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01)
601화 세 번째 기록 (4)
가발이라도 쓴 듯 얼굴을 덮은 산발.
그리고 그 산발 사이로 드러난 하나의 눈.
쿠웅-!
신장은 약 6m.
이미 대형 마물의 기준을 한참 넘고 있지만, 과할 정도로 긴 비율을 가진 팔 덕분에 체감되는 몸집은 그 이상이다.
뭐, 그래 봤자 히프라마전트보다는 작을 테지만.
쿠웅-!
그럼에도 압박감은 차원이 다르다.
그야 나는 저놈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고요의 군주, 실리어트.
까다로운 기믹들로 무장한 5층의 계층군주.
정수를 사용하는 ‘탐험가’인 나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바로 그 존재.
이 녀석의 정수를 지녔던 ‘반역자’ 리카르도 뤼헨프라하를 상대할 때처럼 ‘결속’ 마법으로 카운터를 치는 것도 불가능한데…….
‘얘가 왜 여기서?’
의문을 느낀 것과 별개로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타닷.
놈과 눈을 마주친 순간 뒤로 물러나 에르웬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해, 수신호로 간단한 지시를 내린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마법사 가휜을 보면서.
‘공격할 것.’
‘매우 강하게.’
클랜 아나바다 멤버들이었다면 수신호로 더 복잡한 지시를 내릴 수 있었을 테지만, 이는 투정을 부려봐야 변하지 않는 부분.
다행히 가휜은 지시를 받자마자 이행했다.
「가휜 베실러스가 고대 마법 [카투카의 뇌우]를 시전했습니다.」
카투카의 뇌우.
‘마법사’ 역할인 가휜이 쓸 수 있게 된 고대 마법 중 하나로 시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즉발 마법.
당연히 위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번뜩-!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 몇 번의 섬광이 협곡 전체를 뒤덮고.
쿠우우우웅-!
소리가 아닌 거대한 진동이 피부로 와닿는다.
또한 그와 동시에.
「캐릭터가 [불언령]의 범위에서 벗어났습니다.」
절벽을 타고 오르던 고요의 군주, 실리어트가 아래로 떨어지며 소리가 돌아온다.
“어어…….”
일단 마법부터 쓰고 본 가휜은 어딘가 멍청한 얼굴이었고.
“흐음… 신기한 마물이로군.”
촌장은 태평했다.
아, 그러고 보면 이 아저씨가 살던 시대의 미궁엔 계층군주가 없었으려나?
명예의 돌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심연 수색자 리메닌이 10층에 도달한 다음부터 계층군주가 미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베실러스 경, 저 마물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나?”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바, 방금 저희가 본 그 괴물은 대마경의 계층군주입니다…….”
“계층군주……?”
촌장은 낯선 단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다만 친절하게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다.
“뭣들 하나! 얼른 따라와라!”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언젠가 저놈을 잡아야 하는 것이라 한들, 좁은 협곡 위는 저놈과 전투를 치르기 좋은 장소가 아니니까.
애초에 생각 정리를 할 시간도 필요했고.
“에르웬, 잘 잡고 있어라.”
“네, 네!”
이내 에르웬을 끌어안은 상태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타닷.
본격적으로 내달리자, 새로운 변화를 하나 더 알 수 있었다. 마물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그냥 뚫어보려 했건만.
‘불행 중 다행인가…….’
고요의 군주가 등장한 여파인지, 길목을 막던 마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남작,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말이라도 해주시오!”
“아래로 간다.”
“아래……? 아래에는 계층군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오!”
“그러니까 가는 거다. 싸운다면 협곡보다 평지가 유리하니까.”
“설마… 그, 그놈과 싸울 생각이오?”
가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지만, 나로서는 해줄 말이 하나뿐이었다.
“그럼 달리 방법이 있나?”
“씨발, 계층군주란 말이오! 수백 명이서 준비를 하고 잡아도 희생자가 나오는 그 계층군주! 그런 놈을 다섯이서 잡겠다고? 심지어 여기 이 요정은 한 사람 몫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사실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다.
계층군주의 악명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 격해진 것도… 뭐, 필드 효과 때문이겠지.
망치 치료를 할 시간은 없기에 이번만큼은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
“가휜 베실러스!”
그때 촌장의 고함 소리가 협곡을 울린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촌장의 일갈.
“예, 예……?”
이에 완전히 얼이 나간 가휜을 보며 촌장은 강하게 말했다.
“그만 투덜거리고 남작 말을 따르게. 이는 지시일세.”
“예? 하, 하지만…….”
“불복종하겠다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단지 저는 녀석과 싸우는 것 말고도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예, 아니오로만 답하게. 다만 신중했으면 좋겠군. 오늘의 대답이 자네의 미래를 정할 테니.”
“……따르겠습니다.”
그래도 촌장이 제때 나서준 덕에 상황이 빠르게 진정됐다.
원래 이럴 때 지휘권이 흔들리면 답이 없는 법인데, 다행히 촌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모양.
타닷.
이내 촌장이 속도를 올려 선두에 있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 친구 반응을 보니 굉장히 힘든 적인 듯한데, 생각이 있는 거겠지?”
“…물론이다.”
정확히는 아직 생각 중인 거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까지 벌써 절망할 상황은 아니다.
이미 레이드를 위한 필수 요소는 갖춰졌으니까.
‘신관, 마법사, 기사.’
고요의 군주를 레이드할 때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들. 물론 그래도 다섯 명이서 잡기에는 너무 숫자가 부족하긴 하지만…….
신성력 무제한에 고대 마법.
촌장도 스탯이 뻥튀기 된 덕인지 이번 챕터 내내 압도적인 위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최소 조건은 갖춰진 셈.
‘문제는 나랑 에르웬인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레이드에서 뭔가 ‘역할’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아는 [던전 앤 스톤]은 그런 게임이었으니.
‘일단 보스전이 시작되면 저 세 명으로 레이드를 돌리면서 각을 봐야겠네.’
참고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신관이다.
무한한 신성력을 잘만 활용한다면 어떻게든 버티는 게 가능할—.
“나, 남자아아아악-!! 멈춰보시오!!”
그때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뛰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멈춘 상태인 가휜과 대주교가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대주교가 갑자기 멈춰 움직이질 않고 있소!”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멈춘 대주교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가휜.
“잠시 비켜봐라.”
에르웬을 내려놓고 다가가 확인을 해봤지만, 대주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한 상황.
‘뭐지?’
고요의 군주한테 이런 패턴은 없는데?
균열 안이라서 뭔가 다른 건가?
그렇다면 변수가 너무 많아지는—.
“남작.”
그때 대주교가 돌연 입을 열었다.
‘어우, 깜짝아…….’
나는 놀란 가슴을 몰래 쓰다듬으면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확인해 나갔다.
“대주교, 괜찮은 거냐? 무슨 상황이었던 거지?”
문제가 생긴 거라면 서둘러 대처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
“걱정 마시오. 난 멀쩡하니.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라오.”
뭐야 이건 또.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요. 신의 기적이 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소. 과연 내 생에서 이토록 충만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깔을 보아하니 대주교는 아직도 맛탱이가 간 상황이었다.
하, 진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남작.”
대주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처우를 두고 고민하던 차, 대주교가 시선을 움직여 나를 응시한다.
“남작도 조상의 영령 말고 다른 무언가를 섬겨볼 생각은 없소?”
아까 고요의 군주가 나타나기 전에 내게 했던 바로 그말. 다만, 이번엔 듣자마자 어딘가 위화감이 전해져온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네가 말한 ‘다른 무언가’가 레아틀라스를 말하는 게 맞나?”
대주교는 침묵했다.
다만, 내 질문에 대신 대답하듯.
솨아아아아아-
미궁의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흑색 알갱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마치 축복을 하듯 대주교의 곁으로 모여든다.
애석하게도 난 저 이펙트의 정체를 알고 있다.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할 때 생기는 이펙트.
솨아아아아아아-!
대주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흑색 알갱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이상 부정하는 건 의미 없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보이시오? 신의 은총이?”
대주교가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했다.
***
「이든 헤스테이아가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카루이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머리가 굳는다.
갑자기 우리 팀의 신관이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을 하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죽여야 하나?’
무방비한 저 모습을 보면 아예 불가능할 거 같진 않다.
아니, 지금 말고는 기회가 없단 생각마저 든다.
서둘러 선택을 내려야 했다.
무한한 신성력을 지닌 대주교가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 후 적으로 돌변하면 골치 아플 게 분명했으니까.
‘근데… 죽이면, 그다음엔 답이 있나?’
대주교를 이렇게 쉽게 죽여도 되냐는 도의적인 의문은 제쳐두고서.
신관이 없으면 계층군주는 절대 못 잡는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죽이면 안 되는 걸 수도 있어.’
나는 이 균열의 공략법을 아직 모른다.
한데 만약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한 대주교가 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라면?
충동적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
「캐릭터가 [휘두르기]를 시전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내 망치는 대주교의 정수리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 아닌, 순간의 판단.
콰직-!
전력을 담은 망치질 한 번에 대주교의 머리통 절반이 날아갔다.
그러나 대주교는 여전히 서 있었다.
카루이의 사제들이 하프 헤드 모드가 가능하단 건 익히 알고 있던 바였기에 놀랍진 않았다.
“이, 무… 무슨 짓이오!!”
다만 지켜보던 가휜 쪽은 달랐을까.
“대, 대주교를 공격하다니! 당신이 정녕 미친 것이오!!”
아. 얘는 그냥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거구나.
설명해 줄 시간은 없었다.
‘한 번 더.’
나는 망치를 휘둘렀고, 애석하게도 대주교의 몸에서 돋아난 촉수에 의해 가로막혔다.
신성 주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징그럽고 꺼림찍하게 보이는 광경.
“…다, 당췌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이오?”
몇 번 더 망치를 후려쳤으나 촉수의 반격에 의해 나도 이만 포기하고 짧게 설명했다.
“대주교가 카루이의 사제가 되었다.”
“뭣?”
“봐라. 머리통이 반쯤 박살 났는데도 살아 있지 않나.”
“그, 그럼 어서 해치워야 하는 것 아니오?”
거, 아까는 대주교한테 무슨 짓이냐고 하더라니.
“세인트레드 백작, 네가 한번 해보겠나?”
이후 빠르게 지시를 내리자, 촌장은 어떠한 반문도 없이 오러를 뽑아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콰아앙-!
저 껍질은 오러마저도 막아냈다.
하나 촌장은 전혀 아쉬운 기색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가능은 할 거 같네마는……. 그다음부터 나는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할 걸세. 필살기 같은 거라서. 자네는 내가 그러길 바라는가?”
나머지는 모두 내 선택이라는 듯 쳐다보는 촌장.
덕분에 고민이 깊어진다.
저렇게 확언을 한 이상, 본인이 한 말은 지킬 거 같지만…….
‘촌장까지 없어지면 마법사 하나뿐이야.’
이후의 일까지도 생각을 해야 한—.
“그대들은…….”
그때 대주교의 입이 열렸다.
“역시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려.”
예전 촌장의 말투처럼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걱정 마시오. 곧 이해할 수 있게 될 터이니.”
대주교의 불길한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제령 의식을 받듯 척추가 뒤로 꺾여진 대주교의 가슴이 활짝 열린다.
까가가가가각-!
무슨 스킬인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든 헤스테이아가 [불안정한 그릇]을 시전했습니다.」
불안정한 그릇.
카루이의 사제가 가진 최강의 필살기.
스킬의 효과는 간단하다.
시전 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무적이 되며…….
‘폭발하지.’
범위와 위력만 두고 보자면, [던전 앤 스톤]의 그 어떤 스킬도 따라가지 못하는 최강의 스킬.
‘이미 피하는 건 늦었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촌장을 포기하더라도 우선 저건 막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려던 찰나.
쿠웅-!
지면에서 진동이 느껴지며 소리가 지워진다.
「캐릭터가 [불언령]의 범위 내에 들어섰습니다.」
「모든 정수의 스킬이 봉인됩니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이 상황에서 아까 떨어뜨린 계층군주마저 다시 등장한 것인데…….
‘공격할 것.’
‘매우 강하게.’
아까 가휜에게 보냈던 수신호를 촌장에게 다급히 보낸다. 한데 촌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 혹시 정수가 봉인되면 안 되는 건가?
‘니미럴.’
따라서 서둘러 수신호를 바꾼다.
‘전력으로 도망갈 것.’
‘어디든 좋으니.’
‘살아남을 것.’
긴 탐험가 생활 중에서도 직접 써보는 건 처음인 각자도생의 수신호.
모두 수신호를 알아들은 것을 확인한 즉시 나는 에르웬을 업어 들고서 절벽 아래 섰다.
물론 그 와중에도 확신은 없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도… 저 스킬에 처맞는 것보단 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 생각으로 막 땅을 박차며 도약하려는 순간.
쿠웅-!
커다란 손이 절벽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신경 쓰지 않고 마저 뛰어내리려 했으나, 그 손의 움직임이 좀 이상했다.
우리를 노리는 거 같지 않달까.
‘어……?’
실제로 상반신을 길목 위에 걸친 녀석은 대주교를 꽉 껴안듯이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
나와 잠시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툭.
이내 대주교를 끌어안은 채 손에 힘을 풀며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캐릭터가 [불언령]의 범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3초쯤 지나자 거리가 멀어지며 [불언령]이 해제됐다.
그리고 또 얼마나 흘렀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핵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폭발이 저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르며.
“다들! 꽉 잡아라!!”
대마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