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02)
602화 세 번째 기록 (5)
에르웬을 꽉 끌어안으며 추락을 대비한 순간.
쿠웅-!
발을 딛고 있던 지면이 무너져 내리며 부유감이 온몸으로 전해져온다. 다만 추락할 때 느껴지는 감각과는 엄연히 달랐다.
후우웅-!
중력을 거스르듯 무너진 지반 위로 떠오르는 몸.
부유 마법이었다.
“다들 괘, 괜찮소?”
빠르게 주변을 쓱 훑어보니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는 가휜과 촌장이 보인다.
이번만큼은 진심을 다해 칭찬했다.
“덕분에 살았군. 잘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오더도 제대로 내리지 못했는데, 알아서 이렇게 대응을 해줄 줄이야.
“……칭찬받을 일까지는 아니오.”
거, 노인네가 부끄러워 하기는.
아까까지 치고받던 사이라 멋쩍은 건가?
알 수 없지만 우선 확인할 것부터 짚고 넘어갔다.
“마법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지?”
“지상에 안착할 때까지는 충분할 것이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다행이군. 그럼 지금부터 천천히… 아니,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면 되니 빠르게 하강해라.”
부유 상태에서 변수가 발생 시 제대로 된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내린 판단.
지시가 떨어지자 가휜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쾅! 쿠르르르르…….
주변은 단어 그대로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붕괴하며, 그에 따라 거대한 낙석들이 위협적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제 좀 탐험을 하는 느낌이로군.”
촌장은 추락하듯 하강하는 와중에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저렇게 생동감 있는 눈빛은 처음 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얘도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져도 제대로 빠졌단 느낌이 들지만, 촌장에게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아까 전에 그건 뭐였지?’
계층군주가 대폭발 직전의 대주교를 끌어안고서 지하로 다이빙을 했다.
우리의 적인 줄 알았던 그놈이 어쩌다 보니 우리를 돕는 듯 행동한 것인데…….
“에르웬, 혹시 네가 놈을 조종한 거냐? 대주교를 잡고 떨어지라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가능성부터 확인했으나, 애석하게도 답은 아니었다.
“아뇨. 해보려 했는데 안 통했어요.”
허, 그럼 계층군주가 자의로 저런 행동을 했다는 건가?
“어쩌면 그 마물이 우리의 적이 아니었던 걸 수도 있겠군.”
우리 대화가 들렸는지 촌장이 한마디 거든다.
뭐, 확실히 틀린 의견은 아니다.
계층군주를 보자마자 저놈이 보스몹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력자 역할이었던 걸지도.’
2챕터에서 만난 햄식이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상위 존재들이 에르웬에게 호의적인 행동을 취할 거라는 단서를 주기도 했었고.
콰앙-! 쿠웅-!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강하던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낙석이 가휜의 머리통 위에 내리찍힌다.
아찔한 상황이었으나, 낙석에 대비하여 펼쳐둔 보호막 덕분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아…….”
너무나도 불길하게 들리는 ‘아’ 소리.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바, 방금 거로… 부유 마법의 술식 연산이 깨졌소.”
“연산이 깨졌다니? 알아들을 수 있게 말—.”
해라.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찰나였다.
“아…….”
하강이 멈추며 잠시 부유 상태가 되더니.
“꺄아아아아악-!”
우리는 그대로 추락했다.
***
머리가 아프다.
폐가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갑갑하고, 척추가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살았구나.’
그렇다면 다른 쪽은 어떻게 됐을까.
정신없이 추락하다가, 땅이 보이며 에르웬을 끌어안고 등으로 충격을 받아낸 게 마지막 기억이었는데…….
“…아, 아…씨! 아…씨! 제 말… …리세……?”
이명 속에서 에르웬의 다급한 음성이 고장난 라디오처럼 끊기며 들린다.
또한, 촌장의 목소리도 들렸다.
“흔들… 말… 기다……. 포션도 먹…으니 곧…….”
“…저씨! 아저씨!”
“전혀 듣지 않는군…….”
서서히 목소리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저씨……!”
“나는… 괜찮으니… 그만.”
“아, 아! 죄송해요!”
그제야 에르웬이 내 몸에서 내려갔고 덕분에 조금 더 숨쉬기 편해졌다.
“조금만 참게. 회복되는 추이를 보건대, 곧 움직일 수 있을 걸세.”
“얼마나… 기절했지?”
“5분 정도.”
“가휜은……?”
상황부터 파악하려는 내 질문에 촌장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뻣뻣한 목을 겨우 움직여 옆을 바라보니 다리가 박살 난 채 쓰러져 있는 가휜이 보였다.
“죽지는 않았네. 마지막에 마법을 써서 속도를 최대한 줄인 거 같더군. 포션은 먹여놨으나…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겠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너는?”
“나야 멀쩡하네.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리고서 제대로 충격을 줄였으니까.”
부럽다.
나도 방어 수치만 멀쩡했어도 이렇게까지 몸이 아작나진 않았을 텐데.
“…적은?”
“일단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회복에 전념하시게.”
“알겠다. 그런데 너 말투가…….”
“어차피 나이도 작위도 내가 위이지 않은가? 죽을 고비도 함께 넘겼는데 좀 편하게 말할 수도 있지.”
뭐, 그건 그렇긴 하지.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다고 해도 주변에서 딱히 의심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잠시만 더… 쉬겠다…….”
이후로는 눈을 감고 마냥 누워있자, 머지않아 혼자서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물 드릴까요?”
“아, 고맙다.”
물 한 잔 마시고 일어나자마자 촌장이 기다렸단 듯 물어온다.
“그럼 이제 어쩔 텐가?”
팀 반푼이 때부터 클랜 아나바다까지.
뭔가 일이 터지면 늘 들어오던 대사였다.
항상 사람들은 내게 답을 구한다. 한때는 그게 갑갑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내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모두 미룬 채 지시만 받으라고 하면 그건 또 싫으니까.
“베실러스 경이 깰 때까지 우선 기다릴 텐가?”
글쎄, 뭐가 최선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야 처음 들어온 균열이지 않은가.
특이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부터 시작해, 계층군주 카루이의 사제까지…….
솔직히 말해 머리가 아플 정도다.
하지만…….
“아니, 일단 가휜을 챙겨서 주변 수색부터 시작한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시간을 더 끌었다가 괜히 상황이 이상해질 수도 있으니까.
“에르웬과 가휜은 내가 챙길 테니 백작, 네가 선두에 서라.”
“그러겠네.”
제일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것이었으나, 촌장은 순순히 내 지시에 따랐다.
단지 그 임무에 본인이 가장 제격이란 걸 알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약속은 꼭 지키게.”
이번 균열에서 몸 바쳐 돕는 대가로 나는 ‘카루이의 심장’을 도시로 가져다 주기로 약속했다.
“걱정 마라.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으니.”
“그렇다면 다행이군. 아, 그리고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수첩을 보게.”
“수첩?”
“자네에게 배낭을 줄 때 같이 넣어놨네. 자네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모두 적어놨으니, 이후 여정에 도움이 될 걸세.”
수첩이 들어 있는지는 몰랐다.
애초에 배낭을 넘겨 받은 것부터가 균열에 들어오기 직전이었으니까. 심지어 혹시 모른다는 촌장의 말 때문에 밖에다 맡기고 들어왔었다.
‘수첩은 여기서 나가자마자 확인해보면 되겠고…….’
그렇게 무너진 잔해들 위로 한참이나 이동하던 때였다.
“…….”
“…….”
어느 순간 소리가 사라지며 적막이 찾아온다.
이제 이 현상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캐릭터가 [불언령]의 범위 내에 들어섰습니다.」
「모든 정수의 스킬이 봉인됩니다.」
근처에 계층군주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피해가는 게 옳은가?
무엇이 정답인진 알 수 없지만, 나는 지시를 기다리는 듯한 촌장에게 수신호했다.
‘계속 진행.’
이번 챕터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한 만큼 직접 부딪쳐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을뿐더러…….
‘조력자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
설령 적이라 하더라도, 폭발 직전의 대주교를 끌어안고 낙하를 했으니 정상일 리 없다는, 그런 최소한의 근거가 있던 판단.
“…….”
그렇게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이동한 끝에 우리는 고요의 군주 실리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적막 속에서, 녀석은 바위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예상대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밖으로 드러난 세 개의 팔 중 두 개는 아예 뼈가 드러나 있으며, 움직일 기력도 없다는 듯 잔해에 파묻힌 채 무기력하게 눈꺼풀만 깜빡거리는 녀석.
“…….”
위협이 될 상태가 아니란 것에 안도감이 드는 한편으로 등골이 오싹하다.
위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층군주를 한 방에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그 폭발에 우리가 정통으로 휘말렸다면 그땐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까.
‘대주교는… 안 보이네.’
주변을 쓱 훑어본 나는 에르웬을 내려준 뒤 천천히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고요의 군주, 실리어트.
놈은 내가 다가가는 와중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어딘가 지친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볼 뿐.
“…….”
이내 손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간 나는 조심히 팔을 뻗어 얼굴을 만져보았다.
접촉이 있었음에도 녀석은 여전히 조용했다.
우리를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기라도 하듯이.
‘너는 왜 우리를 도와준 거냐?’
묻고 싶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뭐,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저 녀석이 제대로 된 답을 해줄 거 같지도 않지만.
그래서 나는 그냥 나 스스로 답을 내렸다.
‘……그래, 너한테도 뭔가 사연이 있는 거겠지.’
이제 나도 이 미궁에 대해서 아는 게 생겼다.
균열 수호자, 계층군주는 실존했던 인물들이며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만이 아니라 미궁에 존재하는 모든 마물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어찌 보면 낯선 세계에 끌려와 이 난리를 떨고 있는 나보다도 훨씬 더 불쌍한 존재.
스윽.
이내 녀석에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자 촌장이 내게 눈짓하며 수신호를 보낸다.
‘죽이자.’
그런 뜻을 가졌을 뿐인 간단한 손동작.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나란 제스처를 취했다.
“……?”
촌장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나와의 약속 때문인지 일단 지시에는 따라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녀석의 영역에서 벗어난 순간.
“왜 죽이지 않았지?”
촌장이 내게 묻는다.
“그 꼴을 보니 딱히 위험할 것도 없어 보였네만.”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그런 선택을 내렸을까.
“그래도 일단 우리를 도와준 존재니까. 괜히 죽였다가 뭔가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이는 건… 좀 더 정보를 얻은 후에 해도 되니까.”
지금 촌장에게 한 말이 아예 거짓말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흐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
쉽게 납득한 촌장과 달리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야 나는 그 이유만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계층군주의 정수.
계층보구.
균열을 열 때 쓰이는 계층석.
확실한 건 아니지만, 녀석을 죽이면 그 보상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동정심… 같은 건 확실히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
[이리 오거라······.]그때 다시 한번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며 나는 상념을 끝마쳤다.
소리의 근원지는 계층군주가 있던 곳과는 아예 반대편 방향.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걔가 낸 소리가 아니었던 거구나…….’
변태 같은 대사를 치며 우리를 부르며 유인하듯 하던 것은 계층군주가 아니었다.
하긴, 인게임에서 대사 자체가 없던 놈이라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그럼 소리가 나는 곳으로 앞장서 가면 되겠나?”
고개를 끄덕이자 촌장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조금 거리를 둔 채 에르웬과 함께 뒤따르고 있자니 머지않아 음성의 주인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옳지…….] [그래, 이리 와 안기거라…….]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였다.
“소울이터……?”
5등급 희귀종.
미궁이 열렸을 때 대마경에서 딱 한 마리만 생성이 되며, 처치 시 최소 100에서 200까지 무작위로 경험치를 주는 바로 그 몬스터.
[너희가 바라는 소망을 이루어주마…….]뭐지, 이게?
분명 보스몹이든 뭐든 나올 상황 아니었나?
「소울이터가 [영혼기병]을 소환했습니다.」
보아 하니까 쓰는 스킬도 원래의 것이랑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이고…….
[끼야아아아아악-!!]실제로 촌장이 대충 쓱 휘두른 검격에 소울이터는 반쪽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처치됐다.
「소울이터를 처치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당황스럽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소설로 치자면 맥거핀.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지만 사실은 쥐뿔도 없던 일반 잡몹.
그렇게 해석하고 넘어갈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뭔데 이건 또.’
이어진 광경에 나는 또다시 머리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호자 처치 보너스. EXP +3」
놈이 있던 자리에 수호자를 의미하는 무지개색 정수가 허공에 떠오른 것도 모자라.
후우웅-!
균열 클리어를 의미하는 포탈이 생성됐다.
붉은색과 푸른색.
어째선지, 그것도 두 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