례로군?”
이내 그렇게 한 바퀴가 끝난 뒤, 노인네의 시선이 다시금 여우에게로 이동했고, 그 시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야 이게 OX 게임이 아니란 건, 다들 진작 눈치를 챘으니까.
OX 게임을 빙자한 폭로 게임.
그것이 이 게임의 실체이며, 한 바퀴가 끝났으니 다음 질문은 더 수위가 높아질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해두겠네. 나는 자네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니, 포기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만 하게.”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는 말…….
아까는 웃기지도 않게 들렸지만, 이번에는 그 말의 무게가 남달랐다.
그야 친절하게 맛보기까지 제공하지 않았던가.
설마 그가 내 정체를 알겠어? 따위의 생각은 이제 불가능하다. 차례가 지나갈수록 만인 앞에 공개해야 할 정보가 점점 늘어날 터.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여왕의 물음에 아우릴 가비스는 즉답했다.
“아무런 일도. 아, 그래도 게임은 진행을 해야 하니 자리를 비켜주기는 해야 할 걸세. 관전자는 한 명이면 족하니 말일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확실한 거죠?”
“내가 여기서 그 어떤 말을 해야 자네가 믿겠나? 의심을 지우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뿐이네.”
“뭔가 그럴듯한 증거라든가 그런 걸 제시하면—.”
“믿지 못하겠다면,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네. 이곳을 떠나는 것.”
“…….”
“어쩌겠나?”
누가 봐도 사기꾼스러운 언변이었으나, 여왕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보며 아우릴 가비스가 껄껄 웃었다.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사실상 자네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은 이것뿐이지 않은가?”
“…….”
“기운 내게. 결국 끝까지 남아 승자가 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아, 아니면 잠시 시간을 줄 테니 나가서 그 친구에게 물어봐도 좋네? 이걸 해도 될지 말지. 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됐으니까… 계속해요.”
여왕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끊었고, 아우릴 가비스는 오히려 유쾌한 기색으로 다시 OX 퀴즈를 이어나갔다.
모두 조용히 팻말만 들은 덕분에 한 바퀴를 전부 도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안팎.
“여우 가면은 돈을 빼앗기 위해 무고한 탐험가를 죽인 적 있다.”
“고블린 가면은 레아틀라스의 신탁을 받은 적 있다.”
“늑대 가면은 현재 7구역에서 거주 중이다.”
“여왕 가면은 귀족이다.”
“나비 가면은 오르큘리스의 일원이다.”
어째서 여우만 저런 과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바퀴가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저기 마스터님? 전 여기까지만 할게요!”
나비 가면이 포기 선언을 해왔다.
“왠지 다음 바퀴에서는 이름이 나올 거 같아서요. 뭐, 밝히지 못할 건 없는데……. 좀 그렇잖아요? 진짜 집에 돌려보내 줄 수 있는 건지 확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자네의 판단을 이해하네. 그럼 이제 자리를 비켜주겠나?”
떠나달라는 요구에 나비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우리를 쓱 보며 명랑하게 인사했다.
“다들 언젠가 밖에서 봐요!”
이십대 초반의 외모로 저리 말하니 꽤 상큼하게도 보였다.
한데 OX 퀴즈 덕에 나비가 노아르크 소속, 그것도 범죄 집단인 오르큘리스의 일원임을 알게 되어서 그럴까?
‘밖에서 보잔 말이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들리지?’
다만, 단순히 기분 탓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진 몰라도 쟤가 멀쩡한 인간일 거 같지는 않거든.
“저는… 여기까지 하겠어요.”
여하튼, 나비 가면이 적당한 타이밍에 빠르게 손절을 치고 나가는 모습에 정신이 들었는지, 이후 여우도 이탈을 선언했다.
“흐음, 여우 양이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는 그 누구보다 간절했지 않나.”
“그랬죠… 하지만 한 번 죽었다 살아났더니 그것도 다 의미가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의 저한테는 지금의 제 삶도 충분히 소중해요.”
그런 솔직한 답변을 뱉은 여우는 아우릴 가비스를 향해 짧게 목례했다.
“그래도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의도가 어쨌든, 그때 절 거둬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테니까요.”
“…고맙기는. 내가 아니었어도 여우 양이라면 잘 헤쳐나갔을 것이네.”
“그럼 떠나기 전에 잠깐 인사 좀 해도 될까요?”
“마음껏 하게.”
이내 여우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씩 눈을 맞췄다.
늑대, 고블린, 여왕, 그리고 나.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사람이 줄었네요. 아쉬워요. 설마 이런 식으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질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그래도 서로 얼굴은 봐서 좋네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제대로 나서.”
“그런… 가요?”
“네. 적어도 저는요. 처음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든 아니든, 어디서든 잘 살길 바랄게요. 이건 진심이에요.”
축복의 말에 여왕은 한참이나 답을 못했다.
그 속내야 뻔했다. 저 말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생각했겠지.
최종적으로는 그런 게 없단 걸 깨달았을 테고.
“……고마워요.”
이내 여왕이 쥐콩만 한 목소리로 그리 화답했고, 여우는 싱긋 웃어준 뒤 짧은 대화를 끝내고, 시선을 쓱 옮겼다.
연이 짧았던 늑대는 그냥 한 번 보고서 지나쳤고, 고블린의 앞에서는 잠시 시선을 고정했다.
다만 밖에서 얘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고블린에게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고 넘어가 나를 보았다.
“사실… 수사자 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괜찮을까요?”
해보라는 듯 고개를 짧게 주억이자, 여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삶이 많이 무료하면, 가면을 벗고 벗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어…….
“그럼 분명 이곳의 삶도 재밌어 질 거예요.”
왜 친구가 없다는 게 전제인 건데?
알 수 없지만, 바로 이어진 말에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그랬거든요.”
이건 조금 감동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